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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평점 :
'표현의 기술'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아무래도 좀 아쉬운 배열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니까 글을 쓰는 유시민과 만화를 그리는 정훈이가 똑같은 비중으로 '표현의 기술'에 대해서 쓰거나 그리고 있기 때문에,
제목도 제목이지만, 지명도 문제로 유시민을 앞에 놓고 싶었다면,
정훈이를 똑같은 비중으로 뒤에 놓아야 했을텐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여느 작업들처럼 유시민이 글쓰기 작업을 하는데 정훈이가 삽화를 그린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 유시민의 글 다음에 정훈이의 만화가 서너쪽 분량으로 나오고,
책의 끝부분에 정훈이의 만화가 본격적으로 나와서,
정훈이라는 만화가의 표현의 기술도 있는, 그런 책이란걸 실감하게 되었지만,
이런 식의 배열인줄 알았더라면 난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유시민으로부터 글쓰기 비법을 배울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러니 표현의 기술은 더더욱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
이 것은 내가 글쓰기 능력이나 표현의 기술이 어느정도 되어줘서 그로부터 배울게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랑 나랑 사고하는 바가 많이 다르다보니 중간에서 비껴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삐그덕거리기만 하는게,
오히려 스트레스의 연속이어서 였다.
지난번 책을 통하여 절실하게 깨닫았으면서도,
그러고도 요번 책을, 나오자마자 또 사들인걸 보면 나의 책 욕심은 중증인가 보다~ㅠ.ㅠ
처음 '책을 내면서'를 보게 되면,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옵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고 있다.
글쓰는 일 뿐만 아니라, 집을 설계하고 노래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등은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일이다.
따라서,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면서,
이 책에서는 그동안 강연과 온라인 상담실에서 주고 받았던 말을 정리하고 내용을 보탰다고 하는데,
그 표현의 기술이라는 것이, 마음, 즉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치중한다기 보다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얘기들을 하소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 제 1장 '왜 쓰는가'에선, 김훈을 예로 들고 있는데,
전후좌후 사정을 다 생략하고,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하고 한부분만 떼어내서 인용하고 있다.
글의 시작 부분에서 강렬하고 자극적인 문장을 인용해서, 주위를 환기시키고 몰입하게 해주었지만,
그 다음 김훈의 말인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 주면 좋기는 하죠."를 의도적으로 뒤에 배치한 듯한 인상을 받았고,
때문에 섣부르다는 느낌이 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목적은 언제나 여론 형성이었다고 하면서, 김훈과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데,
우리는 같은 글쟁이지만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른 겁니다.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어느 한쪽이 틀린 건 아니죠.(14쪽)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어느 한쪽이 틀린 건 아닐지 모르지만, 김훈과의 경계는 분명하고...
때문에 차이가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조지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예로 들면서, 글을 쓰는 네가지 이유를 드는데,
첫째,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둘째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에 무엇을 남기려는 충동, 넷째, 정치적인 목적인데, 넷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단다.
이 네가지가 비중을 달리하며 조금씩 섞여 있는 경우도 있고,
이 네가지 외에 돈을 벌려고 쓰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정치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고 힘을 주어 얘기하는데,
이게 자신에게 비추어 얼마나 타당한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혹 자신의 글쓰기가 '정치적 글쓰기'를 지향한다고 하여 돈을 벌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자위하고 싶었나 본데,
이런 '표현의 기술'같은 책이나 글쓰기 관련 서적의 경우 '정치적 글쓰기'라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모르겠다.
혹 어떤 사람은 나에게 요번 그의 책을 제대로 읽기나 한거냐고 딴지를 걸 수도 있을텐데,
그런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설혹 그가 내가 읽고 해석한 목적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중의적으로 읽도록 한데에 대해서,
그가 완전히 책임을 비껴가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콩떡 같이 써놨는데, 개떡 같이 읽어낸 나의 독해력에 대단한 문제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표현의 기술과 직접 관련되었다 싶은건, 2장 '제가 진보냐고요?'한 장인것 같은데,
글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말은 그럴듯하게 정치적 글쓰기도 예술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내용은 사스 파동과 메르스 사태를 비교하며 자기자랑 일색이다.
이걸 자아정체성이란 말로 정당화하진 않겠지?
3장 '악플은 어찌할꼬'에선 악플엔 무플로 대응하라고 하면서,
글쓰기 고민상담소에 올라온 '떡시루'라는 사람의 글을 인용한다.
ㆍㆍㆍㆍㆍㆍ우리는 남들이 주는 것을 안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물건은 주고받을때 요리조리 살펴서 받는데 마음은 그냥 덥석 받고 맙니다. 마음도 살펴서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83쪽)
마음이라는 말 안에는 이미 '헤아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다소 당혹스런 인용이었지만,
본인의 글이 아닌걸로 위안을 삼아본다.
하지만, 정치적 글쓰기를 지향한다는 사람인데, 모든 정치적인 것의 근본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근본이라고 생각했던 내겐 인용이라지만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대신 악플과 정상적인 비판 글을 구별해야 한다(88쪽)고 하는데,
악플엔 무플로 대응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는 이의 의견이어서인지,
난 이 의견도 동의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누구나 논리를 갖추어 근거를 제시해가면서 정상적인 형식의 비판 글을 쓰도록 교육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의사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이고,
표현이 거칠고 어조가 결렬하다면 일정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헤아리고 다가가는데는 실패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어떤 형식을 갖추고, 논리적 전개방식을 따르는 글 만을 정상적인 비판 형식의 글이라고 한다는 건 유시민 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지 싶다.
책값이 아까워 대충 훑어라도 봐야지 하던 나의 생각은 책 중반 '마음이 먼저입니다'(232쪽)하는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완전 비껴 나가고 말았고,
암튼, 그리하여...난 그가 가르쳐주는 '표현의 기술'을 하나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했고,
정훈이가 보여주는 그림만을 만화책 보듯 낄낄거리며 봤음을 이 리뷰를 빌어 고백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깜박깜박하는 기억을 붙들어두려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일뿐,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