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20 - 5부 5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그러했듯, 해방으로 해결되는 결말을 보았습니다. 동학혁명에서부터 식민지 시대와 만주독립운동 시기를 거쳐 조국 광복과 한국전쟁에 이르는 민족사의 변천 속에서 3대 인생의 궤적을 그렸으며 이를 통해 광대한 민족사적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많은 부분들을 ‘토지’시리즈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제목인 ‘토지’의 땅(地)은 생산, 소출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여성은 아이를 생산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땅과 여성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경 속 한 나라의 면면한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서희는 약한 듯 강한 한국의 여인상을 보여줍니다. 흔들리는 삶에서 강하게 이 땅을 지지해 줄 여성의 힘을 보여줍니다.

거의 10주 정도 걸려서 마침내 다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살까 했지만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헌책을 구입할까 했더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도서관의 전자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마지막페이지까지 모두 읽고 나니, 시원하지만 아쉽습니다.

한번 읽은 것으로 이런 대작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사에 대한 이해는 틈틈이 역사책을 통해 보완해야겠습니다. 이야기는 끝나지만 등장인물들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내가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은 불행의 편이고, 문학은 끊임없는 단련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불행을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다"고 박경리 작가는 말했습니다.

 수많은 인생, 생명에 대한 연민과 시대적 고통과 암이라는 개인적 고통을 감내해가면서 26년동안 써내려간 작품을 읽으며 작가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울러, 박경리 작가님께 존경과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줄거리>

상현은 하얼빈 뒷골목에서 윤광오의 보살핌을 받으며 정석과 함께 있다. 석이는 하얼빈에 올 때면 나타나는 것이다. 오랜만에 두매가 찾아오지만 상현과의 사이는 좋지 않다. 두매는 상현을 도태해야할 반동분자로 생각하고 있으며 상현은 상현대로 공산주의 이론과 현실이 다름에 혐오감을 가진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드러내놓고 서로를 비판하려하지는 않는다. 두매는 홍이가 찾아오자 영광이 있는 여관으로 함께 간다. 영광은 홍이를 찾아 만주로 왔다. 셋은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두매는 벌써 떠나고 없다. 홍은 만주에 와서 영화관을 경영하고 있었다. 홍은 영광을 수앵의 사촌오빠 심재용이 운영하는 카바레에 소개시켜준다. 심재용과 홍은 동업자이면서 그 이상의 일도 함께 하고 있다. 상현을 본 영광은 양현의 부친이란 생각에 저도 모르게 절을 올린다. 상현은 상현대로 아비 송관수를 닮지 않은 영광에게 강한 인상을 받는다. 석은 영광을 반긴다. 영광은 상현에게서 외로움이란 동질성을 발견한다.

영선네는 영광이 만주로 떠난 후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산으로 온다. 영선은 늙은 어머닐 버리고 떠난 오빠를 원망한다. 영선네는 사돈인 휘야네에게 비단을 내밀고 휘야네는 황감해한다. 이 비단은 영선네가 남몰래 양현을 염두에 두고 장만한 것인데 이젠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영선네가 절에 오자 늙은 공양주가 한숨 덜겠다며 기뻐한다. 절에는 남희도 와있다. 통영에서 조병수가 큰 아들 남현을 데리고 절에 와 지감을 찾는다. 적잖은 양곡을 가져 온 병수를 보고 일봉은 놀라면서도 기뻐한다. 병수는 길상이 그린 관음탱화를 보고 서희를 느끼고 길상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느낀다. 강쇠와 지감, 해도사는 연학과 함께 산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양식을 댈 궁리를 한다.

몽치는 징용에서 달아난 홍석기를 돌봐주다 투서에 의해 경찰에 잡혔다. 모화가 얼굴이 까매지도록 애를 태우고 숙이와 영호도 이리저리 부탁할 곳을 찾는다. 남현도 애를 쓰고 선주 아들 동철과 허삼화도 이리저리 줄을 대는데 평사리에서는 한복이 온다. 한복이 온지 사흘 되는 몽치는 풀려나고 모두들 안도한다. 한복은 평사리로 가는 대신 서울로 김두수를 찾아간다. 일본이 망하면 두수를 돌봐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수는 처자식도 믿지 못하고 오직 한복에게 매달린다.

서희는 양현의 하숙을 찾아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며 집으로 가자고 양현에게 말한다. 돈암동 집을 찾아가 영선네 마저 세를 놓고 산으로 떠난 것을 안 양현은 영광의 목도리를 바다에 날리고 돌아왔다. 만주로 떠난 영광은 소식 한 번 전하지 않았다. 서희와 양현은 진주로 내려가고 덕희는 화가 나서 환국에게 대들다 집을 나온다. 금지옥엽으로 자란 덕희는 출신이 미천한 양현이 가족들에게 사랑 받으며 딸로서 대접 받는 것이 화가 난다. 친정에 가서 기다려도 환국이 나타나지 않자 결국 친정어머니 변씨가 열흘 만에 덕희와 아이들을 데려다주며 사위가 무섭다고 생각한다.

잠에 빠져있던 사생들을 깨우는 목소리가 기숙사 긴 복도를 헤매고 있다. 4학년만 운동장에 모이라는 목소리에 4학년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불안해한다. 한 달이 다 가기 전에 졸업할 4학년생. 상의는 어둠 속에서 졸업하면 바로 만주로 오라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사감의 지시에 의해 중학교로 이동하면서 이들은 비로소 주먹밥을 만들기 위해 차출되었음을 안다. 이제 나이 많은 선생들까지도 소집되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어서 상의와 상근이는 호야네로 간다. 남매가 서로 재잘거리고 있는데 두만네와 연학이 들어온다. 남희도 따라 온다. 의아해하던 호야 할매에게 영팔 노인이 세상을 버렷다고 하자 호야 할매도 상가로 나선다. 상가는 조촐했다. 자식들도 많고 여한 없이 살다가 호상이기 때문이다. 천일네와 두만네는 상가의 안방을 차지하고 지난날을 시름없이 되새긴다. 판술네는 어느새 상청에 나가 눈물 흘린다. 영팔 노인이 죽은 지 사흘 만에 출상하자 판술은 평사리에 무덤을 쓰지 못한 것을 애통해한다. 상가에서 사흘을 보낸 남희는 진주 최 참판댁에 머물며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 같은 생활을 한다. 상의는 졸업했다.

명희는 산으로 가기 전에 선혜를 찾아본다. 선혜는 살이 빠지면서 잔주름이 생겼다. 오랫동안 서울을 떠나 있게 되어서 인사차 찾아갔지만 선혜가 소개해 간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산으로 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나온다. 명희는 서희를 찾아가 하룻밤을 묵고 서운해 하는 서희와 양현을 뒤로 하고 산으로 오른다. 마음에는 이들 모녀 사이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하다. 산에서 명빈이 농군 같은 차림새로 명희를 맞이한다. 명희는 지감에게 산에 들어 온 사람들 양식을 도우라며 거금을 내놓고 바삐 사라진다. 지감을 비롯한 해도사 강쇠 등은 명희가 두고 간 돈을 유용하게 쓰자고 의논한다. 범호는 그 돈을 군자금으로 쓰자고 나서나 몽치가 반대한다. 그러나 이제 이들의 다툼조차 느긋해 보인다. 당분간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될 만큼 넉넉한 자금이 들어온 데다 머지않아 일본이 망한다는 확고한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런 때, 개동이가 산 속으로 염탐 왔다가 들켜서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미 인력을 배치할 능력이 없는 경찰은 개동 어미가 개동이의 가출 신고를 해도 반응이 없다. 환국과 서희는 신문을 읽으며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강가에 나간 양현은 길에서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며 뛰어오는 것을 보고 한달음에 집으로 뛰어가 서희에게 해방이 됐음을 알린다. 서희는 자신의 몸을 무겁게 휘감은 쇠사슬이 풀림을 느끼며 양현을 부둥켜 안는다. 이때 나루터에서는 읍내에서 돌아 온 연학이 동저고리 바람으로 춤을 추며 걷고 있었다.

<밑줄긋기>

2장 남의 인생도 그 나름으로 다 소중한 거야

3장 정성을 다할 때 그것은 하나의 인연이오

4장 세상에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보는 것이 장땡이요, 거룩하다 해서 땅밑의 살이 안 썩는다 말인가?

5장 옳지 않아도 그 수가 많으면 옳은 것이 되고 옳은 것도 그 수가 적으면 그른 것이 되는 세상, 남 하는 대로 따라가며 사는데

6장 절망적인 파도를 넘고 넘어 살아왔으며 또 살아가야 한다는 인생이 엄숙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만 본능적인 삶에의 욕구, 죽음이 두려운 때문인가, 전생의 업을 갚기 위한 때문인가?

7장 어차피,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해. 다른 사람의 인생과 똑같은 삶을 살 수도 없는 거고, 불행이다 행복이다 하는 그 말도 실상은 모호하기 짝이 없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우리들 운명, 행복 불행이 검정 과자 빨간 과자처럼 틀에다 찍어내는 것도 아니겠고, 운명 앞에 무력해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만 그러나 운명을 정복한 사람은 없어...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결국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거야. 삶이란 덫에 걸린 짐승 같은 것, 결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