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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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해하고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배울 때 가장 고생했던 개념 중 하나는 물리학의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는 쉽게 말해서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데, 자연계의 모든 변화는 무질서(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흔히 열역학 제2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결론적으로 현실적인 생활에서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립계의 무질서인 엔트로피는 그 값이 커지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값이 클수록 무질서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든 상태이다. 여기에 억지를 조금 보태 엔트로피를 생명체에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아마도 죽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인 것으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도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으러 준비 중 법의학자 이호 교수가 쓴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을 먼저 읽은 우연이기도 하다. 다양한 직업군 가운데 죽음을 가장 많이 본 직업을 가진 법의학자이기에 저자가 본 죽음은 막연히 느끼고 있던 죽음과는 조금 달랐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은 법의학자가 부검을 통해 고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억울한 죽음을 대신 변론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죽은 자들의 이야기는 산 자에게 행동과 책임을 일깨우는 1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와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삶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제2삶은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그리고 개인과 사회, 공동체 차원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사랑과 연대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품은 제3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언급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약 20여 만 명이다. 그중 사망원인의 1위는 암이고 2위인 약 28천명은 사인 불명이라고 한다.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검시 절차를 진행해야 함에도 아무도 원인을 밝히려 하지 않고 밝힐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해 검시 없이 사망 등록이 되고 있는 이들의 숫자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 중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인 불명으로 처리가 되는 이들도 있지만 억울하게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음을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저자와 같은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저자도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들어가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법의학자로서의 세월은 죽음보다 주검을 마주해온 시간이었다. 주검을 마주하기 전 고인의 삶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먼저 검토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느낀 단상들을 글로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애써 기억해야만 하는 죽음, 반드시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간 죽음,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죽음, 남은 사람들의 자책감을 덜어주어야 하는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9쪽)


이어 다양한 죽음과 그에 따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아직까지 충격으로 남아 있는 다양한 대형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비극으로 남은 대형 참사를 빠짐없이 경험한 그이기에 이런 당부가 더 다가왔다.


안타깝게 사고의 희생자가 된 분들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사고의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죽음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142쪽)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 때문인지 회귀와 관련된 웹소설과 웹툰이 많이 등장하고 소비된다. 회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대로 말 그대로 리셋에 가깝다. 이를 차용한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대게 능력과 환경은 초기화가 되지만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와 달리 현실의 삶은 회귀와는 크게 다르다. 리셋보다는 덮어씌움에 가깝다. 오늘의 실수를 사과와 후속조치로 메꿔가는 것이 현실의 삶과 가까운 셈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좋아한다. 내비게이션은 한 번도 잘못 들어섰습니다. 다시 돌아가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겠습니다.” (214쪽)


어쩌면 새로운 경로도 잘못된 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잘못 들어선 길을 자양분 삼아 다시 새로운 경로를 탐색해 나가는 것이 삶이고 인생임을 다양한 죽음을 접한 저자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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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도약 - 평범함을 뛰어넘는 초효율 사고법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전경아 옮김 / 페이지2(page2)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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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한다. 이는 라틴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 또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간단히 말하면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생각이라는 것이 반드시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지구상에서 생각한다고 하면 인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무릇 무기라면 갈고 닦아 언제든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생각의 도약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었다.


생각의 도약은 일본에서 '()의 거인'이라 불리는 도야마 시게히코 교수가 1983년에 집필한 책이다.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이어령 교수와 비슷한 역할을 한 저자인 것 같았다.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한 책이었으나 철학이나 문학이 아닌 생각과 관련된 40여 년 전의 자기계발 서적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진하게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며 제힘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도 읽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저자는 인재를 그저 활강만 가능한 글라이더 형 인재와 스스로의 동력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비행기형 인재를 구분하면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꽃을 보지만 잎은 보지 않는다. 잎을 보더라도 줄기는 보지 않는다. 하물며 뿌리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꽃이라는 결과에만 눈의 멀어 근간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19쪽)


어쩌면 40년 전 보다 더 복잡하고 팍팍한 현실에서 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순간 꽃을 볼 여유조차 잃어버리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많으니까. 그럼에도 꽃뿐 아니라 잎, 줄기, 뿌리까지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식물이라는 전체를 봐야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두 번 강조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생각의 도약에서는 크게 3가지를 강조한다. 이는 정보의 선별과 숙성, 지식과 사고를 융합한 하이브리드 생각, 체계적인 사고이다.


먼저 정보의 선별과 숙성이다. 이는 다양한 노트와 메모법에서도 소개되는 방법이다. 메모광들은 그들의 메모를 정리하기 전에 다양한 메모들을 선별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생각으로 조금 바꾸면 정보 과부하 시대에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고, 선택된 정보를 깊이 사고하며 내재화하는 과정이 창의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발효숙성에 비유하며, 자연스러운 망각을 활용해 사고를 정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생각을 해야 하기에 생각을 하는 방법으로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지식의 힘과 사고의 힘을 두루 가진 하이브리드 인재에 대해 언급한다. 40년 전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저자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단순한 지식 저장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언급하며 이제는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가 중요해짐에 따라 지식의 힘과 사고의 힘을 융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적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요한 지식은 갖추되, 그것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뿐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넷, 최근 AI까지 흘러가는 발전사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언급한 사항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체계적 사고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창의적 해결책을 도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추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철학이 된다고 언급한 저자는 입체적인 사고를 정리를 강조한다.


사고를 정리하려면 평면적이고 양적인 정리가 아니라 입체적이고 질적인 통합을 해야 한다. (88쪽)


이런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정리를 위해 저자는 메타노트로 이르는 3단계 노트법을 제안한다. 이는 정보를 선별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아이디어나 정보를 흘려듣고 적어두는 1차노트, 이를 걸러내고 의미 있는 요소를 추출하는 2차노트에 이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조작하는 3차 노트인 메타노트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단순 수집된 정보를 자신만의 사고 구조로 전환하고, 창조적 사고의 기반을 형성된다고 말한다.


책의 첫머리인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평소에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헤아린다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또 어떤 절차를 밟아서 생각하는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이런 걸 새삼스레 반성하는 사람은 예외적인 사람이다. (5쪽)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쏟아지는 영상과 나보다 똑똑한 AI의 등장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어려운 때가 된 것 같다. 어쩌면 넘치는 정보를 처리하는데 온 역량이 동원하다보니 생각이라는 것을 할 여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메타노트에 비슷한 것을 써보며 생각하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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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당하는 인간 - 삶을 무너뜨리는 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김석재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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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전체 역사에서 농경이 시작된 것은 약 12,000년 전으로 추정되며 이는 인류의 역사 중 극히 최근의 일이다. 농경 이전 인류는 약 280만 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쉽게 말해서 농사를 짓기 전에는 사냥을 하거나 흩어져 있던 식물의 과실이나 뿌리 등을 모아 그것을 먹으며 살아갔다. 간단하게 수렵채집이라고 쓰고 있지만 사냥을 하는 것이나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모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위험에서 용감한 행동보다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흔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처럼 위험이 커질수록 성취가 크다는 것도 경험으로 익혔을 것이나 목숨을 하나이기에 다양한 경험은 그러한 리스크를 피하는 쪽으로 행동을 유도했을 확률이 높다. 그러한 경향은 그 당시보다 자연환경에서 목숨을 잃을 확률이 0에 수렴할 만큼 떨어진 현대에도 여전히 비슷하게 작동되는 것 같다. 문제는 그러한 작동이 더 이상 현대인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강력한 의지와 자제력을 가지게 만드는 다양한 문제들은 여기에서 적지 않게 기인하는 것 같다.


신경과 전문의가 쓴 조종당하는 인간에서는 나태해지고 현실을 도피하게끔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철학과 뇌과학, 심리학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책의 프롤로그 마지막에 그 결론을 책의 본격적인 시작 전에 밝힌다.


당신이 약한 것이 아닙니다. 뇌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 네 탓이 아니야. 뇌 탓이야.(7쪽)


어느 정도 안도감이 드는 말이긴 하다. 내가 이런 것은 오롯이 내 잘못이라기보다 뇌의 매커니즘이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을 수도 있었다는 일종의 도피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뇌도 나의 몸의 일부이기에 뇌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뇌가 이렇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로 보고 앞으로 더 나아지면 된다. 예부터 모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알면서 고치지 않으면 나쁘다고 했으니 말이다. 조종당하는 인간은 책의 제목처럼 뇌가 어떻게 충동적인 일을 하게끔 하며 그 충동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우리 삶을 좀 먹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충동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1), 루틴과 충돌 조절을 통해 자기 통제력을 높이는 전략을 소개한다(2), 이어 감정이 소비를 지배하는 메커니즘과 대응법(3), 중독의 뇌 회로를 재설계하는 구체적 방법(4)을 소개한다. 끝으로 5장과 6장에서는 현실적인 문제인 부부 강등 속 감정 통제를 위한 실전 기술, 건강한 양육을 위한 감정 조절 전략이 이어진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웠고 중심이 되는 부분은 2장의 자기 통제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2장에서도 역시 철학, 뇌과학, 심리학의 여러 근거가 등장하지만 저자는 자기 통제력을 획득하기 위해 충동을 정복해야 하는 목표로 보진 않는다. 저자가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자기 관리는 의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뇌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감정은 늘 당신보다 먼저 반응하죠. 그래서 싸우는 방식아니라 설득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95쪽)


자기 관리는 완벽한 승리를 목표로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이 리듬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다듬는 여정입니다. (113쪽)


결국 뇌의 방식을 이해하고 같이 가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1장에서 충동의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이어지는 결론이다. 저자는 충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충동은 참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우회해야 할 뇌의 본능입니다. (48쪽)


결국 충동은 감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정복하기 어려운 질병 중 하나로 꼽히는 감기는 바이러스로 감염된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한 번 걸린 감기는 다시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매번 신상 감기에 걸리지만 우리가 먹는 감기약은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는 역할이 아닌 주된 역할은 콧물, 코막힘, 기침, 인후통, , 몸살 등의 증상을 완화해주어 일상생활의 불편을 줄이는 데 있다. 하지만 면역력이 강한 건강한 이는 감기가 유행해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늘 우리 주위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만 면역력의 고저에 따라 일부는 감기를 앓기도 하지만 누구는 감기를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기 바이러스와 같이 늘 옆에 있지만 충동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법으로 이겨내는 이가 있고 그 충동에 잡혀 사는 이도 존재하니 말이다.


앞서 조종당하는 인간은 뇌가 충동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철학과 뇌과학, 심리학 등으로 살펴본다고 했다. 하나만 해도 도망가고 싶은 학문인 철학, 뇌과학, 심리학을 다루고 있지만 크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뇌과학의 뇌 호르몬을 본능의 DJ 편도체, 보상의 예언자, 도파민 등으로 소개한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용어를 친숙하게 만들어 준다. 게다가 우리가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 중독에 빠지는 것,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 등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따라 해 볼 수 있는 훈련 매뉴얼이나 실천법도 같이 소개한다.


이어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한다.


네 탓이 아니야. 뇌 탓이야. (321쪽)


하지만 조종당하는 인간을 읽은 이상 뇌 탓만 하기 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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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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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파트인 단칭맨션에서 한 시신이 발견된다. 숯불을 피워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40대의 남성으로 타살의 혐의는 보이지 않는다. 사망자는 41세의 셰바이천으로 그의 어머니 셰메이펑에 따르면 20년 동안 화장실이 딸린 그의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이다. 단순 자살 사건으로 종결될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경찰의 그의 옷장을 열어본 순간 급변한다. 옷장 안에는 토막 난 시신이 보관된 유리병이 발견된 것이다. 유리병은 총 25개로 남자 시신으로 보이는 14개의 병과 여자 시신으로 보이는 11개의 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사건은 토막 난 시신을 보관한 타살 흔적이 없는 방주인의 사건이 홍콩섬 총구(總區) 강력한 제2B팀에 배정된다. 찬호께이의 소설 고독한 용의자는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 고독한 용의자는 사회현상을 반영한 범죄추리소설이라고 썼다. 전작인 망내인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환상성을 지닌 이야기보다 사회현상을 반영한 이야기가 좀 더 저자의 색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세상에서 상처를 받고 방안으로 숨어든 은둔형 외톨이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사회현상을 어느정도 반영한 것은 아닐까한 생각과 함께...


고독한 용의자3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다. 쉬유이 경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수사하는 일반적인 시점과 셰바이천이 살아온 과거를 그리고 있는 유서 망자의 고백’, 마지막으로 은둔형 외톨이 주인공 이바이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소녀 L과의 이야기를 그리는 소설 (제목 미정)발췌이다. 당연하게도 두 이야기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점차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반면 소설에서 수사를 하는 쉬유이 만큼 사건에 중요한 인물이 한 명있는데 바로 칸즈위안이다. 그는 셰바이천과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로 그의 유서인 망자의 고백에 많이 언급이 된다. 그리고 셰바이천이 방에는 무명지 작가의 <살인 예술>이란 책이 자살하기 직전에 읽은 것처럼 놓여 있어 경찰은 셰바이천이 소설을 모방해 살인을 일으켰다는 추리를 하는데 그 무명지란 작가가 바로 칸즈위안으로 밝혀진 것이다. 경찰은 당연히 그를 의심하고 그를 밀착 감시를 하지만 칸즈위안은 줄곧 셰바이천이 살해당한 것이라며 그의 외삼촌인 셰자오후가 범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어느날 칸즈위안을 하루에만 여성을 3~4명씩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다. 이상한 점은 만나는 여성마다 그와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 그를 따라 다닌 경찰은 자연스럽게 유명 작가인 그가 연인을 만나는 것으로 여기지만 의문은 더해간다. 그러다 문득 경찰은 칸즈위안인 만난 여성들이 렌털 애인임을 눈치 챈다. 그리고 그가 만난 한 여성이 표본병 속의 여성의 외모와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경찰로서는 당연히 칸즈위안이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심증만이 있고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그 여성을 설득해 칸즈위안과의 다음 만남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여성은 칸즈위안에게서도 경찰에게 들은 말을 똑같이 듣는다. 토막 살인자가 그녀를 노리고 있으니 그와 만나게 되면 정보를 캐내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 칸즈위안과 경찰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소설의 초반에는 셰바이천의 과거가 드러나는 망자의 고백의 내용 때문에 범인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던 셰바이천에게는 칸즈위안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의 영향으로 토막 살인 사건을 다루는 범죄소설을 많이 읽은 셰바이천은 숨겨진 폭력성과 잔인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망자의 고백의 시작부터다 이렇다.


인생이란, 개똥이다. 사람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 모든 게 결정된다. 제아무리 발버둥 치고 저항해도 운명의 신이 정해놓은 길에서 도망칠 수 없다. (64쪽)


그리고 칸즈위안이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하는 제목 미정이 소설이야기는 처음보다 후반부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책의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용의자는 단 한 명! 하지만 그는 방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표본이 된 시신은 누구인가? 시신은 어떻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안으로 들어갔는가?


방 밖에 나간 적이 없는 그 용의자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 셰바이천이다


그렇다면 범인의 사망으로 종결되어야 할 사건이지만 표본이 된 시신을 찾는 과정이 긴장감 있게 진행된다. 소설을 다 읽고 생각을 해보면 그 시신과 집 안으로 들어간 과정이 조금 억지스럽게도 했다. 그것은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과 진상을 위한 과정인 것 같다. 소설의 초반에 이런 말이 있다.


홍콩이라는 압력솥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병을 안고 있다. 그러다가 압력을 못 이기고 폭발해 머리에서 나사가 빠져버리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데, 이 모든 건 주사위를 던지듯 운에 맡길 뿐이다. (52쪽)


이 문장에서 홍콩이라는 지명 대신 어느 지명이 들어가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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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수록 선명해진다 - 내 안의 답을 찾아 종이 위로 꺼내는 탐험하는 글쓰기의 힘
앨리슨 존스 지음, 진정성 옮김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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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다보면 자신만의 요령과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보면 자신만의 취향이 생긴다. 그 취향은 장르가 될 수 있고, 작가도 될 수 있으며 책이 다루는 어떤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긴 하지만 나에게도 그러한 취향이 있는데, 오랫동안 눈을 끄는 주제는 바로 글쓰기이다.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글로 남겨보려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조금 더 잘 해보려고 찾는 것이 글쓰기 책인 것을 보면 일종의 순환 같은 것 같다. 그럼에도 글을 잘 쓰는 팁을 하나라도 얻으려 꾸준히 찾아보곤 한다. 앨리슨 존스의 쓸수록 선명해진다도 글쓰기 팁을 배우기 위해 고른 책이다.


쓸수록 선명해진다의 원제는 ‘Exploratory Writing’이다. 책의 본문에도 자주 언급이 되지만 표지를 넘기면 가장 먼저 읽게 될 추천의 글에서부터 언급이 된다. 바로 탐험쓰기이다. 여기까지만 밝혀도 얼추 이 책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 같다. 맞다. 이 책은 글쓰기 스킬이 아니라 자기계발의 도구로 글쓰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3부에 걸쳐 다양하게 알려주긴 하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탐험쓰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아무런 규칙도 방해도 없이 6분 동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쓰는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방법을 따른다.

타이머를 6분으로 맞추고, 떠오르는 생각을 제한 없이 써내려간다.

문법, 맞춤법, 글의 완성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주제나 목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적는다.

글을 다 쓴 후, 자신이 쓴 내용을 읽으며 새로운 발견이나 해결책을 찾아본다.

꾸준히 반복하면 글쓰기의 힘과 자기 이해가 깊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알기위한 방법으로 글을 쓴다는 점이다. 대게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최종적인 형태이기에 생각이 정리된 뒤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나 저자는 쓰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며 글을 써야 생각이 정리된다고 말한다. 일종의 초안을 깊은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끊임없이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쓸수록 선명해진다에서 쓰기만큼 자주 언급되는 단어로는 마법이 있다. 해리 포터의 친구들에게 고급 마법을 가르치는 필요의 방을 언급한다. 그들에게 마법지팡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종이와 펜이 있다며 탐험쓰기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마법에 필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의 효과가 마법과도 같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내는 마법보다는 자신에게 내재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마중물이 탐험쓰기에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요즘 민생쿠폰과 관련하여 자주 뉴스에서 언급이 되는 단어인 마중물이 맞다. 마중물은 펌프 내부의 공기를 제거하고 물 흐름을 유도해 펌프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펌프질을 할 때 붓는 물을 의미한다. 어릴 때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물을 퍼내기 위해 물을 붓는 것이 신기해 펌프질을 하는 어른에게 왜 물을 붓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당시 투박한 경상도 삼촌은 에아(Air)를 빼내야 한다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 삼촌도 자세히는 몰랐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제는 실제의 뜻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마중물이 탐험쓰기의 가장 큰 효과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시쳇말로 뇌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생각이 나는 대로 쓰는 탐험쓰기이기에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을 좀 더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6분 동안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까지는 좋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막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무엇을 쓰냐이다. 글에서도 첫 문장이 어렵듯이 무언가 시작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면 탐험쓰기가 좀 더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저자도 한 모양이다. 무엇이든 쓰면 된다고 했지만 글쓰기의 허들을 조금 낮춰주기 위해 온라인 모임에서 테스트를 거친 일단 첫마디를 책의 후반부에 소개한다. 그 중 몇 가지를 옮기면 이렇다.


오늘 내게 활기를 불어넣어 중 것은

이번 주를 되돌아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 딱 1퍼센트의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방법은


끝으로 탐험쓰기라는 단어 때문에 어려워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6분 동안 아무것이나 쓰는 것이니까. 숏츠와 릴스를 엄지손가락으로 하나씩 올리며 쓰는 시간에 비하면 6분은 금방 지나가니까. 심지어 글자가 아니라 두들링에 가까운 이상한 그림을 그려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니까 뭐라도 한 번 써보는 것이 어떨까? 자신도 몰랐던 속에 숨겨진 어떤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행운이 찾아 올 수도 있으니까. 글쓰기 스킬을 배우려 집은 책에서 뜻하지 않은 자기계발 스킬을 하나 배운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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