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것 창비청소년시선 9
이정록 지음 / 창비교육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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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들과 교외로 드라이브를 갔다.

햇살은 좀 따가웠지만, 살랑 바람도 부는 것이 시작은 좋았다.

 

문제는 아들의 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하여 음악을 듣는 데서 발생했다.

평상시 나도 음악을 좋아하고,

좋은 음악에 온몸을 샤워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땐...준비가 안 됐었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는 멀티 테스킹이 안되는 인간이었는데,

그동안 멀티테스킹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왔었던 것이다.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해내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일을 벌려 놓고 그중 한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일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거다.

 

난 운전에만 엄청 집중을 했는데,

아들은 폰만 잠깐 만지작거린거 같은데,

차의 스피커에서 갑자기 음악이 쏟아져 나오니 깜.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뭐냐며 끄던지 줄이던지 하라고 소리를 '빽~' 지르자, 아들도 당황했나 보다.

대화도 안되고, 음악도 듣지 말라고 하고, 그럼 자기더러 묵언수행을 하라는 거냐고 툴툴거리는 거다.

엄마의 음악적 취향이 올드해진거냐며 한숨을 쉬는데, 거듭 밝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예전엔 여러가지 일을 하더라도 한가지에 집중을 하면 옆에서 굿을 해도 몰라서 괜찮았는데,

이젠 한가지 일을 하는데도 제대로 집중 하기까지 시동이 늦게 걸리니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몸이 취득하고 기억하는 방식대로,

타성에 젖어 일을 루틴으로 처리한다고 생각을 하면 왠지 슬퍼진다.

 

 

시인의 책들을 '좀' 읽었다.

우연히 만난 '불주사'가 너무 좋아서,

그 다음부턴 일부러 찾아 읽었었다.

 

산문집도 좋았고 그렇게 만난 동화, 동시집 등 리뷰로 옮기진 않았지만 제법 찾아 읽었다.

그리고 요번 청소년 시집이다.

마냥 좋다고 설레발을 쳐야겠지만,

여전히 좋지만,

솔직히 애기하자면,

이제 난 좀 식상하다~--;

 

그렇다고 허투루 읽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책 날개 안쪽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인을 꿈꾸기 시작했다'라는 구절과 '열아홉 번의 낙선 끝에'라는 구절이 진지하다 못해 무겁게 다가왔다.

늘 유머 코드가 탑재된, 유머를 해학으로 승화시킨 시를 쓰던 시인이 아니던가.

 

내가 식상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가 보여주는 언어유희가 늘 그런 식이라는 건데,

뭐, 어쩔것인가,

이제 이런 언어 유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받아들여야 하려나 보다.

 

아무래도 교육현장에 계시다 보니,

청소년의 입장을 잘 이해할테고,

그러다 보니 시 속에선 청소년인 발화자로 등장하지만, 그게 온전히 청소년의 목소리로 들리진 않는다.

 

장담컨대 이 시집에 등장하는 '노동 현장'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청소년들은 이 시집을 사거나 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 시집은 기성 세대라 통칭되는 어른들이 주변 청소년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한걸음 다가가기 위한 매개체 정도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는 이 또한 언어로 발화되고 시로 쓰여지는 순간 올드한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쏠림'이라는 시는 처음 읽으면서 거부감이 들었었다.

시가 그랬다는게 아니라,

시속에 등장하는 '사람이 키워서는 안 될 두마리 개' 얘기가 그랬는데,

전에 어디선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를 실어 신중하게 하는 김국진이 하는 걸 들었었고,

김태균도 비슷한 얘길 하는 걸 들었었다.

물론 그 후로 시는 다른 식으로 전개되니까 표절이나 차용은 아닐테지만,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개' 얘기가 시의 분위기를 충분히 장악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쏠림

 

실외 조회 시간에

사람이 키워서는 안 될

개 두 마리에 대해 들었다.

그건 편견과 선입견이라고 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돈으로

편견과 선입견을 분양받았을까

교과서나 문제집에 껴들어 왔겠지

가슴과 머리에 개털이 날린다면

그건 분명 어른들이 버린 개가 쳐들어온 거다

개는 비린내를 좋아한다

참치 갈치 삼치 준치처럼

맛난 물고기 이름은 대개 치 자로 끝난다

그러니까 눈치를 키워야 한다

척허면 척! 월척을 품어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도 눈치코치가 만든 거다

오동잎 하나 지는 걸 보면

천하에 가을이 온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편견과 선입견도 중심만 잡으면

강으로 모여 바다에 다다르고

앞산 뒷산 그러모아 산맥이 된다

올곧은 편견이 우주의 발소리를 듣는다

치우침이 아니라 쏠림이다

사랑은 내 편견의 총합,

처음 네 웃음을 보고

우주에 봄이 왔음을 알았듯

 

*"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 사람들 모두 가을이 온 줄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 청나라 강희제(1654~1722)때 간행된 『御定佩文齋廣群芳譜』에서.

 

'높임말'이라는 시도 같은 맥락에서 별 감흥이 없었다.

'사물'을 높인다는게 물질 숭배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외국 사람이 우리말을 배울때 제일 어려운 것이 '높임말'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사물을 의도적으로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높이고 낮추고, 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배우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문제인데,

사물이고 사람이고 간에 높임말 자체가 아예 없는 외국어가 낫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듯이 말이다.

 

좋았던 시는 여럿 있지만 그 중 '고양이'가 제일 좋았다.

 

고양이

 

내가 자동차 밑을 좋아하는 까닭은

덩치 큰 것들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지

나를 만나려면 눈을 내리깔고

무릎걸음으로 기어 들어와야 하지

고독을 아는 자는 그늘을 사랑하지

내 몸은 저음을 내쉬는 목관악기

자기 몸을 연주할 줄 안다는 건

어슬렁거릴 특권이 생겼다는 것이지

내가 담장 위를 산보하는 까닭이지

우쭐거리고 싶으면 따라 해 봐

나는 한치 두려움도 흔들림도 없지

내 꿈은 새털구름을 연주하는 것

간혹 발을 들어 구름의 맛을 보지

그러니까 넌 내 친구가 확실해

난 네 가슴속 먹구름의 환한 등짝을 알지

쥐새끼들을 부르르 떨게 할

무시무시한 악보를 협연할 수도 있지

누가 가슴속에다 악기를 넣어 두겠어

스스로 문을 닫고 처박힌 게 아니라

태풍의 눈을 지휘하고 싶은 거지

지금은 속도를 높일 때가 아니라

구름을 깔고 앉아 고독을 정비할때

(언젠가 집앞에서 만난 길냥이 가족)

 

'속도를 높일 때가 아니라, 구름을 깔고 앉아 고독을 정비할때'라니 너무 멋지다.

태풍의 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독의 정점일테니까 말이다.

나도 태풍의 한 가운데서, 홀로 잠잠할 수 있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쟁점의 한가운데 보다는 적당히 비켜서 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한걸음 떨어져서 지지해주고 지켜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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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7-09-05 18:5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음악적 취향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쇼미더머니까지 챙겨볼 정도로 힙합을 좋아하는걸 보면요.
듣는건 전방위로 듣는데,
배경음악으로 깔리는거 그런게 거북합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음악만 들어도 음악이 겉돌기도 하구요.
가끔은 음악 사이의 정적이랄까, 그런걸 원하게 되더라구요~^^

북다이제스터 2017-09-05 1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주변 상황보단 내 마음의 상황이 더 중요한 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죠. 우린 부처가 아니죠. ㅎ
충분히 이해될 뿐 아니라 깊이 공감됩니다. ^^

양철나무꾼 2017-09-06 14:28   좋아요 2 | URL
요즘은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려고 애를 씁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는 일에만,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에만,
음악을 들을 때도 오르지 음악을 듣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거죠.
얘기를 할때도 너무 여러사람이랑 말고,
상대방과 오롯하게 하고 싶고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너무 좋아요, 헤에~^_____^

[그장소] 2017-09-06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견 , 선입견 , ㅡ 일견도 있네요!^^
일견은 지나가는 개일까요 ? ㅎㅎㅎ

간혹 발을 들어 구름의 맛을 본다 ㅡ 제법 귀여워요.
허공에 헛발질하고 노는 녀석들 모습이 눈에 선해서~

덕분에 개와 고양이 잘 들여다 보고 가요!^^

양철나무꾼 2017-09-06 14:34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백문이 불여일견도 있고, 오십견도 있고요~^^

근데, 두마리 다 고양이인데요~?@@

[그장소] 2017-09-07 13:21   좋아요 1 | URL
아하핫 ~ 고양이 녀석 이름만 편견이 , 선입견이 ~ 그랬던 거라고요?

( 아 ... 아래 사진 !!! 저는 쏠림 ㅡ글 속의 견 , 개 ! 와 아래 고양이 시 , 사진 속 고양이 ㅡ 말한건데~ )

양철나무꾼 2017-09-07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렇군요~^^
전 들여다본다셔서 사진을 말씀하시는줄로 알았어요.
역쉬~, 님은 기발해요, 그래서 댓글도 통통 튀는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