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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늙을까 -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전하는 노년의 꿀팁
다이애너 애실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월
평점 :
언젠가 방영됐던 공유가 주연했던 드라마 '도깨비'를 보게 되면,
도깨비인 공유는 900살이 넘었는데, 그렇게 오래 사는 걸 죄를 지어 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도깨비 신부가 나타나 가슴팍에 꽂힌 검을 빼줘서 無로 돌아가는게 소원이라고 하게 된다.
타나토노트였던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보게 되면,
사형수를 대상으로 임계 체험을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사명감을 가진 한명이 돌아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너무 근사해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밝힌다.
하루종일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노인들이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당신들을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하여 당신들의 나이를 까먹고 살거나 나이값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있어도,
애늙은이처럼 살거나 나이 드는게 좋다는 사람들은 보질 못했다.
회고록의 성격을 띤 이 책을 책 뒷표지에 '독보적'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난 이 책보다 '헤닝 만켈'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더 좋았을 뿐이고~--;
암튼 그리하여 노인과 노년에 관하여 나는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착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러고 보면 여러 의미에서 내겐 좀 충격적이었던 것도 같다.
40대 후반인 나는 내가 때때로 노년이라고 느끼는데,
(아무리 양보를 해도 내가 하는 어떤 행동들은 중년의 그것이라고 봐 줄 수가 없다~--;)
다이애너 애실은 돌아가실 무렵 어머니를 모시면서 (나이 차이가 한 20세정도 날텐데-어머니가 100세이면 그녀가 80세) 어머니만을 노인이라고 생각한다.
나흘 밤은 어머니와 함께, 사흘 밤은 런던에서 지내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런던으로 돌아온 후 나는 침대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몸이 끔찍이 안 좋았다. 체온이 너무 낮아 체온계가 고장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원치 않은 저항이 끝나자 나는 원래의 컨디션을 되찾았고 생활을 상당히 잘 지탱해나갔는데, 노인과 함께 살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 어머니에게 맞는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어머니의 식사 시간에 맞춰 먹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정원을 손보면서 나 자신의 일은 한쪽으로 치워 버리는 것이다. 음악도 듣지 않는다. 보청기를 낀 어머니의 귀에는 이상하게 들리니까. 그리고 대화도 거의 어머니의 관심사에 대해서만 한다. 이제 어머니는 더 이상 다른 다른 사람의 필요나 취향에 적응할 수가 없는데다, 내가 어머니 곁에 있는 것은 당신의 필요나 취향을 실컷 충족해주기 위해서니까. 다행히 어머니의 열정적인 취미인 정원일은 나의 관심사이기도 해서 수월했다. 당시 제한된 시력에다 류머티즘에 걸린 손 때문에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뜨개질밖에 없었는데, 어머니의 뜨개질은 대담해서 자주색을 넣을지 말지, 요크에 새로운 패턴을 넣을지 말지를 두고 어머니와 토론하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다.(29~30쪽)
이 책이 좀 충격적이라고 한 것은 이런 부분을 봐도 알 수 있다.
ㆍㆍㆍㆍㆍㆍ공짜로 얻은 충성은 봉건제도 하에서 두목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나 좋으라고 생긴 허세 가득한 개념이다. 배우자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친절과 배려이지 신의나 충실은 아닌 것 같다. 정절을 안 지킨다고 친절과 배려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킨다는 의미의 충실함은 존중하지만, 그것을 섹스에 대한 생각과 단단히 결부하는 건 내가 보기엔 짜증나는 일이다.아내는 반드시 남편에게 충실할 의무가 있다는 믿음의 기저에는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깊은 뿌리가 있다.(58~59쪽)
21세기를 사는 나도 (고루한줄 알지만~--;) 헤어나오기 쉽지 않은 개념인데, 다이애어 애실은 여유롭고 자유분망하다.
아니 어쩜 나로서는 꼬부랑 깽깽할머니로 늙어죽을때까지 받아들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나는 감정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불같이 달아오르다가 한풀 꺾이고나면,
온기만을 지닌 채로 늙어가기도 하겠지만,
한번에 한 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 관계에서 맺고 끊음은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이애너 애실은 그렇지도 않다.
결혼만 안 했다 뿐이지,
60대 이후로 20여년을 함께 산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좋아했던 또 다른 여자가 삶이 어려웠던 걸 알고는 삼각관계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는 걸 보면,
그녀를 쿨하다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나로써는 이해불가이다.
내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가 젊었을 적보다 훨씬 세련돼서 대다수가 -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은 확실히 그렇다 - 우리 때보다 손윗사람들과 휠씬 잘 지내는 것 같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할 거라 기대하거나 동년배 친구에게 청할 일을 그들에게 청해서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 그들이 너그러이 베푸는 건 뭐든 즐겁게 받으시라.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112~113쪽)
이런 인간 관계는 그녀가 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기 때문에 더 명쾌할 수도 있겠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나이나 직책에 따라서 역할이 결정되어 버리기도 한다.
연장자는 되더라도 꼰대는 되지말자고 다짐을 해본다.
우물쭈물하다보니 노년에 이르렀다고 할 수는 없다.
평균수명이 연장되어 노년이 더 길어질 것이다.
삶을 살면서 자연스레 죽음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할텐데,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 죽음에 다가간다는 의미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게 미니멀 라이프이다.
이건 삶의 몸집이나 규모에도 적용되지만,
감정적인 면, 마음가짐에도 통용된다.
그걸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나는 인간관계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특히나 남녀관계는. 하지만 사실들은 아직도 알고 싶다.(169쪽)
얘기는 책 얘기로 확장된다.
저 부분에서 사실들이 가리키는 것은 '논픽션'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제니 우글로가 쓴 뷰익의 전기를 언급하는데, 완벽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작품(172쪽)이라는데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헤닝만켈도 얘기했던 옛날에 좋아했던 책들을 다시 읽는 방식을 얘기한다.
음악은 보청기 사용등으로 음이 굴절되어 버리면 소음이 되어버린다.
그림은 그런대로 좋은 취미일 거 같고,
그녀 어머니의 좋은 취미이기도 했던 정원가꾸기도 추천한다.
아무리 하찮아도 살아있는 것들에서 삶의 진지함을 발견하게 된다.
노년이 길어진다는게,
살아있다는게,
축복인지 형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만큼은 후회없이 하루 하루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루 하루의 삶을 예상치 못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 표지는 나무고사리 그림이란다.
나무고사리를 키워볼 요량으로 주문했더니 10센티도 안 되는 작고 여린 이파리가 왔단다.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웃었다.
꽃은 이쁜데 금세 시들고,
나무는 좋은데 금세 안 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