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길 시골하우스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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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소리 내어 하지 못한 말, 속으로만 숨겨둔 말을 시곤의 잠을 통해서 마음껏 건넸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유의 손이 시곤의 얼굴로 가 버렸다.

차마 닿지는 못하고 곡선을 따라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화 작가 여하유는 얼마 전 엄마를 떠나보냈다. 한 해에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떠나보낸 하유는 고아가 되었다. 하유의 유일한 혈육이라 할 수 있는 이모 지순과 사촌 구유라는 막말을 하며 하유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들로부터 잠시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에 하유는 작품을 핑계로 길을 나선다. 잘못된 이정표 때문에 잘못 들어선 길에서 늑대를 보고 하유는 도망치다 다리를 삐끗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린 하유는 한 방에 누워있었다. 하유를 안고 온 사람은 시골 하우스의 주인인 설시곤이었다. 다행이라면, 하유가 본 것은 늑대가 아니라 도베르만인 브라프였다. 브라프 때문에 다리를 다치게 된 하유에게 미안한 시곤은 하유의 다리가 나을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라고 한다. 하유가 찾던 곳과 반대 방향에 있던 시골 하우스에서 그렇게 하유는 잠시 머물게 된다. 시골 하우스를 관리하는 권숙과 종학 부부 덕분에 하유는 건강을 회복한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을 잃은 후, 하유를 따뜻하게 맞아 준 곳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은 왜일까? 하유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브라프 까지도 말이다. 야생화를 그리는 화가라는 시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하유.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맞은 첫 번째 생일. 정은은 2주 넘게 핸드폰을 꺼둔 하유에게 걱정 섞인 인사를 쏘아붙인다. 근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하유가 아닌 시곤이었다. 그날이 하유의 생일인 것을 알게 된 시곤은 하유만을 위한 작은 생일 축하 자리를 만든다. 시곤과 지내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하유. 그렇게 일주일은 더 있기로 한다. 유라로부터 걸려온 전화 때문에, 권숙이 가지 말라고 한곳에 들어선 하유. 그리고 그곳에서 독사를 마주한다. 순간 얼어붙은 하유 앞으로 브라프가 다가온다. 그리고 하유를 지키려다 브라프가 독사에 물리고 만다. 놀란 하유는 정신없이 브라프를 안고 시곤에게 오고, 급하게 병원으로 브라프를 옮긴다. 얼마 후,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는 권숙. 죽었다는 전화였다. 자신에게 마음을 내어준 브라프의 죽음을 들은 하유는 죄책감에 시골 하우스를 떠난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돌아와 미안함을 가득 담은 편지를 남긴다. 다시 돌아온 시골 하우스에는 권숙과 종학 부부도, 시곤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하유의 편지가 사라진다. 과연 누가 가져간 걸까?

어려서부터 하유의 집과 가깝게 지내던 내과의 은재혁은 10년 넘게 하유만을 지켜봤다. 그런 재혁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하유의 절친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서정은. 그리고 재혁의 배경을 보고 하유를 내쫓고 재혁과 결혼을 하고자 마음먹는 지순과 유라 모녀.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읽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상처투성이인 하유가 너무 불쌍했지만, 상황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오해를 풀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게 되지만, 얽혀 버린 관계를 풀어나가기 쉽지 않았다. 하유와 시곤의 사랑을 응원하지만, 하유만을 바라보는 재혁도, 그런 재혁을 바라보는 정은도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는 꽃말이 여럿 등장한다. 그리고 마치 그림을 그리듯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의 표현이 너무 예뻤다. 얼굴이 빨개졌다는 표현을 "순간 넘어가는 해 그림자가 벌게졌다."라는 식으로 표현해 주니 더 와닿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각 인물들의 감정 선과 관계의 변화를 마주하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이들의 과거가 하나 둘 풀리면서 인연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도 참 흥미로웠다. 아름다운 꽃과 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담긴 감꽃 길 시골 하우스. 깊어가는 계절의 로맨스를 마주하고 싶다면 겨울이 오기 전에 꼭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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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끌로이
박이강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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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해, 지유야. 처음과 끝은 연결되어 있어. 처음은 끝이고, 한 개는 전부나 마찬가지야."

어려서 부터 엄마가 하라는 데로만, 엄마가 세워준 계획대로만 살아왔던 지유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변호사였던 아빠의 사고 후, 엄마는 더욱 지유에게 집착의 날을 세웠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을 갔다가 집으로 와서도 엄마의 계획은 계속되었다. '이 정도면 엄마가 기뻐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성적표를 가지고 돌아온 날. 엄마는 칭찬 대신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을 한다. 그렇게 지유는 엄마의 인형이 되었다. 지유의 첫 번째 목표는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유는 연습을 할 줄 만 알았지, 음악에 자신의 색을 입힐 줄 몰랐다. 다음 목표는 뉴욕대에 가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고, 결국 목표는 수정되었다. 뉴욕대 편입으로... 그렇게 엄마가 만든 스케줄대로 죽을힘을 다해 겨우 편입에 성공한다. 뉴욕으로 온 지유는 그렇게 끌로이를 만난다.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나 마찬가지라던데."

이 한마디로 지유는 처음 끌로이를 만나게 된다. 끌로이의 자유분방함이 좋았다.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그녀가 좋았다. 그리고 지유의 바람대로 끌로이와 함께 살게 된다. 처음 룸메이트로 지유의 집에 끌로이가 들어왔을 때, 지유는 너무 좋았다. 끌로이의 친구들을 소개받고, 끌로이와 함께 하는 것들로 지유의 시간은 채워져갔다. 끌로이와의 첫 키스는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끌로이와 함께 간 B-플랫이라는 곳에서 끌로이는 트럼펫 연주자인 멘도를 만난다. 둘은 가까워지고, 연인 사이가 된다. 그날부터 끌로이는 조금씩 지유의 시간에서 사라진다.

돈 걱정이 없었던 지유와 달리, 끌로이는 돈의 구애를 많이 받았다. 그런 끌로이의 생일을 맞아 지유는 끌로이가 평소 가고 싶어 했던 레스토랑을 예약한다. 끌로이는 멘도도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끌로이가 돕고 있던 단체의 후원자로부터 초대를 받은 날. 멘도가 속한 밴드가 연주를 맞게 돼서 멘도와 끌로이 그리고 지유까지 함께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멘도는 끌로이가 지유의 집에서 나와 자신과 살게 될 거란 이야기를 꺼낸다. 지유는 당혹스럽고, 충격적이었다. 끌로이가 없는 시간은 지유의 생각 속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유는 끌로이는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그 일이 끌로이와의 관계를 그렇게 만들 줄 상상도 못했다.

엄마가 없는 세상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엄마가 세운 계획에 의해서만 삶을 살아갔던 지유에게 끌로이는 자유의 냄새였다. 그랬기에 지유는 끌로이에게 더 빠져들었다. 미지를 만났던 것 역시 끌로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미지와의 일을 겪으며 지유는 모든 게 무섭고 낯설어진다.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키스를 했던 것 역시 끌로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끌로이가 아니었다.

"인생은 원래 그렇게 아찔하고 위험천만한 순간으로 가득하다는 거야.

한순간에 모든 게 수포가 될 가능성을 안고 사는 거지."

끌로이와 지유, 미지 그리고 엄마. 그녀들은 같은 세상 속에 살았지만, 그들의 삶은 달랐다. 모두가 꿈꾸는 것이 달랐다. 사건을 겪어내며 지유는 조금씩 알을 깨고 나온다. 과연 지유는 깨고 나온 알 속에서 스스로의 끌로이는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같은 책을 읽는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나 마찬가지라던데."

"명심해, 지유야. 처음과 끝은 연결되어 있어. 처음은 끝이고, 한 개는 전부나 마찬가지야."

"인생은 원래 그렇게 아찔하고 위험천만한 순간으로 가득하다는 거야.

한순간에 모든 게 수포가 될 가능성을 안고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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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아르테 오리지널 24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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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이었다는 사실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기본적인 줄거리와 주인공 넷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가볍게 읽힐 듯싶은 소설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은 두 주인공인 앨리스 켈리허와 아일린 라이든이 메일로 주고받는 내용 속에 여러 가지 사회를 넘어선 세계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왜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가 메일의 상당수 등장할까 싶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가벼운 연애소설을 넘어서 좀 더 깊이 있는 사회 문제까지를 다루고 싶었던 저자의 의도였다는 것을 말이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앨리스 켈리허는 유명세와는 달리 자신의 모든 것을 일거수일투족 알고자 하는 대중 때문에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은 후, 연고가 없는 해안가 지역으로 집을 옮긴다. 더블린에는 절친인 아일린이 살고 있었지만, 그곳을 떠나는 것이 그녀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한 결정이었다. 데이트 앱인 틴더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 앨리스.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펠릭스 블래디라는 남자였다. 첫 대화에서 둘은 끌리는 것도 아니었고, 마음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대화를 나누다 결국 앨리스의 집으로 오게 되는 펠릭스. 그리고 그날 이후 우연히 초대받은 파티에서 즉흥적으로 앨리스는 펠릭스에게 로마행을 권유한다. 비용은 일체 자신이 대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아일린 라이든은 문학잡지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 음악가이자 음향 전문가였던 남자친구 에이든과 헤어졌다. 친구인 앨리스처럼 명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박봉의 직업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터다. 앨리스가 자신을 떠난 후 그녀는 마음의 공허함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저 오래전, 아일린의 집에서 일을 도왔던 사이먼 코스티건과의 전화 통화가 위로가 될 뿐이다. 아일린보다 5살이 많은 사이먼은 그녀에게 친구이자 좋은 오빠다. 처음 만난 그날 이후 아일린은 사이먼과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이가 된다. 사이먼을 좋아하지만, 사이먼은 그녀를 좋은 동생 정도로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사이먼이 5년 동안 사귀었던 애인과 헤어졌다는 것을 듣게 된다. 근데 사이먼과 자꾸 마주치면서 아일린은 자신의 감정 때문에 힘들어진다.

아일린과 앨리스의 삶은 참 대조적이다. 앨리스의 유명세와 부가 부러운 아일린은 자신의 삶이 실패자인 것 같아서 괴롭다. 한편, 앨리스는 원하지 않는 유명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이 두 친구는 서로의 삶에 비해 자신의 삶이 불행하고 힘든 것 같아서 서로에게 넋두리를 털어놓고, 상대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 낫다고 여긴다. 그와 함께 서로가 마음을 두고 있는 남자를 향한 애정사가 주된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사회의 곳곳의 문제를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도 담겨있다. 플라스틱의 등장으로 인해 펼쳐진 기후변화 등의 이야기는 작품의 무게감을 준다.

서로 다른 존재가 서로를 인정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좌절도, 상처도 경험하지만 종국에는 서로를 향한 따스한 시선을 가진 누군가를 찾게 되는 것. 그게 저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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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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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다섯 번째 책이다. 그동안 마주했던 4권은 소설이었는데, 이 책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예상과 달리 자신의 삶을 쓴 에세이였다. 더 구체적이라면... 사강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라는 부제가 어울릴 것 같다. 책을 통해 사강을 접했었기에,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인물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저 파격적인 스캔들의 소유자(?)라는 정도 밖에는 말이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파격적인 작품 슬픔이여 안녕으로 프랑스 문단과 세계를 뒤집어 놓으며 일약 스타가 된 사강은 의외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으니 얼마나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라, 사강이라는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적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책 속에는 여러 유명한 인물(안타깝게도 내가 알아본 인물은 장 폴 사르트르가 전부다.)들과의 만남과 그들과의 이야기가 반 정도 담겨있고, 사강이 사랑했던 도박, 스피드, 그리고 독서 등의 이야기가 반이다. 혹시나 싶었던 남편들과의 관계나 연애 이야기는 없다. 그저 여러 인물들을 만날 때 동행했던 남편 정도가 전부다.

그가 사랑했고, 존경했고, 좋아했던 인물들로 책 속에 소개된 사람은 전부 5명(빌리 홀리데이, 테네시 윌리엄스, 오손 웰스, 루돌프 누레예프, 장 폴 사르트르)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머리말에서 역자가 언급했듯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빛을 보지 못했던 소수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인종 때문에, 성적 소수자여서, 말년에 시력을 상실해서 등의 이유들은 그들의 삶을 반사하는 거울이었지만 그럼에도 사강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 안에 있는 천재성들을 글로 다시금 분출해냈던 것 같다.

나로 말하자면, 그의 영화를 생각하면 유감스러웠고 그 자신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웰스 때문에, 인생 때문에, 예술 때문에, 그리고 그가 말했듯 '예술가들' 때문에, 진실 때문에,

거침없음과 위대함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 때문에,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때문에 말이다.

사강 스캔들로 유명한 도박과 스피드광의 모습들 역시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한 그것들을 그녀는 "그"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찌 보면 변명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겠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의미 있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던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만난 사강은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빠져드는, 오롯이 그것밖에 모르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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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상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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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KBS에서 대하사극을 방영하는데, 제목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고려거란전쟁이다. 사극 전문 배우인 최수종 배우가 강감찬 장군 역으로 출연한다고 하는데, 기왕이면 원작을 먼저 만나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제목만 가지고는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다. 책을 읽기 전, 저자는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개괄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희가 993년, 거란의 소손녕을 맞이하여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탈환한 것이 바로 거란 1차 침공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거란은 1010년 다시 고려를 재침공한다. 거란이 고려를 침공한 명분은 신하인 강조가 반란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했다는 이유였다.

1차 침공의 선봉장이었던 소손녕은 바로 2차 침공의 선봉장인 소배압의 동생이다. 그렇게 보면 책 속에 유난히 거란인들의 이름이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은 야율 씨이고, 그다음은 소 씨다. 알고 보니, 거란의 왕족은 야율아보기를 시작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6대 황제 야율융서(성종)까지 야율의 성을 가지고 있다. 소 씨는 왕비족이라고 한다. 야율융서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거란의 경종이 일찍 사망했으므로 아들인 야율융서를 대신해 승천황태후가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 그녀는 한덕양과 야율사진, 야율휴가의 힘으로 아들을 황제로 옹립하는데 성공한다. 특히 한덕양과는 공식 연인 관계였기에, 한덕양은 야율융서를 아들처럼 생각했고 야율융서 역시 한덕양을 아버지로 생각했다고 한다.

고려거란전쟁은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권은 1010년 11월 16일 진시(8시)부터 101년 12월 17일 미시(14시)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강감찬은 상권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고려와 거란 전쟁은 병사의 수치상으로는 싸움이 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이번에도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거란은 40만의 군사로 고려를 침공했는데, 고려는 겨우 700여 명의 결사대로 맞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전쟁에서 승리한 고려의 군사적 위상은 놀라울 정도다. 삼구 채에서 진을 치고 있던 강조가 결국 거란에 사로잡히고, 강조가 사로잡힌 후 항복서를 가지고 양규를 찾아가는 부도통 이현운의 회유에 거짓을 알아채는 장면이 주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거짓된 말에 현혹되기 보다 상황을 판단하며 항복하지 않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양규. 또한 도순검사였던 강조가 왕을 내치고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목종과 김치양 등의 잘못된 정치로부터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이유였다. 물론 강조는 잘못된 계획으로 거란에 사로잡히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끔찍한 고문을 겪어낸다. 그랬기에 왕은 시해했을망정, 조국을 배신하지 않은 강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역사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김숙흥이라는 인물로 당시 구주 별장직을 맡고 있었다. 이섬이 이끄는 용만(의주)는 거란에 의해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럼에도 이섬은 깃발과 구주군가를 통해 군의 사기를 북돋았다. 구주군가를 들은 김숙흥은 구주 도령으로 지원을 간다. 덕분에 군의 분위기를 다 잡을 수 있었고, 흥화진을 지켜낼 수 있었다.

상황이 오기 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야겠지만,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생각에 유연성이 떨어져서 잘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준비는 철저히 하되 실전에 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서경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치는 조원과 강민첨. 얼마 없는 군인마저 탁사정과 함께 도망을 간 상황에서, 서 영 안에 있는 백성들과 힘을 합쳐 막아내는 그들의 활약으로 다행히 서경은 거란의 손에 떨어지지 않았다. 과연 거란과의 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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