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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독서를 통하여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되고, 그것을 간접경험이라고 한다지만,
어떤 책들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뛰어넘는 이렇다 할 것들이 없는데도,
그리하여 흔히 말하는 책을 읽는 묘미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내 가슴이 먹먹한데도,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책들이 있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줄어드는 책의 두께가 아쉽지만, 뒷장이 궁금해 손에서 내려놓을 순 없고,
내처 읽으려니 가슴이 멍든것 같기도 하고 체한 것 같기도 한 것이 먹먹해져와,
숨고르기를 하면서 그렇게 읽게 되는 책들 말이다.
이 책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으려나?
재밌다는 표현은 좀 그렇겠고,
좋다고 설레발 치는 것도 행여 누가 될까 싶어 조심스럽지만, 그동안 읽은 책 중에서 손가락 안에 꼽게 되는 책이다.
그냥 맹물 같이 아무 맛이 없는 소설이랄까.
평상시 맹물을 먹을 때 맛이 있어서 먹는게 아니지만,
갈증으로 목이 마르게 되면 같은 맹물도 꿀물처럼 달콤하게 여겨지듯,
아무맛도 아닌 '맛'을 지닌 소설이다.
그동안 자살에 대해서, 자살의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되게 비겁한 행동이라고만 여겼을 뿐,
그 (또는 그녀)를 자살로 몰아간 상황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할 정도로 깊이있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왜 아파요?
그냥 종양 때문이야. 제거해야 했는데 신경 쓰지 않았다.ㆍㆍㆍㆍㆍㆍ어쨌든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냥 쉽게 약해지고 슬프고 지치는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도저히 혼자 지낼 수가 없단다.
아버지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당연히 혼자는 아니지. 네가 있으니까. 그런데 나도 너무 외롭다.ㆍㆍㆍㆍㆍㆍ아버지 바로 옆에 있으면서 존재조차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로이는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135쪽)
책의 이 부분을 읽다가 ,
난 자신이 종양으로 죽게 될 걸 알고 미리 자살하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잠깐 했었는데,
뒷부분을 보게 되면, 로다라는 여자 생각을 들키지 않기 위한 거짓말이었음을 아들 로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작가 데이비드 밴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 3년간은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할 정도로,
아버지의 행위를 부끄럽고 추하다고 생각했다고 '작가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우리는 타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추측만 하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고,
자살도 우리가 막연히 짐작하는 것처럼 어떤 문제나 특별한 원인에 의해 계획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단순히 우발적이고 즉흥적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으며,
죽은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지만,
살아 남겨진 주변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로이가 아직 살아 있고 그래서 어디든 데려갈 수 있다면 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 로이가 실제로 하고 싶다던 일이고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 정도라면 귀농만큼이나 쉽게 준비할 수 있다. 배를 살 돈도 있었고, 항해술도 익혔고, 시간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가능했다 해도 로이의 말에 귀부터 기울여야 했다.(203쪽)
책에서, 로이의 아버지는 이런 깨달음에 이른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생각해보면 작가 데이비드 밴의 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수콴 섬이란 단편 소설을 이렇게 끝 맺는 것으로,
작가 데이비드 밴은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한다.
"ㆍㆍㆍㆍㆍㆍ물에 빠졌을 때 정신이 들었다. 너무 차가웠기 때문이다. 제발 살려줘. 짐은 처크와 네드가 와서 구해주기를 바랐다. 목으로프는 쉽게 풀어냈지만, 옷을 입은 채라 그 무게에 자꾸 가라앉기만 했다. ㆍㆍㆍㆍㆍㆍ이곳이 물속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바다 아래로 끝도 없이 가라앉는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한참을 발버둥 쳤건만 그 시간이 영겁인지, 불과 10분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전신의 감각이 사라졌다. 갑자기 피곤하다 싶더니 입속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ㆍㆍㆍㆍㆍㆍ마치 마지막 물이라도 되는 양 허겁지겁 들이켰다. 차고 딱딱하고 불필요한 물. 그리고 로이가 아버지를 사랑했음을 깨달달았다. 그 사랑으로 충분해야 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깨달음이란 왜 이렇듯 늘 늦기만 한지. (262~263쪽)
그동안 읽은 다른 책들보다 문체가 수려한 것도 아니고, 어떤 깊은 깨달음을 준 것도 아닌데,
이 책이 그토록 좋았던 이유를 생각해 봤다.
적절한 표현이 생각 나지 않아서 망설여지는데, 이런게 아닐까 싶다.
작가 데이비드 밴은 글쓰기를 통하여 자기 자신이 치유를 경험했고,
독서라는 간접 체험을 통하여,
책을 읽은 사람들은 각자 취사 선택하여 나름대로 치유되는 걸 경험한달까?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취사 선택'을 사용했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구미에 맞게 선택을 하는 그런 선택은 아니고,
책을 읽게 되면 어느샌가 자기에게 적절한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맞춤 치유'라고 하겠다.
늘 그렇듯이, 책을 읽는 데 정석은 없는 것 같다.
해석이 분분할 수도 있고, 하나의 결말을 놓고도 각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작가 데이비드 밴이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이 치유를 경험했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감동과 치유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인간 영역의 많은 부분을 대신하게 되었지만,
아직 인간을 대신 할 수 없는 일정 부분이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마음이랑 연관된 외로움이나 쓸쓸함 등 감정의 영역 '공감'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가 몸이랑 연관된 '치유'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변해도 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의 이영애를 향한 절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아니라, '사랑은 변하는 거다'쯤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
영화는 다시 쓰여야 할 것이다.
변하는 사랑을 가지고 절규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 하지 못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한 눈을 팔았다면,
그게 직무유기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살자, 는 깨달음은,
책을 읽는 사람만이 얻어 가질 수 있는 값지고 귀한 수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