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특별판)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첫 문장은 이렇게 묻는다.


“2 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욕설로 시작했던 마션이나 액션으로 시작했던 아르테미스와 달리, 이 소설은 다소 조용하게 문을 연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조용하지 않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 안에서 홀로 깨어난다. 그리고 독자는 그가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과 현재 벌어지는 사건을 동시에 따라가게 된다.


이 소설은 한 편의 과학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우정과 희생에 관한 이야기다.

절망적인 작전, ‘헤일메리 프로젝트


헤일메리(Hail Mary)’란 미식축구에서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마지막 패스를 뜻하는 말이다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편도 연료만 싣고 우주로 떠나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더없이 어울린다.


지구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아스트로파지라는 미지의 미생물 때문이다이 생명체는 빛을 흡수해 질량으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결과 태양의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30년 안에 지구는 치명적인 빙하기에 들어설 위기다인류는 마지막 선택으로 타우 세티라는 별로 탐사선을 보내 그 원인을 밝히려 한다.이것이 바로 프로젝트 헤일메리하지만 우주선에는 돌아올 연료가 없다이 임무는 곧 죽음을 전제로 한 여행이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원래 분자생물학자였지만 논문 논란으로 학계를 떠나 중학교 과학 교사가 된 인물이다.그가 이 임무에 탑승하게 된 배경은 소설 후반부에서 드러나는데, 그 과정은 꽤 아이러니하고 인간적이다그는 끝까지 우주로 가는 것을 거부한다인류를 위한 희생이라는 말 앞에서도 망설이고 도망치려 한다이 점이 오히려 그를 더 현실적인 인물로 만든다영웅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평범한 인간이 우주로 내몰린 것이다.


타우 세티에 도착한 그레이스는 정체불명의 우주선을 발견한다그리고 그 안에서 외계 생명체와 마주친다그레이스는 그를 로키라고 부른다로키는 눈이 없고, 소리(음파)로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다그의 생물학과 물리 환경은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 암모니아 대기, 고온·고압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종족이다.


처음에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그들은 노크 소리, 진동, 시계, 도형을 이용해 조금씩 의사소통을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고 따뜻한 부분이다과학이 언어가 되고, 우정이 번역된다.


로키 역시 자신의 별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레이스와 로키는 각자의 지식을 나누며 아스트로파지의 천적이 되는 생명체 타우메바를 발견한다이 소설의 매력은 문제 해결 과정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라는 점이다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모험처럼 펼쳐진다.


그레이스는 생물학자, 로키는 공학자다서로 전혀 다른 종족이지만, 협력하며 하나의 해답에 가까워진다모든 해결책이 준비된 순간, 또 하나의 위기가 등장한다그레이스는 타우메바의 뜻밖의 특성으로 인해 로키의 우주선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그리고 그는 중요한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은 이 소설을 단순한 SF 모험담이 아니라윤리와 희생의 이야기로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다.그레이스는 더 이상 도망치는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남는 존재가 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고독한 우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따뜻한 우주 소설이다마션의 마크 와트니가 혼자 살아남았다면, 그레이스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남는다이 소설의 중심에는 과학이 아니라 관계가 있다.


서로 다른 존재가 만들어낸 협력, 생존보다 중요한 선택 그래서 이 작품은 긴장감 넘치는 과학 소설이면서 동시에 성장소설처럼 읽힌다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마션을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라면 이 작품 역시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합성 인간 - 낮과 밤이 바뀐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생체리듬과 빛의 과학
린 피플스 지음, 김초원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식물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은 묘하게 설득력을 가진다광합성 인간이라는 제목은, 인간 역시 태양의 리듬 속에서 살아가도록 설계된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린 피플스는 과학 전문 기자답게, 현대인이 겪는 수면 문제와 피로, 우울, 집중력 저하의 원인을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인류는 태양의 주기에 맞춰 진화해 왔지만, 인공조명과 스마트폰, 24시간 사회 속에서 그 리듬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광합성의 반응식에는 빛 에너지가 빠질 수 없다마찬가지로 인간의 몸 역시 빛을 기준으로 작동한다우리는 직접 포도당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태양이 뜨고 지는 주기에 맞춰 호르몬과 체온, 수면과 각성이 조절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저자는 우리 몸 안에 중추 시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이 시계는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작동하며, 낮에는 깨어 있고 밤에는 쉬도록 몸을 조율한다.


생체시계는 끊임없이 시간 단서를 찾아 우리 몸의 내부 시계를 태양에 동기화하려 한다.” (8)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저자는 태양과 시계가 없는 공간, 즉 벙커에서 생활하는 실험을 한다처음에는 기존 생활 리듬을 유지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낮과 밤의 감각이 완전히 흐트러진다어느 순간 밤이라고 생각한 시간이 사실은 낮이 되는 식이다이 실험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우리 몸의 시간은 사회가 만든 시계가 아니라 태양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태양이라는 기준이 사라지면, 생체 시계도 방향을 잃는다.


문제는 현대의 삶이 이 생체 시계를 끊임없이 교란한다는 데 있다.

실내 중심의 생활, 밤에도 밝은 조명, 스마트폰 화면, 24시간 켜진 도시의 불빛.


우리는 인간이 만든 시간 개념에 익숙해지면서 태양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리듬과 점점 멀어졌다.” (40)


저자는 불면증, 소화불량, 우울증, 집중력 저하 같은 현대인의 질병들이 단순한 개인 문제라기보다 환경 문제라고 말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밤의 밝기에 대한 설명이다.

밤하늘의 밝기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빛 공해는 몇 년마다 두 배씩 늘고 있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스마트폰에 대한 비유다.


훗날 밤에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사진을 보면, 우리가 지금 담배 피우는 옛 사진을 보듯 보게 될 것이다.” (198)


이 문장을 읽으며 뜨끔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가 얼마나 일상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몸을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책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새로운 광수용체인 ipRGC에 대한 설명이다우리는 그동안 눈이 보는 기관이라고만 생각해 왔다그러나 ipRGC는 빛의 양과 성질을 감지해 뇌의 생체 시계에 직접 정보를 전달한다.


시각 체계가 만든 3차원 공간에 일주기 체계는 시간이라는 네 번째 축을 더한다.” (119)


즉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볼 뿐 아니라, 눈으로 시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는 단순히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시간을 교란하는 행위인 셈이다.


이 책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누구나 낮에는 더 많은 빛을, 밤에는 더 깊은 어둠을 추구해야 한다.” (146)


저자가 자신이 실철하고 있는 생체 시계 회복 원칙은 세 가지다.

아침에 빛을 보기 일어나자마자 햇빛을 쬐기

밤에는 어둡게 하기 디지털 화면과 인공조명 줄이기

밝을 때 먹기 해가 떠 있는 동안 식사하기

해법은 과학적이면서도 원시적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태양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생각해보면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밤은 어두웠다밤에도 밝은 조명 아래 사는 삶은 아주 최근의 발명품이다그 대가를 우리는 피로와 불면으로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생활을 바꾸면 얻는 것이 크다면, 바꾸지 않을 이유는 없다.아침 햇빛을 조금 더 보고, 밤을 조금 더 어둡게 만드는 일.그 작은 선택이 편안한 잠과 활기찬 내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오신화 (컬러 일러스트 수록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5
김시습 지음, 한동훈 그림, 김풍기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오신화는 한국 최초의 소설로 불린다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최초라는 역사적 의미로만 읽기에는, 그 안에 담긴 정서는 너무 깊고 쓸쓸하다.

김시습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에는 계유정난이라는 비극적인 정치 사건이 있다.


단종의 폐위와 세조의 즉위, 그리고 이에 저항한 사육신과 생육신의 선택으로 

김시습 역시 세조의 즉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속을 떠나 방랑의 길에 오른 인물이다. 만약 단종이 폐위되지 않았다면, 금오신화는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소설은 한 개인의 좌절과 시대의 상처가 만들어 낸 문학적 산물처럼 느껴진다.


금오신화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에는 귀신선녀용왕지옥의 왕 염라대왕까지 모두 현실을 벗어난 존재들이 등장한다그러나 이 환상적인 존재들은 단순한 기괴함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과 한을 대신 말해주는 상징처럼 보인다특히 사랑 이야기에서 그 성격이 뚜렷하다.


1. 만복사저포기 죽어서야 만나는 사랑

양생은 부처님과 내기를 걸어 배필을 얻는다하지만 그가 만난 여인은 이미 죽은 존재였다.이 이야기는 장난처럼 시작되지만, 끝은 매우 쓸쓸하다.사랑은 이루어졌지만 오래 지속될 수 없고양생은 결국 세속을 떠나 은둔자가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이 아니라 상실이 더 오래 남는다.


2. 이생규장전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강한 귀신

이생과 최씨 부인의 사랑 이야기는 금오신화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히려 최씨 부인이라는 느낌이다이생은 아버지의 명으로 떠나고최씨 부인은 끝까지 인연을 지키려 한다죽어서조차 다시 돌아와 부부의 연을 이어가려는 모습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귀신이 된 여인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강한 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보인다.


3. 취유부벽정기 역사와 환상의 만남

부벽정에서 만난 신비한 여인은 기자조선의 공주라고 자신을 밝힌다이 대목에서 금오신화는 단순한 연애담을 넘어 역사 의식을 담는다고조선과 기자조선이라는 전설적 시대를 불러오며망한 나라의 슬픔과 개인의 비애가 겹쳐진다이 작품에서 환상은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4. 남염부주지 사랑이 아닌 정치 이야기

네 번째 작품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박생이 지옥 세계에서 염라대왕과 정치와 정의에 대해 토론하는 이야기다여기에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이상 정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현실에서는 펼칠 수 없었던 이상을 꿈속 세계에서 실현하려는 모습은 김시습 자신의 좌절과 겹쳐 보인다사랑 이야기가 빠진 대신, 현실 비판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5. 용궁부연록 문학이 만들어낸 이상향

한생이 용궁에 초대받아 잔치를 벌이는 이야기에서는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이상적 세계가 펼쳐진다하지만 이 또한 오래 머무를 수 없다꿈처럼 다녀온 용궁 이후, 한생은 속세를 떠난다환상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들렀다 돌아오는 장소일 뿐이다.


금오신화해제에 실린 김시습의 묘비명은 오래 남는다.


백 년 뒤 내 무덤에 무얼 적으려거든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하라


이 문장은 금오신화전체를 설명하는 한 문장처럼 느껴진다이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꿈을 꾸다 사라진 존재들이다사랑의 꿈, 정치의 꿈, 이상 세계의 꿈현실이 감당할 수 없었기에, 꿈과 환상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금오신화는 단순한 고전 소설이 아니라 한국 환상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만하다귀신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 이야기이고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시대 비판이기도 하다처음에는 한시가 많아 읽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그러나 그 문장 속에는 한 시대를 살아낸 지식인의 고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소비 생활
가제노타미 지음, 정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마다 새해가 되면 최저임금 인상 소식과 함께 물가 상승 뉴스가 쏟아진다. 임금은 오르지만 쌀, 커피, , 고기 등 생활에 필요한 식재료 가격도 함께 오른다. 희망찬 새해 인사와는 달리 현실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시기에 읽게 된 책이 가제노타미의 저소비 생활이다.


이 책은 단순한 절약 노하우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적은 돈과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삶을 인내나 궁핍이 아니라,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과 유행에 휩쓸려 불필요한 소비를 반복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는 생활 방식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의 한 달 생활비 공개였다. 저자는 월세를 제외한 생활비로 약 15만 원 정도를 사용한다고 밝힌다. 현실적으로 그대로 따라 하기는 어렵지만, 생활비를 고정비와 변동비로 나누고 생활비를 먼저 정한 뒤 나머지를 저축한다는 방식은 충분히 참고할 만했다저자는 이를 생활비 선점 방식이라고 부르며, 이 방법을 통해 저축 속도가 빨라지고 돈에 대한 불안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저소비 생활을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학생 시절에는 나만의 기준으로 물건을 사고 생활했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남들과 비교하며 소비하게 된다는 지적이 공감되었다. SNS를 보고 충동적으로 산 물건과 정말 필요해서 산 물건을 떠올려 보면, 이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절약을 근력 운동에 비유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절약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기술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반복해야 몸에 배는 습관이라는 것이다. 특히 보복 소비가 절약을 망치는 가장 큰 적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다이어트 중 치팅데이가 있는 것처럼, 소비에서도 한 번 무너지면 쉽게 과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물건을 줄이기보다 늘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리는 방식보다, 애초에 정말 필요한 것만 들이는 태도가 더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의식주를 선택하는 기준 역시 비싸고 멋진 것이 아니라 내가 기분 좋아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저소비 생활의 목적은 돈을 모으는 데 있지 않다. 돈을 덜 쓰면서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삶, 그리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만드는 데 있다행복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말이 오래 남는다.


일본의 1인 가구 프리랜서라는 저자의 환경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소비를 돌아보고 삶의 기준을 점검하는 계기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었다.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꼭 필요한 것만 소비하는 삶을 고민하는 사람은 읽어 볼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궤도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맨사 하비의 소설 궤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무대로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보내는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건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를 시적인 문장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읽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 우주에서 쓴 일기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큰 사건은 거의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이 오래 남는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지구를 90분마다 한 바퀴 돈다. 하루에 16번의 일출과 일몰을 경험한다. 소설 궤도역시 총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등장인물은 러시아, 일본, 영국, 이탈리아, 미국 출신으로 구성된 다국적 우주비행사들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국적과 성격을 지녔지만, 우주라는 동일한 환경 속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운동을 하고, 실험을 수행하며, 식사를 하고, 창밖으로 지구를 내려다본다.


이 소설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갈등이나 극적인 사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구에 태풍이 몰아친다는 소식과, 일본인 우주비행사 치에가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격렬하게 묘사되기보다는 담담하고 조용한 언어로 기록된다.


궤도는 플롯 중심의 소설이라기보다 시에 가까운 작품이다. 문장들은 서사를 이끌기보다는 감각과 사유를 쌓아간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폭력과 불평등으로 가득한 장소로 비친다.


넬은 지구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며 인간의 삶을 생각하고, 피에트로는 기후 변화와 문명의 취약성을 관측하며 인류의 미래를 걱정한다. 치에는 자연의 풍경과 가족의 얼굴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각 인물의 내면은 조용히 흘러가며 하나의 거대한 사유의 궤도를 형성한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 문장은 특히 인상 깊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다 보면 너무 함께이고 또 너무 혼자여서 생각과 내면의 신화조차 이따금 한데로 모인다.


짧은 순간에 모여 하나가 되고는, 다시 뒤죽박죽 흩어진다.”


처음 문장을 읽었을 때, 걸쭉한 욕설로 시작했던 앤디 위어의 마션이 떠올랐다.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마션이 생존과 유머의 이야기라면 궤도는 사유와 침묵의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마션쪽이 취향에 가까웠지만, 궤도만의 문학적 깊이 또한 분명 존재했다.


소설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우주비행사들이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대목이었다.


자신들이 아는 것을 알고, 보는 것을 보는, 그래서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국적도 성격도 다른 이들이지만,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존재가 된다. 우주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 가족이 된다. 이 문장은 우주비행사들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가족의 의미와도 닮아 있었다. 가족이란 결국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소설 초반에는 여섯 명의 인물을 “4명의 우주비행사와 2명의 우주비행사로 구분해 소개한다. 이는 astronaut cosmonaut의 차이를 반영한 표현이다.

Astronaut는 미국과 서구권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며, cosmonaut는 러시아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의미의 차이는 거의 없지만, 냉전 시대부터 이어진 정치적·문화적 자존심이 용어를 나누어 놓았다. 같은 우주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이름은 다르게 불리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시적인 언어가 가득한『궤도는 나에겐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사건도 적고, 문장은 시적이며, 마지막 장을 넘겨도 많은 여백을 남겼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주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 존재와 지구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소설은 화려한 모험담이 아니라, 고요한 사유의 기록이다. 우주정거장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완전하고, 인간은 작지만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궤도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가장 조용한 이야기이며, 가장 사색적인 소설이었다. 하루 16번의 일출과 일몰처럼, 이 책 또한 반복해서 곱씹을수록 다른 빛깔로 읽히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