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사 2 - 광기와 망상의 폭주 전쟁과 평화 학술총서 1
일본역사학연구회 지음, 아르고(ARGO)인문사회연구소 엮음, 방일권 외 옮김 / 채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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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전쟁사 책이다. 1953년 일본에서 일본역사학연구회 소속 학자들이 저술하여 발간된 책인데 요즘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번역서 1권은 2017년 12월, 2권은 19년 12월에 출간됐다. 원저는 총 5권인데, 만주사변을 다룬 1권, 중일전쟁을 다룬 2권은 번역서 <태평양전쟁사 1>로 출간됐고, 이 2권은 원저 3권, 4권의 태평양전쟁 전기와 태평양전쟁 후기를 묶은 것이다. "패망의 잿더미에서 토해 낸 일본 지성의 참회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사회주의 계열의 역사학자들이 저술한 책으로서 소련 및 중국 공산당에게 매우 호의적인 서술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패전 직후인 만큼 당시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관점에 의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 내용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 의미에서의 전쟁사 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2권은 태평양전쟁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전반에 대해서도 서술된다. 저자들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책에 나온 다음의 첫 문단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대 영국.프랑스 간의 제국주의 전쟁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전 세계적 규모의 독점자본주의 모순이 폭발한 것이며, 식민지와 시장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던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대립과 분열이 발생하면서 벌어진 재앙이었다. 지구상의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희생양삼아 나치 독일이 침략하게 만듦으로써 자본주의의 누적된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 제국주의자들의 공통된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결과 전쟁은 뜻하지 않게 영국.프랑스와 독일의 충돌이라는 형태로 발발하였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위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또한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이 폭발한 것은 각국 정치 지도자의 의지와 능력을 넘어서는 필연적이면서도 불가피한 현상이었으며, 그로 인해 세계대전은 발발할 수밖에 없었다. (19 페이지)


대공황과 같은 경제적 문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단순한 결론을 내리는 것에는 불만을 표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사회주의에 대해 지속적으로 호의적인 평을 내리며 그 공을 과장한다. 몇 군데 예를 다음에 적는다.


1941년 크리스마스에 독일의 선전부 장관 괴벨스Paul J. Goebbels는 소련 중공업의 1/2을 포함한 지역이 독일 손에 들어왔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실제로 소비에트가 상실한 지역은 소비에트 생산액의 1/3 이상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공업생산은 오히려 상승했으며 동부의 산업시설은 소련군이 필요로 하는 전쟁물자의 90% 이상을 공급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주로 미국이 무기를 대여했지만, 그것은 소비에트가 필요로 하는 양의 4%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소비에트의 공업은 거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독일과의 전쟁을 버티고 있었다. (53 페이지)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2차세계대전의 결정적인 전기가 되었다. 소비에트군은 스탈린그라드를 지켜냄으로서 인류를 파시즘에서 구원하였다. 당시 맥아더 원수조차도 "문명의 희망은 용감한 러시아군의 고귀한 깃발에 달려 있다"고 말했고, "내 평생 지금까지 무적을 자랑해온 독일군의 대규모 공격에 맞서서 이토록 효과적인 저항을 한 전투를 본 적이 없다.... 그 규모의 웅대함이야말로 역사상 최대의 군사적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Schuman, International Politics)며 소비에트군의 업적을 칭송했다. 실제로 일본군에게 필리핀을 빼앗기고 멀리 호주까지 도망친 맥아더가 이후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비에트군과 인민들이 승리를 거둔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335 페이지)


중국에서는 지주와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제스 정권이 내부적으로는 반혁명의 입장을 취하면서 외부적으로는 일본에 대한 항전을 포기하고 끊임없이 타협하려고만 했다. 따라서 이러한 국민당을 움직여 1938년의 항일통일전선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와 봉건주의에 대한 반대를 결합시킨 중국 민중들의 노력에 있으며, 이를 지도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었다... 1940년에 마오쩌둥이 발표한 '신민주주의론'은 이러한 새로운 민족혁명의 기본적인 방향을 밝힌 것으로, 이로 인해 전후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인민민주주의 국가들, 또한 제국주의 국가들 내의 혁명세력인 노동자.농민들과의 국제적인 연대가 기존과는 질적으로 다른 견고한 것이 되었다. (530~531 페이지) 


지금의 시점에서 이런 서술들을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전황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 경제에 대한 여러 통계가 나오긴 하지만, 이 책을 전쟁사 책으로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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