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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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읽었던 어떤 책인지, 정확하게 어떤 문장이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데,

책 속에서 '사람의 몸 중 가장 정직한 곳이 어딘 줄 아니?'라고 묻는 걸 보고 읽던 책을 집어 던졌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난 그간의 경험으로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라,

몸의 정직함을 가지고 '가장'이라는 최상급을 적용할 수도 없거니와,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터였다.

 

사람은 자기가 맘 먹고 상상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일의 중요도나 자신이 주로 쓰는 신체부위의 효용에 따라,

시간의 순서를 혼동하거나, 통증의 경중이나 아픈 부위가 바뀌기도 한다.

이런 경우 의도된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정직하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을까?

 

반면, 몸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람의 상태를 반영하고,

그걸 가감없이 실시간으로 표출해 내고 있기 때문에,

몸이 표현해내는 언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만 갖추게 된다면,

얼마든지 정직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바디무빙>은,

띠지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라는 문장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둣,

의학적으로 접근했으면 마냥 심각하고 어려웠을 수도 있는 내용을,

에세이의 형식이어서 쉽고 재밌게,

몸이 들려주는 언어를 읽어내는 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바디무빙, '몸을 움직이는 것'은 어찌보면 살아있다는 증거이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나 글 따위의 표현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언어를 놔두고,

바디무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몸이 표현해내는 언어를 제대로 읽어내는 법을 따로 터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그렇지,

몸이 표현하는 언어를 읽어낼 수만 있게 된다면,

가까운 사이가 아니거나,

중간에 벽이나 담벼락이 가로막고 있어도, 

무의식중에 무장해제시킬 수 있으며,

몸이 들려주는 정직한 얘기들을 왜곡없이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몸 따위는 (의지가 개입하게 되면)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고들 한다.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의지박약이니 뭐니 따위로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가 '레이먼드 카버'의 '뚱보'를 인용하며 힘주어 얘기하지 않더라도 몸은 우리 맘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생각이나 느낌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 자체도 버거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논외로 하고,

생각이나 느낌을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체화'라고 하는, 몸에 배기까지의 '상당한' 시간이 소용되는 일이다.

 

어떤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오갔을지, 마음은 얼마나 잘게 무서졌을지, 짐작할 수 없다. 아득한 시간들이 보니 그레이프의 곁을 천천히 지나갔을 것이다.(39쪽)

 

39쪽에서 <길버트 그레이프>가 인용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동안 나는 누구에게든지 너무 쉽게 '알겠다' 내지는 '이해하겠다'라는 말을 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감과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좋고 그러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지만,

누군가를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는 건

보여주고 들려주려 하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뿐만이 아니라,

'바디무빙'이라는 정직한 무언의 언어를 읽어낸다는 걸 의미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쉽거나 호락호락한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에세이 형식이어서 쉽고 재밌게 접근할 수 있는데다가,

그가 직접 그려넣은 삽화 몇 점들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몸이 들려주는 언어를 읽어내는 법을 자상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는 '상실에 대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상실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가 더 좋다(41쪽)' 고 하는데,

'같아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습관 외에,

시각적 각인이 오래가는, 시각적 충격에 약한것까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자 애정만발, 하트 눈이 되었다.

 

같은 의미의 연장선 상일 수도 있는데,

영화 <그녀>를 통하여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일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일까,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정 본능적인 사랑의 욕구가 '바라보는 행위'에서 출발하기 때문일 것이다.(90쪽)

 

드라마 <유나의 거리>를 두고 훌륭하다고 열변을 토하는데,

훌륭한 점이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훌륭한 점 하나만 얘기하라면 '그 어떤 것도 뻔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한다.

ㆍㆍㆍㆍㆍㆍ

춤이란 그런 것이다. 춤이란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것이다. 같은 스텝으로 같은 리듬을 타며 서로의 몸에 기대는 것이다. 미친듯이 춤을 춰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내 춤을 내가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몸이 생각을 이기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그런 뜻밖의 순간에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서로에게 기대어 춤을 추다보면 그런 뜻밖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마냥 즐겁고 기뻐서 자신의 나이 따위, 살아온 이력 따위 잊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 맛에 콜라텍을 다니는 게 아닐까.(125~126쪽)

 

얼마전 배우 문정희가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살사를 추며 노래하는 것을 봤었다.

그녀가 배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무대에서 맘껏 끼를 발산하는 것쯤이야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살사를 한지 17년 정도 됐으며,

'상대방의 손을 잡으면 느낌이 확 온다.'고 하는데,

그게 '바디무빙'이 들려주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정직한 언어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구나 싶어 고개를 주억였었다.

 

저자 김중혁은 그걸 이렇게 표현하는데,

이런 문장은 그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완전 매력적인 문장이다.

아직 인생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모를 나이이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지만, 죽을 때까지 팔다리를 흔들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버둥거리기보다 춤을 추며 살고 싶다.춤을 추고 죽고 싶다. 조르바처럼? 아니, 지르박을 추며.(127쪽)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삶은 어떤 식으로든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런 의미에서 몸이 하는 정직한 언어를 읽어내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읽어나가면서,

말이나 글 따위의 표현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언어나 바디무빙 같은 정직한 언어 말고,

말 없는 말이나 행위 없는 몸짓처럼,

언어의 형태를 띄지 않고 무형의 형태를 띈 채로,

'나를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나?'에 관한 것이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어떤 식으로든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라지만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어찌보면 살아있다는 증거이니까,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죽었다는 얘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위 사진 속의 왜가리와 거북처럼,

살기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하여, 먹이를 잡느라 움직이지 않고 정물처럼 앉아 있는 것일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상대방과의 공감과 소통을 가장하지만,

공감과 소통을 가장하는 그 순간에도...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고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에둘러 얘기하려던 것은 아닐까?

 

사진 속에서...살기 위하여 몸을 움직이지 않고 정물처럼 앉아 있는 왜가리와 거북처럼,

무용지용-쓸모없음의 쓸모있음, 움직이지 않음의 움직임, 삶의 연장선 상에서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니, 수필집이 철학책처럼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그는 아니니 모든 것은 추측일 뿐이지만,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재밌고 가벼운 문체라고 해서, 별 노력 없이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몸에 관한 각종 서적, 영화, 연극 등을 연구했을 것이고,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러모으느라 애썼을 것이다.

그것들을 체화하여 글로 썼을 것이고,

그리하여 <바디무빙>이 탄생하게 됐을 것이다.

 

암튼, 덕분에 읽는 내내 행복하였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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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6-05-17 21:06   좋아요 1 | URL
어휴, MBTI 유형 검사를 하면 틀림없이 두 번째 항목은 N 직관형일 거야.
왜가리부터 갑자기 하늘로 날아가버려서 따라잡느라 힘들었네. ^^

나도 그대의 페이퍼를 읽으면서 행복했소.

양철나무꾼 2016-05-18 09:12   좋아요 1 | URL
으허엉~ㅠ.ㅠ 전엔 S감각형이라더니?
생각이 이리저리 짬뽕공처럼 튀는 거, 이젠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왜가리가 왜 날라가나?
쟨 어제 아침 내 출근시간을 한 20분 잡아먹고 저러고 정물이 되어있었음.
먹이를 잡기 위하여, ㅋ~.
그 옆 바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거북은 또 어떻고, ㅋ~.
하긴 사람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쟤들 입장에서 보면 독선이겠지?

옛날엔 내 글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하면 속상해서 어떻게 고쳐볼까 했었는데,
생각을 바꿨어.

난 나야. 내가 좀 앞서 가나? `으쓱으쓱~^^`쯤으로~!!!

마녀고양이 2016-05-18 10:02   좋아요 1 | URL
자기가 s 감각형일리가..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일 없는데, 내가 언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쏘리~~~
머리 회전이 빨라서 날아가는 자기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매력인데 멀 고치누? 옆에서 쫓아가거나 날려보내야징~

날이 벌써 덥네!

양철나무꾼 2016-05-18 11:04   좋아요 1 | URL
S여도 좋고 N이어도 상관없어, ㅋ~.
난 그런 것에 별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니까 말야.

세상 사람의 유형이 얼마나 많은데,
몇가지로 제한시켜 유형을 만들려고 하는 것 자체가 맘에 안 드는 접근법이야, ㅋ~.

옛날엔 친해지기 위해서 날 상대방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자기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아직 변함이 없지만,
이젠 일부러 날 바꾸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경험으로 알게 됐다고나 할까?
더운 날씨에 지치지않게 힘내자~!^^

해피북 2016-05-17 22:59   좋아요 1 | URL
이 글의 발췌문을 읽을 적마다 김중혁 작가님의 음성 서비스가 되는건 저만이 아니겠죠? ㅎㅎ
매일 팟캐스트로만 듣다가 글로 읽는 김중혁님도 색다르네요. 아직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만요 ㅎㅎ
그리고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몸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또 저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온 문정희씨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저 취미로 춤을 추는게 아니라 17년이나 되었다며 유희열씨를 리드하는 모습에서 자신감 내지 열정이 내다보여서 이래서 배우를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끼도 많고 열정도 많고 말이죠 ㅎㅎ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저녁, 꿀밤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5-18 09:16   좋아요 1 | URL
네, 전 유희열과 손을 맞잡는 행위만으로,
유희열의 속내를 읽어내는걸 보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말이나 글의 형태로만이 아니라,
몸짓이나 분위기, 그 사이 무언의 말줄임표 따위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거겠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입니다, 좋은 아침이구요~^^

2016-05-18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8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8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