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력주의는 직관에 호소한다. 좌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편적 정의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움이다. 과연 그게 옳아서 자연스러운 걸까? 그렇지 않다. 능력주의는 옳지 않다. 능력주의는 정의를 가장한 부정의, 즉 사이비 정의다.
능력주의는 왜 나쁜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당연시함으로써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민주주의도 악화한다. ...
능력주의의 핵심 기능은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 결과 불평등으로 가야 할 문제의식은 모두 불공정 논란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우리는, 개인의 능력이라는 게 생각보다 명백하지 않으며 그 차이에 대한 현재의 보상체계도 대부분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상속이나 세습은 신분에 따른 차별이며 불공정하고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둘 다 불공정하고 부정의하다. 능력주의의 내적 논리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것이 편견에 치우친 고대 철학과 오류로 판명된 경제학 이론 등이 무비판적으로 뒤섞인 채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임이 드러난다. (8~9 페이지)
한국 능력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시험을 통한 지대추구'의 정당화다. 한국은 지위와 권한의 상당수가 공개경쟁시험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지위와 권한이 실질적 기여나 업적에 따라 조정되는 다른 나라와 확연히 구별된다. 한국의 수많은 시험들 중 특히 중요한 시험이 몇 가지 있다. 대학입학시험, 공무원 선발시험인 '고시', 민간기업의 공채시험, 문학계의 소위 '등단'제도 등이다. 이 시험들은 '결정적 시험critical examinations'으로서,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이후 삶에 글자 그대로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시험이 자기 삶을 기획하고 꾸려가는 데 너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한국인의 삶은 시험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다. (124 페이지)
한국의 '결정적 시험'은 강력한 지대 효과를 창출한다. 즉, 어떤 생산적 기여 없이도 합격했다는 사실 자체로 불합격자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보상이 주어진다. 그것이 '시험-지대exam-rent'이다. 시험에 따라 그것은 특정한 업무를 다룰 수 있는 자격일 수도 있고 무형의 권위나 위세일 수도 있으며, 우월한 사회자본(인맥)일 수도 있다. 어쨌든 결정적 시험과 그 시험 지대의 사회적 기능은 명확하다. 노력은 물론이고 성과로도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격벽을 세우는 것이다. (128 페이지)
... 능력주의는 차별과 혐오의 죄의식을 경감시키고 나아가 차별과 혐오를 '공정'하다고 믿게 만들기까지 한다. 능력주의는 단순한 분배적 정의관을 넘어 개별 인간의 가치를 (주로 자본주의 가치 기준에 따라) 서열화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강자와 약자 사이의 불평등이 정당하다고 가정한다. 능력주의자에게 강자가 강자인 이유는 재능과 노력 때문이며, 약자가 약자인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137 페이지)
... 능력주의는 위계서열화의 논리이고 그 논리의 막장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국, 강자선망-약자혐오다. (139 페이지)
소비자 정체성에서는 이른바 "등가교환적 정의Äquivalentent ausch innewohnende Gerechtigkeit"가 핵심원리로 작동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에 따르면 등가교환적 정의는 시장제도에 근거하며, 이러한 정의가 관철되는 사회에서는 소유권 중심의 질서가 자연법처럼 정당화된다. 등가교환적 정의가 소비자주의로 발현된다면, 아마도 이런 명제가 될 것이다."나는 구매했다. 고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 명제는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넘어 '갑질'할 권리로 오도되곤 했다. (166 페이지)
... 능력주의는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아닐뿐더러 세부 원인이라 할 수도 없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만들어낸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끼친다. 능력주의는 현존하는 불평등을 부당한 것으로 혹은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는 기준으로 기능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봉건적 요소가 강한 불평등(부와 지위의 세습, 정실주의 등)은 부당하다고 판단하게 하고, 자본주의에 친화적인 불평등(개인의 능력 차이에 따른 차별대우)은 정당하다고 판단하게 한다. 요컨대 능력주의는 특히 자본주의적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이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생산하는 원인보다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생산 노동이 생산 노동만큼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능력주의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204~205 페이지)
...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한국은 과거에 생각만큼 '개천용' 사회가 아니었고 지금은 생각만큼 세습사회가 아니다. 요컨대 한국 사회 계층 이동성 변화에 대한 한국인의 주관적 인식은 지나치게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26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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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설명은 유행하는 세습사회론류의 주장이 실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와 정반대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중상위층이 세습을 점점 더 강화해서 문제가 아니라, 중상 위층의 지위세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이에 대해 그들이 '공정성' 담론 등으로 반발하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더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연구들을 보면 최근 한국이 세습사회로 변화했다는 증거는 미약하다. 분명한 건 과거에 비해 사회 전반에 경쟁이 격화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인의 불안이 세습 사회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오히려 능력주의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문제는 능력주의의 과잉인 것이다. '용' 한두 마리에게 특권을 몰아주고 나머지가 모두 패배자가 된다는 점에서 '개천용' 사회는 세습사회 못지않게 나쁜 사회다. 수많은 사람들을 짜부라뜨리는 이 사회적 압력을 어떤 식으로든 배출시키지 않으면 한국인의 강렬한 지위 불안, 낮은 자기표현적 가치 같은 부정적 요소들 역시 나아지기 어렵다. (265~266 페이지)
결론은 결국 '경제민주화'이고 '사회안전망의 확충'이다. 부를 너무 한쪽에 몰아주지 말고 좀 나누어 갖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