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작가의 신작 『태양 아래 올리브』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했다. 태양과 올리브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따뜻하고 이국적이었지만, 김초엽 작가의 전작들을 떠올리면 그 이면에 분명 다른 질문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 소설은 신앙을 가진 수녀 ‘김이레’와 과학적 회의주의를 신념으로 삼는 유튜버 ‘서솔민’이 함께 떠나는 SF 버디 로드트립이다. 이레는 베로니카라는 이름으로 기후 재난 현장을 다니는 푸른아녜스 소속 수녀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둘러싼 빈칸과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솔민은 과학기술 정책 매거진 에디터이자 익명 과학 유튜브 채널 ‘미놋’을 운영하며, 믿음보다는 검증과 의심에 가까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두 사람은 과거의 오해로 멀어졌던 사이인데, 이레의 기억 속에 감춰진 비밀과 ‘준 이모’라는 인물을 찾기 위해 다시 함께 길을 나선다. 한국에서 시작된 여정은 이내 국경을 넘어 낯선 지역으로 이어지고, 두 사람은 이동하는 내내 새로운 인물과 사건을 마주하며 서로가 알지 못했던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 소설의 큰 매력은 단순한 사건 해결형 서사가 아니라는 데 있다. 로드트립이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정작 이야기의 중심에는 ‘존재란 무엇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이 이동하며 단서를 좇는 추적극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레와 솔민은 처음부터 극과 극에 서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레는 신앙을 가진 수녀이고, 솔민은 유사 과학과 종교적 주장을 저격하는 것으로 명성을 쌓아온 인물이다.
“솔민은 지난 몇 년간 공격적 무신론, 반종교주의, 유사 과학 비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내세운 과학적 회의주의 채널로 일종의 명성, 혹은 악명을 쌓아왔다. 본명은 아니고 ‘미놋’이라는 이름으로.”(67쪽)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람과 이해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숨이 막히는 사람. 이렇게 정반대의 태도를 가진 두 사람이 과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대립이 단순히 갈등의 소재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다가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여정이 진행될수록 드러난다.
솔민이 영혼의 존재를 단호하게 부정하는 장면은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은 어디에 깃드는 것일까? 머리, 심장, 혹은 뇌? 솔민의 생각은 단호했다. 영혼 같은 건 없다. 물질과 분리된 비물질적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솔민이 속한 신 없는 세계의 규칙이었다.”(107쪽)
이 확신에 찬 세계관은 소설이 전개되면서 계속 흔들리게 된다. 솔민이 믿어온 명료한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였다.
『태양 아래 올리브』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여정 초반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약통이나 미스터리한 인물들의 존재는 독자로 하여금 계속 의문을 품게 만든다.
“L-Trypsinol. 사진상으로는 평범한 수면 보조 식품처럼 보인다. 편안한 휴식과 좋은 기분, 숙면을 돕는다는 설명이 영어로 짧게 적혀 있다. 성분명은 읽자면 ‘트립시놀’일 텐데, 솔민이 아는 아미노산 ‘트립토판’도 아니고 소화 효소인 ‘트립신’도 아니다. 이게 뭐지?”(50쪽)
작은 단서 하나에서 시작된 의문은 점점 커다란 진실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진실은 독자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수녀인 이레의 정체에 대한 반전은 소설 중반부의 가장 충격적인 지점이었다.
“수녀님 머릿속에 있는 건 평범한 신경 세포가 아니거든요. 수녀님께는 고분자 합성 뉴런으로 만든 합성뇌가 있어요. 혹시나 했는데 정말 모르셨던 거군요?”(60쪽)
소설 초반이긴 하지만 이 대목을 읽으면서 소설의 방향이 완전히 새롭게 열리는 것을 느꼈다. 종교와 과학이라는 익숙한 이분법 위에,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또 다른 축이 겹쳐지면서 이야기는 훨씬 복잡하고 흥미로운 층위로 나아간다.
자신의 정체를 찾아 떠나는 이레의 여정의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등장하는 인물 ‘준’은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엄마의 친구로 소개되어 처음 등장했을 때 준은 신비롭고 독특한 인상의 인물로 그려진다.
“준은 사자 갈기처럼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색은 해왕성 같은 푸른 회색이었다. 이런 머리색은 만화에서나 봤는데. 게다가 엄마 또래라기엔 훨씬 젊어 보였고, 수동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144쪽)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준의 정체 역시 예상을 벗어난다. 준을 찾아 떠난 곳에서 만난 인물들 중 카윈은 솔민에게 준의 정체를 솔직하게 밝힌다.
“맞아 준은 사람이 아니야."
카윈이 담담하게 말했다.
"준은 우리와 같은 합성뉴런 소재로 만들어진 뉴로모픽 웨트웨어야.”(252쪽)
준의 정체가 밝혀진 시점에서 이미 소설 속 이레처럼 선을 넘은 것 같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덧붙이면 이레는 어릴 적 사고로 합성뇌를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합성뇌의 정착을 도와 준 이가 준이다. 그렇다면 이레에게는 영혼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이레는 베로니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는 수녀이기에 오랫동안 단단하게 굳어진 종교계에도 커다란 돌을 던지는 존재가 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철학적 좀비라는 사고 실험을 정면으로 끌어들인다.
“‘철학적 좀비’라는 사고 실험이 있다. 만약 내면적 경험이 전혀 없는 존재가 있는데 겉으로는 완전히 사람처럼 행동하고 자극에도 똑같이 반응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설령 그 안에 정말로 텅 비어 있다고 해도 외부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것이 좀비 난제였다. 자아는 오직 주관적 시점에서 경험되는 현상이고, 외부에서 그것을 검증하려는 시도는 결국 간접적일 뿐이다.”(109쪽)
겉으로 완전히 인간처럼 행동하는 존재의 내면을 우리는 결코 완전히 검증할 수 없다는 이 질문은, 이후 이레와 준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준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에 대한 설명에서 “당신은 존재하는 것도, 마음을 발명하는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당신은 존재했고 마음은 발명되었다. 당신은 그 모든 일을 원하지 않았고 택하지도 않았지만 그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났다. 당신은 이 세계와 너무 깊이 얽혀버렸다.”(302쪽)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소설 초반,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국에서도 올리브 농장이 늘어난다는 배경 설명이 나온다. 이때만 해도 이 올리브나무가 단순한 배경 소재처럼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 나무에는 사연이 있었다. 최근 이 지역에 올리브 농장이 늘어났는데, 예전에는 한국에서 재배하기 어려웠던 올리브가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이제는 제법 큰 농장이 운영될 만큼 잘 자란다는 거였다. 꼭 먼 이국의 풍경화에나 등장할 법한, 태양 아래 은백색 올리브나무들. 주민들에게는 풍요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어떤 불길한 징조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19쪽)
하지만 그 올리브나무를 특별하게 본 이레는 흰 리본을 달아준다. 그리고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올리브나무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레라는 인물 자체를 은유하는 상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레의 영혼은 뒤바뀌었다. 이레는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뿌리 내려 버린 올리브 나무였다.”(244쪽)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레는 자신을 향한 이 은유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시 받아들인다.
“올리브나무의 흰 리본을 묶어 주던 그날, 이레는 그곳에서 있어서는 안 될 올리브를 연민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이레는 알았다. 있어서는 안 될 올리브가 아니라, 이미 그곳에 뿌리 내렸기 때문에 살아가기로 결심한 올리브였다는 것을.”(389쪽)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놓인 존재라는 연민의 시선에서, 이미 그 자리에 뿌리내렸기 때문에 살아가기로 결심한 존재라는 긍정으로 나아가는 이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제목이 왜 이토록 정확했는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이해하게 됐다.
이레가 자신의 정체성 앞에서 내리는 선택 역시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대목이다.
“선 안쪽에 남겠다고 고집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온전한 인간임을 인정받는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레는 쉬운 쪽으로 가는 대신, 계속 질문하는 길을 가고 싶었다. 감당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려운 질문 앞에 서고 싶었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일 걸 짐작하면서도 그 길을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레는 지금 그 선택이 무척 뿌듯했다. 어쩌면 이 감정을 자긍심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383쪽)
편안하고 명료한 답 대신 계속 질문하는 쪽을 선택하는 이레의 모습에서,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응원하고 있는 태도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정답을 손에 쥐는 것보다, 어려운 질문 앞에 계속 서 있으려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태양 아래 올리브』를 읽으며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나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였다. 이레와 솔민은 신앙과 의심이라는, 언뜻 결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태도를 각자 대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걸으며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해란 상대의 신념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서 있는 자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 사실과 인간적인 믿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이 소설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끝까지 함께 붙잡고 간다.
이 소설은 여행 소설의 얼굴을 한 질문의 소설이었다. 김초엽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인간을 둘러싼 경계와 존재의 감각을 집요하게 건드린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제목이 왜 이토록 정확했는지 이해하게 되는 소설이다. 로드트립, 성장, 관계, 존재론적 질문이 촘촘히 얽힌 이야기이기에 쉬운 소설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되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