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초중반은 별로였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전개 속도감이 대단하다는, 정말로 이 문장 자체를 떠올렸다. 손을 떼지 못했다. 읽다 보면 독일 사회상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아 스릴러 장르를 거의 쏟아내다시피 하는 미국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하층 노동계급의 삶이 생각보다는 안정되어 보인다는 게 글에서 느껴진다.


읽다 보면 독일 사회상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아 스릴러 장르를 거의 쏟아내다시피 하는 미국의 작품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이를테면, 하층 노동계급의 삶이 생각보다는 안정되어 보인다는 게 글에서 느껴진다.


여느 스릴러 작품이 그렇듯 문장이 아름답진 않다. 한편, 많은 느낌표를 사용해 속도감과 과장된 심리묘사나 전개를 보여준다. 굳이 스크랩할 표현은 찾기 힘들었다.


남자 다섯이 맥주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흐리멍덩한 눈빛을 보니 그것이 첫 번째 맥주잔도 아니고 마지막 맥주잔도 아니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정 -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사실 도탄에 빠져 있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리버럴과 중도를 대상으로 발간된 것이다.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얇은 탓에 소책자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하지 않나 생각되기도 한다. 한편으론 지침서나 강령이라고 하는 건 어떨까 갈등한다. 책이 비싼 미국에서도 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대략 7천 원이면 살 수 있고, e-book으로 보면 거의 그 절반에 살 수 있을 만큼 싸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는 이 책보다 훨씬 학술적 가치가 높은 동저자의 'Bloodlands: Europe Between Hitler and Stalin' 대신 이걸 출판했다. 소제에서 알 수 있듯 해당 책은 『폭정』에 간간이 인용되는 사료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라 훨씬 더 중요하다. 인기, 그래 좋다. 깔 건 많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왜 제본을 페이퍼백이 아닌 하드커버로 한 건지에 대해서도 머리 위에 물음표가 자연스레 생긴다. 가격은 더욱 충격적이다. 페이지 수 그리고 원가와 같은 기준을 두고 비교했을 때 폭리 수준이 아닌가. 마음에 안 든다. 더 할애하고 싶지 않으니 이만 하자.


이 책의 내용은 한국의 정치를 가까이 했던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 못해 진부하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이 책의 핵심은 사실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 혹은 노무현 대통령의 '깨어있는 시민' 같은 구호와 맞닿아 있다. 2002년 '노사모'도 한 예시다. 쉽게 말하면, 시민 각각은 주체가 되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걸 거의 그대로 이 책이 반복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이런 내용을 처음 설파한 사람은 물론 한국의 저들은 아닐 테지만, 2017년 미국에서 다시 이런 논지가 주류 리버럴의 책상 위로 모인다는 것은 생각해볼 만하다. 사실 이러한 양태는 어느정도 예측가능한 부분이 있는데, 트럼프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의 일부를 깔끔하게 재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결 방법 또한 2011년 '혁신과통합'처럼 시민사회와 당이 강하게 결합한다든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도록 운동을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게끔 만드는 것인 한국의 리버럴이 고군분투한 과정일 것이다.

따라서 굳이 한국인들이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 특히나 정치적으로 경험치를 충분히 쌓아온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용의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 비싼 돈 주고 이 책을 읽는 건 낭비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이 책의 10장은 나름 괜찮은 글이라 소개한다.


10 Believe in truth (주– 작년 미국 대선판을 강타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인 'post-truth'에 대비되도록 제목을 잡은 듯하다.)

To abandon facts is to abandon freedom. If nothing is true, then no one can criticize power, because there is no basis upon which to do so. If nothing is true, then all is spectacle. The biggest wallet pays for the most blinding lights.

You submit to tyranny when you renounce the difference between what you want to hear and what is actually the case. This renunciation of reality can feel natural and pleasant, but the result is your demise as an individual—and thus the collapse of any political system that depends upon individualism. As observers of totalitarianism such as Victor Klemperer noticed, truth dies in four modes, all of which we have just witnessed.

The first mode is the open hostility to verifiable reality, which takes the form of presenting inventions and lies as if they were facts. The President does this at a high rate and at a fast pace. One attempt during the 2016 campaign to track his utterances found that 78 percent of his factual claims were false. This proportion is so high that it makes the correct assertions seem like unintended oversights on the path toward total fiction. Demeaning the world as it is begins the creation of a fictional counterworld.

The second mode is shamanistic incantation. As Klemperer noted, the fascist style depends upon “endless repetition,” designed to make the fictional plausible and the criminal desirable. The systematic use of nicknames such as “Lyin’ Ted” and “Crooked Hillary” displaced certain character traits that might more appropriately have been affixed to the President himself. Yet through blunt repetition over Twitter, our President managed the transformation of individuals into stereotypes that people then spoke aloud. At rallies, the repeated chants of “Build that wall” and “Lock her up” did not describe anything that the President had specific plans to do, but their very grandiosity established a connection between him and his audience.

The next mode is magical thinking, or the open embrace of contradiction. The President’s campaign involved the promises of cutting taxes for everyone, eliminating the national debt, and increasing spending on both social policy and national defense. These promises mutually contradict. It is as if a farmer said he were taking an egg from the henhouse, boiling it whole and serving it to his wife, and also poaching it and serving it to his children, and then returning it to the hen unbroken, and then watching as the chick hatches.

Accepting untruth of this radical kind requires a blatant abandonment of reason. Klemperer’s descriptions of losing friends in Germany in 1933 over the issue of magical thinking ring eerily true today. One of his former students implored him to “abandon yourself to your feelings, and you must always focus on the Führer’s greatness, rather than on the discomfort you are feeling at present.” Twelve years later, after all the atrocities, and at the end of a war that Germany had clearly lost, an amputated soldier told Klemperer that Hitler “has never lied yet. I believe in Hitler.”

The final mode is misplaced faith. It involves the sort of self-deifying claims the President made when he said that “I alone can solve it” or “I am your voice.” When faith descends from heaven to earth in this way, no room remains for the small truths of our individual discernment and experience. What terrified Klemperer was the way that this transition seemed permanent. Once truth had become oracular rather than factual, evidence was irrelevant. At the end of the war a worker told Klemperer that “understanding is useless, you have to have faith. I believe in the Führer.”

Eugène Ionesco, the great Romanian playwright, watched one friend after another slip away into the language of fascism in the 1930s. The experience became the basis for his 1959 absurdist play, Rhinoceros, in which those who fall prey to propaganda are transformed into giant horned beasts. Of his own personal experiences Ionesco wrote:

University professors, students, intellectuals were turning Nazi, becoming Iron Guards, one after the other. At the beginning, certainly they were not Nazis. About fifteen of us would get together to talk and to try to find arguments opposing theirs. It was not easy. . . . From time to time, one of our friends said: “I don’t agree with them, to be sure, but on certain points, nevertheless, I must admit, for example, the Jews . . . ,” etc. And this was a symptom. Three weeks later, this person would become a Nazi. He was caught in the mechanism, he accepted everything, he became a rhinoceros. Towards the end, only three or four of us were still resisting.

Ionesco’s aim was to help us see just how bizarre propaganda actually is, but how normal it seems to those who yield to it. By using the absurd image of the rhinoceros, Ionesco was trying to shock people into noticing the strangeness of what was actually happening.

The rhinoceri are roaming through our neurological savannahs. We now find ourselves very much concerned with something we call “post-truth,” and we tend to think that its scorn of everyday facts and its construction of alternative realities is something new or postmodern. Yet there is little here that George Orwell did not capture seven decades ago in his notion of “doublethink.” In its philosophy, post-truth restores precisely the fascist attitude to truth—and that is why nothing in our own world would startle Klemperer or Ionesco.

Fascists despised the small truths of daily existence, loved slogans that resonated like a new religion, and preferred creative myths to history or journalism. They used new media, which at the time was radio, to create a drumbeat of propaganda that aroused feelings before people had time to ascertain facts. And now, as then, many people confused faith in a hugely flawed leader with the truth about the world we all share.

Post-truth is pre-fascis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로운 연주를 위한 이상적인 연습방법
M.Bruser 지음, 김명서 옮김 / 한양대학교출판부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문학 도서를 읽으면서 새겨둬야 할 것 같은 문장은 대부분 에버노트에 적는다. 이 책은 그러기에는 난해한 부류 중 하나라 일부만 여기 끄적이고 말기로 했다.


특히 분투의 위험한 형태는 몸이 아플 때까지 연습하는 것이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근육을 지나치게 사용했거나 지나치게 힘을 주어 잘못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연주가들이 손, 팔, 목, 허리, 턱, 입술, 또는 성대에 부상을 입어 오랫동안 어떤 경우에는 영원히, 연주하거나 노래할 수 없게 된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피아니스트 Leon Fleisher의 경우이다. 그의 국제적 명성은 오른손의 부상으로 갑작스레 끝나게 됐다.(p.36)


지나친 완벽주의와 경쟁심을 지나친 연습과 긴장을 야기하여 아예 연주를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의사들은 이것을 과용 신드롬 (overuse syndrome)이라고 부른다.(p.38)


속도는 점차 생깁니다. 같은 패시지를 열 번 정도 연습하면 더 빠르게 치려고 하지 않아도 빨라지게 됩니다. Artur Schnabel은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실수를 많이 했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연주했기 때문에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p.42)


연주하지 않는 손가락을 건반 위에 놓으면 손과 팔뚝에 긴장이 적어 손이 편안하고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또한 손을 편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펴고 있으면 안 된다. 손을 편 채로 연주하면 자연스런 손 모양으로 연주할 때보다 힘이 더 들게 된다.(pp.130-131)


독일어에는 '음악적'이란 뜻의 단어가 두 개 있다. Musikantisch는 생리학적으로 음악적이란 뜻으로 음악을 듣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유형의 음악성에는 초견이나 음감이 좋다거나 쉽게 암기하는 능력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Musikalisch는 예술적 음악성을 뜻한다.(p.260)


좋은 내용이 담겨 있는데, 옛날 책이다 보니 편집이 너무 구식이고 폰트 가독성이 처참하다. 신체 공학이 대주제인데, 사진 사용이 적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것도 많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조금만 칭얼대기로 하자. 성경. 왜 그렇게 성경 이야기가 많은지, 난 신학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의식의 흐름이 널려 있는데, 흥미로운 문장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나마 관심을 끈 문장이 더러 있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굉장히 암울한 나날들이었다. 그는 구약 성서 속 세상에 살고 있었다. 만행과 응징의 땅에.(p.33)


비이성적인 현실과 마주했을 때 합리성은 강력한 적이 될 수 있다.(p.226)


역자 말대로 중반부 이후로는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대화문의 기복은 너무나 들쭉날쭉해서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 같기도 하다. 암호 자체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독자들이 풀기 부적절한 턱에 분위기만 믿고 가는 것이다. 스토리라인이 치밀하진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드 타임 아이스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야마다 에이미의 책은 이걸로 세 번째인데, 볼 때마다 세심하고 감정적인 표현에 경탄한다. 굳이 인용해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이곳에 옮겨 둔다. 등장인물의 이름 일부는 인칭대명사로 대체했다.


썩은 냄새에 가까운, 그러나 결코 불쾌하지 않은, 아니 불쾌하지 않은 게 아니라 더러운 것에 침범당함으로써 나 자신이 맑은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그런 냄새. 그의 냄새는 나에게 우월감을 주었다.(p.11)


그의 욕설은 아주 음악적으로 들린다. 욕이 안 든 우등생 영어는 지금의 나에겐 불능의 남자가 마시는 김빠진 맥주나 다름없다. 그가 나를 bitch라고 부를 때, 나는 사랑스러운 동지를 보는 기분이다. 그가 bitch 같은 남자라는 것을 전제로.(p.27)


마리아 언니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참으로 멋진 취향을 가졌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편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질투라는 감정을 강렬하게 맛보았다. 최후의 한 방울까지 나를 마셔 버리기 전에 컵을 놓아 버리다니. 행실이 나쁜 그를 경멸하려 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를 경멸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경멸하는 일이었다.(p.59)


마리아 언니는 입을 쩍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는 나를 곁눈으로 살피면서 옆에 있던 가운을 걸쳤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만일 그 말에 주가 달려 있었다면 나는 서둘러 다음 페이지를 펼쳤을 것이다.
"킴, 네 탓이야."
그래도 모르겠느냐는 듯 마리아 언니는 그 말로 나를 찔렀다.
"무슨 말이야? 모르겠어, 난."
말라 버린 입술을 억지로 적시며 나는 말을 이었다.
"난 우연히 언니에게 그를 만나게 한 것뿐이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남자를 슬쩍한 건 당신이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그녀를 "당신"이라고 불렀다.
"슬쩍하지 않았어."
"슬쩍했어! 그는 내 거야!"
그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이 사실은 그를 소유하고 있다는 만족감이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넌 그의 것이고."
"그럼."
"……그러니까 내 것이기도 한 거 아냐?"
"?"
당신은 늘 나에게 어려운 문제를 던져.
나는 마리아 언니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100년간 창고에 잠들어 있던 황금색 숱같이 아득하니 젖은 눈을 하고 있다. 나는 늘 이 눈에 취해 나 자신의 추함을 자각하고, 내가 관계했던 남자를 그녀에게 맡겨 확인하고, 스스로를 열등생처럼 느끼면서 안식을 얻었다. 그녀는 버림받고 가련한 나에게 절대적 존재였다.(pp.61-63)


사랑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떠올릴 수 없다. 나는 마리아 언니에게 그 생각을 전했다.
"그건 네가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사람은. 한가운데 있는 건 그가 아닌가.(p.64)


"네가 한가운데 있는 거야." 하고 마리아 언니는 다시 말했다.
"둘이서 나를 괴롭히지 말아 줘."
나는 울었다.
"울면 안 돼, 베이비."
"울지 마, 나의 킴."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사랑해, 킴."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오랫동안 동경해 왔던 여자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내가 그녀에 대한 동경을 그만둔 후에.(p.65)


"사랑해?"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늘 당연하다고 그냥 흘려 버리는, 우리 사이에서 가장 가볍고도 의미 없는 말. 그 말이 가볍게 내뱉을 수 없는, 농도 짙은 어떤 것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p.71)


그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징그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쯧쯧, 내 모든 것이 너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이 피부를 좀 봐. 손가락으로 누르면 들어가잖아. 손가락을 떼면 같은 속도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p.73)


특히 가장 처음 인용한 부분인 "썩은 냄새에 가까운, 그러나 결코 불쾌하지 않은, 아니 불쾌하지 않은 게 아니라 더러운 것에 침범당함으로써 나 자신이 맑은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그런 냄새. 그의 냄새는 나에게 우월감을 주었다."는 이야기 초반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는데, 아주 훌륭하게 요약된 것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