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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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및 과학철학에 대한 소개서이다. 대학 교양과정의 교재 느낌이 충만하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과학철학의 기본 개념 소개, 2부는 인류 과학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의 전환 설명, 그리고 마지막 3부는 현대 물리학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생물학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진화론에 대한 논의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적절한 구성과 내용이고, 내가 대학 다닐 때 이런 내용으로 수업을 들었다면 얼마나 개념이 잘 정리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의 단점은 너무 교과서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문장이 굉장히 건조한데, 원서도 아마 그렇겠지만, 딱딱 끊어 번역하는 역자도 이런 느낌에 한몫 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개념 정리 뿐만 아니라 특히 유용했던 것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의 천재들이 출현하는 1600년 무렵까지 서구의 세계관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이마이오스의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다[1]. 특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체계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자세했다. 이후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를 거쳐 뉴턴에 이르러 정점에 다다르는 세계관의 혁명에 대한 설명은 알고 있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매우 흥미로웠다.


양자역학이 우리의 실재 관념에 제기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는데, 이 책의 3부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벨의 부등식에 대한 논의도 생각만큼 엄밀하지 않다. 입문서가 갖는 한계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특히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인식의 전환을 강조하며, 현재 우리는 1600년대와 같은, 새로운 세계관을 찾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우주가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유기체, 뉴턴의 세계관은 우주가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라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그려주었다. 비국소성을 보여주는 양자역학의 세계관은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그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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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페르니쿠스(1473~1543), 케플러(1571~1630), 갈릴레이(1564~1642), 뉴턴(1643~1727)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런 방정식이 물체가 운동하는 방식을 탁월하게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지만, 그 물체가 그런 방식으로 운동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불가지론을 고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정식 특히 중력 방정식을 사용해 뛰어난 예측을 제시할 수 있지만, 중력이 '실재하는' 힘이냐 아니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198 페이지)

  낙하하는 공과 연관된 방정식 같은 경우 틀림없는 사실은 우리가 대체로 동의하는 해석이 심지어 우리가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감춘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수학을 해석하지만,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수학을 해석하며, 수백 년 동안 그렇게 해온 결과 수학을 이용해 세상을 예측하려면 그 수학을 세상과 연관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수학을 세상과 연결하는 방식은 수학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수학을 해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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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강조하지만, 양자론 수학은 절대 묘한 것이 아니다. 그 수학의 해석이 묘한 것이다. 이 책 앞부분에서 (8장에서 도구주의와 실재론을 논의하며) 언급한 요지를 여기서 다시 떠올리면 좋을 듯싶다. 그처럼 묘하게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이론, 이 경우 양자론에 대해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키는 것은 일반적이고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양자론에 대해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키는 것은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론 수학이 있다. 그 수학을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 수학을 이용하면 대단히 정확하고 신뢰성 있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423~42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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