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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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고 나서 국내엔 조금 생소한 작가인 앨리스 먼로의 작품이 뒤늦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책을 선택하는 기준에 상이란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재찬 작가의 『펀치』도 제37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작품으로 오늘의 작가상이라는 타이틀에 눈이 먼저 간 것도 사실이다.

 

 ‘가족·학교·종교의 변태적 시스템에 초특급 메가 펀치를 날려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소설을 대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주인공은 고등학교 3학년의 여학생, 방인영이다. 질풍노도의 10대들이 흔히 그렇듯 다소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캐릭터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아이가 아닌 가족과 학교, 종교가 그렇게 만든 아이였다. 자신을 외모도 성적도 5등급이라고 소개하는 인영은 “나는 방 변호사의 경제적 후원과 엄마의 정신적 억압, 학교와 종교의 변태적 시스템에 속박돼 있다. (p. 13)”고 말하면서 아버지를 ‘방 변호사’라고 칭한다.

 

 머리는 좋으나 외모는 별로인 아버지의 외모와 머리는 별로지만 외모는 예쁜 엄마의 지능을 물려받은 열성유전자의 집합체인 인영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아버지, 어머니 등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다가서지 못해 힘들어 하다 결국은 우연히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는 한 공무원을 만나고 그에게 살인을 부탁한다. 자신이 기획한 ‘살인의 조감도’에 따라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살인을 말이다.

 

 학벌 지상주의, 외모 지상주의 등 우리 사회의 병폐를 일컫는 말이 많다. 게다가 사회는 1등만을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혀지는 일이 부지기수라 모두 1등이 되려고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1등만 되고 보자는 결과주의적 사고가 편법과 불법을 자행하게 되고, 또한 그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게 되면서 인영과 같은 괴물 아닌 괴물을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니가 살인자라 부모를 죽인 걸까? 아니면, 부모가 널 살인자로 만들 걸까?”라는 공무원의 물음이 자꾸만 기억에 남았다.

 

 『펀치』는 분명 가장 악질적이라는 존속살인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보기엔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작가의 직설적이고 경쾌한 문체는 그 불편함을 다소 덜어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적으로 보이는 한 가정이 자녀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성공과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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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말 - 사회를 깨우고 사람을 응원하는
루쉰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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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국인 친구에게 물어본 결과 루쉰만큼 자국에서 후대의 평가가 갈리는 인물도 드물다고 한다. 그 친구는 루쉰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물론 한 친구의 의견이라서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최근 몇 년 상이 중국 중학교 교과서에서 루쉰의 작품이 퇴출되고 베이징에 있는 루쉰의 고택에 대한 철거 계획이 발표되었다고 하니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하지만 싫고 좋고를 떠나 루쉰이 중국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의과대학을 중퇴하고 중국인의 정신을 고치기 위해 글을 선택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에 글만큼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시간에 배운 ‘아Q정전’의 영향 때문인지 소설가로 알고 있었지만 소설은 많이 쓰지 않았고 잡문 등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이 『루쉰의 말』도 루쉰이 남긴 잡문, 서간 등에서 발췌한 글을 모은 것이다.

 

 의학도를 꿈꾸던 루쉰답게 그의 글에는 시퍼런 날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무덤>이라는 잡문집에서 발췌한 글에서는,

중국인들은 다양한 분야를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숨김과 기만으로

교모하게 도망칠 방도를 생각해 내면서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자부한다.

이 길 위에서

겁 많고 나약하며

나태하고 교활한 국민성이 증명된다.

날마다 만족하고

날마다 타락하면서

마다 영광스러움을 느낀다. (p. 145) 며 자국민에게도 서슴지 않고 독이 서린 말을 내 뱉는다.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나 삶을 보듬어주는 글보다도 이런 직설적이 글이 혼란스러운 당시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길지 않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여운은 길게 남는 글들이 많았다. 루쉰이 살던 당시나 지금의 현실이나 위기라는 점에서 비슷해서 그런 것 같았다. 특히 잡문집 <무덤>에 실린 글들이 특히 그러 했는데,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돈에 팔릴 수는 있다. (p. 20) 는 단 두 줄에 불과하지만 한동안 멍하게 만들었었다.

 

 2009년 1월 US Airways 항공이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 기존 언론의 속도를 넘어서는 위력을 보임으로써 유명세를 탄 것이 있으니 바로 트위터이다. 실시간으로 멘션을 전송할 수 있지만 글자수가 제한되어 있기에 트위터는 글을 잘 압축(?)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처럼 짧은 글로써 이처럼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루쉰은 한 세기를 먼저 살다간 최고의 트위터리안같았다. 아니 중국인이니 웨이보리안이라고 해야 하나?^^

 

 단숨에 읽기보다 나태해지거나 따끔한 가르침이 필요할 때마다 가끔씩 꺼내 호되게 혼날 요량으로 보면 딱 좋은 『루쉰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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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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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자신의 삶을 만족하고 살지만, 가끔은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충동도 느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는 배우들의 인터뷰는 공감이 간다. 하지만 연극이나 무대가 아니라 인생을 그것도 자신의 원해서가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나 다른 외부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이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은 조금 서글픈 일일 것이다.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을 덮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여행사 ‘정글’의 수석 프로그래머 고요나는 10년이 넘게 재난을 찾아다니고 상품화한 베테랑이다. 하지만 상사의 옐로카드성 성추행으로 회사생활의 위기를 느끼고 던진 사직서 대신 한 달 짜리 휴가를 얻는다. 대신 휴가를 다녀와서 보고서를 쓰는 식으로 일종의 출장 겸 휴가를 말이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가장 비싼 요금의 무이의 ‘사막의 싱크홀’이라는 상품이었다. 그곳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제가 생겨 3주간 무이의 재난상품을 짜는 일을 떠맡게 되면서 요나에게 찾아오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삶에 지칠 때 여행을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던지 아니면 여행을 통해 삶이 지혜나 견문을 넓힌다던지 여행에 대해서는 통상 이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밤의 여행자들』에서는 독특한 여행이 나온다. 바로 재난 여행인데,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자리, 쓰나미가 할퀸 자국, 대홍수 등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여행의 주요 코스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비싼 돈을 내가며 그런 것을 볼까라고 생각했지만, 작가는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을,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을 얻는 것으로 재난 여행을 설명하고 있다.

 

 요나가 간 무이도 재난여행으로 싱크홀과 더불어 부족들이 서로 죽고죽임을 당한 과거가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불의의 사고로 제대로 여행을 마치지 못한 요나는 정글의 직원인 것이 알려져 무이에 관한 새로운 상품개발을 부탁받고 무이에 일상적인 삶을 목격하게 된다. 거대회사 폴이 점령하고 있는 화려하지만 서글픈 무이의 진짜 모습을...

 

 그들의 음모가 위기에 처하는 대목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난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색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p. 175)”

어쩌면 나도 현재형 재난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방관하거나, 조장하는 건 아닌지 참으로 섬뜩해지는 문장이었다.

 

 언젠가 아프리카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전통을 고수하는 어느 부족의 가장 큰 수입은 사냥도 채집도 아닌 관광객들에게 그들의 삶을 재연해 보여주는 관광 수입이라는 대목을 본 적이 있다. 족장을 비롯해 많은 부족인 들이 움집을 무대로 사냥을 재연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는 관광객과 더불어 보여주는 그들의 현실을 나타낸 다큐멘터리였는데, 그 모습이 무이의 운다족, 카누족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고 나서는 김조광과 같은 상사에 대한 분노, 요나와 럭의 애틋함, 무이의 관광 상품을 제조하려는 그들의 음모에 대한 섬뜩함, 그 음모 속에서 살아남은 ‘악어’들 안도보다도 무이의 전통 부족의 연기를 했고, 관광지 조성을 위해 죽음을 담보로 한 연기를 하기로 한 그들의 삶에 대한 서글픔이 먼저 드는 이유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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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 - 禪詩, 깨달음을 노래한 명상의 시, 개정신판
석지현 엮음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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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시는 너무 어려운 문학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시인이란 작가들은 내가 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계에서 온 사람들로 보였고, 그러한 악순환으로 시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이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주로 소설을 보면서 가끔씩 철학서도 들춰보지만, 시집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만큼 시는 나에게는 넘사벽(?)과 같은 존재다.

 

 그런데 시(詩)도 시지만, 여기에 선(禪)이 덧붙었다. 선시(禪詩), 제목만 보아도 막연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깨달음을 노래한 명상의 시편들’이란 부제에는 흥미가 인다. 깨달음, 아직까지 미련한 중생에 불과하지만 깨달음을 얻기만 한다면 온갖 번뇌를 떨쳐버리고 자유롭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

 

 사실 선시란 말은 예부터 전해져오는 장르는 아니라고 한다. 1975년 『선시(禪詩)』가 출간된 38년 전부터 쓰였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시들을 모아 선시라는 장르가 탄생한 것은 반세기도 안 되는 셈이다. 하지만 선시로 분류된 시들은 중국 당나라시대의 시를 비롯해서 신라, 중세 일본의 시까지 그 역사가 역사시대와 그 괘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구하였다.

 

 선시를 엮고 옮긴 석지현 선생은 친철하게도 먼저 조금은 생소한 선시의 설명부터 시작하고 있다.

 

 선은 언어를 부정하는 불립문자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언어에 뒤따르는 사고작용마저 선은 용납하지 않는다. 대신 오직 자기 자신 속에서의 직관적인 깨달음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 선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선을, 그 깨달음을 제삼자에게 알리자면 여하튼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 한다. … 그들은 자칫하면 저 관념의 바다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그 깨달음의 섬세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시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래서 선승들은 자신들의 ‘깨달음을 시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선시의 출현이다. (p. 23)

 

 이어서 중국, 한국, 일본의 선시의 역사 및 시풍에 대해 간략하게에 설명을 하고는 본격적으로 선시로 이어진다. 부끄럽게도 시를 이해할 만큼의 소양도 선을 논할 만큼의 수행도 쌓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생이라서 선시 원문에서는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적었다. 하지만 한글세대를 위한 독음과 해설은 선시를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석지현 선생의 날카로운 해설이다. 촌철살인이라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예를 들면 3구와 4구의 절묘한 대칭, 마지막 한자가 그저 그런 시를 명시로 만들고 있다, 많은 선시를 남겼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없다는 등의 직설적인 해설이 한 수 한 수마다 실려 있어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거듭 말하고 있지만 아직 선시를 이해할 만한 소양이 없기 때문에 시에 대해서는 뭐라고 쓰기가 어렵다. 하지만 사찰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을 떠 올리는 구절이 있는 선시도 있는가 하면, 달과 구름이 어우러진 산사의 밤을 느낄 수 있는 선시도 있었다. 그중에서 선승의 방을 찾아가 읊었다는 당나라의 시인 왕창령의 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승방 - 왕창령

종려나무 꽃 뜰에 가득하고

이끼는 한가로운 방으로 드네

피차가 서로 말이 없나니

공중에는 천상의 향이 흐르네. (p.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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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식탁 - 우리는 식탁 앞에서 하루 세 번 배신당한다
마이클 모스 지음, 최가영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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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만두, 멜라민 분유 등 먹거리에 관한 범죄를 볼 때마다 적지 않은 분노를 느낀다. 주위에서는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녀석들은 가만두면 안 된다는 다소 과격한 말도 서슴지 않고 들려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의식주 중에서 옷이나 집보다는 먹을거리가 삶고 좀 더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몇 해 전 식품첨가물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때부터 과자나 음료수 등을 구매할 때에는 으레 무엇이 들어있나 보는 습관이 들었다. 액상과당이나 정백당 외에는 이름조차 욀 수 없을 만큼 어려운 화학약품 같은 것들이 많이 들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맛있고 간편하니 눈 한번 질끈 감고 먹곤 한다.

 

 하지만 『배신의 식탁』에서는 만두소, 멜라민, 화학기호 같은 식품첨가물 보다 좀 더 근본적인 것을 다룬다. 간단히 원제인 『Salt Sugar Fat』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설탕, 지방, 소금이다. 최근 MSG 등의 조미료 등의 입맛에 길들여짐에 따라 나트륨 과다 및 인스턴트식품의 영향으로 비만 등의 경고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지만 거대 가공식품기업의 체계적인 마케팅 및 식품제조에 관한 글을 보고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3년 반 동안 가공식품기업이 어떻게 설탕, 지방, 소금으로 우리들의 입맛을 길들여왔는지 취재를 해온 저자는 영리기업의 특성상 수익성이 우선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건강을 담보로 거대해진 그들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설탕, 소금, 지방이 중요한 것일까?

 

소금은 가공 방식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고 처음 한 입을 베어 문 순간 혀끝을 짜릿하게 한다. 지방은 칼로리가 가장 높으며, 사람들이 음식을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설탕은 뇌를 흥분시키는 원초적인 마력을 발휘한다. 이런 까닭에 설탕은 식료품점에서 파는 모든 식품의 성분 구성을 결정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일 정도로 위협적인 조미료다.(p. 7-8)라는 사실로 시작하는 『배신의 식탁』은 설탕, 지방, 소금의 총 3파트로 나누어 이 조미료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그중에서 식약청에서 인증한 조미료 중에서 유일하게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설탕이나 나트륨 과다로 고혈압 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소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었지만, 지방에 대해서는 그저 많이 먹으면 비만이 될 수 있는 식품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지방’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지방은 놀라운 효과 덕분에 가공식품 업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비법 재료로 사랑받는다. 지방을 넣지 않는다면 무슨 수를 써도 감자칩이 바삭해지지 않고, 식빵의 촉촉한 결이 살아나지 않으며, 통조림 가공육에 탐스러운 선홍색 윤기가 돌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은 설탕과 마찬가지로 가공식품의 생명과도 같은 요소인 장기 저장성이 기여한다. 지방이 들어가면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두어도 제품이 상하지 않는다. 제과 분야에서는 지방을 첨가하면 쿠키를 더 크고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고, 얇은 크래커를 만들 때 물 대신 기름을 쓰면 식감이 한층 더 부드러워진다. 또한, 핫도그에 지방이 들어가면 질진 느낌이 줄고 군침 도는 색이 난다. 생산비 절감 효과는 보너스다. 핫도그 고기로 지방을 다 살라낸 살코기만 쓰지 않고 가장자리 지방까지 사용하는 것이 저 저렴하기 때문이다. (p. 204)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 아마도 모든 영리 기업이 추구하려는 길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건강을 담보로 그것도 부작용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수익을 위해 덮어두려는 기업들의 모습에 제목처럼 배신감이 들었다. 그것도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고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광고를 하면서 말이다.

 

 종종 건강에 관한 프로그램에서 전문의 들이 하는 권고는 늘 비슷하다. 싱겁게 먹고 잡곡, 야채 위주로 소식하며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대한 가공식품을 피해야 하는 것도 추가하면 좋을 것이다. 가공식품기업의 임원들이 자기네 회사의 식품을 먹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설탕, 지방, 소금이 가공식품의 세 기둥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좋았지만, 그 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이 가공식품기업의 역사와 맞물리면서 우리의 현실과는 조금 괴리감이 있지 않았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많은 가공식품이 수입되고 있고,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거대식품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가공식품을 개발하기 위하여 많은 자본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먹는 즐거움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을 알 수 있지만, 우리도 조금은 알고 먹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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