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와 빈센트 (하드커버 에디션)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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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두 거장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났다. 실제로는 시대도, 나라도, 분야도 다르지만 두 거장의 작품은 어색하지 않다. 책 한쪽에는 윤동주의 시가, 다른 쪽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놓여있다. 마치 서로의 작품을 보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싶을 정도로 두 거장의 작품들은 서로를 닮아있다. 물론 출판사에서 읽고 읽으며 적절하게 배치를 했겠지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다시 살아나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우연이라기에는 신기할 정도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삶에도 공통점이 꽤 있어 보인다. 둘 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동주는 20대, 고흐는 30대), 고흐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동주 역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둘 다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당대에는 알려지지 못했다.

우선 동주의 시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겨울에 대한 시가 많다는 것과, 학창 시절 배운 시들(저항시나 비판적 어조의 시)과 달리 유달리 주변인에 대한 시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동시 같은 느낌의 따뜻한 시들과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가 많았다. 고흐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봐왔던 익숙한 작품들도 있지만, 처음 보는 낯선 작품들도 많았다. 유난히 진하고 선명한 색상(노랑이나 초록, 파란색 같은)의 고흐 식의 그림들도 있지만 스케치 같은 느낌의 검은색만 돋보이는 그림도 꽤 여러 작품 보였다. 그중 시 몇 편과 그림이 와닿아서 옮겨본다.

조개껍질 - 바닷물 소리 듣고 싶어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울 언니 바닷가에서

주어온 조개껍데기

여긴여긴 북쪽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데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 잃은 조개껍데기

한짝을 그리워하네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나처럼 그리워하네

물소리 바닷물소리.

p.64

앞에서 말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유독 와닿는 시는 조개껍데기라는 시였다. 조개껍데기를 보면서 언니를 그리워하고, 잃어버린 짝을 그리워하는 시가 당시 일본에 있던 동주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옛 추억을 담긴 매개물로 등장한 것 같이 느껴졌다.

또 한 작품은 해바라기 얼굴이라는 시였는데, 이때도 직장인의 삶은 참 팍팍하고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해바라기 얼굴에 같이 담긴 고흐의 작품에도 키가 큰 해바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해바라기 한 편에 그림자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저녁 무렵같이 보여서 그런지 그림자 속 인물도, 해바라기도 축 늘어진 모습이다.

해바라기 얼굴

누나의 얼굴은

-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 집으로 온다.

p.194

개인적으로 의지를 담아야 읽게 되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시와 그림이다. 내가 가장 기피하는 두 분야가 한 권의 책에 담겨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끌렸던 것은 동주와 빈센트라는 이름이 주는 큰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드커버로 되어 있어서 소장하기에도,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 같다. 특히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빈센트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 표지 가득 있어서 더욱 좋았다.

두 거장 윤동주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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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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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인사

인생에서 마침표는 곤란해

느낌표나 물음표도 불편해

쉼표나 말줄임표 정도가 좋아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마침표가

찍히는 게 인생이니까.

p.155

시를 무서워한다. 서술형으로 길게 늘어놓은 글은 이해가 빠른데, 시에는 짧디짧은 단어 사이사이에 왜 이리 많은 의미가 숨겨져있는지, 찾아내는 게 정말 고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하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매년 새해가 되면 시집 1권 이상 읽기, 미술책 1권 이상 읽기를 세운다. 6월 중순의 끝 무렵에서 드디어 올해의 목표를 이루었다. (이제 해방이다!! ㅎㅎㅎ) 부끄럽지만, 이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처음 읽었다. 기회는 참 많았는데, 시집이라는 데 방점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나태주 시인의 시를 처음 읽는 것은 아닌 게, 그 유명한 풀꽃을 읽었기 때문이다. 짧지만, 이 시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시라면... 내가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긴 했지만 안면을 트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이 시집의 제목은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이다. 책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시는 찾기가 어렵지 않다. 바로 서시 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기 때문이다. 풀꽃을 읊으면서도 참 따뜻하고 보드랍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 안에 들어있는 시의 대부분이 따뜻하고 밝다. 왜 이리 공주에 대한 시가 많은가 싶었는데, 공주에서 평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시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나 교사 생활에 대한 시도 중간중간 있었는데, 알고 보니 43년간 교사로 근무하다 교장선생님으로 퇴임하셨다고 한다. 원래 직업 시인이 아니라, 선생님이셨다니...! 풀꽃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사연이 담긴 시였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 보자면... 집이라는 곳이 주는 의미, 저자가 느끼는 집에 대한 이미지를 알 수 있었다. 떠나지만 다시 돌아갈 곳. 여기서 집은 고향과도 같은 의미, 돌아갈 목적지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생각하면 그리워지고, 가고 싶고, 따뜻해지는 곳이 저자는 집이라 말한다. 물론 여기서의 집은 그저 건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리라. 집 안에서 서로 체온을 나누고 함께 추억을 공유할 가족이 있어야 비로소 따뜻하고 돌아가고 싶은 집이 완성될 테니 말이다.

참 여러 편이 가슴에 와닿았는데, 두 편만 소개해 본다. 한편은 시작에서 소개했으니, 남은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여행

힘겨운 날들

잠시 버리고

떠날 수 있음에 감사

아름다웠던 날들

그 자리에 남기고

돌아갈 수 있음에 감사

그걸 알게 된

나 자신에게

더욱 감사.

p.138

한 직군에서 43년을 근무하고, 52번째 시집을 낸 80세의 노시인. 마지막 말에서 그 역시 2023년 번아웃을 겪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극복하기 위해 쉬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번아웃을 겪어내며 만들어진 시집이 바로 이 책인 것 같다. 감사할 줄 알기에,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또 한 권의 시집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올해의 목표를 이루어내며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인의 시집을 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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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화학 - 진짜 핵심 진짜 재미 진짜 이해 단어로 교양까지 짜짜짜 101개 단어로 배우는 짜짜짜
정규성 지음 / 푸른들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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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가지 화학의 이야기가 담긴 책, 마치 실타래로 연결된 듯, 마인드맵처럼 자연스럽게 화학이 화학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화학의 시작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바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진 물질의 근원을 4원소라 이야기했던 4원소설부터 시작이다. 화학이 맞지만, 여기저기 접점이 있듯이 이 책에도 메인은 화학이지만, 여기저기 다른 분야의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진정한 교양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궁금했다. 물질을 쪼개고 쪼개서 가장 작게 쪼개면 무엇이 될까? 그 궁금증은 원자에 대한 개념을 도출하게 되었고,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를 찾다 보니 점점 나누고 나뉘어 현재에 이르렀다. 또한 물질에 대해 연구를 하다 보니, 물질에 다른 어떤 게 더해지면 물질의 성질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궁금증에 이르렀고, 물질 중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금"을 만들기 위한, 여러 물질을 더해 금을 만들어내기 위한 연금술이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연금술은 가짜라는 것을, 연금술로 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연금술은 실패한 것일까? 글쎄... 왜 이 책에서 연금술을 다루는 것일까? 바로 연금술 덕분에 화학이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내용에는 각 화학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주기율표에서 기억나는 번호가 있는가? 칼카나마알아철리주납수구수은백금. 하하하! 다행히 내 머리는 아직 기억을 하고 있다. 주기율표의 순서를...!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화학이 메인이지만 다양한 학문과의 접점이 등장하듯이 이번에는 역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물질이라면 단연 철(Fe)이라 할 수 있다. 철과 같은 금속류는 농경만큼이나 인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1,500도나 되는 높은 온도에서 철을 주조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철을 얻을 수 있었을까? 실제 이집트 고분에서 철로 만든 칼이 발견되었는데, 이 칼의 성분을 분석해 보니 별똥별의 잔해인 운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운석이라면 철이 높은 온도에서 녹는 조건을 이룰 수 있었을 터이니 신기한 우연일 수 있겠지만 그 우연 덕분에 결국 인류는 발전을 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 밖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물질의 상태에 관한 것이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액체. 기체. 고체 상태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꽤나 흥미로웠다. 물로 대변되는 액체, 얼음인 고체, 그리고 수증기인 기체. 그렇다면 이산화탄소는 어떨까? 이산화탄소의 고체 형태는 드라이아이스다. 드라이아이스를 본 사람은 알 텐데, 드라이아이스가 녹으면 액체가 아닌 기체가 된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의 액체 상태를 본 적 있는가? (참고로 탄산음료는 이산화탄소의 액체가 아니다. 탄산가스를 음료에 넣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라서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없을까? 그에 대한 답은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한 챕터당 2~3페이지로 길지 않고, 꽤 흥미로운 주제가 많다. 물론 어려운 수식도 등장하고, 여러 용어들도 등장하지만 암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극히 교양으로 읽어봐도 충분하기에 머리 싸매고 읽지 않아도 된다. 화학 안에 철학도, 역사도, 환경도, 미래도, 의학도 다 담겨있다. 화학과 연결되는 교양의 접점을 통해 한층 더 교양을 업그레이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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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사 수업 - 유대 문헌으로 보는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박양규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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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 시절 교양 필수로 배웠던 과목 중에는 구약과 신약에 대한 과목이 있었다. 신약 수업을 들으며,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와 신약의 마태복음 사이에 400년의 기간이 벌어져있다는 것과, 그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른다는 것을 배웠다. 신학 전공생이 아닌 평신도인지라, 가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이 책에서 중간사로 소개하는 그 시기에 대한 부분을 한 번씩 듣지만, 구체적으로 중간사에 대한 심도 있는 수업을 들은 적은 없었기에, 궁금했다. "수업"이라는 단어가 붙는 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한동일 교수의 여러 권의 수업 덕분^^)가 있었던지라 부담감보다는 궁금함이 더 컸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중간사를 연구한 목사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중간사 부분에 권위가 있는 분은 성결대 박정수 교수라고 한다. 박정수 교수와 마틴 헹엘, 스티브 메이슨의 연구를 참고하며 이 책을 풀어냈고, 참고로 이 책은 세종대에서 15주간 강의를 진행했던 부분을 책으로 옮긴 것이라 한다.

사실 역사서나 각 분야의 전공서적을 읽을 때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바로 배경지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2천 년도 더 된, 이스라엘의 문화는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저자는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우리의 역사의 비슷한 상황을 예로 들며 비교 설명해 준다. 가령 이스라엘 포로기에 잡혀간 사람들과 이스라엘 왕이 아시리아 사신(왕이 아닌 사신!) 앞에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벽화 장면을 두고 조선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궤구고두례를 했던 굴욕적인 장면과 겹쳐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중간사 수업에서 중요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이름 없는 그 아무개들의 이야기가 책 곳곳에 등장한다. 성경에서 레위기나 민수기만큼이나 지루한 이름이 등장하는 부분을 읽으며 굳이 왜 그들의 이름을 새겨두었을까, 그 이름 하나가 뭐 그리 큰 의미가 있다고... 하며 읽었던 기억이 상당수인데, 이 책을 통해 그 의미 또한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모든 편의와 안정을 포기하고 귀환한 사람들의 이름은 이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도 부정적인 이미지의 사두개파에 대한 부분, 설교를 통해 익히 들었던 헤롯의 아들들의 이야기 등 중간사 수업을 통해 성경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간사 시대가 결코 암흑기도, 하나님의 침묵기도 아니라 것이다. 그 시간 시간 하나님은 계속 일하고 계셨고, 그 시간을 통해 또한 믿음의 여정을 걷는 아무개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각 장의 수업을 통해 저자는 하남의 일하심과 아무개들의 굳건한 신앙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보여준다. 함께 곁들여진 사진들과 도표 등을 통해 좀 더 쉽게 이해하고, 마음속에 깊이 있게 다가오도록 노력했다. 그동안의 긴 시간 수고하며 연구한 결과들을 편하게 앉아 책으로 만나게 된 것이 조금 미안할 정도로, 성경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성경과 나를 떼어놓고, 성경의 시기와 나를 떼어놓고 이분법적으로 읽어왔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은 여전히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 성경 속 사건과 이야기는 과거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도 우리 삶 속에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다. 저자는 매 강의마다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일깨워 주었다. 이 부분을 배우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부분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에 대해 계속적으로 주의를 환기시켜주었다. 정말 강의를 듣듯이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좋겠다. 그럼 더 깊이 있는 묵상과 이해의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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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로 읽는 수학 이야기 쉽고 재미있는 인문학 3
인동교 지음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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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제부터 수학에 손을 놓았을까? 고2 때까지는 보습학원을 다니면서 나름 수학 강의를 들을 때 강사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도 곧잘 했던 것 같다. 고3 때도 문제 앞에서 막 찍기만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이제는 다시 수학을 강제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지극히 문과인 과목을 전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내가 입학한 학교는 문과와 이과(?) 같은 과목이 "학부"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었고, 주 전공이 나누는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두 학과의 전필을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1학년 1학기 경영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수학과 계속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 결국 내가 배운 두 학과의 복수전공하면서 졸업 전 마지막 학기까지 "회계"과목을 수강했다. TMI를 더 뿌리자면, 나는 현재 15년째 돈을 만지는 회계분야에서 밥을 먹고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다분히!!! "그래픽 노블로 읽는" 때문이었다. 수학 이야기라고 하지만, 차례를 보니 수학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수학사+다양한 수학이 등장한다.

만화지만, 첫 장부터 머리가 아팠다. 진짜 접고 싶었다. 이렇게 진도가 안 나갈 줄이야...! 다시 악몽(?) 아닌 악몽이 떠오른 이유는 바로 도형 때문이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산수 교과서에 등장한 도형은 내 평생 처음 겪는 좌절의 기억이었다. 도대체 도형의 넓이를 왜 구해야 하는 거고, 어떻게 해야 나오는지 아무리 쳐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식만 주야장천 외우고 나니, 응용문제가 나오면 족족 틀렸다. 근데 이 책의 시작은 탈레스고, 그는 이등변 삼각형이 등장한다. 그 이후로도 몇몇 장을 지나야 도형이 끝나니 정말 덮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도형을 넘기고 나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로그가 나오고, 파이가 나오고 좌표와 방정식이 나온다. 아마 그래픽 노블이 아니었다면 첫 장에서 바로 접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래픽 노블이니 읽을 수 있었다.

읽다 보면 꽤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 하는 바로 그 사람들... 내가 이렇게 수학자를 많이 알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저자가 익숙한 이름의 수학자들을 소개해서 그럴 수도 있다.)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피보나치수열, 유클리드 기하학, 피타고라스의 정리, 메르센 소수, 페르마의 정리뿐 아니라, 다분히 철학자로 알고 철학자라고 배웠던 데카르트도 등장한다. 익숙함이 책을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가? 실생활에 쓰는 건 사칙연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는가?라는 대답에 대 수학자 유클리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자에게 동전 세 개를 쥐여 주고 보내거라.

배움으로 이익을 얻을 것만 생각하다니...

너무 한심하구나!

P.57

수학사 속에 담긴 뒷얘기를 읽어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무리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피타고라스가 벌인 제자 히파수스 살인사건, 아마추어 수학자인 페르마가 17세기에 남긴 문제의 풀이는 과연 언제 풀렸을까?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무턱대고 피하기 보다 가볍게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이해가 안 되면 넘기자! 교양으로 읽는 거지, 앤드루 와일즈 처럼 전문적으로 문제를 풀 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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