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 & 하이에크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지식인마을 27
박종현 지음 / 김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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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사회의 출현이 장기불황 속에서 진행된 '구조개혁'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경제의 구조는 장기에 걸친 '헤이세이平成 대불황'에 힘입어 크게 변화했습니다. 경제적 토대로부터 상부구조에 이르는 총체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완성 국면에 도달한 것이 현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자본도 개인도 생존을 건 필사의 경쟁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가운데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분열된 사회가 출현한 것이지요. 저는 이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더욱 불안해지고 그렇다고 전체 자본의 수익성도 안정적으로 확보되기 어려울 겁니다. 결국 자본주의의 좁은 틀을 뛰어넘어 이윤의 추구가 아니라 필요의 충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만이 살길입니다.-208쪽

케인즈는 국가들 사이에 산업화나 기술 수준의 차이가 클수록 자유 무역, 곧 국제적 분업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 또한 커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본의 국제적 이동성이 높아질수록 국민 경제의 안정성은 약화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들 또한 금전적 가치와 수익성의 논리에 휘둘리게 되는 한편,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도 현저하게 약화됨으로써 각종 비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이 커진다고 보았다. 19세기에는 국가 간 생산성의 격차가 컸으므로 자유 무역의 경제적 이익은 컸던 반면, 자본의 이동성은 그리 높지 않아 자유 무역에 따른 사회적 불이익은 크지 않았고, 따라서 자유 무역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국가 간의 기술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대신 자본이 국경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상황은 반전된다. 이제는 자유 무역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비경제적 불이익의 저울질이 불이익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217쪽

[케인즈]가 금융은 국내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반대했던 첫 번째 이유는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이 약화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국민 경제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수행되는 정부의 정책은 자본의 수익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이 펼쳐질 경우 즉각 해당 국가를 이탈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본 탈출이 대규모로 일어나면 국민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따라서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경제에서 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우려해 쉽사리 정책을 펼칠 수 없게 된다. 케인즈의 입장에서 보자면,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자본의 높은 이동성으로 가뜩이나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이 제약된 상황에서 정부의 손발마저 묶는 고약한 제도인 셈이다.-218쪽

케인즈는 경쟁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경쟁이 경제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절히 제약되지 않은 무한 경쟁은 인간을 승자의 탐욕과 패자의 불안으로 가득 찬 약육강식의 정글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수단이 목적을 지배하는 반윤리적 사회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조화를 이루고 개인의 자유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꿈이 될 뿐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며 안정적으로 경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국민 경제의 효율마저 저해하게 된다.
그리고 케인즈는 경쟁이 사회를 위협하지 않고 경제적 효율을 달성하려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서구 사회보장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의 작성에 동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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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 하이에크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지식인마을 27
박종현 지음 / 김영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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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위기의 초입에 출간되었지만 지금 보아도 좋은 책이네요. 특히 일본 불황이나 한미 FTA에 대한 논의 등, 버릴 내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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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
김병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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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소재상 '태극기 휘날리며'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동기와 인물 묘사, 숨어 있는 복선 등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소설화한 것 같네요. 강제규 감독의 영화는 아마 좀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선악의 대립이 더 명확할 것 같은데, 원작과는 분위기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아마 소련의 수용소 얘기가 빠질 듯 싶은데요, 제가 보기에는 이 부분이 대식과 요이치가 어떻게 우정을 형성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인 것 같은데 아쉽네요.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장면도 나오는데 말이지요.

 

영화 보면서 원작과 어떻게 다르게 표현됐는가를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지금까지 나오는 영화에 대한 얘기를 보면, 솔직히 저는 원작이 더 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영화가 아직 안 나왔으니까 이것은 예단일 뿐이겠지요.

 

PS: 저는 표지의 왼쪽에서 뛰는 사람이 맨처음에는 여자인줄 알았습니다. ^^; 두 남자가 손을 잡고 뛰리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모자가 여자 거 같지 않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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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1-12-1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를 다시 자세히 보니, 손을 잡고 뛰는 건 아니네요. 아마 우정을 상징하기 위해 마치 손을 잡고 뛰는 것처럼 표현한 건 아닌가 싶네요.
 
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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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쇼와 메자르드 모형의 가정이 단순하다고 해도, 현실의 숫자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볼 때 이 결론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불평등의 원인은 정치적인 좌파나 우파의 이데올로그들이 정해 놓은 답과는 무관해 보인다. 방금 설명한 부자 게임처럼 완전히 자연적인 과정에 따라 대부분의 부가 소수의 손에 모일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음모나 권력자의 결탁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이 모형에서는 인간 재능의 분포와 무관하게 엄청난 부의 불평등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모든 사람이 돈을 버는 재주가 다 똑같아도 이런 일이 나타난다. 따라서 부자는 단순히 똑똑하거나 열심이 일했기 때문에 부자가 된다고 볼 수 없다.-220쪽

이러한 통찰은 인간 성취의 거대한 차이가 내재된 재능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논리 과정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하는 많은 연구들과 일치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미하일 심킨(Mikhail Simkin)과 브와니 로이초드허리(Vwani Roychowdhury)는 최근에 제1차 세계 대전의 최고 비행사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 1892~1918년. 일명 붉은 남작)의 놀라운 공중전 기록을 다시 검토했다. 리히트호펜은 공중전에서 80연승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그의 뛰어난 재주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정도를 순전히 운으로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220쪽

심킨과 로이초드허리가 제1차 세계 대전 때의 모든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의 기록을 조사해 보니, 전체 전적이 6,745승에 ‘패배‘는 1,000번에 불과했다. 이 패배는 조종사가 죽거나 다친 경우를 포함했다. 그들이 지적했듯이, 이 불균형은 부분적으로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이 무장이 빈약하거나 기동성이 약한 비행기를 상대로 쉽게 이겼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렇게 해서 평균적인 독일 전투기의 승률은 80퍼센트나 되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전쟁 중에 활동한 거의 3,000명에 가까운 독일 조종사들 중에 한 사람이 순전히 우연으로 80연승을 거둘 가능성은 통계적으로 꽤 높다. 또한 이 분석에서는 폰 리히트호펜과 같은 최고급 조종사들은 재주가 평균보다 30퍼센트쯤 더 뛰어나고, 그 이상으로 우수하지는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저자들의 결론에 따르면, "이 최고 조종사는 거의 운으로 승리를 올렸다."-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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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 아퀴나스 : 신앙과 이성사이에서 지식인마을 26
신재식 지음 / 김영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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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스럽다. 책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통해 현대사회에 다양한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는 신앙과 이성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다! 

중세의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해 두 명의 거장을 통해 알아본다는 점은 그럭저럭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두 거장이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했다는 점 외에 현대의 종교와 과학간 갈등의 해결에 어떠한 통찰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빈약한 기술만이 있을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신학의 본질에 대한 반복적인 기술(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vs. 믿기 위해 이해한다) 후, 조심스럽게 내놓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를 단 한 가지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는 것이다. 과학만이 진리라는 과학만능주의 또는 과학적 제국주의와, 종교만이 진리라는 성서문자주의나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일은 우리를 광기와 무지로 몰아가는 것이다. 종교나 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세계를 설명하는 각각 독특한 은유metaphor로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삶에는 종교, 과학, 예술,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가 겹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종교와 과학이 서로를 보는 눈이 더 겸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종교와 과학은 인간의 삶과 인류 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둘은 인간이 비상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두 개의 날개다. 날개 하나로 하늘을 나는 새를 보았는가? (226~227쪽)

그럼 창조론-진화론 논쟁은 어떻게 바라보라는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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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5-04-0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3년에 출간된 `예수와 다윈의 동행`이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