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hite Holes (Hardcover)
카를로 로벨리 / Riverhead Books / 2023년 10월
평점 :
전형적인 로벨리의 글과 책이다. 책은 짧고 문장은 시적이며 감상적이다. 자연의 탐구를 즐기는--탐미하는-- 그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책은 블랙홀 내부로 들어가서 화이트홀로 나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같은 이탈리아인인 단테의 신곡 문구를 지속적으로 인용한다. 상황과 잘 어울린다.
블랙홀을 거쳐 화이트홀에 대한 그와 그의 제자 핼 해거드Hal Haggard의 발견을 설명하면서, 일반상대론과 그의 영웅들(데이비드 핀켈스타인David Finkelstein, 히파르코스Hipparchus 등), 그리고 시간의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중간중간 그가 책을 고쳐 쓰며 덧붙인 부분도 소문자로만 나온다. 나중에 보면 5번 고쳐 썼다고 언급하기도 한다(133 페이지).
책의 결론은 이렇다. 블랙홀 내부에서 물질이 계속 중력에 의해 수축하면 양자효과에 의해 시간의 방향이 뒤집어지며, 마치 떨어진 공이 튀어 오르듯, 모든 물질이 바깥을 향하는 화이트홀이 된다. 신기하게도, 화이트홀은 바깥에서는 블랙홀과 다름 없이 보인다. '지평선' 근처에서는 일반상대성 이론의 시간지연 현상으로 인해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로벨리는 무거운 화이트홀은 불안정하므로 '플랑크 별' 정도의 질량(작은 머리카락 정도의 질량)을 갖는 화이트홀만 우주에 있을 것이며, 수많은 플랑크 별 질량의 화이트홀이 혹시 천문학자들이 찾는 암흑물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언급하고 있다(141페이지). 흠, 누가 알겠는가, 우주에 어떤 신비가 숨어 있을지.
This brings us to a conclusion that seems to me extraordinary. Our neurons, our books, our computers, the DNA in our cells, the historical memory of an institution, the entire contents of the data on the internet, my sweet guide, whose holy eyes were glowing as she smiled,* the ultimate source of all the information of which life, culture, civilization are made, is none other than the disequilibrium of the universe in the past. (p. 130)
---
* Paradise, III. Beatrice, obviously.
위에서 보듯 로벨리는 시간이 여전히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The Order of Time>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굉장히 시적으로 반복한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우주가 변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그는 믿는다. 로벨리는 2종류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썼다고 한다(106페이지). 하나는 물리의 문외한, 다른 하나는 물리의 도사. 그래서 자세한 내용detail 없이 쓴다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perspective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로벨리 같은 대가에게는 이것이 중요할 것 같고, 이 책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물리를 아는 이에게는 로벨리가 이 책에서 그저 시인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매우 흥미로운 블랙홀의 면모를 알게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아직 누구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한 것 같다.
글이 두서가 없는데, 사실 로벨리의 책도 그런 느낌이 있다며 변명한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