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사회 - 휴머니티는 커피로 흐른다
이명신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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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서평입니다.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독가스를 만들어 윤리적인 논란이 있지만 독일의 화학자 프란츠 하버는 노벨화학상을 받는다. 공기에서 빵을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암모니아 합성인 하버-보슈 반응을 발견해서이다. 질소와 수소는 공기 중에 많이 있지만 상온에서 반응성이 낮아 암모니아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와 고압, 그리고 철 촉매가 필요하다. 철 촉매가 없어도 암모니아가 형성이 될 수 있으나 거의 형성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학 반응에서 필요한 촉매는 인간관계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커피사회intro에서 저자는 휴머니티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연민과 공감으로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태도, 그것이 바로 휴머니티의 본질이다. (4쪽)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촉매가 있으면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커피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커피는 한 장의 음료를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흔하고 친근한 인사인 밥 한 끼 하자보다 커피 한 잔 하자는 인사가 훨씬 부담 없이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커피사회에서는 이런 촉매역할을 하는 다양한 커피를 소개한다. 하지만 로스팅이나 추출 기법 등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커피 음료에 관한 보편적인 커피 소개에 그치지 않고 가향커피, 자판기커피, 공정무역커피 등 실로 폭넓은 커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 다양한 커피를 각성, 향유, 우애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구분한 것이 인상적이다. 첫 테마인 각성의 믹스커피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믹스커피는 단순한 기호 식품을 넘어 한 세대의 삶을 관통하는 생존과 위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고단한 하루의 틈바구니에서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은 작지만 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 (41쪽)


쉽게 마시는 믹스커피에 생존과 위로의 상징은 너무 거창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지만 달짝지근한 믹스커피에서 위로를 받아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커피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카페는 이미 우리가 되는 공간이 된지 오래다. 그리고 이런 카페의 대부분에는 커피가 가장 먼저 소개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커피는 이미 삶에서 필수재가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커피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원두 가격 상승으로 인한 가격인상에 관한 경제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없으나 유독 커피 가격에 예민한 것은 그만큼 커피가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제는 습관처럼 마시고 있던 커피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커피사회인 것 같다. 커피를 좋아한다면 언제든 읽어도 좋을 것이나 비가 오는 날 아메리카노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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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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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하버드대 정치학자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쓴 정치학에 관한 책이다. 책은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미국의 건국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을 조목조목 집어나간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역사책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그중 권력 쟁취를 위한 정당의 모습에서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조선 시대의 붕당 정치를 보는 것 같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효과적인 정쟁을 위한 붕당은 실리보다 명분을 중시해 국정 전반의 타락을 낳아 조선의 망국에 일조를 한다. 권력에 도취된 지배층이 얼마나 비인간적, 비민주적이 되는지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저자들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뒷받침이 되는 제도가 3가지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는 미국의 독특한 대통령 선거 방식인 선거인단이다. 2016년 일반 유권자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선거인단 투표에서 져서 트럼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준 힐러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머지는 비슷하게 특정 정당에게 유리한 선거구를 가지는 상원과 대법관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980년에 태어나서 1998, 혹은 2000년에 처음으로 투표한 미국인을 떠올려보자. 그가 성인이 된 이후로 민주당은 상원 선출을 위한 6년 단위의 보통선거에서, 그리고 한 번을 제외한 모든 대선의 보통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 대통령과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 그리고 공화당이 임명한 대법관이 다수를 차지하는 대법원 체제에서 성인기의 삶 대부분을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신뢰할까? (266)


나라도 내 손으로 대표를 뽑았고 그 후보가 승리를 했음에도 반대 성향의 정당의 인사들이 공직에 대거 포함되어 있다면 제도에 대해 불신임을 할 것 같다.


이에 저자들은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지배가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많은 표를 얻은 쪽이 이겨야 하는 것이고 선거에서 이긴 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을 이렇게 정성 들여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상황이 생긴 것 이 당연한 것들이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들은 정당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시 승리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권력의 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거라는 제도는 그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는 제도이기에 필연적으로 패배한 쪽이 생기게 마련이다. 또한 승리한 쪽이 모든 것을 갖는 승자 독식 게임이기도 하다. 거기에 권력 이양에 대한 불신과 사람의 심리는 같은 크기나 적은 양이라도 가진 것을 잃는 상실감이 더 큰 법이기에 한 번 잡은 권력을 놓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들이 소개하는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들은 얼핏 충직한 민주주주의자처럼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민주주의 규칙을 공격하는 정치 내부자들을 가리킨다.


우치다 다쓰루는 그의 책 무지의 즐거움에서 민주제는 모험을 건네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 모험은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대표자를 결정하는 것도 포함이 된다. 최근 민주제가 쇠퇴하는 것은 그 모험을 감행할 각오를 하는 이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도 진단한다. 하지만 모험을 건네려는 각오를 다져도 제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도 그 제도가 교모하게 가려져 있어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우리도 다양한 선거를 치르고 있고 최근에는 부정 선거에 관한 의혹도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저자들이 제기한 극단주의와 결탁한 현대 민주주의를 선거 방식이 다른 미국의 사례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


몇 번의 선거를 하면서 이런 생각도 든 적이 있다. 선거 용지를 살펴보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 옆에 준비된 도장을 찍는다. 하지만 어떤 선거에서는 도저히 지지하고 싶은 후보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에 지지하지 않음이라는 선택지도 있다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가장 많은 표를 얻는다면 해당 후보 외에 다른 후보들로 다시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물론 선거를 준비하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특정 후보의 공약을 검토하지도 않고 상대 후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는 무지성의 선거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반대를 위해 선출된 대표는 공직에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 앞장 서 앞서 언급한 조선시대 붕당의 폐단과 같은 국정의 타락을 야기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지극히 당연한 말을 찾았다. 공리(公理)와 같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문장이었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 문장의 소개로 마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은 통치하기 위해서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193쪽)

2021년 1월 5일, 조지아주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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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라는 세계
리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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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와 술자리를 가졌다. 저녁을 겸하는 자리여서 삼겹살과 소주로 메뉴를 정했는데 그날따라 삼겹살보다 쌈채소에 손이 더 많이 갔다. 친구는 그게 네 몸이 원하는 것이니 많이 먹어라는 말을 건냈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금세 잊어버렸지만, 그 말은 계속 기억에서 맴돈다. 갈증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물에 손이 가듯이 내가 원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경험을 한 셈이니 말이다.


최근 들어 글쓰기나 기록에 관한 책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구해다 읽는 것도 그러한 작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경험한 무언가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어 글쓰기나 기록에 관한 책에 자연스럽게 손을 뻗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손에 잡힌 책이 리니 작가의 기록이라는 세계이다.


기록이 뭐 별건가요? 남기면 기록이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찍는 것도, 단어 하나로 하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카페에서 받아온 스티커를 붙여두는 것도 기록입니다. 어떤 형태든, 어떤 내용이든 괜찮아요. 글씨가 안 예뻐도 전혀 상관없고요. 매일 쓰지 못해도 좋고 어설프게 쓴 문장이라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한 줄이라도 좋으니 일단 써보는 거예요. (223쪽)


기록이라는 세계의 에필로그의 한 문단이다. 어떤 것이라도 쓰면 기록이 된다고 하지만 기록이 별거인 것은 써본 사람은 안다. 문제풀이 연습장을 제외하고는 노트를 한 권 채워본 적이 없는 나는 더 그렇다. 이에 저자는 길이’, ‘넓이’, ‘깊이의 이렇게 3장으로 구분한 기록법 25가지를 소개한다. 짧은 메모부터 포토로그, 사람 관찰 일지, 영어 필사 등 처음 보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한 번 정도는 들어본 노트이다. 각각의 기록법의 소개와 함께 그런 기록의 실례가 이렇게 써보세요의 장에서 소개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 어쨌든 따라 해보고 싶은 누군가의 노트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한편 이렇게 기록을 하면 뭐가 좋을까란 생각이 들 수 있다. 저자는 소개하는 기록법의 많은 부분에서 기록을 하면서 나를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는 말을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특정일을 하면 느꼈던 특별한 감정 등이 기록을 통해 점차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할 때 조각상은 이미 그 안에 있어 대리석 덩어리에서 필요 없는 것을 제거할 뿐이라는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 없는 대리석을 제거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조각상이 보이는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처음부터 선명하게 보이질 않기에 부지런히 대리석을 제거하듯이 기록을 남겨 나 자신을 알아가야 할 것 같다.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기록이라고 하면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높은 벽이 느껴진다. 이런 점을 먼저 경험했다는 듯이 저자는 처음 짧은 메모편에 이런 조언을 한다.


기록을 대하는 태도는 삶의 태도와 많이 닮았어요. 완벽주의 때문에 시작의 허들을 넘지 못할 때, 사실 방법은 딱 하나에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작해보는 거죠. (23쪽)


하루 삶을 돌아볼 때 즉흥적으로 선택을 하는 일이 그렇게나 많으면서 왜 기록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하려고 하는지 반성이 되는 말이다. 체계적이기도 하고 즉흥적이기도 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기록에 녹아져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프랑스의 브리야 사바랭은 1825년에 쓴 미식 관련 고전 미각의 생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먹은 것을 말해다오. 그러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하지만 난 먹은 것을 듣지 않아도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안다. 그 사람의 기록을 보면 된다. 기록이 쌓이면 그 사람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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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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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어떤 영감을 받을 때가 있다. , 이건 이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로구나. 내겐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오랜만에 출판된 김영하 작가의 산문이라는 점과 띠지의 저 문구를 보고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단 한 번의 삶을 읽었다.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란 말은 미스터리 소설의 신간에서 종종 등장하는 광고성 문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더 멋진 글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을... 아무튼 지금은 단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글이라는 점이 강한 호기심이 드는 것을 사실이다.


에세이로 출판된 책은 종종 읽었으나 산문은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이후 처음 읽는 것이라 문득 산문과 에세이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이제는 검색의 필수가 되어버린 AI에게 물어보니 이런 답을 준다.


산문과 에세이는 둘 다 운율이나 정형화된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의 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산문(散文, Prose)은 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모든 글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고 에세이(Essay)는 산문 형식의 글 중에서도 특정 주제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 경험 등을 자유롭게 표현한 글을 의미한다. 즉 산문의 한 종류가 에세이라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산문 단 한 번의 삶의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많은 이들이 이 단 한 번의 삶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적기로 했다. 일단 적어놓으면 그 안에서 눈이 밝은 이들은 무엇이든 찾아내리라. 그런 마음으로 써나갔다. (197쪽)


있는 그대로 삶에 대해 적을 때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글은 나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가장 진하게 베여있는 글이 될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단 한 번의 삶의 시작에는 이 세상으로 나를 초대하고 먼저 다른 세계로 떠난 두 분에게라는 일종의 헌정사에 가까운 글이 있다. 바로 작가의 부모님이다. 그리고 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작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작가가 된 뒤 겪은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에서도 느낀 점인데 단 한 번의 삶을 읽다보면 작가가 쓴 일기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경험담과 그에 따른 생각에 대한 글이기에 어쩌면 일기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OO을 했다. 재미있었다.’가 대부분인 나의 일기와 비교하면 깊은 곳에서부터 찌릿하고 공명하게 만드는 글이 많이 있다는 점이 있어 타인의 일기 같은 글이지만 읽게 되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글은 테세우스의 배에 있었다.


인간은 보통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고, 십 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새해에 세운 그 거창한 계획들을 완수하기에 열두 달은 너무 짧다. 그러나 십 년은 무엇이든 일단 시작해서 띄엄띄엄 해나가면 어느 정도는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72쪽)


김영하 작가는 작가 소개에도 언급이 되지만 여행, 요리, 그림그리기, 정원 일을 좋아하는데 전문가 수준의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런 십 년이 여럿 쌓였다고 했으니 전문가 수준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다 나는 매년 12월 말에 계획을 세우지만 3, 5, 그리고 10년의 계획을 세운적은 있었나는 생각을 해보았다. 당연히 없다. 매년 한 해 계획도 다 실천하지 못하는데 장기계획은 무슨... 그렇기에 이것은 내가 잘못한 것보다 그 계획을 완수하기에 시간이 짧았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글이었다.


인상 깊었던 글과 다르게 가장 좋았던 글은 작가가 중학생 때 친구를 부러워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다. ‘이탈이라는 제목의 글 중 일부이다.


중학교 때 친구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LP를 들고 있었다. 형이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런게 가능하려면 일단 형이 있어야 하고, 형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을 알아야 하고, 동생에게 그 음반을 사주면 동생이 기뻐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하고, 평소 가족끼리 저런 것을 선물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집에 그 음반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있어야 했다. 나는 그중 단 한 가지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참 부러웠다, (126쪽)


그 친구가 부러운 이유가 논리정연하게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 수많은 이유 중 단 한 가지도 가지지 못해서 친구가 부러웠다고 말하는 작가의 글이 재미있게도 나는 부러웠다. 게다가 작가는 종교가 필요한 이유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했을 것이다. (9쪽)


김영하 작가의 책은 소설만 읽었고 단 한 번의 삶이전의 산문이라는 여행의 이유를 읽지 않아 나에게는 작가의 첫 산문이었는데 삶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많이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오른쪽 정렬이 되지 않은 문장들이 책을 읽을 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시작된 삶이 어떻게 끝날지는 미지수라는 점에서 이 또한 삶을 닮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제목에 어울려 보였다.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책에 길지 않은 글이 담겨 있지만 그 내용은 아담하지만은 않은 단 한 번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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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즐거움 -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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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다쓰루...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사실 잘 모르는 인물이다. 현대 철학자라고 해봐야 몇몇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이름만 알고 있고 사실 우리나라의 철학자도 잘 모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무지의 즐거움을 읽으려고 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유유 출판사와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라는 표지의 문장 때문이다. 유유 출판사에서 나온 공부관련 책은 몇 권가지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내용이 많아서 일단 유유 + 공부의 콜라보는 일단 읽고 보는 셈이다. 갈증이 나면 물을 찾듯이 공부가 부족한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공부에 대한 책을 보곤 한다. 꼭 하라고 할 때는 딴청을 피우다 뒷북을 친다.


잠깐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라는 철학자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윤리학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그리고 무도인으로, '거리의 사상가'로 불리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그는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사상을 평생의 스승으로 삼아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깊이 있게 연구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무도(합기도)에도 조예가 깊어 고베에 위치한 문화 커뮤니티 센터 '가이후칸(凱風館)'의 관장으로서 무도 수련과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그런 그의 책 무지의 즐거움은 본격적으로 한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쓴 첫 책이라고 소개한다. 가까운 나라라고 하지만 문화와 관심사가 다르기에 그는 출판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썼다. 따라서 각 장마다 다양한 질문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저자의 대답이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 나오는 말에서도 언급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질문과 답이 배움과 관련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은 13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이다. 여기서 저자는 배움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배움이란 배움의 주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쉽게 말하면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일종의 변태를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이어 배움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릇도 바뀐다면 부연설명을 한다.


우리에게는 지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고, 그것을 메우고 싶다. 그것을 메울 목록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취지라면 저는 그런 행위를 배움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보충이지요. 보충은 같은 그릇을 유지하면서 내용물만 늘어나는 양상입니다. (125쪽)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인지 보충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 문장이었다.


학교를 떠난 성인이 무언가를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책을 읽을지에 대한 질문이 따라온다. 이에 저자가 추천하는 무방비 독서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난독 체계적 독서 자신을 내려놓는 독서, 즉 무방비 독서, 무방비 독서는 난독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체계적 독서 단계를 거치고 나면 읽을 가치 있는 책과 가치 없는 책을 구별할 만큼의 안목은 생깁니다. 그 덕에 난독이 되지는 않습니다. (55쪽)


저자 자신이 레비나스의 저작을 읽을 때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으나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내려놓는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은 곧장 포기하고 덮어버리기에 그 글을 쓴 저자가 나에게 무언가를 전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기에 그런 책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독서 습관 때문인지 저자는 다양한 아웃풋을 위해 어떠한 인풋을 하느냐에 대한 질문의 답도 비슷한 것 같았다. 저자는 자신의 인풋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저는 특별히 인풋하지 않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겠네요. 그런데 살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왠지 잘 삼켜 넘길 수 없는 것을 저장하는 노력을 저는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71쪽)


무협지 속에서 등장하는 영약도 주인공이 섭취를 하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서서히 소화가 되는 장면이 많은 데 저자가 언급하는 잘 삼켜 넘길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자신이 전도자라고 하지만, 전도를 넘어 자신만의 철학 사상이 정립한 철학자로 보이는 낯선 학자. 그의 배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무지의 즐거움이다. 이번에도 유유 + 공부의 조합은 성공인 것 같다. 재생 종이로 책을 만드는 컨셉을 유지하는 출판사여서 그런지 책이 너무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 한 가지 아쉽다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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