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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를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나름 거리 두기를 잘 한다고 여기던 내가 책을 읽다 분통을 터뜨리고, 대체 내가 왜 이 따위 내용의 책을 읽고 있어야 하냐며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책 속으로 뛰어 들어가 클레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고, 상처 난 부위를 어루만져 주고 싶었으며, 그녀에게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안전한 하룻밤을 선물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녀의 엄마를 대중 앞에서 비난하고 싶었고, 무관심한 언니들을 응징하고 싶었으며, 의부는 아동 학대죄로 고소하고 싶었다.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는 우연한 기회로 원서를 먼저 접했던 책이다. 당시 아마존에서 책 소개를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국의 최초 흑인여성 판사 콘스턴스 브리스코”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너는 참 못 생긴 아이야’라는 소리를 밥 먹듯이 듣고 자랐고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한 한 흑인 소녀가 꿈을 꾸고 희망을 품으며 영국의 최초 흑인여성 판사로 우뚝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예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맞았다고 한건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한 흑인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이고, 틀렸다고 한 부분은 최초 흑인 여성판사로 우뚝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다.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에는 부모의 학대를 딛고 꿈을 찾은 이야기가 담겨있다기 보다는 학대 받던 콘스턴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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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너는 정말 못생겼구나. 요즘에 거울 본 적 있니? 자, 봐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사진을 내 얼굴 앞에 내밀었다. 나는 사진을 쳐다보았다.
실제로 정말 못생긴 얼굴이 거기 있었다. 머리는 너무 컸고 입술은 지나치게 두꺼웠다.
사진 속의 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_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8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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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모가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건다는 말은 어쩌면 이 책 때문에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클레어(본명은 콘스턴스였으나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클레어라고 불렀다. 깨끗해지라는(Clear)라는 의미에서 였을까?)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사랑,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사랑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아이였다. 클레어의 엄마는 이랬다. 일부러 클레어의 유치원 친구를 집에 데려와 클레어가 아직도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걸 친구들이 다 알게 만들었고, 고대했던 생애 첫 영성체에는 빛이 바란 회색 드레스를 입게 했으며, 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가져와 보여주는 클레어에게 “넌 어쩜 이리도 못생겼니. 이런 사진은 필요 없겠다.”라며 사진을 다시 학교로 되돌려 보냈다.
때로는 육체적인 학대도 가했다. 엉덩이와 손바닥을 가볍게 때리는 것은 물론 주방의 칼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고, 클레어만 빈 집에 남겨둔 채 가족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버려 클레어는 전기가 끊긴 커다란 집에서 홀로 밤을 새워야 했다. 의부가 클레어를 때리는 장면을 눈감아줬으며 후에 클레어가 의부를 고소해 접근 금지명령을 받자 의부가 가한 학대를 자신이 한 것으로 위장하기까지 한다.
어찌되었든 콘스턴스는 암울했던 어린시절의 학대를 딛고 영국의 최초 흑인여성 판사로 우뚝 섰다.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도 꾸렸고,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펴내며 저자로서도 기반을 다졌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런 의문이 들었다. 대체 그녀는 읽기도 힘든 이 어린 시절의 고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 책이 출간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콘스턴스와 출판사를 비방죄로 고소했다고 한다. 그녀가 원한 건 어머니에 대한 법적 처벌이었을까? 아니면 이 책으로 인해 낱낱이 밝혀질 어머니에 그동안의 생활과 세상의 비난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진심어린 어머니의 사죄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콘스턴스는 어머니가 재소한 재판에서 승소하고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절대로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힘겨운 고백을 통해 그녀는 하고 싶었던 말은 원망도 비난도 아닌 “왜”가 아니었을까? 이제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클레어의 마음으로도 자신의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