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1>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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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8올림픽을 앞둔 1988년의 서울이 그랬듯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둔 도쿄도 모든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손꼽아 올림픽을 기다렸을 거다. 전 세계의 모든 언론과 시선이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는 뿌듯함, 세계인의 축제의 장이 바로 자신들의 땅에서 열리고 있다는 자부심, 이제는 폐전국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한  나라로 거듭난다는 자신감 등이 도쿄를, 나아가 전 일본인들을 열광케 했고 흥분케 했다. 그들에게 올림픽은 간절한 염원이었고 희망이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일본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도시를 활보하던 야쿠자들도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숨죽이며 지내기로 서로가 합의를 했고, 좀도둑들도 국가적인 망신을 피하기 위해 잠시 도둑질을 멈춘다. 깨끗하게 단장한 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흉물스러운 건물들은 전부가 철거되었고, 최신식 경기장을 짓기 위해 밤낮없이 인부들은 땀을 흘렸다. 당장의 생계가 힘들어도, 쉬지 못해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들에게 올림픽은 꿈이었기에 전혀 힘든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때에 찬물을 끼얹는, 아니 찬물 정도가 아니라 빙하같은 얼음을 쏟아 붓는 편지가(그것도 일본인이 쓴), 경찰서에 도착한다. 

"나는 도쿄올림픽의 개최를 방해할 것이다. 며칠 안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두말의 설명이 필요 없는 유쾌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에는 <올림픽의 몸값>이라는 장편소설로 찾아왔다. 도쿄대생 주인공 구니오가 도쿄올림픽 개최를 인질로 국가를 대상으로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며 벌이는 거침없는 한 판 승부다. 전 2권이지만 빠른 전개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 길지 않은 문장 호흡으로 속도감을 높여줘 잡으면 2권까지 순십간에 읽히는 책이다. 특히나 올림픽 개최의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쫓고 쫓기는 관계가 숨막히게 조여오면 절대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주인공 구니오는 도쿄대생으로 부모님과 형이 보내주는 돈으로 착실하게 공부를 하며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구니오에게 형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다. 올림픽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던 형이 심장 발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형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건설 현장을 찾은 구니오는 형의 죽음을 급하게 덮으려고만하는 건설업체 측에 의문을 품게  된다. 더하여 형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본인이 스스로 체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한 구니오는 그 두가지 이유로 인해 자신도 건설 현장에서 인부들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된다.

건설 현장에서 구니오가 본 올림픽은 철저하게 자본가를 위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할 수 밖에 없었으며, 프롤레탈리아들은 더 처절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올림픽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은 허울 뿐이었다. 하루 3교대, 올리픽이 닥쳐와서는 2교대까지 하는 인부들은 오히려 자본가들에게 봉이었다. 장갑 등 각종 장비를 비싼 돈으로 되팔아먹었으며, 짧은 시간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그들에게 형편 업는 주먹밥을 인근 식당에서 파는 밥보다 비싸게 팔아먹었다. 힘든 노동을 견디기 위해 필로폰 등 마약을 찾아 전전하는 인부들을 못본척 했으며, 그로 인해 발작을 일으켜 위험 상태에 이르러도 외부에 알려지면 안된다며 덮어버리기에만 급급했다.

"도쿄만 부와 번영을 독차지하다니, 결단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에요. 누군가가 나서서 저지해야 합니다.내게 혁명을 일으킬 힘은 없지만, 그래도 타격을 주는 것쯤은 할 수 있어요.
올림픽 개최를 구실로 도쿄는 점점 더 특권을 독차지하려 하고 있어요. 그걸 말없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요."

_ <올림픽의 몸값>1권, 404쪽 

구니오는 자신의 형이 이러한 착취 속에서 철철한 외로움과 싸워가며 쓸쓸히 죽어간 사실을 알고 국가에, 세상에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가 지금 가장 두려워 하는 것,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인질로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역시 일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건 쉽지 않다. 건설 현장에서 몰래 빼돌린 다이너마이트로 경찰청장의 집, 경찰 학교 등 폭파 사건을 일으키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덮여진다. 신문에 단 한줄도 언급 안된 건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의 철저한 입막음은 구니오를 더욱더 분노하게 한다.

이렇게 보면 마치 올림픽을 앞두고 계급투쟁을 하는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결 구도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소설 자체가 그렇게 무거운 건 아니다. 오쿠다 히데오 역시 겉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편에서 그들을 옹호하고 자본가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계급 투쟁을 한다는 대학생들이 실은 사상과 신념 보다는 자기 몸 챙기기에 급급한 연약한 존재들이고, 행동이 아닌 자신들이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자기들끼리 벌이는 탁상공론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것을 보면 말이다. <남쪽으로 튀어>에서도 그렇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을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중간 줄타기를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을 뒤로 하더라도 구니오와 경찰 마사오의 쫓고 쫓기는 관계, 협상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기차 역에서의 숨막히는 추격신, 그리고 최후의 날인 올림픽 계회식 날 경기장 안에서 두 사람이 마주하는 순간까지 그 스릴과 긴장감은 단연 이 소설의 최고라 할 수 있겠다.  구니오는 과연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경찰 마사오가 모든 일본인의 염원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이 둘을 둘러 쌓고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과 사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한데 어울려 맛깔나게 버무러진 정말 말 그대로 '재밌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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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주의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글.그림, 김경주 옮김 / 써네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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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아마도 한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일일 거야.

          _ <분홍주의보> 중에서 


장 자크 상페의 책을 좋아했던 건 상페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과 어우러지는 짤막한 글이라는 그 형식이 참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림으로 못다한 이야기, 혹은 글로 다 못다한 감성을 그림으로 담아 글과 그림이 멋드러지게 어우러지며 한 편의 멋진 작품이 탄생한다.  

<분홍주의보>라는 이 책도 일러스트와 짤막한 글이 어우러진 책이다. 수년 동안 시를 쓰고 미술 공부를 한 엠마 마젠타는 동물과 화산, 나무, 바위 그리고 샹들리에를 오브제로 다양한 형태의 인가에 대한 사랑을 시적인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왔다.  이 책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탄생했다.  

 

   

 


 “몹시도 자신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고백이 밀려오는 어떤 시기가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분홍의 고백이 밀려오는 나의 감정에게 ‘분홍주의보’라는 제목을 지어주었다”고 역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케릭터는 아니지만 마치 16살 소녀의 마음처럼 사랑을 기다리고 사랑의 행복을 찾는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펜시해보이는 책 모양새와 조금은 거부반응이 드는 책 제목에서 내 취향과는 동떨어진 책이었다.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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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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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설(且說)!"  담배 가게 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임경업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야기 꾼은 말을 멈췄다. 차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를 그치겠다는 뜻이었다. 한창 감정이 고조되어있던 청중들은 가지고 있던 엽전을 서슴지 않고 풀어 놓는다. 바구니에 엽전이 하나 둘 쌍히고 수북히 쌓여 바구니를 가득 채우지 이야기 꾼은 슬슬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선의 임금이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의 사건을 들을 때는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임경업 장군을 두려워하여 의주로 후퇴한 호국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모두가 임경업 장군의 비극적인 결말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지경으로 이야기 꾼을 바라본다.

마침내 임 장군의 마지막 이야기가 끝이 난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내들 가운데 몇은 소맷자락으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영웅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데 대한 무능한 조정에 안타까움과 분노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야기 꾼이 자리를 일어나 떠나려 하자 갑자기 한 사내가 번쩍 일어난다. "네놈이 감히 장군놈을 죽여?" 분노에 찬 사내는 한 손에 쥐고 있던 낫으로 이야기 꾼을 내리쳤다. 이야기에 빠져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를 놓쳐버린 사내는 이야기 꾼을 죽이고야 말았다.


이야기가 무서운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감염력이 강하다는 데 있었다.
감염력은 허구에서 나온다는 것을 김흑은 알게 되었다.
삶 밖의 삶, 현실 바깥의 세계, 사랑 너머의 사랑, 죽음 이후의 죽음은 바로 허구 그 자체지만, 사람들은 그 허구를 갈망하고 사랑했다.
_ <꾼>, 199쪽 중에서

이야기는 사람의 감정을 좌지우지 하기도 하고,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며, 새로운 세상을 열기도 한다. 조선시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조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 꾼 김흑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이야기꾼의 꿈을 품으며 이야기로 웃고 우는 인생사를 그린 소설이 바로 <꾼>이다. 김흑이 서울로 당도해 처음 만나는 장면이 바로 한 청중의 낫에 맞아 죽는 한 이야기 꾼이 모습이었다. 그는 이야기의 힘을 알고 있는 자였다. 그래서 두려워 하기도 했고, 그래서 더 사랑하기도 했던 것이 이야기였다.

김흑은 길 위에서 머물고 길 위를 떠돌며 살아갔다. 상인을 따라 봇짐을 짊어지고 떠돌기도 하고, 곡물을 들고 시장에서 발품을 팔기도 하고, 소 장수를 따라 소를 몰아주기도 했다.  조선 땅을 벌레로, 짐승으로, 천한 놈으로 떠돌다 문득 그는 이 땅에서 머물다 사라질 자신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조선 땅 위를 재재거리며 걸어가고 싶었다. 조선 땅 최고의 이야기 꾼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이야기 꾼이 된 김흑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순전히 청중의 입장에서 비롯된다. 그가 처한 상황, 그가 입은 상처를 생각하며 그것을 어루만져주고 달래주고 꿈을 품을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조선 최고의 기생으로 잘 나가던 한 때를 누리다 자신은 한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이제는 한낯 주모로 길 위를 떠도는 사내들을 상대해야 하는 주모의 외로움을 알게 된 김흑은 그녀를 위한 이야기 '상랑뎐'을 들려준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가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매질을 당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청춘을 버리고 늙어버려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와 그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사랑하되 사랑받지 못한 신세가 서러워 가슴을 쳤고, 세월을 이기는 사랑이 없음에 사랑을 믿지 못했던 주모에게 김흑의 이야기는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입장이 되어 마음을 달래주고 남의 설움과 슬픔을 승화시켜주는 김흑의 이야기에 주모의 마음은 큰 위로를 얻게 된다. 김흑은 참말로 최고의 이야기 꾼이었다.

주모를 빗댄 사랑 이야기, 불운한 글쟁이로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던 이결 선비가 겪은 인생, 영웅소설을 듣다 임경업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이야기꾼을 낫으로 찔러 죽인 청중의 이야기, 고자 남편 덕에 평생 목석으로 늙어야 했던 양반가 아낙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어릴 적 병으로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불구의 양반집 아가씨가 책을 통해 세상 밖을 꿈꾸다 이야기 꾼 김흑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까지... 이야기에 이치고, 이야기에 울고 웃고, 이야기에 모든 것을 걸었던 우리네 모습이, 우리네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설이다.  책 속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떼어내어 읽어도 한 권의 소설을 읽은 만큼 완성도도 높고 만족도도 높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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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길, 5000km를 가다
KBS 인사이트아시아 차마고도 제작팀 엮음 / 예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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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미터 이상의 해발 고도. 길고 깊은 협곡과 높은 봉우리로 둘러 쌓인 곳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다. 중국 남부 원난성과 쓰촤성에서 생산되던 차와 티베트의 초원 지대에서 생산되던 말의 물물교역을 위해 왕래하던 길. 설산을 넘고 거대한 협곡을 넘어 멀리 인도, 네팔, 서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대동맥. 숱한 위험 속에서도 기다란 행렬을 한 노새와 마방들이 쉴새 없이 바람을 가르며 오가는 길. 바로 '차마고도'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치장한 선두 노새를 필두로 수백 필의 노새들이 대행렬을 이룬 마방.
이들은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고 대협곡을 건넜다.
때로는 바람 부는 초원을 지나고 만년설 덮인 설산을 넘어야 했다.
행렬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 장관은 지상에서 가장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었다.
_ <차마고도>, 50쪽 중에서


 

실크로드보다 200년이나 앞선 문명 교역로 차마고도. 차마고도는 중국의 원난, 쓰촨에서 티베트 고원을 지나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네팔까지 이어지는 5000킬로미터에 다다르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오래 되었으며, 가장 험란하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이 책 <차마고도>는 2007년 KBS에서 이 차마고도를 탐사하며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한 권의 책으로 응축해 낸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고르고 골라낸 생동감 넘치는 사진들과, 차마고도에 얽힌 역사와 문화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사람이야기까지 다큐멘터리 못지 않게 잘 만든 책이다.

지금도 이 천상의 길 차마고도를 통해 교역이 이루어진다. 어떻게 이토록 높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고립된 곳에 사는 사람들이 4000미터 아래 사는 마을 사람들과 교역을 하게 된 걸까? 1세기 후한시대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불교는 중국 땅에서 황실의 지원을 받으며 번창하게 된다. 이 불교 문화가 차 문화의 번성에 큰 기여를 한 것인데 그는 승려들 덕분이었다. 참선 도중 일체의 간식이 금지되었던 승려들에게 유일하게 허락 된 것이 차였다. 처음에는 졸음을 방지 하기 위해 마시던 것이 다도(茶道)라는 말 까지 낳으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이 차를 구하기 위해 이 머나먼 길을 서슴지 않고 떠나게 되면서 차마고도가 번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높고 험란한 길 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걸까? 이들이 찾아간 곳은 티베트의 소금 생산지 차카롱(옌징)이다. 높은 설산에 무슨 소금 마을이라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이 척박한 고도 4000미터 고원에 소금이 나는 '소금우물'이 있다. 공기와 물 외에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소금을 이곳에서도 얻을 수 있는 걸 보면 분명 이곳은 신의 축복을 가득 받은 땅임은 분명한 것 같다. 아직 지질학자들도 어떻게 이곳에서 소금이 생겨날 수 있는지 밝혀낸 바는 없다고 한다. 다만 신산 따메옹이 소금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관세음보살에게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고, 이에 감복한 관세음보살이 봉황으로 변해 란찬강 기슭으로 날아가 소금우물로 변했다는 아름다운 전설만이 내려올 뿐.

옌징에서는 여자들이 염전 일을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독특한 풍습이 있는데 여인들을 위해 벌이는 '가짜 결혼식'이 그것이다. 마을의 남자 중 4명의 신랑을 뽑고 신랑은 행렬은 마을을 향해 걸어간다. 이떼 신부 측은 신랑을 데려가려고 실랑이를 벌이게된다. 신부 측은 돈을 내놓거나 춤을 추거나 하면서 신랑 측을 유인한다. 이 재미난 풍습은 평생을 노동에 시달리는 여인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1년에 한번 이날 만큼은 노동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소금을 열심히 거둬들이면 이처럼 화려한 결혼식을 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노동의욕을 고취시켜 주기 위함이다.

지금은 비행기를 통해서, 혹은 찡창철도로 쉽게 올 수 있는 길이지만 머나먼 티베트의 라싸를 오체투지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2000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삼보일배를 하며 찾아 온 것이다. 4명의 순례자들은 활불의 승락을 받고 이 고행의 길을 나선다. 나이가 많은 두 노인은 이들의 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젊은 두 명의 사내는 삼보일배를 하며 고행의 길을 걷는다. 이들이 하는 절은 온 몸이 땅과 수평이 되게 하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이들의 이마에는 검은 반점이 생겨난다. 머리가 땅에 계속해 닿아 든 피멍이다. 강이 있어도 절대로 건너 뛰는 법이 없다. 강의 폭을 재어 계산을 한 뒤 그에 해당하는 절을 미리 하고 걷는다. 건너 뛰는 것은 하늘에게 거짓을 고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라싸에 입성하자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의 행색만으로도 얼마나 오랜 시간 오랜 거리를 걸어왔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보시를 하기도 하고 이들을 향해 절을 하기도한다. 자신들이 해야할 고행의 길을 이들이 대신 해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라싸의 포탈라 궁 앞에서 인들을 또 절을 한다. 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그려지는 이들의 모습에 코끝이 찡해져왔다. 

 당나라에서 머나먼 길을 떠나 시집을 와야만 했던 문성공주의 이야기, 그리고 문성공주가 오면서 세워진 조캉 사원과 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 길을 따라 오갔던 마방과 차 이야기, 문화대혁명 시기에 겪어야만 했던 파괴와 혼돈의 시기, 그리고 지금 현대화 속에서 자신들의 고유의 전통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 등등 역사와 감동이 잘 어우러져 담긴 책이다.  눈 앞에서 화면이 펼쳐지는 듯 그림을 그려주고, 다큐멘터리에서는 담아낼 수 없었던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그 주변 지식들까지 담겨 있어 다큐멘터리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고원의 바람 소리, 마방의 노랫 소리, 말 방울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설레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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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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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나름 거리 두기를 잘 한다고 여기던 내가 책을 읽다 분통을 터뜨리고, 대체 내가 왜 이 따위 내용의 책을 읽고 있어야 하냐며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책 속으로 뛰어 들어가 클레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고, 상처 난 부위를 어루만져 주고 싶었으며, 그녀에게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안전한 하룻밤을 선물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녀의 엄마를 대중 앞에서 비난하고 싶었고, 무관심한 언니들을 응징하고 싶었으며, 의부는 아동 학대죄로 고소하고 싶었다.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는 우연한 기회로 원서를 먼저 접했던 책이다. 당시 아마존에서 책 소개를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국의 최초 흑인여성 판사 콘스턴스 브리스코”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너는 참 못 생긴 아이야’라는 소리를 밥 먹듯이 듣고 자랐고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한 한 흑인 소녀가 꿈을 꾸고 희망을 품으며 영국의 최초 흑인여성 판사로 우뚝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예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맞았다고 한건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한 흑인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이고, 틀렸다고 한 부분은 최초 흑인 여성판사로  우뚝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다.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에는 부모의 학대를 딛고 꿈을 찾은 이야기가 담겨있다기 보다는 학대 받던 콘스턴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 
 

   
  “클레어, 너는 정말 못생겼구나. 요즘에 거울 본 적 있니? 자, 봐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사진을 내 얼굴 앞에 내밀었다. 나는 사진을 쳐다보았다.
실제로 정말 못생긴 얼굴이 거기 있었다. 머리는 너무 컸고 입술은 지나치게 두꺼웠다.
사진 속의 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_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80쪽
 
   



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건다는 말은 어쩌면 이 책 때문에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클레어(본명은 콘스턴스였으나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클레어라고 불렀다. 깨끗해지라는(Clear)라는 의미에서 였을까?)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사랑,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사랑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아이였다. 클레어의 엄마는 이랬다. 일부러 클레어의 유치원 친구를 집에 데려와 클레어가 아직도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걸 친구들이 다 알게 만들었고, 고대했던 생애 첫 영성체에는 빛이 바란 회색 드레스를 입게 했으며, 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가져와 보여주는 클레어에게 “넌 어쩜 이리도 못생겼니. 이런 사진은 필요 없겠다.”라며 사진을 다시 학교로 되돌려 보냈다.   
 
때로는 육체적인 학대도 가했다. 엉덩이와 손바닥을 가볍게 때리는 것은 물론 주방의 칼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고, 클레어만 빈 집에 남겨둔 채 가족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버려 클레어는 전기가 끊긴 커다란 집에서 홀로 밤을 새워야 했다. 의부가 클레어를 때리는 장면을 눈감아줬으며 후에 클레어가 의부를 고소해 접근 금지명령을 받자 의부가 가한 학대를 자신이 한 것으로 위장하기까지 한다.

어찌되었든 콘스턴스는 암울했던 어린시절의 학대를 딛고 영국의 최초 흑인여성 판사로 우뚝 섰다.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도 꾸렸고,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펴내며 저자로서도 기반을 다졌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런 의문이 들었다. 대체 그녀는 읽기도 힘든 이 어린 시절의 고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 책이 출간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콘스턴스와 출판사를 비방죄로 고소했다고 한다. 그녀가 원한 건 어머니에 대한 법적 처벌이었을까? 아니면 이 책으로 인해 낱낱이 밝혀질 어머니에 그동안의 생활과 세상의 비난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진심어린 어머니의 사죄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콘스턴스는 어머니가 재소한 재판에서 승소하고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절대로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힘겨운 고백을 통해 그녀는 하고 싶었던 말은 원망도 비난도 아닌 “왜”가 아니었을까? 이제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클레어의 마음으로도 자신의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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