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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다르거나, 튀거나, 어쨌거나
김홍민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6월
평점 :
외계인의 침공이 없다면 당신은 백세까지 살 수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소리를 듣다가,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노후대비자금을 마련하라는 광고였나 본데,
난 평균 기대 수명이 백세라는 말로 들려, 소름이 오싹 돋았다.
알라딘서재에서도 16주년 기념이라고 하여,몇가지 통계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수치가 엉터리다.
논리적 오류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발견되니, 신뢰도가 떨어진다.
이 기회에 부디,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는 죽을 맛이란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80세까지면, 후하게 잡아도 앞으로 35년이다.
전공 관련 서적이나 공부하는 책을 제외하고 내가 1년에 읽을 수 있는 책이 100권 안팎이라고치면,
3500권이 고작인데, 어떻게 저런 수치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여느때처럼 생각은 널을 뛰어,
IF...만약에 외계인이 침공을 한다면...
하여 100세까지 살 수 없고, 80세까지 산다면 어떨까?
내게 80세는 쫌 추상적인 시간이고,
내가 앞으로 10년 밖에 더 못산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면 5년 또는 1년밖에 못산다면?
좀 슬프긴 하겠지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보내고 싶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1년 미만으로 산다고 생각을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보내는 것까지는, 큰 차이가 없는데,
일의 규모와 사람들을 가지치기하여 더 단출하고 홀쭉해진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도서출판 북스피어의 모토이고, 마포 김사장 님이 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재미가 있어야 책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어떻게 생각하면 인생은 연습게임이 아니고 매순간순간이 실제상황인데,
재미타령이나 할 정도로 그렇게 만만한 것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얘기하자면,
의미있고 진지하다고 하여서 재미있지 말란 법은 없다.
인생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순간순간을 각잡고 가드올리고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좋아서 기꺼이 하는 일과,
재미와 의미를 찾아서 의무감으로 하는 일은,
개인적인 성취도와 만족감이란 측면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전에 알라딘 서재 대문에 뜬 사진 한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 출판사의 몇 년전 장르소설 신문 광고였는데,
'여성은 미스테리 장르의 재미는 이해하지 못한채 남성파트너에게 매달려 섹스만을 조르는 존재인 듯 묘사한 북스피어사의 이 광고에 대한 해명을 요구합니다 '
라는 글이 캡쳐되어 있고,
그 밑에 사진 속의 남자, 이 책의 저자인 김홍민이 '자신의 책 85쪽에 나온 걸로 답변을 대신한다'고 했다는 답변을 인용해 놓은 페이퍼였다.
난 궁금한 것은 못 참는고로, 이 책을 선입견을 가지고 시작했었다.
먼저 이 책의 저자 김홍민 사장의 생김새나 외모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내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지나치게 하트 뿅뿅 발사되는 시선으로 봐서 그런것일 수도 있겠으나,
마케팅 차원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 싶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마포 김사장보다는, 마케팅의 귀재가 더 걸맞는 수식어라는 느낌이니까 말이다.
그가 구상했던 컨셉은,
'ㆍㆍㆍㆍㆍㆍ남자와 여자가 밤새 사랑을 나눈 다음날 아침이다. 여자는 남자와 한 번 더 하고 싶다. 하지만 남자는 어제 읽던 추리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여자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책을 펼쳐 읽는다. 여자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얼마나 재미있기에.'(87쪽)
였다는데,
그러고 보면, 여성은 미스테르리 장르의 재미를 이해하지 못한채 남성파트너에게 매달려 섹스만을 조르는 존재인 듯 묘사했다고 보는 입장 자체가 자격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개인적인 경험이랑 연관시켜 보자면, 장르소설의 경우,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시작했는데 중간에 멈추고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반대로 비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오히려 저렇게 재밌는 책이라면, 난 빼앗거나 가로채서라도 내가 먼저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암튼,
성을 상품화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은 없다. 아쉬운 마음도 없다. 세 시간 동안 재미있게 찍고 나서 배터지게 삼겹살도 먹었으니까.(88쪽)
여기까지 읽은 나는, 쿨하게 김사장의 손을 들아주고 싶어졌다.
재미를 이기는 그무엇도 알지 못했으므로,
쿨하게 시인하는데,
문뜩 '나 마케팅의 귀재에게 한번 더 낚인거건 아냐?'하는 엉뚱한 생각이 잠시 들었는데,
뭐 아쉽지는 않다.
이 책 속에는 저런 낚임을 상쇄시키고도 남을만큼 재밌고 기말한 내용으로 가득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도 그렇고 이 책의 저자도 그렇고,
(난 말초적인 그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순환장애나 감각마비 따위는 말초부터 비롯되는거니까 말이다.)
재미만을 추구하느라고 책의 본분인 의미를 망각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54쪽에서도, 재미있는 척한 게 아니고, 정말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계속해온 거라고 얘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것과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명분하에 직업적인 윤리나 도덕 의식마저 말아잡숫지도 않았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국 출판계의 문제점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진단해 보고 있으며,
해결책을 제시해보기도 하는데,
그것이 제살 깍아먹기 식이 아니라,
'더 재밌는 방식으로 책을 파는' 그만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마포 김사장이 마케팅에서 승승장구하여 귀재소리를 듣게 된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지사지의 태도를 취할 줄 알았기 때문이 한가지 이유인것 같다.
독자의 입장과 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안다.
<플레이보이 SF 걸작선>을 예로 든 걸 보자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세도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독자가 곤란에 처할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을 보면 내공이 느껴진다.
'출판에 대한 큰 그림을 생각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작은 걸 많이 생각해야 된다. 더 소심해져야 된다. 더 크게 미래를 볼수록 헛다리를 짚는다는게 내 생각이다.'
라는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를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하면서, 소심하게 만들고 소심하게 팔아야 한다고 소신을 다짐하는 것도 그렇다.
그는 '소심한 편집자는 지지 않는다. 아니, 지지않는다고 믿겠다.'
라고 얘기하며 끝을 맺는데, 난 거기에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져 봐야 이길 수 있고, 져야 꽃피울 수 있다.
져보고 이길 수 있기를, 져보고 꽃피울 수 있기를 빈다.
그런데, 어쩔 것인가 말이다.
책장을 단출하게 줄이겠다는 다짐에서 시작한 글이었는데,
야매 출판인이어도 출판인은 출판인지라, 장바구니가 불룩하다.
제대로 지름신이다.
이렇게라면 80이 아니라 100세까지 살아도 다 못 읽지 싶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