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책세상 세계문학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석륜 옮김 / 책세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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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있게 도전! 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 앞에서 완패당했다. 지난달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을 읽었다. 내 나름 흥미로웠고, 꽤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리고 한 달도 채 안돼서 만나게 된 작품은 풀베개다. 푸르디푸른 연두색이 가득한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첫 장을 넘기고 고개를 갸웃했다. 한 장을 더 넘기고, 책을 덮었다. 분명히 소설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에세이였나? 싶어서 다시 확인해 봤는데, 분명 소설이 맞았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쓰는 게 너무 힘들다. 서평을 쓰려면 내가 읽은 이 책에 대해 나 나름의 감정과 이해가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풀베개를 한 줄로 말하자면 '글쎄...' 쉽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기피하는 장르인 시가 책 안에 상당수 담겨있다. 뭔가 설명이 오고 가지만 또 시가 등장한다.(오히려 시가 더 이해하기 쉬웠다고 하면 이상할까?)

화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근데, 시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다. 그가 거니는 장면이나 누군가를 만나면 그에 알맞은 시가 등장한다. (장르가 다르지만, 뮤지컬 같다고 할까? 열심히 연기를 하다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이 책 역시 산문적인 설명을 하다가 시가 등장한다.) 풀베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라면 비인정(非人情, 인간의 의리나 인정 따위에서 벗어나 그것에 구애되지 않는 일)과 하이쿠다. 인정과 비인정을 오가며 나는 이곳저곳을 다닌다. 화가가 직업이기에, 그가 다니는 곳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 나미가 등장한다. 나와 나미는 무슨 관계일까? 나와는 다른 면을 지닌 여성 나미와 대화를 나누는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녀를 보면 볼수록 어렵다. 왜일까? 왜 나는 나미의 얼굴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결론은 마지막 장을 넘기며 한 줄로 정리가 된다. 마지막 한 줄을 읽고 나니, 예전에 들었던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화룡점정. 장승요라는 화가가 절의 벽에 그린 용의 그림에 눈이 없었다. 눈을 그리면 용이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나미의 얼굴을 그리지 못했을까? 그녀에게서 그가 찾는 감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미가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나는 비로소 그 감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나미의 그림을 완성한다. 용의 눈을 그린 것처럼, 나미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다.

앞에서 말한 하이쿠는 17음으로 이루어진 일본 정형시를 말한다고 한다. 뜻을 알고 나니, 왜 이리 책 안에 시가 많았는지 이해가 된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는 하이쿠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17음 하니 갑자기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있었다. 내용과 전혀 상관없겠지만, 책을 읽고 내가 건진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자, 조금 화가 났다고 가정하자.

화가 난 것을 바로 열일곱 자로 표현해 본다.

열일곱 자로 표현할 때는 자신의 분노가 이미 타인의 것으로 바뀌어 있다.

화를 내거나 하이쿠를 짓는 일은 한 사람이 동시에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 47

다행이라면, 이 책이 나에게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랬기에 풀베개 안에는 소설가이자 시인의 독후감도 들어있고, 작품 해설도 들어있다. 작품 해설 덕분에 그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자, 조금 화가 났다고 가정하자.

화가 난 것을 바로 열일곱 자로 표현해 본다.

열일곱 자로 표현할 때는 자신의 분노가 이미 타인의 것으로 바뀌어 있다.

화를 내거나 하이쿠를 짓는 일은 한 사람이 동시에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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