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 - 일방통행에 들어선 청춘에게
전아론 지음 / 샘터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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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다.

이 단어만으로 얼마나 어른스럽게 느꼈던 그 시간이 소중했었는지...

수많은 사회적 변화 탓에 아파야 청춘이고, 미약한 열정 청춘이라는 말로 청춘들을 뭉개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 번은 온몸으로 열병을 앓아가며 지나가야 하는 것 역시 청춘이다.


청춘을 오래전에 보냈었고, 지금은 그 청춘의 풋풋함이 가물가물해지는 지금의 시점에서 청춘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책을 본다.


청춘들과 가장 많이 부볐을 <대학내일>의 편집장이기 때문에 청춘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런 청춘들의 이야기와 작가의 청춘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두런두런 이야기한다.

뭐.. 딱히 답을 내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때의 청춘은 이랬었고, 그때의 생각은 이랬었고. 또는 그때의 풋내는 이랬었다. 그때의 아픔은 이랬었다..라는 것을 함께 떠올리는 이야기라고 하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가 빛나는 예외>

청춘은 모두가 빛나는 존재이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 무엇의 틀에 아지 박혀지지 않은 예외적인 존재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직은 두렵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 더 많지만, 지금 청춘이라는 땅을 디디고 있는 그대는 아주 빛나고 있는 존재임을 말이다.


책에 이런 글이 있다.


하지만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순식간에 내던져진 대학생 아이들은 갑자기 시작된 '존재 인식' 때문에 마음이 바빴으리라 생각한다. 성년이 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아직 되고 싶은 생각도 없을지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택하는 성년과 미성년의 중간 지점 혹은 그 두 지점을 약간 비껴간 어딘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늘 짐작해왔다.

(중략)

成年이란 말에는 움직임이 내포되어 있다. 움직여서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이들을 성년이라 부른다.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그렇게 될 이들을 미성년이라 부른다. '이미'그렇게 되지 않은 이들은, 그러니 비성년이라 부르기로 하자. 미성년은 대기 중이고 비성년은 열외에 있다.

비성년이란 단어에 '아하!'라는 동감을 한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수많은 제약 속에서 성장을 했다. 오로지 대학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달리기만 시켰다. 그래놓고 덜컥 성년의 울타리를 넘어서고 나서는 너 알아서 하란다. 주춤하면 꿈도 없냐고 한다. 미흡하면 그것도 못하냐고 한다.

그들은 아직 완전한 성년이 아니다.

비성년인 청춘이다.


비성년의 청춘들이 성년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갈등과 아픔과 그리고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필히 경험을 해야 한다.

두렵다는 것은 당연하다. 두려움을 감추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에 주춤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청춘의 모습 그 자체이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속에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너와 내가 다를 뿐, 너의 생각과 나의 청춘이 다른 뿐

하지만 청춘들은 그 불안한 선 위에 서 있겠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빛나는 존재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게 된다.


비성년의 청춘을 달리고 있는 두 아이가 있다.

어린이에서 미성년으로 자랄 때까지 그저 목표만 향해 달리자고 어르고 달래고 재촉을 했다. 나 역시 그 청춘을 보내왔으면서도 내 아이들에게 똑같은 무게를 실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이제 청춘이라는 타이틀을 멋지게 걸고 있다.

부모의 시선이 되어보니 또 다른 시각으로 해석을 하려고만 한다.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를 읽으면서 잠시의 반성을 해본다.

아직 미흡한 청춘이 답인데 왜 나는 또 어른의 행세를 하려고만 했을까라고 말이다.


미흡하고 불안정해도 그들이 필히 짚어가는 하는 과정임을 인정해야겠다.

누구의 생각이 아닌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그런 시간, 그런 여유, 그런 기다림을 줘야겠다.

청춘들에게는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되겠지만, 부모에게는 좀 더 넒게,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도록 건드려주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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