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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골라주는 남자 - 18년차 여행작가 노중훈의 여행의 맛
노중훈 지음 / 지식너머 / 2016년 12월
평점 :
박찬일의 글 쓰는 스타일을 엄청 좋아해서 그의 책들은 전작주의자 마냥 찾아 읽었고,
그러던 중 '백년식당'을 통해서 노중훈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노중훈'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토요일 아침마다 '여행의 맛' =>(링크)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거기에 '박찬일의 맛'이라는 꼭지를 듣다가 보면, 남자들의 수다 케미가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다.
다른 꼭지도 그렇지만, '박찬일의 맛'이라는 꼭지는 들으면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마다 좋은 글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영혼을 흔들지 않으면 별점 셋이상 안준다'고 하던데,
살면서 그런 책은 몇 번이나 만날까 싶은 나는 수위를 좀 낮춘다.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이 힐링이 돤다 싶은 글을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그림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전부 다 그렇게 적용시킨다.
사실 박찬일과 같이 쓴 '백년식당'의 경우에도,
글은 박찬일이 사진은 노중훈이 찍었다고 했었기에, 요번 책에서 글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코딱지만하게 박힌 사진으로 그의 사진 실력을 가늠할 정도로 나의 사진 식별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책 양쪽 면을 가득 채운 사진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눈은 트이고 마음은 따뜻, 말랑말랑해져 온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애기는 그의 사진 솜씨에 대해서도 아니고,
맛집 소개는 원래 그의 전문이니 내 관심밖이다.
그의 글 솜씨에 홀라당 발라당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도처에서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는 자기가 후벼파거나 자초한 것도 있고,
타인이 주는 경우도 있고,
나도 상대방도 아닌, 세상이 상처를 입힐 경우도 있고,
세상은 그대로인데 모든 것들에 상처받는 유리 멘탈일 경우도 있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안으로 숨어버리는 것도 비겁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처에 맞서기만 한다면, 만신창이가 된다.
안으로 숨고 세상에 맞서고, 의 조절을 적당히 할 필요도 있고,
나름의 치유법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나도 한때는 상처를 너무 잘 받아서 유리멘탈인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무뎌지는 건지, 단련이 되는 건지, 이제 상처받는게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물론 일정 부분 무뎌진 것도 있겠지만,
상처를 받았을때 나름 나만의 치료약을 찾아냈다고 할 수도 있겠고,
그렇게 치료 후 옹이가 생기면 더 단단해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좋은 것은 다른 어느 것도 아니고,
글에 다정하고 따뜻함이 배어있어서 읽으면서 위로받고 치유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허기가 지면 음식을 찾지만,
마음이 허기가 지면 책을 찾기 마련이고,
이 책은 그런 두가지를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prologue'만 봐도,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아예 입을 닫는 것이 낫겠다. 마음이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5쪽)
저자가 이리 무던하니, 내가 대신 설레발을 칠 수밖에 없다.
'prologue'의 글만 보고는 맹숭맹숭해서 무슨 '식당 골라주는 남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맹숭맹숭함이 인공 조미료 뺀 그것 같을 때는 팍팍 신뢰가 생기니 말이다.
예를 들자면,
내장을 먼저 건져 먹은 다음, 밥을 말 때 부추를 곁들이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살짝 과장해서 말하자면 문화재로 지정해서 보호해야 할 최고의 내장탕집, 고맙게도 아침 식사가 가능하다.(17쪽)
본인이 먼저 살짝 과장했다고 접고 들어오는데, 퉁 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해맑은 국물은 시원하기 짝이 없고, 부들부들한 살점은 서울에 파는 냉동 대구탕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구 이리(생선 정액 덩어리)의 고소함은 생크림을 넘어선다. 이리 때문에 대구는 수컷이 암컷보다 비싸다. 음식이 나오면 처음에는 솓가락과 젓가락을 이용하다가 이내 그릇에 코를 박고 마시게 된다. 한 번이라도 맛을 본 사람은 생대구탕 없는 겨울나기는 상상할 수 없다.(21쪽)
생선을 싫어하는 나로선 상상을 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글의 이 부분을 읽다보면 나도 어느새 뚝배기에 코를 박고 국물을 마시는 시늉을 하게 된다.
지레짐작과는 달리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시원하고 담백하면서도 고추가 들어가 있어 뒷맛이 매콤하다. 무릇 주당이라면 보온병에 담아 수시로 홀짝홀짝 마시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해장음식이다. (25쪽)
이 사람은 적어도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것도 여간 잘 먹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글은 나올 수가 없다.
그는 직접 맛보고 느낀 그 맛을 정직하고 담박하게 서술해내고 있을 뿐이고,
그걸 읽고, 읽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해장되는 묘한 경험을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말이다.
우선 개인별로 제공되는 뚝배기의 크기부터가 흡족하다. 째째한 규모의 탕기(湯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생각보다 살이 많은 도톰한 가자미에 김치, 호박, 두부, 무, 미나리 등을 넣고 맹렬하게 끓여내는데 단맛과 매콤한 맛의 조화가 압권이다. 양념에서 비롯되는 칼칼함이 먼저 혀와 목구멍을 치고 지나가면, 이내 호박이 내어주는 단맛이 뒤따라온다. 기본 찬은 그날그날 조금씩 달라지는데 직접 겪어본 김치, 시금치, 멸치볶음, 달걀말이, 다시마쌈, 무나물 등이 하나같이 깔끔했다. 전체적으로 짜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다.(33쪽)
이런 글은 또 어떤가 말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내가 노중훈에게 제대로 감동을 받은 대목은 이 부분이다.
그때도 노(老) 주방장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고, 많은 손님 치르는 것을 힘겨워했다. 몇 년 사이 단골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할아버지의 건강은 더 나빠졌다. 자연히 영업시간은 짧아졌고, 칭송이 자자한 정탁 요리(1인당 얼마의 금액을 내고 맛보는 예약 코스 요리)도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식사 메뉴는 아내가 대신 웍을 잡고 내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시점에 할아버지를 주방에서 놓아드려야 할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의 입이 즐거운 것보다 당신의 건강이 우선이다. 미리 고개 숙여, 허리 굽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77쪽)
이 책의 겉표지에 보면,
허름해도,
불편해도,
멀어도 상관없다!
맛있으면 다 괜찮다!
라고 되어 있다.
난 허름해도, 불편해도, 괜찮지만,
일부러 멀리까지 맛있는걸 찾아 다니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노중훈의 이 책처럼 적당히 따뜻한 것이 힐링이 된다면 또 애기는 달라진다, ㅋ~.
이 책에 소개된 104개의 인생식당 중에서 내가 가봤던 곳은 한 10개나 될까, 명함을 내밀기가 민망하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가 볼 곳이 그렇게나 무궁무진하다는 얘기가 된다.
비어있다는 것은 채워가질 수 있다는 거다.
책 앞표지 제목 밑에 이런 그림이 있다.
글처럼 그림도 맹숭맹숭 슴슴하다, ㅋ~.
한번 보고 치워버릴 책이 아니다.
곁에 두고,
술 당기는 날, 혼자인 날, 위로받고 싶은 날이어도 좋고,
그렇게 그렇게 마음에 위안이 필요하다 싶은 날,
아무데나 손에 잡히는 대로 펴고 읽으면된다.
그것도 번거로운 날은, 책 뒷장을 펴면 된다.
그와 파트너 격인 박찬일이 쓴 추천사만으로도 맛깔진 것이 위로가 제대로 되니까 말이다.
노중훈을 처음 만나면 사람들이 묻는다. "요새 뭐가 맛있어요?" 나는 다른 걸 묻는다. "장가 언제 가냐?" 그는 독신 먹보다. 돈 벌어서 다 먹어치운다. 그렇게 먹은 이력으로 다시 돈을 벌고 또 먹는다. 먹어치운다. 그와 나는 많이 먹었다. 내가 음식 놓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동안 그는 그냥 섭취에 열중한다. 그리고 한 마디 한다. "아, 살 것 같다 선배." 그는 진짜 잘 먹는다. 서울에 나타난 가르강퀴아다. 여행작가 세계의 김준현이다. 그는 특유의 먹는 기술을 갖췄다. '선수'다. 일단 밀어 넣듯이 먹은 후에 술을 부어서 밀도와 농도를 낮춘다. 희석되어 포만감이 낮아지면 다시 먹는다. 그의 몸에 퇴적된 음식의 종류만큼 그가 쌓은 식당의 수도 상당하다. 그런 그가 골라주는 식당이라니ㆍㆍㆍㆍㆍㆍ. 앞으로도 나는 그와 함께 수많은 식당을 다니며 음식을 먹어볼 것이다. 중훈아, 오래 살아서 더 먹자. 더 마시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말, 함께 외치자. "인생 뭐 있어!"_박찬일(요리사 ㆍ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