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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역사 - 아주 작은 것들에 담긴 가장 거대한 드라마
데이비드 카이저 지음, 조은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월
평점 :
원 제목인 <Quantum Legacies>, '양자量子의 유산들'이 더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하는 것 같다. 저자가 발표했던 에세이들을 다듬어 묶어 낸 책이라서, 일목요연하게 역사를 기술한 책은 아니다.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좁게는 1920년대에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에 의해 완성된 학문 분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어서 조금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겠다. '들어가는 말'에 나온 에렌페스트와 아인슈타인의 일화도 그런 인상을 준다. 난 차례를 보고 짐 배것의 <퀀텀 스토리>와 같은 이야기--일관된 역사와 곁들인 과학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과학사 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과학적 보고서 같은 느낌이 있다.
이 책의 제일 인상 깊은 주장은 과학의 발전에 정치, 사회적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물리학도 사람이 하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주로 미국 물리학의 변천사에 촛점을 맞춘다. 미국에서 물리학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핵무기의 개발로 인해 특별 대우를 받았다. 전후 물리학과가 확장되고 대학원생이 급격히 늘면서 전전에 소수의 학생을 두고 양자역학을 강의할 때와 달리 철학적 내용은 모두 빠지고 '입 닥치고 계산' 식의 강의가 성행하게 됐다는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70년대의 히피 문화와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류 책들의 유행을 연관하여 설명한 것이나, 90년대 초의 소련 해체와 맞물린 예산 삭감으로 인해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결한 분야가 떠오르게 됐다는 이야기 등은 다른 데서는 보지 못했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