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가장 아름답게 수놓는 녹턴...  

우리는 야상곡으로 알려진 '녹턴'이라는 장르의 피아노를 매우 좋아한다. 밤의 차분하고도 적막의 흐름속에서 고독한 자의 심금을 울리는 녹턴은 언제 들어도 아련하고 가슴깊이 파고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야상의 심상을 아름다운 선율로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흔히 '녹턴'하면 대부분 쇼팡을 떠올릴 것이다.  녹턴은 곧 쇼팡이라는 공식처럼 아름다운 피아노로 청자를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턴을 조금 더 알고보면 낭만주의자 쇼팡에게 깊은 감동을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일랜드 출신의 '존필드'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존필드라는 분은 녹턴을 창안해냈다. 존필드는 녹턴의 창시자인 것이다. 

     존오코너        

 녹턴의 창시자라는 점 만이 존필드가 존중받을 유일한 이유는 결코아니다. 그의 녹턴을 들어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오죽했으면 존오코너는 존필드의 녹턴으로 일생을 사시는 분 중 한 분이 되었을까...존 오코너의 연주를 들어보신 분은 과연 그 이유를 아실 만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피아노의 시인이라 칭할만큼 존 오코너는 깊은 내적 표현을 건반으로 드러내는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베토벤 해석의 1인자로 손색 없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존필드의 대가는 존 오코너 외에 한 분이 더 있다. 음반을 연주한 분으로 오우르크이다.  오우르크는 존필드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부심으로 녹턴을 연주하는 분이다. '존필드의 녹턴에 관한한 오직 한 사람 바로 나'이다...이러한 자부심은 오쩌면 오만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주를 들어보신 분이라면 수긍할 것이다. 존필드가 살아있다면 오우르크에게 경의를 표할지도 모른다. 존필드의 녹턴은 오우르크에 의하여 새롭게 세상에 재탄생 하게된다.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오우르크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오우르크   

             쇼팡의 녹턴...

 쇼팡은 존필드의 녹턴을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존필드의 녹턴에 경도 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쇼팡이 작곡한 녹턴의 시작부분을 들어보시면 바로 아실 것이다. 존필드의 오마주를 느낄 수 있다... 자신에게 그 얼마나 감동적인 곡이었기에 쇼팡은 자신의 곡에서 존필드의 오마주를 보여주는 것일까...쇼팡의 존필드에 대한 감동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흔히들 쇼팡의 녹턴 첫 부분에서 보여주는 존필드의 음영을 존필드의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쇼팡이 누구이던가. 비록 존필드의 작곡에 경도되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쇼팡은 자신의 녹턴에서 존필드의 그림자를 충분히 지우고도 남음이 있는 작곡가가 아니던가. 피아노라면 쇼팡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피아노 작품의 거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쇼팡의 작품에서 볼수 있는 존필드의 그림자를 오마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해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쇼팡은 존필드의 음영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녹턴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쇼팡을 조르주상드가 과연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그녀의 쇼팡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은 세기의 염문을 뿌리며 유럽을 뒤흔들었지만 그들의 공감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의 음반들은 가장 애호받는 쇼팡의 녹턴들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고 좋은 연주들이 있다. 그러나 지면상 모두 소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몇종류만 선택할 수 밖에는 없다.  

                                                                                                                     

  

 

 

 

  

루빈시타인                          페라이어                       아라우

  어떤 이는 가장 마음에드는 1순위에 올려놓고도 남음이 있을 만한 연주를 루빈시타인으로 꼽을 수도있다. 이 음반 저 음반 녹턴을 찾에 헤매다가는 결국 루빈시타인으로 되돌아 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니 기교파로 세상에 알려진 루빈시타인의 피아니즘은 빼놓을 수 없는 연주임에 반박할 이 드물 것이다. 기교파였던 이유로 루빈시타인이 한창 젊었던 시절의 연주와 나이가들어 세월이 더욱 내면을 성숙시킨 후의 연주는 많이 다르지만 그 어느 것이 더 좋은 연주라고 따지기는 어려운 면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루빈시타인의 연주는 나이와 관련없이 모두 빼어난 연주이기 때문이다. 

페라이어를 빠트리면 서운해 할 팬들이 많다. 페라이어 역시 쇼팽의 연주에서 확고한 팬들을 가지고 있다. 워낙 지명도가 있는 분이므로 쇼팽의 연주에서 큰 우위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아라우의 연주를 듣지 않고 쇼팽의 녹턴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라우의 연주 역시 그냥 믿고 구입하는 팬들을 확보할 정도로 연주의 신뢰도를 가진 분이다. '녹턴하면 아라우죠'라고 말하는 수많은 팬을 가진 아라우... 쇼팽 왈츠의 연주에서도 아라우를 빼놓을 수 없다. 정녕 아름다운 연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라우....   

     

 

 

 

 

      

   김대진                              폴리니                         프랑수와

우리나라의 김대진님도 녹턴의 연주를 남겼다. 현재 한국 종합예술학교의 교수로 있는 김대진님은 줄리어드 음대를 나와 클리브랜드 국제 콩쿠르 1위를 따낸 실력파 피아니스트이다. 존필드의 녹턴을 음반으로 내기도했던 김교수는 존필드는 담백한 아름다움이 있는 반면 쇼팡은 화음진행이나 선율진행 등 너무도 세련되게 내면의 정경을 그려냈다고 토로했다.

다음으로 폴리니는 개성이 매우 강한 연주가이다. 개인적으로는 폴리니의 쇼팡 연주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폴리니 특유의 개성이 표현해내는 건조함은 이성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 느낌이들기 때문이다. 금속성 연주라면 어느정도 근접한 표현일지...여하튼 애호가는 무지 애호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왜냐 ,그는 폴리니니까^ 

프랑수와는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녹턴 연주가일 것이다. 색체감이 강한 프랑스와는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곤하는 연주가이다. 청중을 자신의 연주로 끌어들이는 인력을 가진 매력적인 연주를 해낸다. 한 번 팬이되면 죽을때까지 그의 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연주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이다. 과연 어떻게 연주하길래...^

    

 

 

 

 

    

  마리아 조앙 피레스            예브게니 키씬~               이반 모라벡

녹턴의 부드러움과 낭만적인 서정성을 생각하면 여성의 연주자를 떠올릴만도 하다. 여성의 그 섬세한 감수성이라면 충분히 다수의 애호가들을 몰고 다닐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녹턴을 연주한 음반에 대한 선호도는 여성연주가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쇼팽 연주는 무척 환영할만한 일이다.  

피레스의 연주는 현대적 감성을 살린 연주라고 호평을 받고있다. 물론 여성인 관계로 그 셈세함을 논한다면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피레스의 연주는 이미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에서 감명 을 크게 먹은 바 있어 그녀의 연주라면 무조건 믿는 편이다. 나이가들면서 훨씬 더 사색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피레스는 폴투갈의 연인이나 마찬가지이다. 폴투갈이 자랑하는 그들의 연인 페레스가 들려주는 연주는 빼놓을 수 없는 감성과 깊은 사색의 길로 안내한다. 

예브네브 키씬~ 이 친구는 두말할 나위없는 러시아의 타건을 자랑한다. 러시아의 거장 에밀 길레스나 리히테르를 사랑하시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면밀한 악보에 대한 분석을 마친 후 이를 피아노로 표현해 내려 노력하는 러시아인들의 연주는 때로는 거친 사자들의 향연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의 피아노는 가슴보다는 머리로 듣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연주에 익숙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의 연주가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나면 키씬의 서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빛을 발견하기 전에 리히테르나 키씬의 연주에 몰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마치 깊고 깊은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내는 작업과도 같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나에게 가장 깊은 감동을 주는 연주가가 있으니 바로 이반 모라벡이다. 어떤 이는 모락벡의 연주를 들어 이랗게 표현했다.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있다" 라고.. 그렇다. 이반 모라벡이 녹턴을 연주하기 전과 그 이후의 녹턴은 확연히 다르다. 녹턴의 감상에 획을 그은 연주임을 느낄 수 있는 연주이다. 마치 녹턴의 역사에 한 획을 긋듯이 그는 작품을 구현해내고 있다. 이는 감상자의 눈과 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연주이다. 믿어지지 않는 연주...나는 모라벡의 연주를 그렇게 칭하고 싶다. 믿을 수 없는 연주를 들려주는 사람이라고..... 음반을 들어보지 않고는 사실상 이야기할 수가 없는 연주이다...이반 모라벡...그의 연주를 한번 들을 수 있다면 세상에 여한이 없을 지도 모른다.... 

다음은 미처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훌륭한 연주인 녹턴들이다...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연주를 들려준 다음의 음반들을 또한 소개한다... 

  

 

 

 

 

 

윤디리                          아쉬케나지                            치콜리니  

   

 

 

 

 

 

 

디누 리파티                         호로비츠                     요우라 궐라  

윤디리의 팬들도 무척 많을 것이다. 아쉬케나지는 또 어떤가. 치콜리니의 연주에 반하면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디누 리파티와 호로비츠 그리고 궐라여사의 연주을 어느 팬들이 잊을 수 있을까. 궐라 여사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아직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다. 특히 디누 리파티의 쇼팽연주는 브장송 고별연주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슬프고 애석하게 한적이 있다. 그의 불멸의 연주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음악의 애호란 세상을 그리고 인생을 알아가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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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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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쾌하게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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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신문에 저자가 기고했던 연재물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출판하기 전에 심혈을 기울여 더욱 글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1부의 작가이야기는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들이라도 잘 알지 못했던 간단하지만 흥미로운 내용들로 였어 놓았다. 일 예로 그림 예술에 빠지기에는 그만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최북의 전설과도 같은 이이야기는 고흐를 연상, 아니 고흐의 이야기는 최북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2부의 작품이야기는 미치 독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그림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것에도 방법이 있을까...그렇다. 그림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정보력과 지식을 동반한다. 그러나 정보력과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과 가슴이 있어야 한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정보와 지식과 그림 뒤에 숨어있는 사상의 배경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가지 더 갖추어야 할 것은 '눈' 이외에도 가슴이 있어야 한다.   

3부의 우리 것 이야기는 감동하지 않고는 결코 읽을 수가 없다. 우리 것이기때문에 그 내용이 더욱 가슴깊이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것이라서 더더욱 가슴으로 다가온다.  

나머지 4,5,6부의 내용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이 책을 읽어보게될 독자들은 충분히 알게될 것이기에 중략한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지속적인 동기부여...동기는 끊임없는 호기심일 것이다. 이 책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매우 자극한다. 호기심은 독자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하고 그 즐거움을 준다. 공부의 즐거움...공부없는 예술의 이해는 발전을저해한다. 발전하고 싶은 독자라면 지속적인 공부를 하게 만드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거소 흔쾌히...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저자는 그림 소개를 많이 해주고 있어 매우 독자를 즐겁게한다. 그런데 막상 독자를 무지 궁금하게 해놓고는 그토록 보고싶은 그림을 책에 넣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알고 싶으면 인터넷을 뒤져보라는 말씀이시다. 독서를 하는 중에 인터넷을 뒤지고 하기가 좀 사실 그렇다. 그래서 노트 하나를 옆에 놓아두고 그림의 제목을 적어가면서 읽어야 했다. 한꺼번에 그림을 찾아보려고 말이다. 이게 여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ㅠㅠ. 그래도 어쩌랴...좋아서 읽는 책이고 보고싶은 그림인걸....그래서 별하나를 뺐다 ㅠㅠ 너무 야속한가 싶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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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9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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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에게 그림과 만날 수 있도록 즐거운 미팅자리를 주선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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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19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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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그림과의 만남과도 같은 책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그림에 영 소질이 없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영 부럽기만하다. 그러나 꼭 부러워 할 일만은 아닌듯 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그림을 잘 봐주는 사람도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려야만 그림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잘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들에게는 큰 동기가 되어 줄 것이 분명하다. 축구를 아무리 잘 해도 관중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관중이 있기에 축구선수가 있고 박지성이 있는 것이리라... 

 이 책의 첫 장은 옛그림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마치 우리의 옛 그림과 그림에는 무지한 나와 같은 사람과의 미팅 장소를 제공해주는 듯한 모양새다. 처음의 만남이니 만큼 긴장도 되고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손철주는 좋은 입담으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마도 저자의 입담에 그만 언제 어색했냐는 듯이 상대방(그림)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게된다. 첫 미팅치고는 매우 성공적이다. 저자 손철주의 입담 때문이리라...대단히 고마운 저자이다. 

 여러가지 옛 그림; 심사정의 '선유도'.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 김두량의 '월야산수도', 신윤복의 '풍속화첩' '아이 업은 여인', 사시상춘' , 채용신의 '운낭자상', 윤두서의 '자화상', 작자미상의 '송시열의 초상' 등등...아주아주 흥미로운 그림들과 그에 대한 식견적인 정보를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그 흥미로움의 매력은 정녕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는 저자의 풍부한 미술적인 감상을 우리에게 매우 만족스럽게 전달하고 있는데 백자와 연적, 그리고 우리의 '다완'과 '청동거울'등에서 저자가 주는 선물은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옹기나 토우는 또 어떠하던가...  

한마디로 그림에 관심을 가진 독자를 흠뻑 그림속에 노닐도록 주선하는 편안하고도 즐거운 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는 사이 어느사이엔가 독자는 또다른 예술에 대한 소망을 일게한다. 그 얼마나 바람직한 독자의 태도인가...이는 독자로하여금 '조금 더'를 바라도록하는 동기를 아주 충분히 가지고 있는 저자의 책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그림에대한 안목은 어느새 조금씩 눈을 떠간다고 볼 수 있다. 한 권 두권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알아가는 그 즐거움...이런 즐거움을 경험한 독자는 그 마음을 충분히 아실 것이다. 왜 내가 진작에 이런 책을 읽지 못했을까..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게 되겠지만 지금에라도 이 책을접하게 되었고 그림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기 시작하였으니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양의 그림에는 동양의 그림이 주는 심오하고도 깊은 철학이 있으며 서양의 그림에는 서양의 깊은 철학이 숨어있다. 그렇다보니 동서양의 그림이 가지는 처음단계의 상징성은 공통적으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약간 만 더 들어가면 동서양은 서로 너무나도 거리가 먼 길로 들어서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왜냐면 그림을 이루는 근간이 되는 생각, 즉 사상의 차이가 그림의 차이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서양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양의 그림을 사고하는 것은 깊이를 더해갈수록 멀고도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기어이 동양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양의 오행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주역의 괘원리를 기초적으로라도 익혀두어야 하는 발전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록 미로에 들어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자신이 미로속에 갖혀있다고 생각하는 순간...그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그림에 대한 안목을 가진 상태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그림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는 증거와도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림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바로 이 책이다. 손철주의 저서는 이렇게 그림을 만나는 그 길목에서 우리를 가이드하는 안내서와 다름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등을 떠밀지만 결코 싫지 않는 떠밀림이다. 오히려 즐거움을 느끼며 삶의 질적 충만감을 더해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께 깊이 감사드리는 이유이다.... 저자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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