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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악의 교전>에서 알게 된 기시 유스케의 단편모음집이다. 그의 소설은 <악의 교전><13번째 인격> 이렇게 두 편밖에 접하지 못했지만 공부를 아주 많이 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 교전>에 나오는 하스미의 사이코패스에 관한 것하며, <13번째 인격>의 유카리가 가진 다른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초능력(엠파시)에 관한 내용들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심리학에 관한 책들을 읽은 탓인지 처음에 밀실살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기에 동명이인의 작가인가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같은 작가였다.^^;;

 

 본격 밀실 미스터리라는 말답게 사건의 동기와 해결부분은 살짝 언급정도만 하고 밀실에 집중을 하고 있다. 마치 전채요리 없이 바로 메인요리가 나오는 형태랄까? 그래도 밀실을 상상하고 그것을 깨부수려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이야기였다. “서 있는 남자”, “자물쇠가 잠긴 방”, “삐뚤어진 상자”, “밀실극장” 이렇게 4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기 별개의 사건이고 당사자는 다르지만 아오토 준코라는 열혈 변호사와 에노모토 케이라는 방범 전문 컨설턴트 콤비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그냥 라이벌로 삼아버린 히가시노 게이고 ‘갈릴레오 시리즈’의 물리학자와 형사 콤비와 닮아 보였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물리학자와 밀실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깨부수려는 방범 전문 컨설턴트(말이 방범 전문 컨설턴트지 그의 이력은 조금씩 밝혀질 것 같았다)가 특히 닮아보였다.

 

 4편 모두 밀실을 깨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그래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아무래도 책의 제목과 동일한 두 번째 “자물쇠가 잠긴 방”이었다. 5년의 복역을 마치고 유일한 혈육인 조카들을 찾아온 날 조카 중 오빠의 죽음을 시작으로 하는 “자물쇠가 잠긴 방”은 다른 에피소드도 그러하듯이 누구나 범인을 알 수 있도록 내가 범인이다라는 인상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단지 그것이 정황증거뿐이라서 범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밀실을 깨야하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밀실을 깨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밀실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범인이 어떤 식으로 밀실을 만들었는지 과정을 에노모토의 설명을 차근차근 따라가 다보면 과연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 했었으니까.

 

 “서 있는 남자” 편에서 가장 중요한 밀실도구로 쓰인 백막을 가리키며 준코가 한 “백막 때문에 설명이 불가능한 건 사실이지만, 백막이 부정하는 건 결국 범인이 사용하지 않은 트릭이잖아요. 저는 마치 범인이 다른 해답을 뭉개기 위해 백막을 쳐놓은 것만 같아요.(p. 87)”라는 대사는 이 에피소드뿐 아니라 모든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심리트릭과 같은 것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다른 해답을 뭉개기 위해 어떠한 것을 만든다라는 것, 밀실을 만드는 것 뿐아니라 삶의 많은 부분이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주제넘게 해보고 말이다.

 

 어릴 적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추리소설을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점차 어떠한 현상에서 진실을 읽어내는 과정이 흥미로워 지금도 이따금씩 찾게 되는 장르이다. 이미 일어난 현상만으로 사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 이것은 밀실 사건, 살인 사건 등 추리소설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같아 배우고 익혀보려고 하지만 싶지는 않아 보이는 기술인것 같다.

 

 많은 재미를 준 갈릴레오 시리즈의 유가와, 구사나기 콤비가 막을 내린 지금 밀실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최적화하여 기존의 미스터리와는 색다른 재미를 주는 준코, 에노모토 콤비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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