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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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4학년 졸업반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보드는 폭탄 테러를 시도하고 총기를 난사함으로써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의 생명을 빼앗고 다른 23명의 사람들에게 큰 부상을 남겼다. 가득이나 세기말의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 누가, 언제 등의 4W, 1H에 대해서는 쉽게 알 수 있으나 1W인 Why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언론에서 다루는 단편적인 이야기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구 반대편의 일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총기사건이기에 나부터 관심이 옅어졌다. 더군다나 그 뒤로 버지니아 공대 사건 등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났기에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10년의 인고 끝에 세상에 나온 『콜럼바인』으로 그 당시의 비극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비극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보고서라는 타이틀에 맞게 다량의 자료들로 당시의 비극을 재구성하고 있는데, 사건의 주동자인 에릭과 딜런의 행적을 꼼꼼히 쫓아가는 것이 중심축이긴 하지만 데이브 컬런의 『콜럼바인』을 읽으면서 세 가지 인상적인 점이 있었다.

 

  먼저, 그는 추측성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과 사건의 자료를 은폐하려는 경찰당국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28장 무책임한 언론에서는 언론의 검증 없는 무분별한 보도가 사건을 왜곡하고 오해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물론 재난 기사는 처음에는 혼란스럽다가 점차 명료해져 전보가 밝혀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지만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도 사건이 제대로 바로잡히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당일 오후 3시의 지역기사만이 공격의 본질을 꿰뚫어 본 최초이자 마지막 보도라고까지 하고 있다. 또한 경찰의 초동대응의 허점과 폭발물의 잔여가 남았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지만 교정에서 살해된 학생들의 시신을 하루가 넘게 방치한 것 등 매끄럽지 못한 사건의 통제와 사건을 담당한 재퍼슨 카운티의 사건자료의 은폐를 보고서 곳곳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사건의 희생자와의 소송에서 거액을 지급하면서도 잘못된 행위는 아니었다고 하는 것을 보고는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다음으로 사건의 피해자만이 아닌 에릭과 딜런의 부모님의 이야기도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어 사건을 다룸에 있어 치우치지 않아 보였다. 예전에 영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를 본 적 있다. 주인공의 오빠가 흉악 범죄를 저질러 15세의 여중생이 용의자 가족의 보호 매뉴얼에 따라 세상의 눈을 피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는데 매스컴에서는 득달같이 달려들고 인터넷에서는 주위 가족의 정보, 이른바 '신상'을 터는 일이 나오는 일이 생기고 이런 정보를 가지고 권력구조가 형성되었다가 정보가 사고 팔리기도 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린 주인공이 상처를 받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라는 소설을 읽은 뒤에 본 영화라 가해자의 가족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었다. 물론 큰 죄를 지었고 피해자들의 분노가 가해자 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주위에까지 미치는 것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나 흉악범도 인권보호라는 미명아래 이런저런 보호를 받는 현실에서 가족들이 이른바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계기가 되었었다. 최근 딜런의 어머니인 수는『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으로 당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제목만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 아직 읽어 보진 않았지만 사건의 당사자 중 한 명의 가족의 이야기이므로 『콜럼바인』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끝으로 에릭과 딜런이 남긴 일지, 비디오 등을 분석한 퓨질리어 FBI 부서장은 에릭을 사이코패스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에 40장 사이코패스에서는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현재는 각종 흉악범죄가 많아진 탓인지 조현병이나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와 같은 단어들이 낯설지는 않으나, 1999년에서는 그런 단어가 쓰일 만큼의 흉악한 일이 기억에 나지 않을 만큼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개인적으로는 기시 유스케가 쓴 『악의 교전』의 하스미가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생각이 될 만큼 소설 속의 하스미는 섬뜩했었다. 소설에서 그는 “살인이 가장 명쾌한 해결방법임을 알아도 보통사람들은 주저하지. 혹시라도 경찰에 발각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탓에 아무래도 공포가 앞서게 돼. 그러나 나는 달라. X-sports 애호가처럼 할 수 있다는 확신만 생긴다면 끝까지 해내거든, X-sports와 다름없이 중간에 망설이지 않고 위험해도 과감하게 질주하면 의외로 끝까지 달릴 수 있다는 얘기야.”고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한 하스미의 모습이 에릭의 일지와 그가 보여준 행동과 많은 부분이 겹쳐보였다.

 

 이렇듯 언론과 경찰에 대한 비판과 가해자 가족에 대한 언급 등이 사건의 개요와 더불어 콜럼바인에 관한 보고서의 완성도를 더 해주는 것 같았다.

 

 최근 우리 주위에서도 소위 ‘어금니아빠’라는 끔직한 사건이 일어았다. 게다가 경찰이 피해자 부모의 신고에도 단순 가출로 취급하고 가해자의 집도 피해자 부모들이 먼저 찾았다는 보도가 있어 경찰의 수사가 도마에 오르는 등 연일 이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혹자는 세상이 너무 흉악해졌다고 한탄을 하고 다른 이는 경찰의 무능함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서관의 바닥에 쓰러져 있으면서 희망이 아닌 '믿음'을 생각했다는 사건의 생존자 중 한 명인 패트릭의 졸업생 고별사처럼 ‘사랑스러운 세상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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