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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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가호』를 읽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친숙하지만, 소설은 여전히 조금 난해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이번에도 기대와 경계가 함께했다. 그런데 소개 문구에서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하루키의 장편소설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이 단독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이다. 소년 주인공이 익숙했던 작가가 여성 인물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가호』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가 베푸는 ‘가호(加護)’를 떠올렸다. 하지만 여기서 가호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가호는 자기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이렇게 설명한다.

 

“여름(夏) 돛(帆)이라 쓰고 가호라고 읽습니다.” (40쪽)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 달리, 가호는 일 년 중 가장 추운 2월에 태어났다. 소아과 의사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타인과 거리를 두는 데 서툴다. 소설 중반에는 가호의 그런 성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 나온다.

 

어쩌면 나는 의무감이 너무 강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무감으로 뭔가를 즐기는 체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당연히 즐길 수도 없었다.

천성적으로 타인과 거리를 두는 요령을 잘 모르는 것이리라. 가호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겉으로 즐거운 듯 행동하면 주위에서는 만족하고 나를 평범한 인간으로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렇게 내 위치가 결정되면 그다음부터는 그것이 깨지지 않게 지켜나가면 된다. (98쪽)

 

가호는 특별한 능력이나 극적인 면모를 앞세우는 인물이라기보다, 주변에서 만날 법한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낯선 사건들 속에서도 그녀의 반응을 따라가게 된다.

 

이야기는 불쾌한 소개팅 자리에서 시작한다. 식사가 끝날 무렵, 상대 남자는 가호의 얼굴에 대해 무례한 말을 던진다.

 

“그쪽처럼 얼굴이 별로인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이 별로라는 사실이 그쪽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마 그런 게 궁금했을 거예요.” (11쪽)

 

첫 장면부터 불편하다. 가호는 그 불편함을 삼키듯 넘긴다. 타인과 거리를 두는 법을 잘 모르는 그녀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러다 말하는 개미핥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개미핥기는 가호에게 무사시사카이로 이사해야 한다고 권하고, 개미핥기 부부와 재규어, 흰개미 여왕, 수호천사까지 차례로 나타난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환상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이 낯선 전개는 하루키 소설 특유의 난해함을 한층 키운다.

 

 

전개가 낯설어도 가호라는 인물에게는 정이 간다. 어머니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가호가 무사시사카이를 떠나 본가로 향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호는 잠시 아버지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 눈의 움직임을 쫓았다. 긴 세월에 걸쳐 운전이 몸에 밴 사람답게 눈을 움직인다. 신중하고, 주의 깊고, 그러면서도 여유롭다. 가호는 그 눈의 움직임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이 어릴 적부터 좋았다. 아버지는 꾸준히 늙어 갔지만 눈의 움직임만큼은 지금도 끄떡없다. (132쪽)

 

운전이 몸에 밴 아버지의 눈을 딸이 가만히 좇는다. 기이한 존재들이 잇달아 나타나는 이야기 한가운데에 이런 일상의 온기가 놓여 있어, 오히려 환상적인 장면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을 듯하면서도 한발 비켜서 있는 인물로 가호의 삼촌이 있다. 삼촌은 가호에게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건 그렇고 아마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을 거야. 진정한 이야기란 눈에 보이는 형태로든 감춰진 형태로든 반드시 어떤 유용성을 포함한다고. 요컨대 실익 없는 이야기는 시시하다. 재미없다. 무가치하다는 뜻 아닐까.” (165쪽)

 

이 말을 읽고 나면 『가호』가 품은 ‘숨겨진 유용성’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을 읽는 동안 그 답을 분명하게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개미핥기 부인의 말이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서 비춘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 속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개미핥기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아마 그렇게 말했지 싶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가지 것들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의 세계의 중심점, 요컨대 나를 향해 모여든다고 말했다. (213쪽)

 

누구나 자기 삶이라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는 뜻일까. 이 대목을 읽으며 결국 소설이 건네는 질문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내 삶이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가볍게 시작해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였다.

 

하루키는 모녀 관계와 여성의 시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힌 바 있다. 가호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관조적인 소년의 성장을 그려온 전작들과 다른 인상을 준다. 다만 모녀 갈등이 풀리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갈등이 충분히 깊어지거나 변화하기 전에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세계관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회귀와 빙의, 환생을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 소재가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할 줄은 몰랐다. 이계의 존재들이 잇달아 나타나는 속도감은 흥미롭지만, 각 존재의 의미가 충분히 쌓이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에서 기대하는 무게감에 비추어 보면 『가호』는 다소 가볍게 읽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기이한 사건들 사이에서 가호의 일상과 가족의 온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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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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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벌레가 한데 붙은 제목도 낯선데, 뒤에 ‘준수 사항’까지 붙어 있다. 공문서처럼 건조한 제목이 오히려 불길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그해 여름, 전 국민이 같은 빵에 열광했다. 그게 빵이 아니라는 건 아무도 몰랐지만.”이라는 책 소개 문구도 궁금증을 키웠다. 김혜영 작가가 ‘괴물을 사랑한다’고 소개한 문장까지 더해지니,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 알고 싶어졌다.


주인공 정한은 트럼펫으로 생계를 꾸리지 못한 채 빚에 쫓겨 귀농한 청년이다. 야심 차게 시작한 딸기 농사마저 실패한 그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는 소금빵을 닮은 식용 애벌레, ‘빵충’을 키우는 사업이다.


마침 전국에는 빵충 디저트 열풍이 불고, 정한은 뜻밖의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사육 농가가 늘면서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이 찾아온다. 경쟁과 규칙 위반까지 얽히며 상황은 점점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빵충 사육의 세계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판매할 수 있는 것은 번데기가 되기 전의 유충뿐이고, 번데기를 발견하면 보고해야 한다. 빵충을 밖으로 내보내거나 성충으로 변태하게 두어서도 안 된다. 왜 이런 규칙이 필요한지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난다.


규칙을 감독하는 관료적인 인물들과, 각자의 사정으로 귀농해 사업에 뛰어든 농가 사람들도 이야기를 채운다. 이들은 특별한 영웅이나 절대적인 악인이 아니다.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준수 사항’은 배경 설정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 전체를 움직인다. 독자는 규칙을 읽는 순간부터 어떤 항목이 먼저 깨질지 기다리게 된다. 규칙이 구체적일수록 위반의 순간은 더 무섭게 다가온다.


특히 한 사람의 규칙 위반이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로 번지는 구조가 흥미롭다. 이 규칙은 사육장을 지키는 약속이면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맺은 사회적 계약처럼 읽히기도 한다. 제목 자체가 이야기의 설계도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정한은 영웅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재능이 없지는 않지만 큰 성공을 거두기에는 부족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서른 즈음에 음악으로 생계를 꾸리지 못하고 사회에서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자각은 웃음과 씁쓸함을 함께 안긴다.


귀농도 ‘진짜 나’를 찾는 낭만적인 여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정한은 자신이 실패한 청년 농부가 되었음을 깨닫고, 애초에 이것이 온전한 선택이었는지 묻는다. 밀려난 끝에 도착한 곳에서 다시 삶을 꾸려야 하는 현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현실감 덕분에 이후의 파국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한의 선택이 아주 특별한 사람의 결정이 아니라, 절박한 상황에 놓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선택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한이 도착한 마을은 평화로운 전원 풍경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마을에 자리 잡았으니 발전 기금을 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정한은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큰돈을 내기로 한다. 이장은 마을에서 거절하면 적이 생길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건넨다.


현금 영수증도 끊을 수 없는 돈이 사라지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서늘하다. 이후 정한은 멧돼지 출몰처럼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알려 주지 않은 일을 겪고 실망한다. 도시를 떠나 도착한 곳에도 경쟁과 텃세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 풍자 덕분에 소설은 괴물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농촌 현실을 바라보는 이야기로 읽힌다.


이러한 빵충 사육은 정한에게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제대로 된 수입이 그에게 가져다준 것은 집이나 차가 아니라 ‘해명할 필요 없는 삶’이었다.


경쟁과 증명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하루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정한이 그 안에서 소속감과 안도감을 얻을수록, 그 삶이 무너질 때의 낙차도 커진다. 독자는 정한의 안도감에 공감하면서도 불안해진다.


소설은 자연에서 난 것과 인간의 의도가 더해진 것을 대비한다. 보기 좋고 맛있는 것에는 인간의 욕망과 선택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소금빵을 닮은 벌레라는 설정과 만나며 섬뜩한 의미를 얻는다.


달콤한 풍요는 어디까지 자연스럽고, 어디부터 인간의 욕심일까. 빵충 사업의 성공을 따라가다 보면 이 질문이 남는다. 풍요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그 대가를 누가 감당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고 나면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어떤 선택까지 하게 될지 생각하게 된다. 정한은 눈앞에 나타난 마지막 기회를 붙든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쉽게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 소설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공포의 근원은 괴물 자체라기보다 괴물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욕망과 침묵에 있다. 성공의 기회 앞에서 무엇을 감수하는지, 그 대가는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묻는 이야기다. 규칙을 어긴 사람뿐 아니라, 의심할 기회 앞에서 편안한 쪽을 택하고 못 본 척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빵과 애벌레를 결합한 발상이 흥미롭고, 웃음과 풍자에서 긴장과 공포로 넘어가는 장르 전환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후반부의 변화가 급격하게 느껴져 앞부분과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었다. 호러 묘사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욕망과 침묵 속에서 어떻게 괴물을 만들어 가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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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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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성 작가의 『기억의 무늬』는 사람을 얼굴이 아니라 감각과 흔적으로 기억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안면인식장애를 지닌 주인공이 부모의 죽음에 얽힌 오래된 사건을 다시 좇는다는 소개에 끌려 책을 펼쳤다. 작가의 전작 『빛이 이끄는 곳으로』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한몫했다.


파리의 패션학교에 다니는 스물두 살 카미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대신 목소리와 걸음걸이, 옷감의 질감과 냄새 같은 감각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세 살 때 부모가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한 뒤 생긴 안면인식장애, 그리고 그날 손끝에 남은 옷감의 촉감은 카미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단서다. 19년이 지나 카미는 그 기억을 붙들고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어 사람들의 눈, 코, 입이 마치 물결처럼 흔들려 보일 뿐이다.”


카미를 읽으며 데이비드 발다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 나오는 에이머스 데커가 떠올랐다. 둘 다 남다른 지각 방식을 지녔고, 가족의 죽음이라는 상처가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진실에 다가가는 방식은 정반대다. 모든 것을 잊지 못하는 데커가 기억을 되짚어 논리적으로 추리한다면, 카미에게 남은 것은 세 살 때의 파편적인 촉감이다.


데커의 기억이 수사의 무기라면 카미의 촉감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증명할 수 없는 믿음에 가깝다. 한 사람은 기억으로, 다른 한 사람은 감각으로 진실을 좇는다. 두 인물을 나란히 떠올리며 기억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다르게 펼쳐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기억의 무늬』가 독특한 점은 눈이 아닌 손끝으로 사건을 읽어 간다는 데 있다. 카미는 얼굴과 표정보다 옷과 가구에 남은 흔적을 단서로 삼는다. 패션학교를 배경으로 직물과 옷에 관한 묘사가 이어지는데, 특히 소설의 첫 문장이 오래 남았다.


“천은 수만 가닥의 실이 짜여 태어난다. 그리고 그 천들을 잇대어 옷을 완성하는 것은 바늘이 끌고 간 가느다란 실의 흔적이다.”


옷이 실의 여정을 따라 완성되듯 사건의 진실도 흔적을 따라 드러난다는 암시처럼 읽혔다. 제목의 ‘무늬’ 역시 옷감에 새겨진 결인 동시에, 기억과 시간이 겹쳐 만들어 낸 흔적처럼 느껴졌다.


카미는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표정이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카미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좋을 때와 나쁠 때 슬플 때조차 얼굴에 변화가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 가슴은 분명 감정에 따라 요동친다. 단지 얼굴로 표현되지 못할 뿐이었다.”


상대의 얼굴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도 얼굴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이 작품에서 안면인식장애는 추리를 위한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타인을 알아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은 어떻게 전해질 수 있는지 묻는다.


신입생 시절 봉사활동을 떠올리는 장면도 인상 깊다.


“가장 행복한 순간 그들은 세상에 소란을 끄고 조용히 내면의 침묵과 마주했다. 외부의 빛이 차단된 곳에서 비로소 등불이 켜지는 것이었다.”


보는 감각이 닫힌 자리에서 다른 감각이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카미의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소설에서 가구와 직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사건의 단서이자 기억을 담아 두는 그릇이다. 건축가 출신인 작가의 시선은 공간과 사물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아기 침대와 엄마 의자, 커튼 같은 물건이 사건의 의미를 바꾸는 장면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아이에게 옷을 입히듯, 엄마의 향기를 입히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천 조각을 조그맣게 잘라 아기 침대와 엄마 의자 사이에 끼워놓고 봉인해 두었던 것이다.”


범인을 찾는 여정은 한 가족의 사랑과 상실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오래된 가구가 간직한 것은 나무의 무게만이 아니라 누군가 가족을 지키려 했던 마음이다. 사물이 사랑의 흔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정서를 잘 보여 준다.


카미의 안면인식장애와 촉각 중심의 추리는 참신하다. 부모를 잃은 어린 시절의 사건을 다시 파헤쳐 가는 과정에도 관심이 갔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의 긴장감이 기대보다 약하게 느껴졌다. 가족을 둘러싼 사랑과 상실의 감정은 잘 살아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옅어지는 점은 아쉬웠다.


소설을 다 읽은 뒤에는 내가 사람을 무엇으로 기억하는지 생각했다. 얼굴이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손에 닿던 감촉이나 옷에 배어 있던 냄새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카미의 안면인식장애를 독특한 추리 장치로만 보았지만, 읽을수록 이 설정은 ‘타인을 안다’는 말의 의미를 묻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믿곤 한다. 하지만 얼굴은 한 사람의 일부일 뿐이다. 옷을 고르는 취향과 걸음의 속도, 손에 밴 습관에도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쌓여 있다.


카미의 세계는 불완전해 보이지만, 그가 흔적을 읽는 방식은 오히려 정직하게 느껴졌다.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에 따라 다시 짜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흔적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는 카미의 모습은 기억을 읽는 일이 결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임을 보여 준다. 기억의 무늬를 읽는 일은 과거를 붙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와 화해하는 과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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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
성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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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서적을 제공받가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성해령의 소설에서 성공한 사람을 찾아보긴 어려울 것이다. 독립은 요원하고 우정은 실패하며 사랑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실패가 산적한 서사를 위해 소설가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마술은 고통의 서사를 치유의 서사로 교체하는 것이다. (290쪽)

 

『대부호』를 읽고 나서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해설의 이 문장이었다. 해설이 짚은 대로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끝내 이기지 못한다. 집을 구하고 가족을 돌보고 친구를 떠올리는 일상 속에도 해피엔딩이 들어설 자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그 실패를 화해나 위로로 서둘러 봉합하지 않는다. 그 덮지 않음은 불편하면서도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긴장으로 남는다. 여덟 편의 단편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임장」, 「하악」, 「나방파리」였다. 선망과 가족, 우정이라는 서로 다른 관계를 다루는 세 작품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정말 그 사람을 알고 있는가.

 

먼저 「임장」의 주인공 ‘나’는 자기 집을 마련하려는 마음으로 부동산 임장 모임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모임을 이끄는 민연 언니를 선망한다. 일에 능숙하고 말이 분명한 민연을 동경하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를 찾아 나섰다가 믿기 어려운 장면과 마주한다. 소설은 그 이후의 일을 직접 확인하도록 독자에게 남겨 둔다. 내게 오래 남은 문장은 화자가 반지하에 살던 친구의 집 냄새 때문에 친구와 멀어졌던 기억이었다.

 

친구에게 절교 편지를 쓰면서도 집에 가기 싫다는 진짜 이유는 말하지 못하고, 친구의 말투와 버릇이 싫다는 다른 이유를 적었다는 고백이다. “어떤 거짓은 진실의 반대가 아니라 대체일 수 있다”는 문장이 서늘한 것은 거짓말을 한 사람이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계급의 차이는 냄새라는 감각으로 옮겨지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은 말투와 버릇을 핑계로 삼는다.

 

임장 모임 역시 그런 번역이 일상이 된 공간처럼 보인다. 평수와 입지와 가격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는 서로의 처지를 냄새 맡듯 가늠한다. 남의 집을 평가하는 위치에 선 사람은 동시에 자기 처지의 열세를 선명하게 느끼기도 한다. 화자가 민연을 선망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다. 선망은 상대를 정확히 보는 일이 아니라 자기 결핍을 상대에게 비추는 일일 수 있다. 그러므로 선망하던 사람이 사라질 때 흔들리는 것은 민연의 정체만이 아니다. 상대를 안다고 믿었던 ‘나’의 시선도 함께 흔들린다.

 

민연의 집을 치우며 마주한 쓰레기가 “생명보다 더 치열하게 부패하고 있었다”는 표현은 이 소설의 냄새와 이어진다. 숨기고 싶어 치우려 한 것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강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감각이다.

 

「하악」은 마흔 살 여성 자인이 발달장애인 동생 태인과 조카 서린을 만나러 가는 하루를 따라간다. 자인은 낮에는 북쪽으로, 저녁에는 남쪽으로 이동하며 돌봄의 시간을 지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조금씩 깨닫는다. 가족애라는 말이 가장 먼저 지워 버리는 감정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가족 소설이다. 자인은 동생을 두고 자신이 한 번도 원한 적 없던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절이 정직하게 다가온 것은 돌봄이 흔히 헌신과 성장의 이야기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자인에게 동생은 선택하지 않은 몫이며, 자신이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축복의 목록에 놓인 존재다. 그렇다고 자인이 동생을 미워하기만 하는 것도, 사랑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양가적인 마음을 해소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작품의 힘이다. 해설이 말한 치유의 서사로의 교체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자인은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선망과 열패감을 동시에 느낀다. 축복을 많이 받으며 자란 서린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 감정은 창밖 서울의 불빛으로 표현된다. 빼곡한 불빛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삶이라는 사실, 살아가는 데 이렇게 많은 빛이 필요하다는 사실 앞에서 자인은 혼자 아득해진다.

 

그 순간의 감정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선다. 사는 일 자체가 이만큼의 힘을 요구한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는 듯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하악」의 서늘함이라면, 그 거리를 헤아리게 하는 단위는 창밖의 불빛이다.

 

「나방파리」는 서로의 처지에 깊이 이입하며 친구가 되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멀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다. 화자 일영은 종희 언니의 어린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받고, 오래 눌러 두었던 관계의 단절과 죄의식을 다시 마주한다. 제목 속 나방파리는 아주 작은 힘에도 짓이겨지는 미물이다. 오랜 친밀함도 그만큼 쉽게 으스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아프게 다가온 장면은 종희가 일영에게 자신의 고통을 말하며 일영의 두통은 진짜가 아니었다고 몰아붙이는 대목이다. 검사 결과가 깨끗했다는 사실은 고통이 가짜였다는 말로 바뀌고, 카페의 손님과 점원이라는 자리는 ‘진짜 사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가르는 선처럼 작동한다. 이 장면은 사과나 해명이 아니라 고통의 위계를 선언하는 순간이다. 누구의 고통이 진짜인지를 객관적으로 판정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기에 더 정확히 찌를 수 있다는 점이 아프다. 일영은 무슨 말이든 하려다 입술만 깨물고 호텔방을 나선다.

 

그 모습에서 「임장」의 절교 편지가 떠올랐다. 「임장」의 화자는 하지 못한 진짜 말을 다른 거짓으로 대체했고, 일영은 해야 할 말을 입 안에 가둔다. 방식은 달라도 두 사람은 끝내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관계를 잃었다. 아들의 부고는 이미 끝난 줄 알았던 관계가 죄의식의 형태로 남아 있음을 드러낸다. 세 작품을 겹쳐 읽으며 공통으로 보인 것은 말하지 못하는 일, 계급과 처지의 비대칭, 그리고 그런 일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점이었다. 「임장」에서는 진실이 거짓으로 대체되고, 「하악」에서는 감정이 가족애의 언어에 눌리며, 「나방파리」에서는 말이 입술 사이에서 사라진다. 반지하 집의 냄새와 축복받지 못한 사람의 열패감, 카페 점원과 손님의 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같은 비대칭을 드러낸다. 임장 모임과 돌봄의 하루와 호텔방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들의 불편함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독립은 요원하고 우정은 실패하는 세계에서 「임장」은 자기 집을 향한 욕망을 독립의 불안과 겹쳐 놓고, 「나방파리」는 우정의 실패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준다. 「하악」은 가족이라는 단단해 보이는 관계도 그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다. 성해령은 실패를 위로로 바꾸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자기 안의 선망과 열패감, 그리고 작은 악의를 돌아보게 한다. 가까운 사람을 안다고 믿는 마음은 어쩌면 상대를 보는 일보다 자신의 결핍을 그에게 비추는 데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대부호』는 그 익숙한 믿음을 조용히 흔들며, 우리가 서로에게 끝내 알 수 없는 존재로 남을 가능성을 오래 생각하게 하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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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
신영준.고영성 지음 / 상상스퀘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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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츠와 릴스 같은 숏폼 콘텐츠가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이 지나치게 시끄럽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확인해야 할 정보는 끊임없이 밀려오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흐릿해진다. 번아웃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를 태울 만큼 열심히 살아온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마음이 편안한 것도 아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옅은 피로가 마음 한편에 오래 깔려 있는 듯한 시기에 신영준, 고영성 두 작가의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을 읽었다. 두 작가의 책으로는 『완벽한 공부법』을 읽은 것이 전부였지만, 당시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작가들의 이름만으로 자연스럽게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에서 두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프롤로그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삶의 조건은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고 세상은 이전보다 편리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풍요는 늘어났지만 만족은 깊어지지 않았고, 편리해졌지만 행복해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저자들은 그 이유를 외부의 풍요가 삶을 편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삶의 의미까지 만들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삶의 깊이는 생각하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6쪽).

 

저자들이 지금을 ‘생각의 멸종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극은 넘쳐나지만 정작 스스로 멈춰 서서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극 속에서 잠시 화면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고 권한다(8쪽).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저자들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물들의 통찰을 가져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맞게 다시 해석한다. 레스 브라운의 “또 다른 목표를 세우거나 새로운 꿈을 꾸기에 절대 늦은 때란 없다”(12쪽)라는 말로 생각의 문을 열고, 왜 지금 우리에게 이런 문장이 다시 필요한지를 차분히 설명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시대의 현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가 오늘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저자들의 안내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명언을 나열하는 책이었다면 쉽게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르지만, 각각의 문장 뒤에 붙는 해석이 있었기에 생각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더하는 삶’보다 ‘덜어내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대인은 해야 할 일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으며 챙겨야 할 관계도 많다.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할수록 생각은 여러 갈래로 흩어지고, 결국 어느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무엇을 더 채울 것인가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시간은 중립적이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지만 강요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선택하지는 않는다. 시간의 가치는 시간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있다”(25쪽)는 문장이 특히 오래 남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최근의 하루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문제는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담을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의 목록에 새로운 항목을 하나씩 더하는 대신, 이번 주에는 무엇을 목록에서 지울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 사소한 변화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생각의 출발점일 것이다.

 

두 작가의 전작 『완벽한 공부법』에서도 인상 깊었던 메타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이번 책에서도 실천적인 생각으로 다가왔다. 자기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실패와 감정을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힘 말이다. “실망은 결과에서 오지만, 절망은 선택해서 온다”(45쪽)는 짧은 문장은 책이 말하는 태도를 잘 보여 준다. 실패라는 사건 자체를 언제나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절망으로 받아들일지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일지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태도를 단순히 의지력의 문제로 설명하지 않는다. 매번 굳은 결심을 반복하는 것보다 애초에 흔들리지 않도록 시스템과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침마다 운동해야 한다고 다짐하는 대신 운동화를 현관에 미리 꺼내 놓는 것처럼, 행동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오래가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에서 익숙하게 접했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다시 현실적인 언어로 정리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나 역시 최근 흐지부지되었던 계획들을 떠올리며, 실패의 이유를 의지 부족으로만 돌렸지만 사실은 실패하기 쉬운 환경을 그대로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말과 행동, 진실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 “헌신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말한 뒤, 저자들은 말은 쉽고 편리하지만 행동에는 책임과 비용이 따른다고 이야기한다. 진정한 헌신은 자신이 한 말에 무게를 싣기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111쪽). 사랑한다는 말도,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도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는 문장 앞에서 나 역시 잠시 멈춰 섰다. 말로만 그쳤던 다짐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실과 용기에 관한 대목 역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진실은 가려질 순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을 바탕으로 거짓으로 세운 것은 결국 진실이라는 흐름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126쪽), 용기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멈춤을 설명하기 위해 오히려 방대한 논리와 근거를 수집한다고 지적한다(240쪽). 망설임은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회피는 객관적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한다는 말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 여러 이유를 찾아 미루었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조언이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수록 오히려 더 정확하게 자신을 찌르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가벼운 위로에 머물지도 않고 지나치게 추상적인 철학으로 흐르지도 않는 균형감에 있었다. 짧은 문장과 통찰을 제시한 뒤 그것이 오늘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함께 설명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자신의 삶과 연결해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 철학자의 말과 역사 속 인물의 일화, 심리학적 통찰까지 폭넓게 다루면서도 글이 장황해지지 않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 에필로그의 “행복은 한 번의 획득으로 고정되는 상태이기보다, 지속적으로 가꾸어야 하는 삶의 근력”이라는 생각과, 한 번 읽고 덮는 순간 생각은 지식으로 머물지만 되새기고 삶에 옮길 때 비로소 태도가 된다는 메시지가 이 책의 지향점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292쪽). 책 한 권을 읽는다고 해서 삶이 단번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저자들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말이 더 신뢰감 있게 다가왔다.


한 문장으로 이 책을 표현한다면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나를 지키고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도록 돕는 ‘생각의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를 압도하기보다 생각할 여백을 남겨 두는 방식 역시 책이 전하는 메시지와 잘 어울렸다. 물론 메타인지, 시스템의 힘, 실패를 대하는 태도처럼 이미 다른 자기계발서에서 여러 번 접했던 통찰도 적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다시 삶으로 가져오게 하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었다. 또한 짧은 생각들이 이어지는 구성이다 보니 한 번에 많은 분량을 읽으면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 번에 읽어 내려가기보다 매일 조금씩 읽으며 그날의 삶에 적용해 보는 방식이 더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을 읽고 난 뒤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은 하루 10분 정도 그날의 삶에서 무엇을 덜어낼지를 적어 보는 것이다.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어떤 목표를 추가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 익숙했던 나에게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생각하는 일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거창한 변화보다 작은 생각과 선택이 쌓여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책의 메시지처럼,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하나씩 덜어내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고 싶다. 결국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질문은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었다. 지금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남기기 위해, 나는 무엇을 덜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생각이 많아진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답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에게 던지는 단순하고 본질적인 질문 몇 가지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은 더하는 삶에 익숙한 사람에게 제대로 덜어내는 삶을 시작해 보라고 조용히 권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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