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사
비페이위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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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인가 보다.

책을 조금만 봐도 눈이 쉬이 피로해져서,

예전처럼 책을 들었다하면 놓지 않고 끝을 보는 그런 끝장 독서를 할 수가 없다.

 

책을 좀 읽다가,

군데 군데 멈춰서서 곱씹으며 음미하는게 요즘의 독서법이다.

 

한편으론 '쭈욱~' 몰아 읽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동안 혹사시켰으니,

이제는 잠깐씩이라도 쉴 수 있게 해 주어야 겠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직접 겪거나 두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는 입장이었는데,

이 책을 읽는 것과 맞물려,

(그동안 내가 읽은 소설중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았지 싶은데...)

보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게 되었달까, 아니 보지 않더라도 믿고 싶게 되었다는 것이 적절하겠다.

 

내용은 맹인들에 관한 내용이지만,

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범주를 내 마음대로 확장시켜 해석한들 크게 비껴갈게 없겠다.

블랙홀, 화이트홀, 웜홀로 이어지는 우주나,

고아 소년 해리포터가 마법학교에 입문하게 되는 킹스크로스역 정거장까지 두루 가능성을 가지고 마음을 열었다.

 

사실 이 책의 제목 '마사지사'는 대충 아우르긴 했지만, 명확한 용어는 아니다.

이 책의 원제는 '추나推拿'라고 되어 있는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중국이 되었건 우리나라가 되었건 맹인이 아닌 일반인의 의료 행위는 불법이고,

그렇다고 마사지라고 하자니 살짝 퇴폐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지만,

이 책을 읽고 그게 치열한 삶의 기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숙연한 것이 숭고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은 섬세하다.

책 띠지 뒷면에,

"생동하는 디테일, 선명한 캐릭터. 작은 부분에서 전체를 통찰하는 힘. 예리한 시적 언어로 쓰인 문장들에서 기민한 창작력이 엿보인다."

2011년 제8회 마오둔문학상 심사평이라며 적혀 있는데, 책 전체를 아우르는 찬사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디테일을 너무 잘 살려냈을 뿐더러, 캐릭터들을 살아 움직이게 묘사하여,

책을 읽는내내 소설을 쓴 '비 페이 위'가 맹인이 아닌가 표지 뒷면이며 속지를 탈탈 뒤집어 보았다.

 

책을 찬찬히 읽다가 깨닫게 된 것인데,

맹인들만 사는 세상이고 맹인들만의 얘기였다면, 이 책은 그리 절실하지도 애절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맹인이 아닌 사람과 맹인을 구별하려 하고,

맹인만 하더라도 선천적인 맹인과 후천적인 맹인으로 경계를 나누려 하는데서 비극은 시작된다.

 

경계를 가르고 편을 나눈다는건 바꾸어 말하면 구멍을 만드는 것인데,

맹인들에겐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나,

낭떠러지나 구멍에 발을 헛딛는거나 목숨을 담보로 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홍은 맹인이었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로 치부할 수 없었다.ㆍㆍㆍㆍㆍㆍ이제보니 맹인의 가장 큰 장애는 시력이 아니라 용기인 듯 했다.(114~115쪽)

 

이런 구절은 중의적이지 싶은데, 맹인과 맹인이 아닌 사람, 양쪽의 입장을 대변한다.

추상적으로 생각하기에 따라선 맹인의 장애는 시력인 것처럼 보이지만,

맹인들 세계에서 보게 되면, 시력은 다 똑같이 맹인이니 문제 될게 없다.

용기가 있고 없고, 에 따라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퍼질러 앉아 버리게도 되는 것이다.

 

그녀는 말에도 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푸밍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혈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었다'.(116쪽)

 

같은 凹를 가지고도 정확히 짚었을땐 '혈'이지만, 간과하고 비껴 헛딛게 되거나 넘어져 굴러 떨어지면 '구멍'이다.

 

중의학의 근거와 해법은 모두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무슨 현상이든 인체와 우주, 천지 만물을 연관시키는 음양오행 사상으로 해석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하지만 깊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학문이 더욱 오묘하고 아리송해진다. 양의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단계가 깊이 들어가도 쉽게 이해된다. 양의학에서는 신체를 다룰 때 그 자체의 물질성과 실증성만 따질 뿐 무슨 신비하고 오묘한 사상이나 명상 따위를 엮지 않는다. (55쪽)

 

이 부분은 추나를 하는 맹인 마사지사들의 관점이라기 보다는 저자 비페이위의 관점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중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된다면,

양의학을 우위에 놓고,

양의 위주의 사고를 정당화하긴 힘들것이다.

 

또 하나, 엄지손가락이 부러진 마사지사의 경우,

세상이 끝난 것처럼 묘사되고 끝내 낙향하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추나라고 하는 맹인 마사지의 경우,

이론이나 경험도 중요하지만 손끝의 감각을 키우는게 중요할 것 같은데,

이 손끝의 감각이라고 하는 것은 손끝에 감각의 눈을 갖게 되는 것쯤으로 얘기하고 싶다.

맹인 마사지사들의 지난한 삶을 짐작컨대,

엄지손가락이 부러졌다고 하여 퍼질러 앉거나 일을 작파할 사람은 없다.

뼈는 부러지면 더 두껍고 탄탄하게 붙게 마련이고, 재활치료만 제대로 해준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설혹 신경을 다쳐서 엄지 손가락을 쓸 수 없게 되었다면,

다른 손가락이나 보조근 따위를 활용하는 법을 개발할테니까 말이다.

내용의 전개를 위해서 였겠지만, 너무 피상적으로 접근하려고 한 것 같아 아쉬웠던 부분이다.

 

맹인들의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세상에서고 경계를 나누고 편을 가르는 순간 차별은 발생한다.

 

맹인들의 감각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려 하지만,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도 이렇게 이분법적이기만 한 것인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책 속엔 이런 구절들도 나온다

연애하는 사람은 이런 식이다. 이들의 입술은 언제나 뜨겁게 달아올라 있어서 입맞춤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그런데 입맞춤을 할 수 없다면? 입씨름을 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연애의 기본 패턴이다.(124쪽)

연인 사이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말투다. 말투는 말 속에 숨은 뜻을 보여준다. (127쪽)

 

 

샤오쿵의 부모님이 샤오쿵에게 한 이 말을 두고 한참을 생각했는데,

세상은 뜬 눈으로 살지라도,

손끝, 발끝은 물론이거니와 온 감관을 열어 총동원하여 더듬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싶어서 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더듬으면서 살아가도, 우리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고,

그것을 통틀어 우리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멀리 선전으로 떠나기 전날 밤, 부모님은 샤오쿵에게 분명히 말했다. 네 연애와 결혼에 대해 우리는 전혀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삶이 라는 것은 '살아가는'것이지, '더듬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네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니, 우리는 너를 '더듬어'가며 '살아가는' 남자한테는 절대로 시집보낼 수 없다!(137쪽)

잠깐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둘 다 더듬어 가는 사람끼리라면 공감하고 소통에 이를 수 있는 부분이라도,

한명은 맹인이고 다른 한명은 맹인이 아닐 경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매워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은 떨어질 수도 있으며,

한 명은 안 보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안 들리는 다른 종류의 장애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때문에 이 책은 읽기에 따라선 맹인들의 일상을 그려낸 얘기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타성에 저항하고 사랑을 쟁취하려는 이땅 모든 젊은이들의 치열한 사랑 얘기로도 읽힌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맺는다. 

간호사는 문득 그녀가 자신과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상을 바라보는 분명한 시선, 지극히 일반적이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그런 시선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간호사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버린 것 같았다. 무서워서,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484~485쪽)

소설을 읽고 폭풍 감동하는 것은 기본, 이런 교훈을 얻은 건 덤이다.

이렇게 맹인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선 맹인이 일반이고 맹인이 아닌 사람이 이반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맹인이 아니어서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일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본위의 지독한 이기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맹인이 아닌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인데,

인간 중심의 시각과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지극히 편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 하루 눈 멀고 귀 어두워지는,

하루 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다.

이리 생각하면 지극히 겸손하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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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1-09 01:02   좋아요 1 | URL
맹인에게 길 가르쳐 줄 때 덥썩 잡아서 안내하면 안 되고 상대가 나를 붙잡도록 조심히 다가가야 한다는 이야길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생각이 납니다. 시각이 안 보이니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우린 평소 자기 습관대로 상대를 대하니 그런 섬세함을 놓치죠. 왼손잡이들이 어려운 세상 시스템처럼 사람에 대해서도, 만물에 대해서도 섬세할 일이 많고 많아 참 어려워요.

양철나무꾼 2016-11-09 15:21   좋아요 1 | URL
며칠전 저녁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지하철에 올라타다가 맹인안내견을 보고 깜놀했어요.
그 개는 착해서 말이지 주인의 손에 붙들려있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물 흘리고 있더라구요.
맹인 주인은 한참동안을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다가,
내릴 곳에 이르러 헐레벌떡 뛰어내리는데,
그 개가 어찌나 힘들게 몸을 일으키던지...
여러가지 생각이 복잡했어요~ㅠ.ㅠ

겨울호랑이 2016-11-09 06:57   좋아요 1 | URL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종착역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의미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그래도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6-11-09 15:26   좋아요 2 | URL
전 한때 참 기고만장했달까요?
거슬리는게 없이 앞만 보고 내달려온 느낌이예요.

그러다가 요즘 들어서 내 몸들이 내 의욕을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자제하게 되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겸허해지고 겸손해지지 않고서는 다른 도리가 없답니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사는건...모든 이들의 소망이겠죠.
그러니 우리 몸을 이뻐해주고,
몸이 하는 소리에, 몸이 내지르는 비명에 귀를 기울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