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시선 37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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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이를 먹은 것은 헛먹은 것이고,

요즘에서야 제대로 옹골차게 나이를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의 기능이 서서히 퇴화를 하고,

그에 비례해서 포기할 것이 하나 둘 생겨나는 걸 온몸과 마음으로 실감하는 요즘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포물선을 그리며 서서히, 가 아니라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뚝 떨어지는 계단의 형태를 취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다른 모든 것들에는 무방비 상태일지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삶의 또다른 이면으로 받아 들이고 대비하려고 마음 먹었었고,

늘 죽음을 직시하려 노력했었다.

 

죽음을 직시하는 순간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체념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흔히 빛을 얘기할때,

어둠이 있어야 대조하여 빛이 난다고 얘기한다지만,

난 그 어둠과 빛의 중간의 어스름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이건...어둠과 빛이 아니라,

맑은 날을 기준으로 비가 오는 것에 대해서 얘기할 때 좀더 이미지를 객관화하기 쉬울텐데,

비가 내리는 것과 그 비가 내리다가 잠시 멈춘 그 순간이나 찰나 같은 경우 말이다.

 

그걸 책 뒷표지에서 함민복 님은 이렇게 얘기한다.

손택수 시인의 시는 일단 명징해서 좋다. 무슨 문제풀이 콤플렉스에라도 걸린 듯 난해함을 섬기는 작금의 유행 시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탁월한 중매쟁이다. 그는 늘 무엇과 무엇 사이에 관절 튼튼한 접속사로 존재한다. 그를 만나면 세계는 벽을 벗고 경계 이전의 알몸을 허한다. 서로 영통하는 길들을 내어놓는다.

'명징'이라고 하면 어려운 말처럼 들리니까,

경계나 나눔을 명확하게 구별한다는...뭐 그런 말 대신,

번짐이나 스며듬 따위의,

경계를 허무는,

경계없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경계'라는 말을 구체화시켜야만 경계를 허물 수도 있고,

그 '경계'가 생기기 이전의 '경계 (따윈) 없음'을 형상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수묵의 사랑

 

수묵은 번진다

너와 나를 이으며,

누군들 수묵의 생을 살고 싶지 않을까만

번짐에는 망설임이 있다

주저함이 있다

네가 곧 내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

경계를 넘어가면서도 수묵은

숫저운 성격, 물과 몸을 섞던

첫마음 그대로 저를 풀어헤치긴 하였으나

이대로 굳어질 순 없지

설렘을 잃어버릴 순 없지

부끄러움을 잃지 않고 희부연히 가릴 줄 아는,

그로부터 아득함이 생겼다면 어떨까

아주 와서도 여전히 오고 있는 빛깔,

한 몸이 되어서도 까마득

먹향을 품은 그대로 술렁이고 있는

수묵은 번진다 더듬

더듬 몇백년째 네게로

가고 있는 중이다

암튼,

목련전차에서도 그랬고,

삶에서 자연스레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예비하게 하는 그를 나와 같은 나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극점'을 통하여 그는,

그동안 '기준과 방향'이 있어야 비롯함과 말미함을 얘기할 수 있다고 했던 나의 생각 또한,

선입견이고 편견이라고 통렬히 깨부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극점

 

극점엔 동서남북이 없다

오직 마주한 방향만이 있을 뿐

눈 폭풍 몰아치는 극점이

극점에만 있을까

둘 데 없는 시선이

돋보기 속 빛처럼

골똘해지는 가로수

우듬지 끝

팔랑,

잎 하나 떨어진다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는 도로변

매미 울음소리도 따갑게 이글거리는 정오

내가 한점으로 가장 단순해진

극점

거기선 네가

지워진 모든 방향이다

 

이 '극점'이라는 말은 삶의 밑바닥을 맛봐야 날아오를 수 있다는 의미로 내게 읽혔다.

때문에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처럼 무의미한 말이 없는 것이고,

내가 있고 네가 있어야,

다시 말해 '기준점과 동시에 방향'이 주어졌을때 극점을 논할 수 있는 것이고,

바닥인 동시에 꼭대기이고,

끝이면서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일게다.

 

이렇게 읽어야,

함민복 님이 얘기하셨듯이 그의 그것들이 명징함이 된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기'를 보게되면 그는 명징함으로 내게 마법을 건다.

이건 햇살이 눈부셔 실눈 뜨고 바라보는 듯 보이지만,

실은 '떠도는 먼지들이 빛나'는 형상을 바라보기 위해 햇살을 향해 실눈 뜨고 바라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ㆍㆍㆍㆍㆍ

  나는 기억한다 타이어 바퀴에 착 감기던 땅의 굴곡을, 끔틀거리던 말잔등처럼 숨결을 따라 오르내리던 리듬을

  그 리듬을 어깨 위에 싣기 위해선 적당히 바람을 뺄 줄 아는 것도 내 쓸쓸한 나이가 가르쳐준 기술이다 너무 빵빵하면 엉덩이가 아파오므로, 길바닥과 나 사이에 부질없는 긴장을 불러오기도 하므로

  땅과 바퀴 사이애, 그리고 바퀴와 나 아이에 가장 알맞은 쿠션을 위해서는 부푸는 어느 지점에서 펌프질을 그만 멈추어야 한다

  짓눌려 있던 타이어 거죽이 툭툭 꺾은 무릎을 펴고 일어선다 발굽이 땅을 짚는가 싶던니 장딴지에 제법 힘이 실리면서 시무룩하게 내려앉아 있던 인장이 올라가는 그때,

  안장 위의 하늘도 덩달아 들어올려졌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기' 중 '일부')

'차심'도 좋았고,

'쥐는 것이 아니라 벌어지는 것이,/너무 벌어지기보단 살짝 오므려지는 것이/꽃에게 가는 길인 걸 알겠다'라고 읊는 '손바닥을 파다'도 좋았다.

'물수제비 잘 뜨는 법'은 너무 황홀하여 '떠도는 먼지들'의 형태가 아니어도 내내 반짝거릴 듯 하다, 좋다.

 

물수제비 잘 뜨는 법

 

1

물결의 미끄러움에 볼을 부볐다 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미끈한 돌을 찾아 한나절쯤을 순전히

길바닥만 보고 돌아다녀본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 손바닥에 폭 감싸인 돌을 만지작만지작

체온과 맥박소리를 돌에게 고스란히 전달해본 적이 있는가

돌을 쥘 땐 꽃잎을 감싸쥐듯, 돌을 날릴 땐

나뭇가지가 꽃잎을 놓아주듯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한다

바람 한점 없는데 나뭇가지가 툭, 자신을 흔들 때의 느낌으로

손목 스냅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 그건

이별의 끝에서 돌과 함께 날아갈 채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스침에도 몰입이 있어, 딱

성냥을 긋듯이

단번에 한 점을향해 화락

타들어가는 정신,

 

2

그러나 처음 물에 닿은 돌을 튕겨올린 건 내가 아니라 수면이다 나의 일은 수면을 깨우는 것으로 족하다 그다음 돌을 튕겨올리는 건 물결들이 알아서 할 일, 앞물결의 설렘이 뒷물결까지 이어지도록 그냥 내버려둘 일

 

똑똑똑, 가능한 한 긴 노크 속에

나른하게 퍼져 있던 수면을 바짝 잡아당기면서

 

스침에도 몰입이 있단다.

난 이 시집과의 스침을 몰입으로 간직하고 싶다.

그리곤 앞물결의 설렘이 뒷물결까지 이어지도록,

앞 시집과 이 시집의 설렘을,

다음 시집가지 주욱~ 연결시켜 갈 수 있도록,

내게 다가온 이 스침을 감사하며 온몸과 마음의 감관을 열고 받아들이고 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맥낚시' 한구절을 또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물의 속내를 놓치지 않게 하는 힘은 제약과 불편이란다.

어찌보면 퇴영이라 하겠으나, 최고의 손맛은 생략에서 온다, 고 퉁치는 이 시인을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아흑~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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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2-24 00:09   좋아요 1 | URL
문장도 아름답다는 표현 이럴때 쓰게 되나 봅니다.
타이어 바퀴에 땅의 굴곡이 착 감긴다는 표현..ㅎㅎㅎ
물수재비가 글쎄 물의 미끄러운,그리고 스침의 몰입 !~~~

와우...

양철나무꾼 2015-12-26 23:22   좋아요 1 | URL
님의 감탄사도 멋진걸요.
이 시의 옵션(플러스 알파)라는 생각이 듭니다.
럭키하고 해피한 크리스마스 되셨나요?^^

서니데이 2015-12-25 15:4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5-12-26 23:25   좋아요 1 | URL
나이 한살 더 먹는다는게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나이가 됐는데,
내가 나이를 먹어야 님 같은 자라나는 새싹도 같이 풍성해질 수 있겠죠?
메리 베리 해피 크리스마스 주간 보내셔요~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