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 만화로 배우는 우주와 블랙홀의 비밀 한빛비즈 교양툰 17
로랑 셰페르 지음, 이정은 옮김, 과포화된 과학드립 물리학 연구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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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셰페르Laurent Schafer라는 스위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과학 만화이다. 원서는 프랑스어로 출간됐는데 프랑스 아마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였다고 표지에 나와있다. 15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이지만 다루는 내용은 엄청나다. 


책은 크게 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우주이고 두 번째는 양자이다. 각각 "우주의 무한"과 "양자의 무한"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인피니티"는 우리말로 '무한'이므로 혹시 무한의 수학적 성질을 다루는 것일까 읽기 전에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엄청나게 큰(또는 작은)'이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다. "우주의 무한"은 '엄청나게 큰'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양자의 무한"은 '엄청나게 작은' 원자와 소립자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준다. 단순한 교과서적 설명을 넘어서서 아직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언급하는 수준을 보여준다. 예컨대 자연계의 4가지 힘이라는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 중 중력만 현재 통합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것이 어려운 이유도 언급된다. 자연계의 이 4가지 힘을 네 명의 총사(musketeer)에 비유하는 것도 재밌다. 여기서도 일종의 프랑스어권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읽으며 내게 인상 깊었던 2가지를 다음에 정리해 놓는다.


1. 색깔은 존재하지 않는다: 색깔은 우리의 뇌가 광자의 신호를 처리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자연계의 본질적 특성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보통 우리는 생각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우리 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뇌가 만들어내는 '가상현실'에서 살고 있다.


2. 진공의 역할: 진공은 자연계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맡고 있다. 진공은 가상 입자들로 꽉 차 있는데(또는 가상 입자들이 순식간에 생겨났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이 가상 입자들은 (놀랍게도) 물질의 질량뿐만 아니라 물질이 붕괴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쿼크, 전자) 간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은 가상 입자인데, 이 매개 입자들의 에너지가 질량으로 환산되어 핵자의 질량을 만들어내고, 또한 가상이므로 힘만 매개할 뿐 물질 밖으로 (파동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만화라고 얕볼 설명들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짧은 분량이 이해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용어설명도 뒤에 있다. 이 책의 내용으로 맛보기한 다음, 좀 더 자세한 논의는 마지막에 나오는 참고문헌을 찾아 읽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에는 우리말로 번역된 책 제목도 나온다.


본문에 "근대 물리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modern physics(불어에 대응하는 영어 문구)를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modern이라는 말이 맥락에 따라 '근대'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물리학에서는 modern physics를 '현대 물리학'이라고 한다. 20세기 초에 발전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뭉뚱그려 부르는 말이다. 역자는 modern을 계속 "근대"로 번역했다.


불만족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좋은 입문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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