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의 결심 - "나는 절대 누구도 해고하지 않겠다!"
곤도 노부유키 지음, 박종성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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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전 직원이 주주이며 23년 동안 연속으로 흑자를 낸 기업이 있다. 소위 말하는 꿈의 직장 중 하나 일 것인데, 바로 일본레이저라는 일본의 중견기업이다. 그런데 이 기업은 예전에 사장이 모회사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오고 만성적자를 기록하는 부도직전의 회사였다.

 

 『곤도의 결심』은 이러한 일본레이저가 환골탈태한 과정을 담고 있다. 일본레이저는 연구용, 산업용 레이저와 광학 기기를 수입, 판매하는 레이저 전문상사다. 예전 직장인의 애환을 다뤄 크게 공감을 얻은 윤태호 작가의 『미생』에서의 영업과 업무가 유사해 이해가 쉬웠다. 그렇지만 상사의 일이 환율 등 변수가 많이 있으므로 연속 흑자를 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일본레이저의 사장은 회사를 바꾸어 놓았을까?

 

 여기에 곤도 노부유키 사장은 결국 회사의 미래는 사장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달렸다고 말한다. 사장이 진심을 보여주면 직원들도 결국 진심을 보이게 마련이고, 직원들이 진심을 보여야 회사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본레이저를 무슨 일이 있어도 고용을 보장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투명성 있는 인사 제도를 통해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평가하고 보상하는 회사로 만들었다. 게다가 직원들에게 책임감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재량권을 주어 보람을 느끼도록 만들어 회사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게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본레이저는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기업이 되었다.

 

 기업도 기업이지만 역경을 받아들이는 곤도 사장 개인적인 마음가짐도 인상 깊었다. 그는 세상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자주 맞다뜨리는데 이런 상황을 모두 필연이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받아들이면서 이를 극복할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나가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연마하기 위한 숫돌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사장이라는 자리에 한 번이라도 있어 본 적이 없기에 회사를 경영한 이야기보다 이런 살아온 이야기가 솔직히 더 인상깊었다.

 

 결국 사람이었다. ‘실적이 개선되고 나면 직원이 존중받는 환경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p.31)는 곤도 사장의 말이 그래서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간단한 사면체 그림이만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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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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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4학년 졸업반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보드는 폭탄 테러를 시도하고 총기를 난사함으로써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의 생명을 빼앗고 다른 23명의 사람들에게 큰 부상을 남겼다. 가득이나 세기말의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 누가, 언제 등의 4W, 1H에 대해서는 쉽게 알 수 있으나 1W인 Why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언론에서 다루는 단편적인 이야기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구 반대편의 일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총기사건이기에 나부터 관심이 옅어졌다. 더군다나 그 뒤로 버지니아 공대 사건 등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났기에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10년의 인고 끝에 세상에 나온 『콜럼바인』으로 그 당시의 비극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비극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보고서라는 타이틀에 맞게 다량의 자료들로 당시의 비극을 재구성하고 있는데, 사건의 주동자인 에릭과 딜런의 행적을 꼼꼼히 쫓아가는 것이 중심축이긴 하지만 데이브 컬런의 『콜럼바인』을 읽으면서 세 가지 인상적인 점이 있었다.

 

  먼저, 그는 추측성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과 사건의 자료를 은폐하려는 경찰당국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28장 무책임한 언론에서는 언론의 검증 없는 무분별한 보도가 사건을 왜곡하고 오해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물론 재난 기사는 처음에는 혼란스럽다가 점차 명료해져 전보가 밝혀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지만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도 사건이 제대로 바로잡히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당일 오후 3시의 지역기사만이 공격의 본질을 꿰뚫어 본 최초이자 마지막 보도라고까지 하고 있다. 또한 경찰의 초동대응의 허점과 폭발물의 잔여가 남았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지만 교정에서 살해된 학생들의 시신을 하루가 넘게 방치한 것 등 매끄럽지 못한 사건의 통제와 사건을 담당한 재퍼슨 카운티의 사건자료의 은폐를 보고서 곳곳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사건의 희생자와의 소송에서 거액을 지급하면서도 잘못된 행위는 아니었다고 하는 것을 보고는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다음으로 사건의 피해자만이 아닌 에릭과 딜런의 부모님의 이야기도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어 사건을 다룸에 있어 치우치지 않아 보였다. 예전에 영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를 본 적 있다. 주인공의 오빠가 흉악 범죄를 저질러 15세의 여중생이 용의자 가족의 보호 매뉴얼에 따라 세상의 눈을 피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는데 매스컴에서는 득달같이 달려들고 인터넷에서는 주위 가족의 정보, 이른바 '신상'을 터는 일이 나오는 일이 생기고 이런 정보를 가지고 권력구조가 형성되었다가 정보가 사고 팔리기도 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린 주인공이 상처를 받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라는 소설을 읽은 뒤에 본 영화라 가해자의 가족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었다. 물론 큰 죄를 지었고 피해자들의 분노가 가해자 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주위에까지 미치는 것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나 흉악범도 인권보호라는 미명아래 이런저런 보호를 받는 현실에서 가족들이 이른바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계기가 되었었다. 최근 딜런의 어머니인 수는『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으로 당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제목만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 아직 읽어 보진 않았지만 사건의 당사자 중 한 명의 가족의 이야기이므로 『콜럼바인』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끝으로 에릭과 딜런이 남긴 일지, 비디오 등을 분석한 퓨질리어 FBI 부서장은 에릭을 사이코패스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에 40장 사이코패스에서는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현재는 각종 흉악범죄가 많아진 탓인지 조현병이나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와 같은 단어들이 낯설지는 않으나, 1999년에서는 그런 단어가 쓰일 만큼의 흉악한 일이 기억에 나지 않을 만큼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개인적으로는 기시 유스케가 쓴 『악의 교전』의 하스미가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생각이 될 만큼 소설 속의 하스미는 섬뜩했었다. 소설에서 그는 “살인이 가장 명쾌한 해결방법임을 알아도 보통사람들은 주저하지. 혹시라도 경찰에 발각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탓에 아무래도 공포가 앞서게 돼. 그러나 나는 달라. X-sports 애호가처럼 할 수 있다는 확신만 생긴다면 끝까지 해내거든, X-sports와 다름없이 중간에 망설이지 않고 위험해도 과감하게 질주하면 의외로 끝까지 달릴 수 있다는 얘기야.”고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한 하스미의 모습이 에릭의 일지와 그가 보여준 행동과 많은 부분이 겹쳐보였다.

 

 이렇듯 언론과 경찰에 대한 비판과 가해자 가족에 대한 언급 등이 사건의 개요와 더불어 콜럼바인에 관한 보고서의 완성도를 더 해주는 것 같았다.

 

 최근 우리 주위에서도 소위 ‘어금니아빠’라는 끔직한 사건이 일어았다. 게다가 경찰이 피해자 부모의 신고에도 단순 가출로 취급하고 가해자의 집도 피해자 부모들이 먼저 찾았다는 보도가 있어 경찰의 수사가 도마에 오르는 등 연일 이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혹자는 세상이 너무 흉악해졌다고 한탄을 하고 다른 이는 경찰의 무능함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서관의 바닥에 쓰러져 있으면서 희망이 아닌 '믿음'을 생각했다는 사건의 생존자 중 한 명인 패트릭의 졸업생 고별사처럼 ‘사랑스러운 세상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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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 2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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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 2권은 레너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가 왜 조울증을 가지게 되는지 그의 성장과정이 펼쳐지는데 얼핏 보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였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어 졸업식에 참석을 하지 못하는 레너드에게 매들린이 찾아오면서 그들의 관계는 다시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녀의 자리가 점점 커지게 되면서 레너드는 그의 정신을 컨트롤하기 시작했고 필크림 레이크의 연구소에 특별 연구원자격으로 인턴자리를 따낸다. 그곳으로 매들린과 함께 가는 것으로 그들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매들린이 불안한 매력을 가진 레너드에게 끌리면서 그들의 관계가 시작되었으나 그런 그에게 매들린의 크기가 점차 커지게 되고 이윽고 역전이 된다. 이 과정을 유제니디스는 "자신감이 없는 쪽이 되는 것의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얼마나 깊이 사랑에 빠져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 있다. (p. 56)"라고 정리하고 있다. 게다가 점점 변해가는 그들의 관계를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그 숲이 마치 집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레너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점점 멀어질수록 그는 점점 매들린에게 의지했고 , 그가 그녀에게 점점 의지할수록 그녀는 점점 깊숙한 곳으로 기꺼이 따라갔다. (p. 284)”라고 그리고 있어 앞으로의 매들린-레너드 커플이 걸어갈 길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미첼은 인도에서 테레사 수녀가 그랬듯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으나 매들린에 대한 생각을 떨쳐 보내지 못해 그녀에게 엽서를 보낸다. 하지만 그 엽서는 결국 매들린에게 전달되지는 못하는데 지금이야 e메일을 통해 어디에 있든지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으나 이 소설의 1980년대의 시대적 배경과 거의 지구 반대편에서 보낸 엽서인 점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의 심정은 그 엽서를 통해 충분히 대변될 수 있었다.

 

 매들린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랑한 레너드와 결혼을 하고 자신들이 거주할 아파트를 돌아보기 위해 뉴욕에 들렀다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미첼과 재회한다. 여기서 유제니디스는 평범한 결론을 거부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그리지 않고는 ‘넌 정말로 해피엔딩이 있다고 생각해?’란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보면 순수한 사랑이 가능할 수 있던 초보 성년기의 사랑의 과정을 꾸밈없이 그려낸 소설이지만 너무 현실적으로 그렸다고나 할까? 조금은 먹먹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롤랑 바르트의 인용을 패러디 해 보면, “일단 첫 페이지를 넘기고 나며 ‘책두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이야기인 『결혼이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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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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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은 과작하는 소설가로 유명한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최신작이다. 많은 작품을 쓰지는 않았지만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등 현대 영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영미문학은 많이 접하지 못한 문학적 편식(?) 때문인지 나에게는 유제니디스의 첫 소설이 되었다.

 

  1980년대의 브라운 대학 영문과의 매들린 해나, 이공대생인 레너드 뱅크헤드, 종교학을 전공하는 미첼 그라마티쿠스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매들린의 졸업식 날 아침으로부터 시작한다. 전날 과음으로 숙취로 시달리는 매들린을 부모님의 초인종소리가 깨우는 좋지 못한 하루의 시작을 보내게 된다. 그것도 졸업식 날에…… 부모님과 아침을 먹으러 가는 길에 미첼을 만나고 그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진 부모님의 성화로 그와 함께 아침을 먹게 된다. 졸업식의 아침사건을 시작으로 미첼과의 만남이나 어느 기호학 강의에서 레너드를 만난 일 등 매들린에게 있었던 사건들이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없었던, 젊은 여성을 위한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매들린을 중심적으로 그녀가 레너드에게 빠지게 되는 과정과 그와 동시에 미첼이 그녀를 원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지고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한 미첼이 유렵과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특히 레너드는 매력적으로 그려지지만 어릴 적 알코올 중독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매들린과의 관계까지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매들린이 연애과정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특히 재미있는 것은 유제니디스의 표현인데, 매들린의 전공 영문학에 대해서는 “과학을 전공하기에는 좌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역사는 너무 무미건조하고 철학은 너무 어렵고 지질학은 지나치게 석유에만 편향되고 수학은 지나치게 수리적이기 때문이거나, 음악적이지도 미술에 소질이 있지도 재정적으로 동기를 부여받지도 실제로 그렇게까지 똑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1학년 대 자기들이 했던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일, 그러니까 이야기를 읽는 일을 하면서 학사 학위를 받으려 애쓰고 있다. 영문학은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전공하는 학과였다. (p. 60)"라고 하고 있다. 작가 자신도 영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레너드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때에 등장하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대해서는 완벽한 상사병 치료제라며 그것은 심장수리설명서였고 뇌를 위한 일종을 공구라고 칭한다. 이러한 신선한 표현들이 자칫 밋밋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신선하게 해주었다.

 

  졸업 후 친구인 래리와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는 미첼이 그리스에서 래리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혼자 인도로 향하면서 1권이 끝난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크게 매들린이 레너드와 가까워지는 과정과 미첼이 여행을 떠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음 권에는 졸업 후의 레너드와 매들린, 미첼의 이야기가 이어질 것인데 사뭇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동시에 부적격자인 양 느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유치원에서 그들은 기키는 대로 알파벳순으로 줄을 서야 했다. 4학년 현장학습때는 짝꿍의 손을 잡고 사향소나 증기터빈을 지나쳐 갔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줄서기의 연속이었던 학교교육의 이 마지막 행렬도 끝이 나려했다. (p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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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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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 『아몬드』를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알렉시티미아, 다른 말로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다른 이들과 다른 독특한 점을 가지고 태어난 윤재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일자로 다문 입, 초점 없는 눈으로 앞을 무표정하게 바라고 있는 주인공을 그린 표지만 보았을 때에는 이것과 아몬드라는 제목이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는 표지와 제목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어려운 진단을 받은 윤재는 엄마와 할멈과 헌책방을 꾸려 나가며 살아가던 중 불의의 사고 할멈을 먼저 떠나보고 엄마는 크게 다치게 된다. 세상을 보통사람처럼 바라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가르쳐주던 엄마의 부재로 인해 윤재는 스스로 자신을 괴물로 바라보는 세상으로 한걸음씩 나서야만 하는데, 가장 예민하고 불안정한 고교시절을 그렇게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문제아 곤이와 첫사랑 도라를 만나면서 사람과의 소통을 배워나는데……

 

 특히 자신과 닮은 곤이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곤이의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주면서 그와 가까워지게 되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곤이는 어릴 적 놀이동산에서 엄마 손을 놓쳐 그렇게 길바닥과 보호소를 전전하며 스스로 자신만의 세계에 가두고 발톱을 치켜세운 아이였다. 하지만 모두들 그를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고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지만 윤재는 그렇게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곤이로 보았다. 어차피 윤재는 그렇게밖에 볼 수 없지만...

 

곤이가 곤경에 빠졌을 때 윤재는 생각한다.

“멀면 먼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저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p. 245)” 라고... 그리고 친구로서 그를 도우러 나선다. 느껴도 행동하지 않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는 우리와 느끼지도 공감하지도 못하지만 주저 없이 나선 윤재를 보면서 과연 알렉시티미아는 누구에게 더 어울릴까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고 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등이 생각나 자연스레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의 하스미가 떠올랐다. “살인이 가장 명쾌한 해결방법임을 알아도 보통사람들은 주저하지. 혹시라도 경찰에 발각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탓에 아무래도 공포가 앞서게 돼. 그러나 나는 달라”라고 말하는 하스미처럼 윤재가 할멈과 엄마가 묻지마살인의 표적이 되는 순간에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섬뜩하기도 했지만 하스미는 살인으로 세상을 등졌지만, 윤재는 심박사와 곤이, 도라와의 끊임없는 소통으로 세상으로 나올수 있었던 것이 차이였다.

 

 아무래도 감정을 느낄 수 있던 없던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모났으면 모 난대로 둥글면 둥든대로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는 게 세상인 것 같았다. 심박사의 말처럼 평범하다는 건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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