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지음, 데이비드 폴론스키 그림, 박미경 옮김, 아리 폴먼 각색 / 흐름출판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혼자 있는 밤에도, 

견디기 힘든 사람이나 내 의도를 곡해하는 사람을

억지로 참아내야 하는 낮에도 

마음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그래서 결국엔 늘 이 일기장으로 돌아오는 거야. 

키티 넌 늘 참고 들어주니까.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한결같이 대해주니까.

약속할게.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나아가겠다고.

눈물을 삼키며 내 길을 꼭 찾아내겠다고.

그 노력의 결과를 지금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 한 번만이라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격려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디 날 비난하지 말고 때로는 

나도 폭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줘!

초등학교 재학 시절, 매일 써야 하는 일기 숙제가 너무 지겨웠다. 쓸 말도 없는데 한 페이지를 채워야 했기에 머리를 짜내야 할 정도 고역이었다. 한편으론 비밀일기라는 이름으로 일기장에 열쇠를 걸어놓는 게 유행이었어서, 남의 일기를 읽는 것에 대해 반발이 생기기도 했다.(감정이입이라고 할까?) 당시 안네의 일기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남의 일기를 읽는다는 게 나쁜 짓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 안네의 일기가 나치 정권하에 숨어 살던 한 유대인 가정의 아이인 안네가 쓴 실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실제 안네의 일기의 내용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만화로 나온(그것도 안네 프랑크 재단이 공인한 단 한 권이라는) 안네의 일기를 먼저 만나게 되었다. 만화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내용은 참 숙연하고 수준이 높다. 13살의 아이가 쓴 글이라기에는 무척 성숙해 보이기도 하다. 우선 안네의 가족을 비롯하여 함께 숨어사는 판 단씨 가족, 치과의사 뒤셀씨 그리고 안네의 아빠인 오토 프랑크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자 조력자들에 대한 안내가 첫 장에 등장한다.

 

 

 

유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던 안네의 가족은 유대인에 대해 강압적이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는 나치 정권하의 독일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처음에는 별종 정도로 취급하던 나치들은 수영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더니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은 물론 자전거를 타는 것도, 공원에 나가는 것도,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것마저도 금지시킨다. 언니인 마르고의 징집 명령서를 받은 날, 급하게 떠난 것처럼 집안을 어지럽힌 가족들은 탁자 위에 스위스로 도망간다는 쪽지를 남긴 채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운영하는 오페크타의 사무실로 피신한다. 책장 뒤쪽의 은신처에서 그렇게 안네의 가족은 삶을 이어간다. 점점 악랄해지는 나치 정권 때문에, 가족들은 늘 숨 조리며 겨우겨우 연명하듯 하루하루를 보낸다. 물론 궁금한 것도 많고, 바깥출입을 좋아하는 13살의 안네에게는 지옥 같은 생활이다. 그나마 숨 쉴 구멍은 안네가 키티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일기장 뿐이다. 안네는 그 일기장의 자신의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그저 묵묵히 해내는 언니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함께 살게 된 판 단씨 가족의 이야기, 치과의사인 뒤셀씨의 이야기도 일기 속에 등장한다. 물론 누구도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좁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래 살다 보니, 이기적인 모습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말이다. 은신처에 함께 거주하는 판 단씨 부부의 아들인 페터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론 초반의 페터는 엄살쟁이에 옥상에서 내려오기 싫어하는 이상한 아이로 그려지긴 했다.

안네가 13살이던 1942년 6월 12일부터 시작해서 1944년 8월 1일로 끝을 맺는다. 아무래도 좁은 곳에 갇혀 지내다 보니 안네가 생각할 수 있는 것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키티에게 털어놓는 안네의 일기 속 이야기들은 오히려 더 그 나이의 아이가 고민하는 것 이상의 것들도 보인다. 물론 학교에 가고 싶다는 것,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 자신을 좋아했었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 걸 보면 또래 아이의 이야기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안네는 은신처에서 나오게 될 날을 기대했다. 조력자들로부터 전해지는 바깥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나치 정권으로부터 목숨을 건지게 될 날들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날을 맛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안네의 일기 이후의 이야기는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에 의해 전해지고, 출판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머물렀던 사람들과 조력자들의 최후까지 말이다. 짧다면 짧은 생을 살고 갔던 안네는 일기를 통해 여전히 그녀의 일기를 접하는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녀가 직접 겪었던 끔찍한 생활들까지도 말이다. 그럼에도 이 어린 소녀는 미래를 꿈꾸었다.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며, 나이 든 부인이 될 때까지의 미래를 말이다. 과연 그녀가 그곳에서 살아남아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면, 어떤 성인으로 성장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3-02-04 2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네가 살아남았다면 훌륭한 작품을 더 남기지 않았을까요? ㅜㅜ

어렸을때 읽어보고 완전판은 안읽어봤었는데 다시 읽으면 좀 더 색다를거 같아요~!!

명랑걸우네 2023-02-04 21:45   좋아요 3 | URL
좋은 작가나 비평가가 되었을 수도 있을것 같아요 그래픽노블 만났더니 원작이 궁금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