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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6월
평점 :
서맨사 하비의 소설 『궤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무대로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보내는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건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를 시적인 문장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지만, 읽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 우주에서 쓴 일기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다. 큰 사건은 거의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이 오래 남는다.
국제우주정거장은 지구를 90분마다 한 바퀴 돈다. 하루에 16번의 일출과 일몰을 경험한다. 소설 『궤도』 역시 총 1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등장인물은 러시아, 일본, 영국, 이탈리아, 미국 출신으로 구성된 다국적 우주비행사들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국적과 성격을 지녔지만, 우주라는 동일한 환경 속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운동을 하고, 실험을 수행하며, 식사를 하고, 창밖으로 지구를 내려다본다.
이 소설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갈등이나 극적인 사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구에 태풍이 몰아친다는 소식과, 일본인 우주비행사 치에가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격렬하게 묘사되기보다는 담담하고 조용한 언어로 기록된다.
『궤도』는 플롯 중심의 소설이라기보다 시에 가까운 작품이다. 문장들은 서사를 이끌기보다는 감각과 사유를 쌓아간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폭력과 불평등으로 가득한 장소로 비친다.
넬은 지구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리며 인간의 삶을 생각하고, 피에트로는 기후 변화와 문명의 취약성을 관측하며 인류의 미래를 걱정한다. 치에는 자연의 풍경과 가족의 얼굴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각 인물의 내면은 조용히 흘러가며 하나의 거대한 사유의 궤도를 형성한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 문장은 특히 인상 깊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다 보면 너무 함께이고 또 너무 혼자여서 생각과 내면의 신화조차 이따금 한데로 모인다.”
“짧은 순간에 모여 하나가 되고는, 다시 뒤죽박죽 흩어진다.”
처음 문장을 읽었을 때, 걸쭉한 욕설로 시작했던 앤디 위어의 『마션』이 떠올랐다.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마션』이 생존과 유머의 이야기라면 『궤도』는 사유와 침묵의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마션』 쪽이 취향에 가까웠지만, 『궤도』만의 문학적 깊이 또한 분명 존재했다.
소설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우주비행사들이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대목이었다.
“자신들이 아는 것을 알고, 보는 것을 보는, 그래서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국적도 성격도 다른 이들이지만,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존재가 된다. 우주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 가족이 된다. 이 문장은 우주비행사들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가족의 의미와도 닮아 있었다. 가족이란 결국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소설 초반에는 여섯 명의 인물을 “4명의 우주비행사와 2명의 우주비행사”로 구분해 소개한다. 이는 astronaut와 cosmonaut의 차이를 반영한 표현이다.
Astronaut는 미국과 서구권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며, cosmonaut는 러시아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의미의 차이는 거의 없지만, 냉전 시대부터 이어진 정치적·문화적 자존심이 용어를 나누어 놓았다. 같은 우주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이름은 다르게 불리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시적인 언어가 가득한『궤도』는 나에겐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 사건도 적고, 문장은 시적이며, 마지막 장을 넘겨도 많은 여백을 남겼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주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 존재와 지구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소설은 화려한 모험담이 아니라, 고요한 사유의 기록이다. 우주정거장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완전하고, 인간은 작지만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궤도』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가장 조용한 이야기이며, 가장 사색적인 소설이었다. 하루 16번의 일출과 일몰처럼, 이 책 또한 반복해서 곱씹을수록 다른 빛깔로 읽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