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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당하는 인간 - 삶을 무너뜨리는 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김석재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5년 7월
평점 :
인류 전체 역사에서 농경이 시작된 것은 약 1만2,000년 전으로 추정되며 이는 인류의 역사 중 극히 최근의 일이다. 농경 이전 인류는 약 280만 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쉽게 말해서 농사를 짓기 전에는 사냥을 하거나 흩어져 있던 식물의 과실이나 뿌리 등을 모아 그것을 먹으며 살아갔다. 간단하게 수렵채집이라고 쓰고 있지만 사냥을 하는 것이나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모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위험에서 용감한 행동보다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흔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처럼 위험이 커질수록 성취가 크다는 것도 경험으로 익혔을 것이나 목숨을 하나이기에 다양한 경험은 그러한 리스크를 피하는 쪽으로 행동을 유도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한 경향은 그 당시보다 자연환경에서 목숨을 잃을 확률이 0에 수렴할 만큼 떨어진 현대에도 여전히 비슷하게 작동되는 것 같다. 문제는 그러한 작동이 더 이상 현대인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강력한 의지와 자제력을 가지게 만드는 다양한 문제들은 여기에서 적지 않게 기인하는 것 같다.
신경과 전문의가 쓴 『조종당하는 인간』에서는 나태해지고 현실을 도피하게끔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철학과 뇌과학, 심리학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책의 프롤로그 마지막에 그 결론을 책의 본격적인 시작 전에 밝힌다.
당신이 약한 것이 아닙니다. 뇌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 네 탓이 아니야. 뇌 탓이야.(7쪽)
어느 정도 안도감이 드는 말이긴 하다. 내가 이런 것은 오롯이 내 잘못이라기보다 뇌의 매커니즘이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을 수도 있었다는 일종의 도피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뇌도 나의 몸의 일부이기에 뇌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뇌가 이렇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로 보고 앞으로 더 나아지면 된다. 예부터 모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알면서 고치지 않으면 나쁘다고 했으니 말이다. 『조종당하는 인간』은 책의 제목처럼 뇌가 어떻게 충동적인 일을 하게끔 하며 그 충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우리 삶을 좀 먹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충동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1장), 루틴과 충돌 조절을 통해 자기 통제력을 높이는 전략을 소개한다(2장), 이어 감정이 소비를 지배하는 메커니즘과 대응법(3장)을, 중독의 뇌 회로를 재설계하는 구체적 방법(4장)을 소개한다. 끝으로 5장과 6장에서는 현실적인 문제인 부부 강등 속 감정 통제를 위한 실전 기술, 건강한 양육을 위한 감정 조절 전략이 이어진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웠고 중심이 되는 부분은 2장의 자기 통제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2장에서도 역시 철학, 뇌과학, 심리학의 여러 근거가 등장하지만 저자는 자기 통제력을 획득하기 위해 충동을 정복해야 하는 목표로 보진 않는다.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자기 관리는 의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뇌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감정은 늘 당신보다 먼저 반응하죠. 그래서 ‘싸우는 방식’아니라 ‘설득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95쪽)
자기 관리는 완벽한 승리를 목표로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이 리듬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다듬는 여정입니다. (113쪽)
결국 뇌의 방식을 이해하고 같이 가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1장에서 충동의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이어지는 결론이다. 저자는 충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충동은 참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우회해야 할 뇌의 본능입니다. (48쪽)
결국 충동은 감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정복하기 어려운 질병 중 하나로 꼽히는 감기는 바이러스로 감염된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한 번 걸린 감기는 다시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매번 신상 감기에 걸리지만 우리가 먹는 감기약은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는 역할이 아닌 주된 역할은 콧물, 코막힘, 기침, 인후통, 열, 몸살 등의 증상을 완화해주어 일상생활의 불편을 줄이는 데 있다. 하지만 면역력이 강한 건강한 이는 감기가 유행해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늘 우리 주위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면역력의 고저에 따라 일부는 감기를 앓기도 하지만 누구는 감기를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기 바이러스와 같이 늘 옆에 있지만 충동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법으로 이겨내는 이가 있고 그 충동에 잡혀 사는 이도 존재하니 말이다.
앞서 『조종당하는 인간』은 뇌가 충동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철학과 뇌과학, 심리학 등으로 살펴본다고 했다. 하나만 해도 도망가고 싶은 학문인 철학, 뇌과학, 심리학을 다루고 있지만 크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뇌과학의 뇌 호르몬을 본능의 DJ 편도체, 보상의 예언자, 도파민 등으로 소개한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용어를 친숙하게 만들어 준다. 게다가 우리가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 중독에 빠지는 것,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 등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따라 해 볼 수 있는 훈련 매뉴얼이나 실천법도 같이 소개한다.
이어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한다.
네 탓이 아니야. 뇌 탓이야. (321쪽)
하지만 『조종당하는 인간』을 읽은 이상 뇌 탓만 하기 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