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의 시>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자학의 시 1 세미콜론 코믹스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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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왜 저렇게 살까?", "저렇게까지 살아야 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고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들이다. "정말 이해가 안가."

<자학의 시>를 보며 맨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남편 이사오는 전형적인 동네 한량, 기둥서방, 불한당의 모습을 닮았다. 그런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함께 사는 유키에의 모습을 봤을 때 든 생각..."저렇게까지 살아야 해?"

마음에 안드는 일이 생기면 밥상을 뒤엎는다거나(매일!), 빠친코에 가서 돈을 날리고, 새로 산 냉장고를 전당포에 맡겨 돈을 만들고, 하루종일 빈둥거리거나, 유키에가 벌어오는 돈을 가지고 경마나 노름을 하는 이사오의 말도 안 되는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곁에 매미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유키에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건 인생을 포기한 것, '자학'과 다름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만화가 뒤로 갈수록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유키에는 이사오와 있을 때 진짜 행복한 게 맞았다. 남들 눈에 행복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유키에는 행복했다.

행복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니... 남들이 '너 행복하니?'라고 묻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남편 이사오의 말도 되지 않은 사랑의 표현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유키에의 모습이 '자학'에 가까운 삶의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행복하다면, 기쁠 수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비루하고 형편없는 삶이라도 당신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묘한 여운을 주는 만화. 감동보다는 씁쓸함을 주는 만화. 요절복통의 웃음보다는 썩소를 날리게 하는 만화.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 지구 위에 있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만화. 참, 희한한 만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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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뱀파이어 아카데미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1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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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자들, 불멸의 상징 

바람이 불자 그녀의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하얗고 가느다란 목선이 드러난다. 그녀의 목선은 뾰족한 턱선으로부터 길고 부드럽게 뻗어나와 작은 옹달샘 마냥 아름답게 빠인 쇄골뼈 사이로 수렴된다. 그런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잡아 챈 그는 그녀의 몸을 둥글게 휜 화살 시위 모양으로 만든채 자신의 몸을 향햐 끌어당긴다. 그녀의 머리는 아래로 떨어지고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던 머리는 폭포 수가 떨어지듯 땅을 향한다. 대신 하얗고 투명한 그녀의 목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그녀의 목선을 본 그는 입술 끝을 올려 뾰족하게 솟아난 하얗고 날카로운 그의 송곳니를 꺼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의 송곳니를 그녀의 목 가까이라 가져간다. 그녀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그의 심장 박동 수는 빠르게 증가한다.  그의 차가운 두 송곳니가 따뜻한 그녀의 목을 뚫자 그녀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새빨간 핏방울이 피어오른다. 정신없이 그녀의 목에서 피를 빨아먹자 창백했던 그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반대로 점점 백지장차럼 하얗게 변한다. 

어렸을 때 주말의 명화를 통해 본 뱀파이어는 그런 이미지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피를 빨아 먹으며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고,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채 불멸을 삶을 살아가는 존재 말이다. 그리고 크면서는 뱀파이어가 불멸의 길이 굉장한 에로티시즘의 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여성의 하얀 목덜미에 뾰족한 송곳니를 꼽고 그녀의 몸 속에 있는 모든 피를 빨아 먹는 그 장면,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두려움과 환희의 얼굴 표정, 통증을 표현하는 것 같으면서도 쾌락이 들어 있는 숨 소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에로티시즘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뱀파이어들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작년에 많은 논란 속에서 개봉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서는 뱀파이어로 변한 송강호가 피를 공급받는 장면을 해학적으로 표현해냈다. 목사였던 송강호가 살아 있는 누군가의  피를 먹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아이러니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참다 못해 결국 자신이 기도를 해주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찾아가 그의 피를 마신다. 그로서는 생명에 피해를 끼치지도 않으면서 신선한 피를 마실 수 있다는 나름 도덕적인 결론이었다.

송강호가 몰래 병원을 찾아가 환자 밑에 누워, 송곳니가 아닌 호스로 피를 마시는 장면은 흡혈에 대한 어떤 환상보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갈급함이 더 느껴져 재밌다.  예전의 뱀파이어들이 피를 마시는 것의 목적이 탱탱한 피부와 멋진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면,  현대의 뱀파이어들은 배곪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갈급함이 더 느껴지는 대목이다.

변치 않는 사랑의 상징

작년 한해 인간 벨라와 뱀파이어 에드워드와의 사랑을 그린 <트와일라잇>시리즈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소녀팬들의 열려한 호응을 이끌어내며 책은 물론 영화에서까지 흥행 몰이에 성공했다. 이에대해 많은 평론가들은 10대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하이틴 소설의 법칙을 이 책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극히 평범한 소녀를 사랑하는 조각상처럼 잘생긴 잘나가는 남학생, 게다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어디선가 기다렸다는 듯이 전광석화처럼 달려와 위기에서 구해주며 그녀를 위한 달콤한 말을 절대 잊지 않는. 그의 무리들로부터 보호받고 영원히 옆에서 지켜주는.. 모든 것이 소녀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는 것이다.

트와일라잇의 광 팬이었던 나 역시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무엇보다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가 소녀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랑하는 벨라를 "지켜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식욕, 수면욕, 성욕을 뛰어넘어 그 어떤 세상의 욕망보다도 강렬하다는 흡혈의 욕구를 참아내며 벨라를 옆에서 지켜주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소녀팬들의 마음은 녹아내린 것이다.

키스를 나누다 안되겠다면 벨라를 밀쳐내고 뛰쳐나가는 모습이나, 밤마다 잠든 나를 찾아와 편히 잘 수있도록 지켜주는 모습. 그리고 내 곁을 떠난 순간에도 내가 위기에 처하면 달려와주는 그 모습 말이다. "사랑하니깐 널 지켜줄게"라는 남자들의 뻔한 말을 에드워드는 뻔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에드워드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뱀파이어 이야기가 순식간에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자 뱀파이어는 남녀의 사랑의 상징만이 아닌 '우정'의 모습으로도 등장하게 된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보다  한 층 더 커진 스케일로 뱀파이어 세계를 다룬 <뱀파이어 아카데미>가 그것이다. 해리포터에서 마법세계의 용어가 등장하듯이 뱀파이어 세계의 용어들이 등장하고, 그들만의 판타지 세계가 펼쳐지는 소설이다. 반 인간 반 뱀파이어인 로즈가 가장 친한 친구인 리사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띠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총 5권까지 나올 예정이고, 현재 2권까지 출간되었는데 이 책이 뱀파이어 열풍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수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뱀파이가 실재로 존재할 수도 있다면?

1980년대 중반, 미국 버지니아 주의 결찰은 20세 제프리 웨인라이트를 살인혐의로 체포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살해 한 사람이 누구였느냐인 것인데, 그가 죽인 사람은 43세의 찰스 브로우넬이라는 사람으로 자신이 흡혈귀라며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자칭 흡혈귀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닌 사람의 손에 의해 자칭 흡혈귀가 죽임을 당한 셈이었다.

브로우넬은 스스로를 흡혈귀라고 믿는 자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약한 햇볕에만 노출되어도 피부가 손상되었다. 눈, 코, 손가락 할 것 없이 피부가 뭉개지거나 그 모양이 심각하게 변형되었다. 또한 치아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으나, 입술과 잇몸은눈에 띄게 뒤로 움푹하게 들어가 마치 송곳니가 튀어나온 듯한 인상으로 변했다. 게다가 몸에 털도 나기 시작했다.

그는 3만 명 중 1명에게서 발생한다는 희귀 유전질환인 포르피린증을 앓고 있었던 것인데, 그 증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와의 특징과 비슷해 사람들이 이 병에 걸리면 스스로를 뱀파이어로 착각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뱀파이로 착각한 이들은 이 끔찍한 병을 완화해 보려고 다량의 혈액을 마시기도 했는데, 브로우넬 같은 사람이 바로 그 병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실제로도 이 병은 헤모의 부족으로 생기는 병이라 헤모수급이 필요한데 그래서 오늘날 포르피린증 환자들은 헤모주사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주사도 더이상 맞지 못하게 되면 정말로 다량의 혈액을 마시는 것만이 필요한 헤모량을 수급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사실 실제로 흡혈을 하는거나 마찬가지인 병.

의학적인 측면에서가 아닌 정신과 의사들이 한 분석도 흥미롭다. '흡혈귀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을 분석한 결과 그 원인은 매우 복잡하기는 하나, 모자(母子)관계에서의 콤플렉스가 흡혈귀 존재에 대한 믿음에 크게 기여했음을 밝혀냈다.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모유수유를 거부당한 사랍ㅁ이 있는데, 성인이 된 후 흡협귀의 끔찍한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떤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현되는 증상이든 혹은 실재로 존재 가능성이 있는 것이든, 중요한건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이 만나 만들어진 것이 뱀파이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상징은 앞으로도 여전히 불멸과 에로티시즘을 부르짖으며 우리 곁에 다양한 문학적 산물의 원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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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필경사 바틀비 - 미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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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주홍글씨> 등과 같이 우리에게 유명한 장편소설을 남긴 미국의 거대 문호들의 단편집이 한 권으로 묶여 나왔다. 마크 트웨인, 너대니얼 호손, F. 스콧 피츠제럴드 등 미국의 대표적인 문학가들이 남긴 단편소설 11편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 바로 창비세계문학의 미국편이다.     
   
 

이 예술적 특성은 미국인의 특수한 엯적 경험 -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최초의 민주적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한편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흑인을 노예화하는 이중의 과정- 속에서 형성 된 것이다. 
_ 책을 엮으며, 4쪽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 작가의 작품만 파는 책 읽기가 아닌 동시대의 여러 작가들의 단편에 주목한 의도가 궁금했다. "왜 하필 단편인가". 이에 대해 이 책을 엮고 옮긴 한기욱은 미국의 독특한 생성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다.  

미국은 태생적으로 유럽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구애되지 않고 새 삶을 실험할 수 있었다는 것. 미국적 삶이란 처음부터 근대적이자 실험적이었는데 그것의 구체적이고 다면적인 의미를 캐묻는 데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을 읽는 의의를 확인하고 나면 단편을 읽어나가는 데 훨씬 수월하다. <젊은 굿맨 브라운>에서는 신앙과 공동체의 관계에서 흔들리는 당신의 사람들을 읽어낼 수 있고,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서는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사람들이 겪는 혼란과 비판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랜디썬의 위장>에서는 남부 노예제사회의 매커니즘과 노예해방에 대한 문제를 유머스럽게 제기하며 당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모든 단편 하나하나가 당시 미국 사회의 곳곳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는 것이다. 

한 작가의 책을 읽는 것에 비해 미국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매력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미 소개된 단편이고 그 번역 역시 거친 부분들이 남아 있어 책에 몰입하는 데 힘이 든 부분이 있다. 창비식 표기법 역시 큰 장애물이다. 9개국의 단편선을 한 곳에 집약했다는 데는 의의를 가지겠으나 꼭 이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 가에 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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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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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떠올려 보자. 소설의 큰 줄거리가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조디 피콜트의 <19분>처럼), 소설 속 특정 캐릭터가 떠오를 수도 있고(<도리언 그레이스의 초상>에서의 주인공 처럼), 밑줄을 박박 그어뒀던 인상적인 구절이 떠오를 수도 있다(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처럼). 그런가 하면 이 책 <잉글리시 페이션트>처럼 이해는 가지 않고 실체를 알 수도 없지만 묘한  '분위기'만을 남기는 소설도 있다.

낯설지 않은 이 책의 제목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와 동일한 제목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9개 부분을 석권한 영화의 원작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옮긴이의 글에 따르면 영화와 이 책 사이에는 큰 간극이 놓여 있다고 한다. 영화는 모태와 분위기만 책에서 따 왔을 뿐 완벽하게 각색하여 만든 것 같다(읽어보면 알겠지만 각색이 없이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거다).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은 1992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깊고 아름다우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막에 있는 남자는 마치 찾아낸 우물 속에 있는 것처럼,
갇혀 있는 그래도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원한 그늘 속에 있는 것처럼 하나의 이름 속으로 빠져들게 돼. 
 _ <잉글리시 페이션트>, 187쪽


2차 대전이 종전에 접어들고 있을 시기, 이탈리아 빌라 산 지롤라모에 위치한 한 수도원. 그곳에 낯선 남녀 네명이 모이게 된다. 누구의 조국도 아니고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네 명의 사람들에게 이 공간은 중립적인 지역이며 평화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화상을 입고 해나의 간호를 받고 있는 영국인 환자 알마시, 캐나다 출신이나 유럽 전선으로 파견된 간호사 해나, 시크 교도이지만 영국군 공병인 킵, 그리고 이탈리아인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캐나다에서 온 도둑이자 연합군 스파이인 카라바지오.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마치 그곳과는 분절된 제 3의 세계같이 평화롭게 느껴지는 이 수도원에서  네 명의 주인공은 평화를 유지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해나가 보여주는 행동이다. 해나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고, 아무런 공감대가 없는 영국인  화자를 간호하기 위해 모두가 떠난 수도원에 영국인 환자와 단 둘이 남게 된다. 그가 잠들 수 있게 어두움 속에서도 촛불에 의지해 책을 읽어주고, 그가 잠들면 수도원 전체에 퍼지는 무서운 침묵을 견디고, 녹아내리는 그의 몸에 있는 곳곳의 상처를 묵묵히 닦아내며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친구였던 카라비지오의 만류와 설득에도 그녀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녀의 행동은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뛰어넘은 성녀와 같은 모습이다.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헌신. 전쟁 중의 모습이라 더 그렇게 와 닿는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삶과 처지는 각각 다르지만 텅빈 수도원에서 벌이는 넷 만의 축제는 이들을 하나로 엮어준다. 어딘가에서 축음기를 찾아와 움직일 수 없는 영국인을 위해 그의 방에서 <얼마나 오래 이렇게 지내왔던가>라는 음악을 틀어놓고, 아껴 왔던 술병을 꺼내어 입술을 촉촉히 적시며, 처음으로 깔끔한 옷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와 음악에 몸을 던지는 모습.

독백을 통해, 혹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과거의 기억을 맞춰가고 서로에게서 공감대를 발견하는 모습과, 수도원 바깥 저 멀리서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가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수도원이라는 공간은 지극히 평온하게 느껴지는 것. 이 책이 남기는 분위기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게 아닌가 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을 읽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수많은 시적인 표현과 아무런 예고 없이 순식간에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몰입을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나를 더 텍스트 바깥으로 튕겨나가게 만들었고,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뜨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 책을 들고다녔지만 이 책이 내게 남긴건 수도원에서  벌어진 그들만의 축제의 장면이었다. 하지만 100퍼센트 이해를 낳지 않으면 또 어떠랴. 적어도 이 소설의 '아우라'만은 내게 남겨 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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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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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를 유난히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훗날 꼭 이탈리아 밀라노에가서 피자를 먹겠다 다짐했다. 그 음식의 고향에 가서 먹는 음식맛은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있을까? 한국에는 없는 독특한 맛과 향료도 있겠지? 등등의 생각으로 꿈을 키웠다.  

<보통날의 파스타>는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꿈을 꿨던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피자가 아닌 스파게티(또는 파스타)로. 파스타의 고향 이탈리아에 만나는 달콤한 파스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 바로 <보통날의 파스타>이다.  

   
 

이런 개성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의 면모가 파스타에 숨어 있다.  
인구가 1,2만 명만 되어도 그 도시나 마을을 대표하는 파스타가 따로 있다.
조금씩 변주된 이런 파스타의 다양성은 이탈리아 반도의 곳곳에 전혀 색다른 파스타의 스펙트럼을 쏟아낸다
.
_ <보통날의 파스타>, 11쪽 중에서

 
   

 이 책은 이탈리아와 파스타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저자가 이탈리아 요리학교를 다니며 보고 듣고 경험한 파스타에 얽힌 다야한 이야기와 파스타를 만든 법, 파스타와 잘 어울리는 와인 고르기 등등의 실용적인 팁까지 함께 어우러진 책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2장에 나오는 <파스타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부분이었는데, 실제 이탈리아에는 없는 피클을 찾는 한국 유학생, 관광객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린 에피소드나, '어부의 파스타' '창녀 스파게티'등 독특한 파스타 이름과 그 이름이 붙여진 유래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단순히 먹는 음식이라고만 생각했던 파스타에 이와 같이 재미난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재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레시피까지 함께 있어 요리에 도전해볼 수도 있는 실용적인 팁까지 가미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보다는 파스타-이탈리아에 얽힌 더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풍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먹던 파스타를 재발견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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