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수록 선명해진다 - 내 안의 답을 찾아 종이 위로 꺼내는 탐험하는 글쓰기의 힘
앨리슨 존스 지음, 진정성 옮김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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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다보면 자신만의 요령과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보면 자신만의 취향이 생긴다. 그 취향은 장르가 될 수 있고, 작가도 될 수 있으며 책이 다루는 어떤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긴 하지만 나에게도 그러한 취향이 있는데, 오랫동안 눈을 끄는 주제는 바로 글쓰기이다.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글로 남겨보려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조금 더 잘 해보려고 찾는 것이 글쓰기 책인 것을 보면 일종의 순환 같은 것 같다. 그럼에도 글을 잘 쓰는 팁을 하나라도 얻으려 꾸준히 찾아보곤 한다. 앨리슨 존스의 쓸수록 선명해진다도 글쓰기 팁을 배우기 위해 고른 책이다.


쓸수록 선명해진다의 원제는 ‘Exploratory Writing’이다. 책의 본문에도 자주 언급이 되지만 표지를 넘기면 가장 먼저 읽게 될 추천의 글에서부터 언급이 된다. 바로 탐험쓰기이다. 여기까지만 밝혀도 얼추 이 책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 같다. 맞다. 이 책은 글쓰기 스킬이 아니라 자기계발의 도구로 글쓰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3부에 걸쳐 다양하게 알려주긴 하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탐험쓰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아무런 규칙도 방해도 없이 6분 동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쓰는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방법을 따른다.

타이머를 6분으로 맞추고, 떠오르는 생각을 제한 없이 써내려간다.

문법, 맞춤법, 글의 완성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주제나 목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적는다.

글을 다 쓴 후, 자신이 쓴 내용을 읽으며 새로운 발견이나 해결책을 찾아본다.

꾸준히 반복하면 글쓰기의 힘과 자기 이해가 깊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알기위한 방법으로 글을 쓴다는 점이다. 대게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최종적인 형태이기에 생각이 정리된 뒤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나 저자는 쓰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며 글을 써야 생각이 정리된다고 말한다. 일종의 초안을 깊은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끊임없이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쓸수록 선명해진다에서 쓰기만큼 자주 언급되는 단어로는 마법이 있다. 해리 포터의 친구들에게 고급 마법을 가르치는 필요의 방을 언급한다. 그들에게 마법지팡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종이와 펜이 있다며 탐험쓰기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마법에 필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의 효과가 마법과도 같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내는 마법보다는 자신에게 내재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마중물이 탐험쓰기에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요즘 민생쿠폰과 관련하여 자주 뉴스에서 언급이 되는 단어인 마중물이 맞다. 마중물은 펌프 내부의 공기를 제거하고 물 흐름을 유도해 펌프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펌프질을 할 때 붓는 물을 의미한다. 어릴 때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물을 퍼내기 위해 물을 붓는 것이 신기해 펌프질을 하는 어른에게 왜 물을 붓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당시 투박한 경상도 삼촌은 에아(Air)를 빼내야 한다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 삼촌도 자세히는 몰랐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제는 실제의 뜻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마중물이 탐험쓰기의 가장 큰 효과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시쳇말로 뇌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생각이 나는 대로 쓰는 탐험쓰기이기에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을 좀 더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6분 동안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까지는 좋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막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무엇을 쓰냐이다. 글에서도 첫 문장이 어렵듯이 무언가 시작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면 탐험쓰기가 좀 더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저자도 한 모양이다. 무엇이든 쓰면 된다고 했지만 글쓰기의 허들을 조금 낮춰주기 위해 온라인 모임에서 테스트를 거친 일단 첫마디를 책의 후반부에 소개한다. 그 중 몇 가지를 옮기면 이렇다.


오늘 내게 활기를 불어넣어 중 것은

이번 주를 되돌아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 딱 1퍼센트의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방법은


끝으로 탐험쓰기라는 단어 때문에 어려워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6분 동안 아무것이나 쓰는 것이니까. 숏츠와 릴스를 엄지손가락으로 하나씩 올리며 쓰는 시간에 비하면 6분은 금방 지나가니까. 심지어 글자가 아니라 두들링에 가까운 이상한 그림을 그려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니까 뭐라도 한 번 써보는 것이 어떨까? 자신도 몰랐던 속에 숨겨진 어떤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행운이 찾아 올 수도 있으니까. 글쓰기 스킬을 배우려 집은 책에서 뜻하지 않은 자기계발 스킬을 하나 배운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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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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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작(多作)의 작가만큼이나 과작(寡作)의 작가의 대표작을 꼽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예외가 된다. 적지 않은 소설을 발표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에게 그의 대표작은 제노사이드이다. SF와 미스터리요소가 가득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가운데 소위 국뽕이라 불리는 애국심도 한 스푼 가미가 되어 있는 소설이어 긴 이야기임에도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일본에서도 발표되지 않은 단편집을 한국에서 먼저 발표했다. 단편집이기에 수록된 단편 소설을 이미 발표가 되었을 거지만 단편집으로 발표는 아직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보게 된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이지만 기대했던 제노사이드보다는 전작인 건널목의 유령쪽에 가까운 단편집이었다. 6편으로 구성된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이렇다.

 

(1) 발소리

13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주인공 사와키는 동창 다니무라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기 위해 만났다 그에게 뜻밖의 부탁을 받는다. 다니무라가 귀가할 때마다 이상한 발소리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것이다. 겁에 질린 그는 그 정체의 확인을 부탁한다. 다니무라가 들은 발소리가 단순한 환청인지, 실제로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따라오는 것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니무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그의 귀갓길 중 하나인 공원에서 의문의 발소리를 듣게 되는 사와키는 이 기묘한 현상을 파헤치기로 결심하고 점차 불안과 긴장감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발소리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형사에게서 얼마 전 근처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윽고 예상치 못한 진실이 드러난다. 살인 사건이라는 미스터리에 유령이나 초자연적 요소를 활용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2)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표제작인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젊은 여성의 실종과 사망 사건을 다루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야기는 한적한 지역의 사찰 묘지에서 실종된 젊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되며 시작한다. 피해자는 쓰키시마 미야코로 광고회사에 근무했던 스물아홉의 회사원이다. 사건을 맡은 형사 후루키는 특별한 물증도, 명확한 동기도 찾지 못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후루키는 피해자의 연인인 요네무라 구니히코를 주요 용의자로 보고 심리적 압박을 가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요네무라는 피해자인 미야코가 발견된 곳으로 참배를 가고 싶다는 요청을 후루키에게 건넨다. 마지막으로 사건현장에서 그를 압박해보고 싶었던 후루키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둘은 사건이 일어난 한 적한 사찰로 길을 떠난다.

 

반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사찰 주변에서는 유령을 봤다는 목격담이 잇따라 등장한다. 젊은 커플들이 유령을 봤다며 소란을 피우고, 사찰 내부는 점점 혼란에 빠진다.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은 단순한 도시괴담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는 죽은 자의 ()’과 미련,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로 확장되며 뜻밖의 단서가 발견되며 사건이 해결된다.


(3) 세 번째 남자

주인공 마리코는 꿈속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남자의 생생한 모습에 의문을 품는다. 생생한 꿈의 기억에 남편은 전생의 기억이 아닐까란 말을 하고 그 말을 들은 마리코는 더욱 혼란스럽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마리코는 지인의 소개로 전생을 본다는 사에키 요코라는 여성을 만난다. 하지만 방안에서 단 둘이서 만난 자리에서 요코는 방안에 세명이 있다는 말로 그녀에게 더욱 혼란을 준다.


꿈에서 본 남자는 실제로 과거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인물로 그가 사망한 날은 마리코가 태어난 날과 같았다. 마리코는 점차 그 남자의 마지막 순간과 유언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이 유언을 남자의 유족에게 전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고의 진실과 자신이 왜 이 꿈을 꾸게 되었는지 서서히 밝혀진다.

 

이야기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주인공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꿈속 '세 번째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반전과 함께 마무리된다. 작품은 기억, 전생, 타인의 삶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미스터리하게 풀어내며, 마지막에 이르러 요코가 언급한 세 번째 남자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 의미가 따뜻하게 다가와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4) 아마기 산장

본격적으로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이즈반도 아마기 산맥 가장자리에 위치한 외딴 산장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기자 하먀미에게 유령 저택을 조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옴으로 시작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하야미는 부동산 업자인 친구로부터 기묘한 사연이 얽힌 산장을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 산장은 원래 제국대학 해부학 교수의 소유였으나, 7년 전 교수의 행방이 묘연해진 뒤 최근 실종 선고가 내려진 상태이다. 하야미는 산장에 얽힌 과거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현장을 조사하며, 그 과정에서 유령을 봤다는 목격담과 불길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전쟁을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를 배경으로 하기에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과 거리가 있는 내용도 많이 있다. 게다가 산장에는 과거의 전쟁 범죄, 특히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731부대와 관련된 만행이 중요한 단서로 등장한다. 산장에 머물렀던 인물들, 특히 실종된 교수의 과거 행적과 그가 저질렀던 잘못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단순한 유령 미스터리를 넘어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죄의식까지 다룬다.

 

(5) 두 개의 총구

미스터리 소설에서 단골로 쓰이는 소재 중 하나는 다중인격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로부터 내려왔기에 적지 않은 역사도 자랑한다. ‘두 개의 총구는 이중인격을 가진 무차별 살인자와 같은 건물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이시야마 겐타는 연휴에 학교의 왁스를 칠하는 일을 하고 있다. 21조로 일을 하던 중 아저씨는 회사에 잠시 다녀온다고 마무리를 맡긴다. 일을 마무리하던 중 인근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라디오에는 무차별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나오며 건물안에서 나오지 말라는 당부도 들린다. 건물에 갇히게 된 이시야마지만 하필이면 범인도 그가 있던 학교로 숨어든다.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는 범인은 사실 이중인격(다중인격)을 가진 인물이다. 주인공은 살인자와 자신이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극한의 공포와 긴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두뇌 싸움과 심리전을 벌인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폭력은 비단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사항이다. 이러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루면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어둠과 폭력성,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심리의 묘사가 깊이 있게 다루어 진다.


(6) 제로

제로는 앞선 5편의 단편보다 초자연적인 현상은 줄이고 SF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 소설로 2054년 미국 뉴멕시코의 해변에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남자는 기억상실증 환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으로 인도되어, ‘제로라는 새 이름을 얻고 현실에 적응해 간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강한 갈망에 휩싸여,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일생일대의 선택을 하게 된다. 물질을 소립자 단위로 분해했다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실험에 지원하는 것인데 이를 이용하면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지만 제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미래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SF적인 요소가 강한 덕분인지 제로는 다른 단편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분량도 다른 소설보다 적은 것도 그 느낌을 더해 준다.


(7) 마무리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의 뒤표지에 이런 글이 있다.

객관적 사실에서 한 발짝 물러날 때, 불가사의한 세상은 그 진상을 비로소 드러낸다.’

객관적 사실에서 물러선다는 것이 초자연적인 소재로 이어질지는 몰랐다. 인간이 사건을 일으키고 그 사건을 인간이 해결해나가는 미스터리에 익숙해서인지 나에게 큰 재미로 다가오진 않은 단편 소설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모든 것이 흥미롭게 이어지는 글을 보여준다. 원하던 내용은 아니어서 아쉽기는 하나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음 소설을 충분히 기대하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문장은 세 번째 남자에서 찾았다.


인간이란 행복해지려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어째선지 불행해질 만한 일만 저지르는 법이죠.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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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사회 - 휴머니티는 커피로 흐른다
이명신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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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독가스를 만들어 윤리적인 논란이 있지만 독일의 화학자 프란츠 하버는 노벨화학상을 받는다. 공기에서 빵을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암모니아 합성인 하버-보슈 반응을 발견해서이다. 질소와 수소는 공기 중에 많이 있지만 상온에서 반응성이 낮아 암모니아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와 고압, 그리고 철 촉매가 필요하다. 철 촉매가 없어도 암모니아가 형성이 될 수 있으나 거의 형성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학 반응에서 필요한 촉매는 인간관계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커피사회intro에서 저자는 휴머니티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연민과 공감으로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태도, 그것이 바로 휴머니티의 본질이다. (4쪽)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촉매가 있으면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커피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커피는 한 장의 음료를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흔하고 친근한 인사인 밥 한 끼 하자보다 커피 한 잔 하자는 인사가 훨씬 부담 없이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커피사회에서는 이런 촉매역할을 하는 다양한 커피를 소개한다. 하지만 로스팅이나 추출 기법 등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커피 음료에 관한 보편적인 커피 소개에 그치지 않고 가향커피, 자판기커피, 공정무역커피 등 실로 폭넓은 커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 다양한 커피를 각성, 향유, 우애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구분한 것이 인상적이다. 첫 테마인 각성의 믹스커피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믹스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을 넘어 한 세대의 삶을 관통하는 생존과 위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고단한 하루의 틈바구니에서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은 작지만 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 (41쪽)


쉽게 마시는 믹스커피에 생존과 위로의 상징은 너무 거창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지만 달짝지근한 믹스커피에서 위로를 받아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커피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카페는 이미 우리가 되는 공간이 된지 오래다. 그리고 이런 카페의 대부분에는 커피가 가장 먼저 소개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커피는 이미 삶에서 필수재가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커피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원두 가격 상승으로 인한 가격인상에 관한 경제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없으나 유독 커피 가격에 예민한 것은 그만큼 커피가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제는 습관처럼 마시고 있던 커피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커피사회인 것 같다. 커피를 좋아한다면 언제든 읽어도 좋을 것이나 비가 오는 날 아메리카노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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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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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하버드대 정치학자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쓴 정치학에 관한 책이다. 책은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미국의 건국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을 조목조목 집어나간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역사책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그중 권력 쟁취를 위한 정당의 모습에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조선 시대의 붕당 정치를 보는 것 같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효과적인 정쟁을 위한 붕당은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해 국정 전반의 타락을 낳아 조선의 망국에 일조를 한다. 권력에 도취된 지배층이 얼마나 비인간적, 비민주적이 되는지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저자들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뒷받침이 되는 제도가 3가지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는 미국의 독특한 대통령 선거 방식인 선거인단이다. 2016년 일반 유권자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선거인단 투표에서 져서 트럼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준 힐러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머지는 비슷하게 특정 정당에게 유리한 선거구를 가지는 상원과 대법관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980년에 태어나서 1998, 혹은 2000년에 처음으로 투표한 미국인을 떠올려보자. 그가 성인이 된 이후로 민주당은 상원 선출을 위한 6년 단위의 보통선거에서, 그리고 한 번을 제외한 모든 대선의 보통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 대통령과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 그리고 공화당이 임명한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하는 대법원 체제에서 성인기의 삶 대부분을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신뢰할까? (266)


나라도 내 손으로 대표를 뽑았고 그 후보가 승리를 했음에도 반대 성향의 정당의 인사들이 공직에 대거 포함되어 있다면 제도에 대해 불신임을 할 것 같다.


이에 저자들은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지배가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많은 표를 얻은 쪽이 이겨야 하는 것이고 선거에서 이긴 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을 이렇게 정성 들여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상황이 생긴 것 이 당연한 것들이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들은 정당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시 승리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권력의 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라는 제도는 그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는 제도이기에 필연적으로 패배한 쪽이 생기게 마련이다. 또한 승리한 쪽이 모든 것을 갖는 승자 독식 게임이기도 하다. 거기에 권력 이양에 대한 불신과 사람의 심리는 같은 크기나 적은 양이라도 가진 것을 잃는 상실감이 더 큰 법이기에 한 번 잡은 권력을 놓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들이 소개하는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들은 얼핏 충직한 민주주주의자처럼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 규칙을 공격하는 정치 내부자들을 가리킨다.


우치다 다쓰루는 그의 책 무지의 즐거움에서 민주제는 모험을 건네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 모험은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대표자를 결정하는 것도 포함이 된다. 최근 민주제가 쇠퇴하는 것은 그 모험을 감행할 각오를 하는 이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도 진단한다. 하지만 모험을 건네려는 각오를 다져도 제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도 그 제도가 교모하게 가려져 있어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우리도 다양한 선거를 치르고 있고 최근에는 부정 선거에 관한 의혹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저자들이 제기한 극단주의와 결탁한 현대 민주주의를 선거 방식이 다른 미국의 사례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


몇 번의 선거를 하면서 이런 생각도 든 적이 있다. 선거 용지를 살펴보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 옆에 준비된 도장을 찍는다. 하지만 어떤 선거에서는 도저히 지지하고 싶은 후보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에 지지하지 않음이라는 선택지도 있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가장 많은 표를 얻는다면 해당 후보 외에 다른 후보들로 다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물론 선거를 준비하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특정 후보의 공약을 검토하지도 않고 상대 후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는 무지성의 선거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반대를 위해 선출된 대표는 공직에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 앞장 서 앞서 언급한 조선시대 붕당의 폐단과 같은 국정의 타락을 야기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지극히 당연한 말을 찾았다. 공리(公理)와 같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문장이었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 문장의 소개로 마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은 통치하기 위해서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193쪽)

2021년 1월 5일, 조지아주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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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라는 세계
리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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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다. 저녁을 겸하는 자리여서 삼겹살과 소주로 메뉴를 정했는데 그날따라 삼겹살보다 쌈채소에 손이 더 많이 갔다. 친구는 그게 네 몸이 원하는 것이니 많이 먹어라는 말을 건냈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금세 잊어버렸지만, 그 말은 계속 기억에서 맴돈다. 갈증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물에 손이 가듯이 내가 원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경험을 한 셈이니 말이다.


최근 들어 글쓰기나 기록에 관한 책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구해다 읽는 것도 그러한 작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경험한 무언가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어 글쓰기나 기록에 관한 책에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손에 잡힌 책이 리니 작가의 기록이라는 세계이다.


기록이 뭐 별건가요? 남기면 기록이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찍는 것도, 단어 하나로 하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카페에서 받아온 스티커를 붙여두는 것도 기록입니다. 어떤 형태든, 어떤 내용이든 괜찮아요. 글씨가 안 예뻐도 전혀 상관없고요. 매일 쓰지 못해도 좋고 어설프게 쓴 문장이라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한 줄이라도 좋으니 일단 써보는 거예요. (223쪽)


기록이라는 세계의 에필로그의 한 문단이다. 어떤 것이라도 쓰면 기록이 된다고 하지만 기록이 별거인 것은 써본 사람은 안다. 문제풀이 연습장을 제외하고는 노트를 한 권 채워본 적이 없는 나는 더 그렇다. 이에 저자는 길이’, ‘넓이’, ‘깊이의 이렇게 3장으로 구분한 기록법 25가지를 소개한다. 짧은 메모부터 포토로그, 사람 관찰 일지, 영어 필사 등 처음 보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한 번 정도는 들어본 노트이다. 각각의 기록법의 소개와 함께 그런 기록의 실례가 이렇게 써보세요의 장에서 소개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 어쨌든 따라 해보고 싶은 누군가의 노트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한편 이렇게 기록을 하면 뭐가 좋을까란 생각이 들 수 있다. 저자는 소개하는 기록법의 많은 부분에서 기록을 하면서 나를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는 말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특정일을 하면 느꼈던 특별한 감정 등이 기록을 통해 점차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할 때 조각상은 이미 그 안에 있어 대리석 덩어리에서 필요 없는 것을 제거할 뿐이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 없는 대리석을 제거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조각상이 보이는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처음부터 선명하게 보이질 않기에 부지런히 대리석을 제거하듯이 기록을 남겨 나 자신을 알아가야 할 것 같다.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기록이라고 하면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높은 벽이 느껴진다. 이런 점을 먼저 경험했다는 듯이 저자는 처음 짧은 메모편에 이런 조언을 한다.


기록을 대하는 태도는 삶의 태도와 많이 닮았어요. 완벽주의 때문에 시작의 허들을 넘지 못할 때, 사실 방법은 딱 하나에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작해보는 거죠. (23쪽)


하루 삶을 돌아볼 때 즉흥적으로 선택을 하는 일이 그렇게나 많으면서 왜 기록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하는지 반성이 되는 말이다. 체계적이기도 하고 즉흥적이기도 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기록에 녹아져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의 브리야 사바랭은 1825년에 쓴 미식 관련 고전 미각의 생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먹은 것을 말해다오. 그러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하지만 난 먹은 것을 듣지 않아도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안다. 그 사람의 기록을 보면 된다. 기록이 쌓이면 그 사람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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