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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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어딘가 못 박는 것 같은 문장. 체념인지 선언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그 문장이, 책을 펼치기도 전에 한동안 눈앞에 맴돌았다.


줄리언 반스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처음 마주한 그가 이미 스스로 '마지막'을 선언한 작가라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작가가 직접 쓴 편지가 실려 있다. 그곳에서 그는 이 책이 '하이브리드'라고 밝힌다.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형식이라는 것이다. 읽다 보면 자서전적인 부분은 쉽게 눈에 띄었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내게 좀처럼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의도였을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며칠 전 깜짝 놀랄 만한 가능성을 하나 발견했다. 아니, 더 나쁘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13쪽)

'가능성'에서 '사실'로 고쳐 쓰는 그 짧은 수정 하나가, 이 소설 전체의 방식을 미리 보여준다. 반스는 이 책 내내 그런 식으로 쓴다. 한 번 말하고, 다시 정정하고, 더 정확한 말을 찾아 한 발짝 더 들어간다. 편한 말 대신 불편한 진실을 고른다.


화자는 노년의 소설가 '줄리언'으로, 실제 작가와 거의 겹쳐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옥스퍼드에서 만난 두 친구,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를 불러온다. 오래전 깊이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진 두 사람은 노년에 다시 만나 관계를 회복한다. 겉으로 보면 '늦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반스는 이 재회를 결코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화자는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결국 그 약속을 어긴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기억과 진실의 간극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책 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 중 하나는 이것이다.


"삶이 픽션의 쓸 만한 재료가 되려면 천천히 썩어 퇴비가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내가 지금 듣는 게 픽션의 가능성으로 분해될지 되지 않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49쪽)


삶은 그대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필터를 통과하고, 시간이라는 발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서사가 된다. 반스는 그것을 '썩는다'는 말로 표현한다. 아름다운 비유가 아니다. 그러나 정확한 비유다.


이 소설이 단순히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보여준다. 한 장면을 묘사하다가 돌연 "그런데 이게 정말 그랬을까?" 하고 의심을 끼워 넣는 식으로. 결국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고,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한 소설이다.


줄리언 반스가 오래전부터 '기억이 곧 나 자신이다'라는 주제를 반복해 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의 전작들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 소설은 그 주제를 충분히 전달한다.


"모든 죽음은 2차 피해를 준다. 죽어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슬픔에 시달리는 사람은 앞으로 긴 세월 동안 그 영향을 받게 된다." (94쪽)


이 문장 앞에서 잠시 멈췄다. 죽음은 당사자에게서 끝나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진다. 기억 속에서 죽은 사람은 계속 살아 있고, 그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복잡한 의미를 띠어 간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기억 속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은 슬프면서도 어딘가 위로처럼 읽히기도 한다.


화자는 친구들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그가 믿어왔던 진실은 부분적인 기억의 조합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오해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인간이 기억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의 한계를 보여준다.


노년에 다시 만난 스티븐과 진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육체는 쇠퇴하고, 시간은 부족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다. 반스는 두 사람이 다시 헤어진 이후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그의 비극은 사랑은 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사랑은 할 수 없는데 그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182쪽)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관계의 아이러니를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하지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 오차 속에서 관계는 틀어지고, 때로는 비극이 된다.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는 특수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이 장면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퇴장 선언'이다. 반스는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나 자신이 고른 시간에 마지막 책을 끝내고 입을 다무는 것에는 적어도 한 가지 유용한 결과가 있다. 뭔가를 쓰던 중간에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 이런 식으로 죽음에 선택권을 넘겨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252쪽)


죽음을 선택의 문제로 바꾸려는 이 태도가 인상적이다. 미완성으로 끊기는 대신, 스스로 끝을 정하겠다는 것.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언이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제목과 얼핏 어긋나 보이는 문장이 등장한다. "떠나면 대개 도착에 이른다." 떠남과 돌아오지 않음, 그리고 도착이라는 세 단어가 교차하며 이 책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쌓는다. 떠남은 죽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젊음도 떠나고, 관계도 떠나고, 한 시절도 떠난다. 그리고 그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과 문장과 이야기는 남는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 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나는 살짝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263쪽)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독자에게 건네는 이 마지막 말이 오래 남는다. 작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독자는 계속 구경한다. 책 안의 이야기를, 책 밖의 세계를,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삶을. 반스는 그 자리를 조용히 비켜서며, 독자에게 계속 살아 있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읽힌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화려한 유작도, 극적인 고백도 아니다. 매우 일상적이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지혜와 체념, 그리고 유머가 공존한다. 삶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을 붙잡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묘한 기분이 남는다. 슬프지만 장쾌하고, 담담하지만 오래 남는다. 그것은 아마도 한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품위 있는 작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줄리언 반스는 마지막까지 그답게, 유머와 사유와 문장으로 떠났다.


줄리언 반스의 전작들이 갑자기 읽고 싶어진다. 이런 작가를 이렇게 마지막 책으로 처음 만났다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어쩌면 이것이 가장 적절한 순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떠남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한 작가를 처음 만나는 것. 그래서 앞으로 읽어나갈 그의 책들이 이미 다른 무게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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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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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집어 들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아쿠타가와상을 받은 2001년생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제목이 주는 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문장은 너무 단정적이어서 오히려 의심을 부른다. 정말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을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일본 최고의 괴테 연구자인 국립대 교수 히로바 도이치가 어느 날 레스토랑의 홍차 티백에서 발견한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ethe”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고 섞는다는 이 문장은 그럴듯하지만, 도이치의 방대한 괴테 전집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명언의 출처를 찾는 과정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띠지만, 곧 훨씬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출처가 없는 말은 누구의 말인가괴테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괴테가 말했을 법한 말이라면 괴테의 말이 될 수 있는가?


이 소설에는 살인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다대신 도이치의 내면 독백, 가족과의 대화, 학자들 사이의 메일과 토론이 중심이 된다.


TV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명언을 괴테의 말로 언급해버린 뒤 괴로워하는 장면이 가장 큰 사건일 정도다그러나 이 잔잔한 서사가 오히려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괴테, 니체, 보르헤스, 말라르메 등 수많은 인문학적 인용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지식을 과시하기보다는 도이치를 옭아매는 텍스트의 감옥처럼 느껴진다.


특히 아내 아키코의 신앙적 시선, 딸 노리카의 젊은 감각은 도이치의 괴테 중심 세계관과 대비되며 이 소설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개념은 도이치가 말하는 두 가지 세계관이다.

잼적 세계관은 모든 것이 완전히 섞여 개별성이 사라진 상태를 뜻한다질서와 경계가 무너지고 하나의 덩어리가 되는 세계다

반면 샐러드적 세계관은 각 재료가 자기 모습을 유지한 채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개별성과 전체가 동시에 살아 있는 세계다.


도이치가 집착하게 된 티백의 문장 속 ‘confuse(혼란스럽게 하다)’‘mix(섞다)’라는 단어는 이 두 세계관을 정확히 요약한다이 문장이야말로 자신의 이론을 상징한다고 느꼈기에 그는 미친 듯이 출처를 추적한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학문의 확실함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인식의 불안정함이다.


도이치의 동료인 시카리 노리후미 교수는 후반부에 인상적인 말을 남긴다.

학문이란 실패와 오류의 연속입니다. 실패와 오류야말로 다양성의 근간이지요.”

그는 일부러 실패를 선택하며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괴테 명언의 출처 찾기보다 더 강하게 남았다.


정확함만을 추구하는 학문 세계에서 실패를 긍정하는 태도는 오히려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

이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문장은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우리가 말할 수 있는 언어의 범위가 곧 우리가 이해하는 세계의 범위라는 생각이라는 말처럼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제목 역시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기보다, 인간은 어떤 언어로도 다 말할 수 없는 세계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우리가 믿는 지식, 인용, 명언, 체계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그리고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 세계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 언어와 인용, 학문과 신념, 그리고 인간 인식의 한계를 조용히 묻는다.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말은 결국 우리는 언제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로 바뀌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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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특별판)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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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첫 문장은 이렇게 묻는다.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욕설로 시작했던 마션이나 액션으로 시작했던 아르테미스와 달리, 이 소설은 다소 조용하게 문을 연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조용하지 않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 안에서 홀로 깨어난다. 그리고 독자는 그가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과 현재 벌어지는 사건을 동시에 따라가게 된다.


이 소설은 한 편의 과학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우정과 희생에 관한 이야기다.

절망적인 작전, ‘헤일메리 프로젝트


헤일메리(Hail Mary)’란 미식축구에서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마지막 패스를 뜻하는 말이다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편도 연료만 싣고 우주로 떠나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더없이 어울린다.


지구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아스트로파지라는 미지의 미생물 때문이다이 생명체는 빛을 흡수해 질량으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결과 태양의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30년 안에 지구는 치명적인 빙하기에 들어설 위기다인류는 마지막 선택으로 타우 세티라는 별로 탐사선을 보내 그 원인을 밝히려 한다.이것이 바로 프로젝트 헤일메리하지만 우주선에는 돌아올 연료가 없다이 임무는 곧 죽음을 전제로 한 여행이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원래 분자생물학자였지만 논문 논란으로 학계를 떠나 중학교 과학 교사가 된 인물이다.그가 이 임무에 탑승하게 된 배경은 소설 후반부에서 드러나는데, 그 과정은 꽤 아이러니하고 인간적이다그는 끝까지 우주로 가는 것을 거부한다인류를 위한 희생이라는 말 앞에서도 망설이고 도망치려 한다이 점이 오히려 그를 더 현실적인 인물로 만든다영웅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평범한 인간이 우주로 내몰린 것이다.


타우 세티에 도착한 그레이스는 정체불명의 우주선을 발견한다그리고 그 안에서 외계 생명체와 마주친다그레이스는 그를 로키라고 부른다로키는 눈이 없고, 소리(음파)로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다그의 생물학과 물리 환경은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 암모니아 대기, 고온·고압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종족이다.


처음에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그들은 노크 소리, 진동, 시계, 도형을 이용해 조금씩 의사소통을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고 따뜻한 부분이다과학이 언어가 되고, 우정이 번역된다.


로키 역시 자신의 별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레이스와 로키는 각자의 지식을 나누며 아스트로파지의 천적이 되는 생명체 타우메바를 발견한다이 소설의 매력은 문제 해결 과정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라는 점이다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모험처럼 펼쳐진다.


그레이스는 생물학자, 로키는 공학자다서로 전혀 다른 종족이지만, 협력하며 하나의 해답에 가까워진다모든 해결책이 준비된 순간, 또 하나의 위기가 등장한다그레이스는 타우메바의 뜻밖의 특성으로 인해 로키의 우주선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그리고 그는 중요한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은 이 소설을 단순한 SF 모험담이 아니라윤리와 희생의 이야기로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다.그레이스는 더 이상 도망치는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남는 존재가 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고독한 우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따뜻한 우주 소설이다마션의 마크 와트니가 혼자 살아남았다면, 그레이스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남는다이 소설의 중심에는 과학이 아니라 관계가 있다.


서로 다른 존재가 만들어낸 협력, 생존보다 중요한 선택 그래서 이 작품은 긴장감 넘치는 과학 소설이면서 동시에 성장소설처럼 읽힌다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마션을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라면 이 작품 역시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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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 인간 - 낮과 밤이 바뀐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생체리듬과 빛의 과학
린 피플스 지음, 김초원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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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식물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은 묘하게 설득력을 가진다광합성 인간이라는 제목은, 인간 역시 태양의 리듬 속에서 살아가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린 피플스는 과학 전문 기자답게, 현대인이 겪는 수면 문제와 피로, 우울, 집중력 저하의 원인을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인류는 태양의 주기에 맞춰 진화해 왔지만, 인공조명과 스마트폰, 24시간 사회 속에서 그 리듬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광합성의 반응식에는 빛 에너지가 빠질 수 없다마찬가지로 인간의 몸 역시 빛을 기준으로 작동한다우리는 직접 포도당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태양이 뜨고 지는 주기에 맞춰 호르몬과 체온, 수면과 각성이 조절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저자는 우리 몸 안에 중추 시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이 시계는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작동하며, 낮에는 깨어 있고 밤에는 쉬도록 몸을 조율한다.


생체시계는 끊임없이 시간 단서를 찾아 우리 몸의 내부 시계를 태양에 동기화하려 한다.” (8)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저자는 태양과 시계가 없는 공간, 즉 벙커에서 생활하는 실험을 한다처음에는 기존 생활 리듬을 유지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낮과 밤의 감각이 완전히 흐트러진다어느 순간 밤이라고 생각한 시간이 사실은 낮이 되는 식이다이 실험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우리 몸의 시간은 사회가 만든 시계가 아니라 태양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태양이라는 기준이 사라지면, 생체 시계도 방향을 잃는다.


문제는 현대의 삶이 이 생체 시계를 끊임없이 교란한다는 데 있다.

실내 중심의 생활, 밤에도 밝은 조명, 스마트폰 화면, 24시간 켜진 도시의 불빛.


우리는 인간이 만든 시간 개념에 익숙해지면서 태양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리듬과 점점 멀어졌다.” (40)


저자는 불면증, 소화불량, 우울증, 집중력 저하 같은 현대인의 질병들이 단순한 개인 문제라기보다 환경 문제라고 말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밤의 밝기에 대한 설명이다.

밤하늘의 밝기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빛 공해는 몇 년마다 두 배씩 늘고 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스마트폰에 대한 비유다.


훗날 밤에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사진을 보면, 우리가 지금 담배 피우는 옛 사진을 보듯 보게 될 것이다.” (198)


이 문장을 읽으며 뜨끔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가 얼마나 일상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몸을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책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새로운 광수용체인 ipRGC에 대한 설명이다우리는 그동안 눈이 보는 기관이라고만 생각해 왔다그러나 ipRGC는 빛의 양과 성질을 감지해 뇌의 생체 시계에 직접 정보를 전달한다.


시각 체계가 만든 3차원 공간에 일주기 체계는 시간이라는 네 번째 축을 더한다.” (119)


즉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볼 뿐 아니라, 눈으로 시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는 단순히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시간을 교란하는 행위인 셈이다.


이 책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누구나 낮에는 더 많은 빛을, 밤에는 더 깊은 어둠을 추구해야 한다.” (146)


저자가 자신이 실철하고 있는 생체 시계 회복 원칙은 세 가지다.

아침에 빛을 보기 일어나자마자 햇빛을 쬐기

밤에는 어둡게 하기 디지털 화면과 인공조명 줄이기

밝을 때 먹기 해가 떠 있는 동안 식사하기

해법은 과학적이면서도 원시적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태양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생각해보면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밤은 어두웠다밤에도 밝은 조명 아래 사는 삶은 아주 최근의 발명품이다그 대가를 우리는 피로와 불면으로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생활을 바꾸면 얻는 것이 크다면, 바꾸지 않을 이유는 없다.아침 햇빛을 조금 더 보고, 밤을 조금 더 어둡게 만드는 일.그 작은 선택이 편안한 잠과 활기찬 내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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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컬러 일러스트 수록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5
김시습 지음, 한동훈 그림, 김풍기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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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는 한국 최초의 소설로 불린다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최초라는 역사적 의미로만 읽기에는, 그 안에 담긴 정서는 너무 깊고 쓸쓸하다.

김시습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에는 계유정난이라는 비극적인 정치 사건이 있다.


단종의 폐위와 세조의 즉위, 그리고 이에 저항한 사육신과 생육신의 선택으로 

김시습 역시 세조의 즉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속을 떠나 방랑의 길에 오른 인물이다. 만약 단종이 폐위되지 않았다면, 금오신화는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소설은 한 개인의 좌절과 시대의 상처가 만들어 낸 문학적 산물처럼 느껴진다.


금오신화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에는 귀신선녀용왕지옥의 왕 염라대왕까지 모두 현실을 벗어난 존재들이 등장한다그러나 이 환상적인 존재들은 단순한 기괴함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과 한을 대신 말해주는 상징처럼 보인다특히 사랑 이야기에서 그 성격이 뚜렷하다.


1. 만복사저포기 죽어서야 만나는 사랑

양생은 부처님과 내기를 걸어 배필을 얻는다하지만 그가 만난 여인은 이미 죽은 존재였다.이 이야기는 장난처럼 시작되지만, 끝은 매우 쓸쓸하다.사랑은 이루어졌지만 오래 지속될 수 없고양생은 결국 세속을 떠나 은둔자가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이 아니라 상실이 더 오래 남는다.


2. 이생규장전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강한 귀신

이생과 최씨 부인의 사랑 이야기는 금오신화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히려 최씨 부인이라는 느낌이다이생은 아버지의 명으로 떠나고최씨 부인은 끝까지 인연을 지키려 한다죽어서조차 다시 돌아와 부부의 연을 이어가려는 모습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귀신이 된 여인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강한 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보인다.


3. 취유부벽정기 역사와 환상의 만남

부벽정에서 만난 신비한 여인은 기자조선의 공주라고 자신을 밝힌다이 대목에서 금오신화는 단순한 연애담을 넘어 역사 의식을 담는다고조선과 기자조선이라는 전설적 시대를 불러오며망한 나라의 슬픔과 개인의 비애가 겹쳐진다이 작품에서 환상은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4. 남염부주지 사랑이 아닌 정치 이야기

네 번째 작품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박생이 지옥 세계에서 염라대왕과 정치와 정의에 대해 토론하는 이야기다여기에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이상 정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현실에서는 펼칠 수 없었던 이상을 꿈속 세계에서 실현하려는 모습은 김시습 자신의 좌절과 겹쳐 보인다사랑 이야기가 빠진 대신, 현실 비판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5. 용궁부연록 문학이 만들어낸 이상향

한생이 용궁에 초대받아 잔치를 벌이는 이야기에서는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이상적 세계가 펼쳐진다하지만 이 또한 오래 머무를 수 없다꿈처럼 다녀온 용궁 이후, 한생은 속세를 떠난다환상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들렀다 돌아오는 장소일 뿐이다.


금오신화해제에 실린 김시습의 묘비명은 오래 남는다.


백 년 뒤 내 무덤에 무얼 적으려거든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하라


이 문장은 금오신화전체를 설명하는 한 문장처럼 느껴진다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꿈을 꾸다 사라진 존재들이다사랑의 꿈, 정치의 꿈, 이상 세계의 꿈현실이 감당할 수 없었기에, 꿈과 환상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금오신화는 단순한 고전 소설이 아니라 한국 환상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만하다귀신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 이야기이고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시대 비판이기도 하다처음에는 한시가 많아 읽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그러나 그 문장 속에는 한 시대를 살아낸 지식인의 고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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