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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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라 함은 모름지기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름의 지론이다. 혹시나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거나 매우고 익히려는 마음이 없고 오로지 순간의 즐거움만 좇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생물에 불과하다.’『솔로몬의 위증』의 다쿠야와 같은 반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 책처럼 통찰을 얻기 위해서나 경제학 책이나 과학책처럼 지식을 얻으려고 미스터리를 읽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에 역시나 한 순간의 즐거움이나마 재미를 좇아 미스터리를 잡게 되는 것은 아닐까한다. 게다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트릭이 숨어 있으면 더 할 나위없다. 그 트릭을 만들고 깨는 과정에서의 작가와 독자의 줄다리기가 재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최근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은 조금 자극적인 것이 많아서 그런지 고전 추리 소설물처럼 사건 해결에 키가 맞춰져 사건이 조금 담백했으면 좋겠다. 이 삼박자를 고루 갖춘 소설을 읽었다. 바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시리즈의 시작『빙과』이다.  

 

  가장 먼저 빙과라는 제목이 수상쩍었다. 한자도 같이 쓰여져 있었고 표지에는 아이스크림이 그려져 있으니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모든 청춘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라는 띠지의 글귀가 물론 『빙과』속 주인공과 현실의 청춘은 사는 곳도, 사는 시기도, 나이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은 모두 장밋빛 삶을 사는 것 같지 않기에 인상적이었다.  

 

  가미야마 고등학교 1학년인 오레키 호타로는 안 해도 되는 일은 안하고, 해야 하는 일은 간략하게 하는 소위 ‘에너지 절약주의자’ 이다. 그런 그가 세계여행 중인 누나의 부탁으로 폐부직전의 고전부를 구하기 위해 동아리 등록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고전부실로 쓰고 있는 지학실에서 지탄다 에루라는 여학생을 만나고 그녀가 신경 쓰인다는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이다. 그리고 자칭 데이터베이스라 칭하는 후쿠베 사토시와 촌철살인의 독설가 이바라 마야카가 조력자로 등장한다. 순진한 눈망울로 신경 쓰인다는 여학생에 든든한(?) 조력자와 사건 해결자, 수수께끼를 만들고 해결하는 팀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다. 고전부실에 지탄다 에루가 갇힌 사건을 시작으로 똑같은 날에 대출한 책의 진위 등 초반을 이루고 있는 사건은 담백하다 못해 소소하기까지 보인다.

  

 몇몇의 일을 보기 좋게 해결하자 지탄다 에루는 개인적인 일을 호타로에게 부탁한다. 바로 삼십 삼년 전 고전부 부장이었던 삼촌의 기억을 되살려달라는 것이었다. 칠년 전 실종된 그녀의 삼촌은 실종선고로 곧 법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을 예정이어서 그전에 정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녀의 삼촌이 바로 고전부에서 매년 축제때 선보이는 문집 '빙과'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수수께끼 해결을 위해 문집의 과월호를 찾고,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그녀의 삼촌의 수수께끼와 '빙과'에 얽힌 일을 해결하면서 끝이 난다.  

 

 『빙과』에는 파이프를 물고 사건을 순식간에 해결하는 셜록 홈즈(지금은 니코틴 패치를 붙이고 중저음의 말을 쏟아내는 모습이 더 각인되어 있는 듯하지만^^)도, 수집한 물적 증거를 바탕으로 즉석에서 회색 뇌세포로 사건을 해결하는 에르큘 포와로도 생각보다는 직관, 그리고 주먹이 먼저 나가는 알콜중독의 히어로 해리 홀레도, 과학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유가와 마나부도 등장하지 않는다. 기껏(?) 해야 중학교 고전부 학생 4명이 전부이다, 개성강한 탐정, 경관 등에 비하면 평범하기조차 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언 듯 보기에는 수수께끼 자체도 그렇고 해결 해나가는 과정도 그렇고 조금은 시시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재미있다. 살인이나 마약, 총기밀매 등 자극적인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느슨한 사건구성이지만 나름 소프트한 재미있는 미스터리였다. 여기에 “아아, 땀 흘리니 시원하다.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째서 인간은 이동을 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건가 싶을 뿐이다. 우리의 정보 혁명 아직 이룩되지 않았으니, 동지여, 나를 위해 노력하라. (p. 148)"는 표현과 같이 작가의 재치 넘치는 문체도 재미를 한 층 더하고 있다. 게다가 소설이긴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았다. 최근에 읽은 『솔로몬의 위증』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빙과』의 주인공들보다 2살이나 어린 중학교 2학년들이었으나 급우가 사망한 사건을 살인 사건인지 단순 자살인지를 재판을 하는 등 굉장히 어른스러워 거리감도 있었으나 『빙과』는 학교 동아리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꾸민 것이라(물론 동아리 활동은커녕 주말도 학업을 위해 힘써야 하는 우리네 고등학생과는 거리가 멀지만...^^;;) 현실감은 『빙과』쪽이 더 있었던 것 같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꼭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좋았었다고 느끼는 장밋빛인 것만 아닌 학창시절을 떠 올리면서 재미있고 나름 소프트한 미스터리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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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의 리허설 - 무대 뒤 현장에서 본 음악의 탄생
톰 서비스 지음, 장호연 옮김 / 아트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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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열두 시간 리허설하는 것과 사흘에 걸쳐 네 시간씩 리허설하는 것은 달라요. 음악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음악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만 내보이게 되는데, 이래서는 작품의 분위기에 빠져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음악과 함께 휴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죠. 그러면서 매일매일 곡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p. 104)

 

 로열 콘세트르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인터뷰 중의 한 구절이다. 매일 곡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열정이 하루하루 허투루 살아온 많은 날을 반성하게 하면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인 것 같았다.

 

 『마에스트로의 리허설』에는 현 음악계를 대표하는 총 여섯 명의 지휘자가 나온다. 클래식 음악 평론가인 저자는 지휘자들을 인터뷰하는 것과 동시에 음악회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리허설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카라얀이나 카를로스 클라이버, 부르노 발터 등 한 세대 전의 음반을 자주 듣고 있어서인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열 콘세트르허바우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오케스트라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발레리 게르기예프나 조너선 노트, 사이먼 래틀 등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지휘자들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이 많았다.

 

 100여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베를린 필하모닉에 새로운 시도를 시도한 사이먼 래틀이나 최고의 연주자들이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모여 음악회를 연다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 각각의 오케스트라마다 고유의 색이 진하고 모두 훌륭한 연주를 하고 있어 그들의 음악이 아닌 뒷이야기를 글로 읽는 다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했으나, 아마추어의 귀를 가지고 있어 뭐가 좋은 음악인지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야 알 수 있는터라 이렇게 글로 읽어도 나름의 감동이 전해지는 듯 했다.

 

 언젠가 금난새 지휘자가 시향을 그만두고 일종의 벤처 오케스트라인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와 성격이 비슷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이반 피셔 편이 인상적이었다. 독립적인 오케스트라여서 그런지 여러 제약에 자유로움이 있지만 특히 재정적으로 꾸려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고 밝히면서도, “조금만 변화를 주면 상투성을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이 참 많습니다. 타성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입니다. 타성에 젖으면 무감각해지고 싫증을 내게 되니까요. (p. 247)”라며 상투성을 피하려는 그의 열정이 놀라웠다.

 

 내게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경험이 아니라 몸속을 파고드는, 본능적인 경험이었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음악을 들을 때면 시간이 독특하게 흘러갔다. (p. 10) 저자의 경험을 조금이나마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멋진 음악을 들을 때면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경험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나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들을 때 그런 것 같았다.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벅차오르는 그런 느낌말이다. 그런 음악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와 수많은 이들을 이끄는 지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그들이 만들어내는 본능적인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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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6 - 집으로 가는 길
고미카와 준페이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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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을 탈출한 가지는 살기 위해 살인과 도둑질하면서 미치코에게 돌아가려고 한다. 미치코는 미치코대로 패전국의 국민으로서의 핍박을 받으며 가지를 기다린다. 하지만 가지에게 기다리는 것은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과 살기어린 중국 토벌군들이었다. 게다가 어느새 점령군이 되어버린 소련군들에게 포로가 되는 상황까지 몰린다. 라오후링 광업소의 중국인 포로와 같은 신세가 된 가지는 포로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소련군 장교와도 담판을 하는 등 포로가 되어서도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가지가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 과정이 『인간의 조건』대단원인 <집으로 가는 길>에 그려져 있다.

 

 제목에서 풍기듯이 집으로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패잔병이라는 신분도 걸림돌이 되고 겨울이라는 혹독한 추위도 장애물이 되었다. 그래도 가지는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그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사람답게 살기가 어렵다는 요즘과도 많은 비교가 되었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작가가 동명의 작품이 이미 발표가 되었음에도 굳이 ‘인간의 조건’이란 제목을 고집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낫 모양의 달이 지상에서 꿈틀거리는 수십 명의 목을 잘라낼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p. 118)

 

 가지 일행이 포로가 되기 전 감자를 훔치려 갈 때의 상황을 묘사한 대목이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이 대목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달을 보고서 기껏해야 눈썹같다는 생각을 했었지 날이 선 낫 모양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가지일행의 극박한 상황을 잘 묘사한 것 같았다.

 

 며칠 전 영화 <이퀼리브리엄>을 보았다. 제3차 대전이 일어나고 거기서 살아남은 자들은 인간들은 제4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약물로써 감정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영화였다. 거기어 한 등장인물은 감정은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조건이라는 말을 하는데, 마침 인간의 조건을 읽고 있던 터라 과연 감정만이 인간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인간다운 인간을 보기 힘든 사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살 수 없는 사회, 인간이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지배당하고 핍박받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또 우리 자식에게는 적어도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도리를 지키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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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5 - 죽음의 탈출
고미카와 준페이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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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를 앞두고 초년병들과의 반란에 성공하지만 가지는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 못하다. 눈에 띄게 화력 차이가 나는 적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 포탄이 병사와 장교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초년병, 고참병을 구별하지도 않기에 가지는 자신만을 믿고 전투에 임한다. 극한의 공포에 미쳐버린 병사도 속출하고 더군다나 정황이 불리하자 소대장이 자결을 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가지는 살아남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항전을 포기한다. 결국 가지를 포함한 160여 명 중 단 4명만이 살아남게 되면서 그들은 가지를 중심으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다. 심지어는 히로나카 하사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전쟁이 마무리가 되고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했지만 그들은 그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어디를 가도 소련군이고, 중국인민의 토벌군인 사지를 탈출한다.

 

 오늘도 걸어야 한다. 여태까지 걸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냐고 말하고 싶었다. 포기하면 바로 굶어죽게 되겠지만, 그편이 차라리 편할지도 모른다. 희망 같은 건 있을 리가 없다. 없는데 만들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그런데도 가지는 일어났다. 이제 와서 포기하느니 그 전쟁터에서 항복하는 게 나았다. 왜 그렇게 하지 않고 도망쳐왔는가. 자기 의지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p. 128)

 

 자기 의지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에 미치코가 있는 남만주로 극한의 배고픔과 공포 속에서도 길을 나선다. 하지만 패잔병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많은 장애물이 있고, 그 장애물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펜만을 잡던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며, 여자까지 때린 가지는 자신이 점차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 같은 모습에 괴로워한다. 인간적으로 대해주길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한 라오후링 광업소의 철장 밖에서 바라보던 중국인 포로와 같아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탈출>이라는 부제는 다른 편의 부제보다도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 일본인이만 일본인의 행태를 증오하는 가지의 모습에 끌렸던지 그동안에는 크게 거부감 같은 것이 없었는데, 전쟁에 지고 나서도 자신들이 받는 부당함을 하소연하는 모습들은 조금 언짢기도 하였다. 지금도 공공연히 군국주의 표방하는 듯 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일본의 수뇌부들과도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나도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바란 식의 대응은 옳지 못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핍박을 받고 있다는 묘사가 조금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 가지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났다. 그럼에도 미치코에게 돌아가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제국주의 꼭두각시도 아니고 전쟁의 원흉도 아닌 그저 행복만을 바랬던 한 인간, 가지의 무사귀한을 응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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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4 - 부치지 못한 편지
고미카와 준페이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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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갈림길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살아남은 몇 사람에게 짐작 되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그때가,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고. (p. 30)

 

 그 갈림길이 가장 잘 드러난 제4권 <부치지 못한 편지>였다. 지옥같은 초년병을 보낸 가지는 어쩌면 입대를 하고 나서 가장 편하게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바로 신조 일등병의 탈영을 쫓아가다 슾지대에 빠져 출혈열의 증상으로 육군병원으로 후송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몸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지독히도 자신을 괴롭히던 내무생활로부터 해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있던 부대는 오키나와로 동원되어 부대 자체가 없어지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결국 다른 국경 부대인 칭원타이로 배속된 가지는 그곳에서 사회에서 헤어졌던 가게야마와 해후를 하게 된다. 소위가 된 가게야마는 가지의 소총수로의 능력을 높이 사 그를 초년병을 교육시키는 조수로 추대하고 가지는 자신이 겪은 초년병시절을 되풀이하지 않게끔 하려고 그 직무를 맡는다. 하지만 군대란 곳이 어떤 곳인가? 고참병들과의 갈등이 폭발한 후 가지는 초년병들의 절반을 이끌고 진지공사에 투입되는데,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가지의 부대가 첫 전투를 벌이는 때가 다가온다. 중화기를 앞세운 소련군들과의 조우하게 된 것이다. 싸워보기도 전에 패배를 직감한 가지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뿐이다. 겁쟁이가 되지 마라. 아무리 겁을 내도 올 것은 오는 법이니까. 겁에 질리면 정말로 비참해진다. 이것이 하나. 또 하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승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 자신이다. 포기하지 마라.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맞서 싸우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p. 349)”

 

 그야말로 가지의 성향을 잘 나타낸 말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전황이 불리해지니 도망

을 가고 스스로 최강이라고 치켜세우는 병사들이 적을 막는 형국에서 자신을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가지는 초년병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솔직해서 놀라웠다. 두려운 것을 두렵다고 말하고, 자신은 전쟁의 승리보다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가 더 좋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그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 것이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소련군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상황을 조악한 무기들로 막아서야만 하기에 가지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개인호에서 결전을 기다리면서 4권이 끝이 난다.

 

 글과 사진으로만 전쟁을 배운 세대이기 때문에 참혹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물론 진지에서 소총을 겨누고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훈령상황이었고 극도의 긴장감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가지의 침착성은 놀랍기만 하였다. 질 것을 뻔히 아는 싸움을 하는 것,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전황이 어떻든 조국이 꼭 승리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는 데라다 이등병과 같은 이들은 모르겠지만, 누가봐도 불리한 전황이고 지원군은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도저히 가지와 같은 침착함보다는 엔치와 같은 넋 놓음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전쟁도 소설도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지는 주인공이기에 아직 죽지 않을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가 이 참혹한 현장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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