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며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감정이 쌓였다. 어렵기도 했고, 주인공이 헷갈리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다. 자유를 찾아서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렵다. 자유가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당장 오늘 먹을 밥조차 없는 사람에게 자유가 중요한 가치일까? 각기 다른 이야기임에도, 왜 한 사람의 이야기같이 느껴지는지 당황스러웠다. 아마 내 안에 탈북인이라는 선입견과 경계를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결혼 전 아버지는 탈북인들이 등장하는 모 프로그램을 참 좋아하셨다. 대한민국에서도 남쪽이라고 일컫는 곳에 고향을 두고 있음에도 북한 이야기나 통일에 관심이 많으신지라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틀어놓으면 어깨너머로 나도 한두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북한을 탈출해서 대한민국까지 오기까지의 여정과 북한에서 살 때의 이야기가 많았다. 얼마나 많은 고생과 목숨의 위협을 겪었는지나 그곳에서 살 때의 이야기들은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들이 말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삶에 무척 만족하는 것 같이 보였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까지 오는 여정은 책 속에서도 참 긴박했다. 물론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는 북한에서의 실상이나 탈출기보다는 그 이후의 생활에 더 포커스가 맞춰있긴 하다. 같은 건물에 사는 노인을 죽였다는 누명 아닌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장철진. 남한 생활이 녹록하지 않고,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 부모의 반대로 파혼당한 화은은 남한에 정착해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남자와 결혼한 선숙 언니를 찾아 강원도로 내려간다. 사실 화은이 파혼당한 이유는 탈북인이라는 것과 탈북인 여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파는 일을 한다는 뉴스 보도 때문이었다. 화은이 있는 곳으로 도망 온 철진에게 화은은 자수를 권유한다. 그가 남한으로 온 후 몇 번의 사건에 휘말렸지만 그를 내치지 못한 것은 그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탈북 전 화은의 이름은 희숙이었다. 라오스를 통해 남한으로 입국하기 전, 그녀는 샛별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었다. 브로커가 요구하는 돈을 마련하지 못한 그들 중 희숙이 몸을 내주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선숙 역시 희숙에게 그러기를 독촉했다. 그리고 희숙이 그 방에서 울고 있는 날, 고열에 시달리던 샛별은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딸의 죽음에 정신을 놓은 희숙을 엎고 달렸던 것도 철진이고, 라오스 땅에 샛별을 묻어준 것도 철진이다. 선숙이 아팠을 때 약을 구해 선숙을 살렸던 것도 철진이다. 하지만 선숙은 그런 기억을 아예 잊어버린 것인지, 철진에 대한 기억을 하나도 하지 못한다.
책 속에는 화자를 바꿔가며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큰 조명상을 하는 남자와 파혼했다는 이야기가 두 번째 장의 화은이 주인공이 되면서 전말이 드러난다. 샛별 아버지 이야기도, 왜 그와 짧은 결혼생활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이야기는 그다음 이야기에 등장한다.
목숨의 위협에도 탈북을 감행한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사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맴도는 이야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부각되는 그들의 과거, 살고자 애쓰지만 쉽지 않은 생활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남한에 정착해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린 선숙과 그 과거를 이따금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화은. 그들의 모습이 교차하며 다른 것 같이 보이지만 둘 다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한 영상을 보고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탈북을 하다 상당수가 북송되거나 제3국에서 스러져가기도 한다. 겨우 한국에 들어온 이들 중 상당수는 탈북인의 굴레에 허덕이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자신의 삶보다 호위 호강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을 향해 울분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책 속의 이야기가 구슬픈 것은 그들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도 우리도 다름이 없다는 사실. 인간의 존엄성을 뭉개며 살아온 그들의 여정에 대해 최소한의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가질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저 매도하고 색안경을 끼기보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