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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딘가 못 박는 것 같은 문장. 체념인지 선언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는 그 문장이, 책을 펼치기도 전에 한동안 눈앞에 맴돌았다.
줄리언 반스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러니 처음 마주한 그가 이미 스스로 '마지막'을 선언한 작가라는 사실이 조금 낯설었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작가가 직접 쓴 편지가 실려 있다. 그곳에서 그는 이 책이 '하이브리드'라고 밝힌다.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형식이라는 것이다. 읽다 보면 자서전적인 부분은 쉽게 눈에 띄었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내게 좀처럼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의도였을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며칠 전 깜짝 놀랄 만한 가능성을 하나 발견했다. 아니, 더 나쁘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13쪽)
'가능성'에서 '사실'로 고쳐 쓰는 그 짧은 수정 하나가, 이 소설 전체의 방식을 미리 보여준다. 반스는 이 책 내내 그런 식으로 쓴다. 한 번 말하고, 다시 정정하고, 더 정확한 말을 찾아 한 발짝 더 들어간다. 편한 말 대신 불편한 진실을 고른다.
화자는 노년의 소설가 '줄리언'으로, 실제 작가와 거의 겹쳐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젊은 시절 옥스퍼드에서 만난 두 친구,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를 불러온다. 오래전 깊이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진 두 사람은 노년에 다시 만나 관계를 회복한다. 겉으로 보면 '늦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반스는 이 재회를 결코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화자는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결국 그 약속을 어긴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본격적으로 기억과 진실의 간극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책 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 문장 중 하나는 이것이다.
"삶이 픽션의 쓸 만한 재료가 되려면 천천히 썩어 퇴비가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내가 지금 듣는 게 픽션의 가능성으로 분해될지 되지 않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49쪽)
삶은 그대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필터를 통과하고, 시간이라는 발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서사가 된다. 반스는 그것을 '썩는다'는 말로 표현한다. 아름다운 비유가 아니다. 그러나 정확한 비유다.
이 소설이 단순히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를 보여준다. 한 장면을 묘사하다가 돌연 "그런데 이게 정말 그랬을까?" 하고 의심을 끼워 넣는 식으로. 결국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고, 기억의 불완전성에 관한 소설이다.
줄리언 반스가 오래전부터 '기억이 곧 나 자신이다'라는 주제를 반복해 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의 전작들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 소설은 그 주제를 충분히 전달한다.
"모든 죽음은 2차 피해를 준다. 죽어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슬픔에 시달리는 사람은 앞으로 긴 세월 동안 그 영향을 받게 된다." (94쪽)
이 문장 앞에서 잠시 멈췄다. 죽음은 당사자에게서 끝나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진다. 기억 속에서 죽은 사람은 계속 살아 있고, 그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복잡한 의미를 띠어 간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기억 속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은 슬프면서도 어딘가 위로처럼 읽히기도 한다.
화자는 친구들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그가 믿어왔던 진실은 부분적인 기억의 조합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오해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인간이 기억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의 한계를 보여준다.
노년에 다시 만난 스티븐과 진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육체는 쇠퇴하고, 시간은 부족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다. 반스는 두 사람이 다시 헤어진 이후 그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그의 비극은 사랑은 할 수 있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사랑은 할 수 없는데 그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182쪽)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관계의 아이러니를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랑하지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 오차 속에서 관계는 틀어지고, 때로는 비극이 된다.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는 특수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이 장면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퇴장 선언'이다. 반스는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나 자신이 고른 시간에 마지막 책을 끝내고 입을 다무는 것에는 적어도 한 가지 유용한 결과가 있다. 뭔가를 쓰던 중간에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 이런 식으로 죽음에 선택권을 넘겨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252쪽)
죽음을 선택의 문제로 바꾸려는 이 태도가 인상적이다. 미완성으로 끊기는 대신, 스스로 끝을 정하겠다는 것.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언이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제목과 얼핏 어긋나 보이는 문장이 등장한다. "떠나면 대개 도착에 이른다." 떠남과 돌아오지 않음, 그리고 도착이라는 세 단어가 교차하며 이 책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쌓는다. 떠남은 죽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젊음도 떠나고, 관계도 떠나고, 한 시절도 떠난다. 그리고 그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과 문장과 이야기는 남는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 — 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 나는 살짝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263쪽)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독자에게 건네는 이 마지막 말이 오래 남는다. 작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독자는 계속 구경한다. 책 안의 이야기를, 책 밖의 세계를, 그리고 자신의 기억과 삶을. 반스는 그 자리를 조용히 비켜서며, 독자에게 계속 살아 있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읽힌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화려한 유작도, 극적인 고백도 아니다. 매우 일상적이고 담담하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지혜와 체념, 그리고 유머가 공존한다. 삶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을 붙잡는 이유를 보여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묘한 기분이 남는다. 슬프지만 장쾌하고, 담담하지만 오래 남는다. 그것은 아마도 한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품위 있는 작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줄리언 반스는 마지막까지 그답게, 유머와 사유와 문장으로 떠났다.
줄리언 반스의 전작들이 갑자기 읽고 싶어진다. 이런 작가를 이렇게 마지막 책으로 처음 만났다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어쩌면 이것이 가장 적절한 순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떠남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한 작가를 처음 만나는 것. 그래서 앞으로 읽어나갈 그의 책들이 이미 다른 무게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