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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 - 남몰래 난치병 10년 차, ‘빵먹다살찐떡’이 온몸으로 아프고 온몸으로 사랑한 날들
양유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
제목만 보고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유쾌한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같은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 책은 에세이다. 그것도 표지에는 ‘남몰래 난치병 10년 차, ‘빵먹다살찐떡’이 온몸으로 아프고 온몸으로 사랑한 날들‘이라는 설명도 있다. 제목만보고 오해한 것이 미안해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중학교 때 발병한 ’루푸스‘란 난치병과 10년째 싸우며 살아오고 있는 씩씩한 젊은이다. 저자에 따르면 루푸스는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아무 문제없는 건강한 지산의 몸을 스스로 공격하는 난치성 자가면역질환으로 난치성이라는 무서운 병명과 달리 생존율이 90퍼센트나 되는 생각보다 온순한 병이라고 한다. 물론 생존해나가는 과정이 매우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루푸스 때문에 황달로 온 몸이 노랗게 변해 바나나라는 별명이 생긴 중학생 때에도, 복강 출혈로 인해 입원을 했을 때에도, 약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부어 원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한 결 같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대책 없이 밝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어차피 큰일 난 거 일단 점심 먹고 해결해보자.” (22쪽)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조금 비틀어 나쁘지 않은 구석을 찾아내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는 말이다. 그러한 모습이 방에서 찍은 영상으로 시작하여 100만이 넘는 구독자를 모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있었던 이야기, 되어가는 이야기, 지금 이야기, 가족 이야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는데 책 제목의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는 말기 암 환우분들과 함께 방은 쓰며 입원했던 이야기를 풀어 놓는 한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요실금도 있지만 한사코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며 힘든 걸음을 옮기는 병동의 한 할머니를 보고서는 저자가 나름 붙인 별명이 갱스터 할머니는 가족이 있음에도 퇴원을 하는 날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 어떤 원망도 후회도 미련도 없어 보이는 모습과 자신이 베푼 사랑의 대가보다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할머니를 보며 참 강한 분이라고 느꼈다. (56쪽)
이어 연기를 전공하고 영상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겪은 일들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누구보다 좀 더 많이 탑재한 저자이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도 짙기에 그간 남몰래 흘린 눈물과 고민도 함께 털어놓는다. 그래서인지 중간 중간 꿈을 향한 모습을 응원하거나 잠시 쉬어도 된다는 위로가 크게 다가왔다. 25살의 청년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은 이의 응원이나 위로라고 해도 될만큼 말이다.
현실에 만족하며 지금에 집중하기란 이렇게나 쉽지 않다.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제일 빛나는 순간 속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시간이 지난 뒤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걸 알고 있는가? 지금에 충실할수록 그리는 미래가 더 가까워진다는 걸 알고 있는가? (67쪽)
우리는 모두 충분한 사람들이니 잠시 멈춰도 되고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천천히 가도 괜찮을 것 같다. (130쪽)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대목은 에필로그인 ’나가며‘에 있었다. 매번 영상을 찍다 처음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정답을 찾아가며 좌충우돌하는 듯합니다. 정해진 정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과 불편하게 적응해나가곤 하지만 결국 그 과정 끝에 정해진 정답은 없고 나만의 답을 찾을 뿐이죠. …… 나만 아는 고즈넉한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면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 잘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251-252쪽)
맞는 말이다. 우리 삶은 정해진 정답이 없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이들의 방식을 배우고 참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정답이나 해답이 되진 않는다. 나에게 닥침 삶의 질문은 나만의 맞춤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정답을 나만 아는 고즈넉한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잘 찾을 수 있도록 오늘하루도 힘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