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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평점 :
잘 읽힌다. 유시민을 전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책 제목과 미리보기의 내용이 너무 매력적이라 읽을 수밖에 없었다. 총선 후 짧은 기간 동안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의 글솜씨와 생각에 감탄과 공감을 하며 읽었다.
다 읽은 지금의 감상은 이렇다. 유시민과 같은 어른이 있어서 다행이다. 길어도 3년이면 '윤석열이란 병'도 지나간다. 표지 다음 장에 그의 글씨로 이런 문구가 쓰여있다. "희망은 힘이 세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답답한 분들에게 읽어보시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글 속 몇 구절을 다음에 옮겨 놓는다.
국가는 추상적인 존재다. 정부도 그렇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정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국가의 수준은 정부의 수준이 좌우하고, 정부의 수준은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의 수준이 결정한다.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나라의 정부 수준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자신이 어떤 수준이며 어떤 수준의 사람들을 정부에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윤석열은 정부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인간 윤석열 수준으로 내려앉는 중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판도 함께 녹아내린다. '모든 민주주의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지적 소유권이 누구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 옳은 말이다. (26 페이지)
다시 말한다. 비속해지면 악에 물든다. 스스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려고 노력해야 비속함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런 각성을 한 시민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나는 믿는다. (35 페이지)
2022년 3월 9일, 한국 유권자는 '위선'이 싫다고 악을 선택했다.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악인 줄 알고도 선택했다는 말은 아니다. (39 페이지)
윤석열은 보수와 중도의 연합을 깨뜨리고 보수를 분열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실과 내각과 정부기관에 극우 성향의 망나니, 무능한 아첨꾼, 정치 검사, 심지어 술친구까지 불려들였다. 대통령실과 정부에서 공직 경력을 부풀린 측근과 전직 검사들을 총선에 내보냈다. 모든 정치연합을 자기 손으로 해체하고 보수의 한 축에 불과한 극우와 검찰 세력의 수장을 자처한 것이다. 침팬지 알파 메일도 이렇게 하면 권력을 지키지 못한다. 인간의 권력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63 페이지)
윤석열은 왜 여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허물고 왕정을 할까? 불안해서, 버림받을까 겁이 나서다. 그는 국정농단 사건 수사 검사로서 박근혜를 구속 기소했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과 무소속 의원 171명이 발의했다. 탄핵 가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2/3에 한참 모자랐다. 그런데 투표에서 234명이 찬성했다. 60명 넘는 여당 의원이 탄핵에 가담했다. (77~78 페이지)
저널리스트는 취재한 사실 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 뉴스를 만들 때 저널리즘 규범을 의식한다. 몇 가지는 널리 알려져 있어서 저널리스트 아닌 사람도 안다. '사실을 존중한다.' '정치권력과 광고주와 수용자의 간섭을 배제하고 독립적 주체적으로 판단한다.' '이해관계와 이념이 대립하는 문제를 보도할 때는 중립과 균형을 지킨다.' 조심하자. 그런 규범이 있다는 걸 안다는 말이다. 지킨다는 말이 아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규범을 지키는 저널리스트가 거의 없다. (91 페이지)
기자는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이 아니다. 민중을 위해 싸우는 투사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기자는 사는 게 괴롭다.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회사원일 뿐인데 비리를 폭로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인권과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하니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의 간섭과 횡포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시대는 있지도 않았다. 그런 것처럼 보인 때가 잠깐 있었을 뿐이다.
공영방송과 극소수 독립언론 말고는 어느 언론사도 저널리즘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규범이 현실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젠 그마저 그만두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게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을 변경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96~97 페이지)
하지만 윤석열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취임사에서 비판했던 반지성주의 행동을 자신이 한다. 설마 알면서 그렇게 하겠는가. 몰라서 그러는 게다. 모르면 말과 행동이 상충할 수 있다. 그것 말고는 해석할 길이 없다. 그는 반지성주의자가 아니라 '무지성'이다. 그냥 뭘 모른다. 그런데도 언론은 모른 체 한다. 2022년 5월 8일까지 시퍼렇게 날이 섰던 기자들의 비판 정신은 윤석열 취임과 동시에 사라졌다.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을 문재인 정부 검찰이 탈탈 털었는데도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는다. 검찰은 김건희를 건드린 적도 없다. 소환조사 한 번 하지 않았다. 남편이 검찰총장인데, 감히 어느 검사가 그렇게 했겠는가. 윤석열은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고 사실이 아닌 주장을 진지하게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고 말한다. (165 페이지)
어느 쪽이 이길까? 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나 정의가 이긴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싸움은 강한 자가 이긴다. 이긴 자가 의롭지 않으면 불의가 판을 친다. 어떤 불의는 한 세대가 흘러도 바로잡지 못한다. 정의도 가끔은 이긴다. 역사를 보면 그렇다. 이번 싸움은 윤석열이 진다. 그는 강하지 않다. 강하다고 착각해서 강한 척을 할 뿐이다. 유능하지도 않다.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 몰라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국민이 불신하고 미워하는 대통령의 권력은 역사의 밀물이 들면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27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