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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7년 - 문(問):지승호 답(答):김의성
김의성.지승호 지음 / 안나푸르나 / 2018년 2월
평점 :
에필로그까지 이 책을 다 읽은 후, 프롤로그로 돌아가 책을 다시 읽었다.
그러자 느낌이 선명해지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읽었고,
읽기를 잘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처음 읽기 시직했을때는 동치미 국물 없이 고구마를 먹는 것처럼 답답했다.
실은 지난번 페이퍼에서 인용하고 싶었던 구절은 프롤로그의 이 부분이었다.
책을 읽는 분들이 7년 동안 악당으로 살아온 비루한 배우와 조울증이 심한 인터뷰어 간의 이 한심한 대화를 통해 웃고 위로받기를 바라며, 혹 상처받는 분이 없기를 또한 바란다.(5쪽)
지승호 님의 인터뷰집은 분야가 다양하기도 하려니와 좀 많이 챙겨본 편이라서,
지승호 님쪽으로 힘을 실어서 보면 이 책이 막 새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김의성 님이 누군지는 얼핏 알았지만, 내 머릿속에 크게 각인되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가끔 보기는 하지만 꼬박꼬박 챙겨보지는 않고,
때문에 그가 연기를 잘 하거나 못 하거나 해서 그가 극중에서 연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지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라고 하기엔 내 취향에서 좀 비껴가니까,
그냥 한 세대를 그렇게 보이게 보이지 않게 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지승호 님의 인터뷰집이라고 해서 펼쳐들게 되었다.
이웃 알라디너가 지승호 님을 일컬어, '요란했던 우울의 포즈만 기억난다'고 했는데,
프롤로그의 '조울증이 심한 인터뷰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였다.
고구마를 먹고 동치미 국물을 안 먹은 듯한 꽉 막힌 답답함은 중후반 정도까지 이어졌는데,
이게 김의성 님의,
'지킬게 많아서 조심할거다(317쪽)'의 일환이란건 이 책 말미에 가서 깨달았다.
앞부분을 읽으면서는,
너무 겸손하니까...
단어 하나 하나를 갖고 의미를 수정하고 정의를 다시 하고,
같은 질문을 쪼개고 뭉치면서 이러저러하게 다시 질문을 시도하다보니까 진도가 안 나가는 느낌이었다.
이게 인터뷰집이니까 대화다 생각하면 얼마나 휙휙 지나갔을런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 이 분이 낯설고,
어떤 표정과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상황을 듣는게 아니라,
상황을 읽다보니까,
글이 중량감 있게 다가와서,
'되게 잘난체 하네'라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분이 어떻게 이미지 관리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신다니까,
그런 점들은 좀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미지 관리법이나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보다 살짝 연장자이긴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해야 하고,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같이 어울리고 이끌어주고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 지를 모색하는 것이 좋았다.
내가 사는 이 곳에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고,
외롭다 외롭다고 하면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낯선 것은 조금 있으면 낯이 익어지잖아요. 낯익어졌을 때 제 무기가 있지 않으면 다시 똑같아지는 거니까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기 전에 뭔가를 해야 된다는 부담은 좀 있었죠.(웃음)(19쪽)
내가 좋아하는 '중식이 밴드'를 언급하는 부분도 좋았다.
이건 공권력이나 이런 쪽 뿐만 아니라, 반대로 이쪽 진영에서도 누군가의 밥줄을 끊으려고 하는 것 있잖아요. 그건 너무 만만한 사람들만 고르는 것 같아요. 중식이 밴드 같은 만만한 사람들, 실제로 밥줄이 끊어지거든요. 진짜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공권력만큼 사람들도 비겁하다고 생각해요.(29쪽)
뭐, 그렇다고 이 분이 전부 다 마음에 들었다는 건 아니다.
홍상수 감독 작품으로 데뷔했고,
홍상수 감독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나,
다른 배우들에 대해 목소리를 이렇게 저렇게 내는 부분 따위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나같은 사람도 있고...정도로 감정 정리를 했다, ㅋ~.
반가웠던 건 이 분 또한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고,
서울에서 살았던 갈현동이란 곳이 내게도 익숙하고 친근한 지명이라는 것이다.
(인터뷰집인데도 불구하고) 책의 앞부분에서는 말을 많이 아끼는 것 같았는데,
중후반으로 넘어갈수록 김의성 님 부분의 얘기도 길어지고,
웃음도 묻어나는 것이,
대화가 진행되는 느낌이 드는 게 좋았다.
암튼 이 책을 읽고 나서,
김의성 님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반가웠고,
그 색깔이 독특한 것이되 혼자 우뚝하거나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고 섞여서 또 다른 독특한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