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1942~2018)은 장애를 이겨내고 거둔 뛰어난 성취(특이점 정리와 블랙홀에 관한 연구 등)로 인해 과학자-물리학자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린 책이 바로 1988년 출간된 <A Brief History of Time시간의 역사>이다. 이 책은 40개의 언어로 출간되어 2천 5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나 역시 한 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우 어려웠고, 그 바람에 읽다가 말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원서를 구해 오래된 국역판과 함께 다시 읽어보았다. 오래된 국역판 군데군데에는 밑줄이 쳐져 있었는데, 글쎄 마지막 장의 구절에도 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이 구절이다:
왜 우주는 존재의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는가? (현정준 역, 258페이지, 11장 결론 중에서) [*]
이걸 보면 추측하건대 책을 다 읽었던 모양이다. 30년도 넘은 옛날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이해가 간다. 다 읽지 않았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읽어서일 듯싶다. 이제 30년이 넘어 다시 읽으며 인상 깊은 점은 호킹의 대가적 설명과--그래서 아마도 베스트셀러가 됐으리라--낙관론이다. 호킹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우주를 모두 설명하는 '통일 이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마도 초끈이론을 염두에 두었으리라. 21세기가 되고도 25년에 들어선 지금 이러한 낙관론은 많이 퇴색했다.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그 의의 면에서 물리학, 특히 우주론의 고전 중 하나로 언급될 만하다. 하지만 출간된 이후 발견된 과학적 사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호킹도 책을 조금 수정하며 새로운 과학 발전을 포함하려고 했지만 전체적인 틀은 그대로 두었다. 내가 읽은 2017년 판은 뒤에 부록을 추가하여 암흑에너지와 우주의 가속팽창, COBE와 WMAP 등 우주배경복사 최신 측정결과의 의의, 영원한 급팽창(eternal inflation)과 다중우주, 그리고 중력파 관측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호킹과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의 꿈은 이랬다. 책의 제일 마지막 문단이다.
... if we do discover a complete theory, it should in time be understandable in broad principle by everyone, not just a few scientists. Then we shall all, philosophers, scientists, and just ordinary people, be able to take part in the discussion of the question of why it is that we and the universe exist. If we find the answer to that, it would be the ultimate triumph of human reason—for then we would know the mind of God. (p. 191)
국역판의 번역은 이렇다: 만약 우리가 실제로 완전한 이론을 발견하게 되면, 이것은 머지않아서 누구에게나--불과 몇 사람의 과학자가 아니라--원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학자, 철학자, 일반 사람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인간과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란 문제를 논하는 데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 답을 찾아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이성(理性)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259 페이지)
'신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말에 서구의 전통이 짙게 배어 있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생각은 이제 유물에 가깝다고 본다. 이렇게, 개인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한 시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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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이렇다: Why does the universe go to all the bother of existing? (p.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