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마흐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과학철학자이다. 물리학자로도 충격파 연구에 기여하여 물체의 속력을 음속에 대비한 마하 수(Mach number)라는 것이 쓰인다[1]. 그는 특히 과학철학자로 큰 영향을 남겼는데, 물리학이란 경험만을 기술해야 하며 그 이면의 실재에 대한 가정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대표적인 예가 원자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원자는 당시 이미 화학자들이 활용하여 화학반응을 설명하는 매우 유용한 개념이었다. 같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인 루트비히 볼츠만은 원자의 운동으로 열역학의 법칙들을 설명했는데, 마흐는 볼츠만의 방법론에 대해 볼츠만과 큰 논쟁을 벌였다. 압력, 온도, 부피 등의 거시지표를 이용한 열역학 법칙은 그 자체로 충분하며 여기에 원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 법칙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마흐의 입장이었다. 경험으로 관찰가능하지 않은 개념—원자—를 물리학에 도입하는 것은 형이상학이라는 것이었다. 이 논쟁은 1900년대 초까지 이어져 볼츠만은 결국 우울증으로 인해 1906년에 자살을 하고 만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경험비판론(Empirio-criticism)’은 철학과 현대물리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철학적으로는 논리실증주의와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에 영향을 끼쳤고, 물리학에서는 20세기 초의 젊은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의 탄생에 기여했다. 로벨리는 마흐가 물리학에 끼친 과학철학적 영향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마흐가 논쟁의 주요 타깃으로 삼은 것은 18세기 기계론이었습니다. 즉, 모든 현상은 공간 속을 이동하는 물질 입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생각이죠. 마흐는 과학이 발전하면서 ‘물질’이라는 개념이 정당하지 않은 ‘형이상학적’ 가정이라는 사실이 밝여졌다고 주장합니다. 기계론적 물질관은 한동안 유효한 모델이었지만, 그것이 형이상학적 선입견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흐는 과학모든 ‘형이상학적’ 가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식은 오로지 ‘관찰 가능한 것’에만 근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

  마흐는 감각 너머에 있는 가상의 실재를 추론하거나 추측하는 것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감각들을 효율적으로 조직화하려는 시도야말로 지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흐가 보기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세계는 감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각의 ‘배후’에 있는 것에 관한 그 어떤 가정도 모두 ‘형이상학’으로 의심받습니다. (148~149 페이지)


로벨리는 마흐와 마흐의 뒤를 이어 경험비판론을 제기하는 러시아의 보그다노프, 그리고 이를 비판하는 레닌의 얘기까지 풀어놓으며 마흐의 철학에 대해 논의한다. 위의 인용에 나온 대로, “모든 현상은 공간 속을 이동하는 물질 입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18세기 기계론”의 타파에 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흐는 문학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20세기 최고의 소설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의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과 <특성 없는 남자>를 로벨리는 언급한다. 무질은 마흐에 대해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고 한다.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에 무질을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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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통 초음속 비행기의 속력을 얘기할 때 마하 1.5와 같이 쓰인다. 비행기의 속력이 음속(약 340 m/s)의 1.5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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