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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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졸업자 90퍼센트가 논다'고 하여 '인.구.론.'이란 신조어가 생긴 이면을 뒤집어 보게 되면,

인문학의 중요성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것과는 반대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나 국가기간산업 등에 요구되는 인문학과 출신자들의 거처가  턱 없이 부족하다고 애기하고 있는것 같다.

여기서 인문학의 자리에 '인간'을 바꾸어 대입시킬 수 있겠고,

그렇게 하면, 인간의 중요성과 인간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져서,

나에게 집중하고, 상대방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말로 전환시킬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에게 집중하고, 상대방에게 나를 알리려는 이유가 뭘까?

내가 잘났기 때문에, 그 잘난 나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대한 우주 속, 자연 속의 인간이라 치면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존재이다 싶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존재인 인간이,

이 거대한 우주만물 속, 자연 속, 세상 속에서 개별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도, 상대방도,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는 말의 이면에는

상대방을 헤아리고 이해하고 싶고, 나도 상대방에게 알리고 존중받고 심은 마음이 담겨 있다.

있는 그대로 공감과 소통을 주고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과 소통이 드나들고 흐르며 만들어 내는 물길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과 소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걸음 떨어져서보면 거기에도 일정한 흐름의 발자취 내지는 길이 있는거고,

우린 그걸 경험이나 행동이라고 부르게 되는 걸텐데,

학문이 경험이나 행동을 동반한 실천적인 학문이 되는게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유시민 또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작가를 최종 직업으로 선택하여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글쓰기'와 아무 연관이 없는 과를 나온 그가,

지난 30년동안  베스트셀러를 여러권 냈으니까,

'작가'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고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내도 좋은걸까?

 

그가 '(논리적)글쓰기 특강'이라는 책을 내놓을 수 있었던걸 놓고,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대학시절 민주화운동 청년연합(민청년)에서 활동을 하면서,

텍스트 독해, 텍스트요약, 사유와 토론으로 이어지는 훈련을 꾸준히 한것을 그 저변으로 봐야 하니까,

그의 경험과 행동을 반영한 실천적인 학문으로 봐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글을 쓰게 되든지 논리적 글쓰기는 이렇게 반복훈련하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과거 그의 발자취를 삶의 반영으로 봐야할까?

 

텍스트를 읽고 요약한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문제점과 한계까지 탐색하면서 읽는다는 건데,

한걸음 나아가면 그 문제점과 한계가 어디서 왔는지도 추론해볼 수 있다...고 하면서 두루뭉술 얼버무리는데,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다 넘어지는지, 딛고 일어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서 라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위해선 여러번 주의깊게 읽어야 할테고,

그러다 좋으면 필사를 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사유와 토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훈련과정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논리적(또는 인문학적) 책읽기와 글쓰기를 한 사람만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데 적극적일 수 있겠다 싶다.

 

그가 제시하는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규칙'은 이런 것들이 있다.

첫째, 취향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섯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19쪽)

 

글쓰기는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말하기에 비견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주는 이가 없는 글은 난해하고 들어주는 이가 없는 말은 공허하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누구나 쉽게 글이나 말로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세종대왕께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져 하는 바가 있으면 제뜻을 쉽게 펼 수 있도록 선처하신 덕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아울러, 세종대왕이 인자하기만한 성군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같은 견해를 만나니 반가웠다.

왕의가마가 부러졌다고 과학자 장영실을 곤장을 때려 내쫒았고, 사소한 연애 사건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궁녀를 처형했다. 두만강 6진 지역을 우리 영토로 만들 목적으로 강력한 강제이주정책을 시행해 백성을 괴롭히기도 했다.ㆍㆍㆍㆍㆍㆍ그러나 한글을 창제, 반포한 것이 '위대한 일'이었다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다.(274쪽)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과하게 주억거리며 백배 공감한 것은,

'글은 쓴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지만 인격 그 자체는 아니다.'라는 문장이었 였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쪽에서 귀에 거슬리는 말이 듣기 싫어 수정을 요구한다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겠지만,

그외에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견해는 독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게 현명하단다.(92쪽)

 

글을 썼으면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혹평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글이 는다.

쓴 글을 아무도 모르게 혼자 끌어안고만 있으면 글이 늘 수 없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서재는 좋은 친구도 되고 첨삭지도를 해주는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너무 어렵게 써놓으면 독자가 이해를 못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글로는 소통도 교감도 할 수 없다.ㆍㆍㆍㆍㆍㆍ어려운 용어를 쓰고 복잡한 문제를 다루어도 독자가 쉽다고 느낄 수 있도록 써서 그런 것이다. 나는 주제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도 주의 깊게 읽기만 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끔 텍스트를 쓴다. 어떤 주제, 어떤 형식의 글이든 마찬가지다. 읽기 쉬운 글이라고 해서 쓰기도 쉬운 건 아니다. 쉽게 쓰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라는 부분과 관련,

한가지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한가지 규칙을 무시하였다.

이런 글에서 취향고백과 주장은 자칫 한끗 차이로 비춰질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글로는 소통과 교감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예를 든다는게, 진은영의 <문학의 아토포스>란 책의 서평이었는데,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독자 서평 가운데 한대목이란다.

난 과연 이 글을 쓰면서, 진은영 님에게 양해를 구했는지, 또는 이 서평을 쓴 그 '알라디너'에게 양해를 구했는지를 묻고 싶다.

그러지 않아서 누군가 한명 내지는 둘 모두 상처를 받았다면,

어려운 글로 써서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얘기하기 위하여,

논리적 또는 인문학적 글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답게를 포기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글쓰기의 수사법에선 어떤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기가 높아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비교'라고 하는 것이 가장 아랫질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글쓰기 실력이 별볼일 없어서,

그래서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수사법을 쓰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까지 내는 내로라 하는 실력자가 이래야만 했을까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자만심과 허영심으로 가득차 어렵게 쓴 글이나 말도, 꾹 참고 들어줄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진은영이라는 작가가 그 글을 어떻게 썼는지 알아볼 생각도 않고,

알라딘서재에 그 리뷰를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써서 올리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않고,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로 만들어버라는데,

독자들이 무조건 동의하고 수긍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인 것이고,

글은 쓴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지만, 인격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라는 말과 관련하여,

' 글로 타인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교감하려고 한다'며 '글쓰기 특강'이라는 멋진 책을 낸 그가,

그 책의 한쪽 지면을 할애해서 한말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걸 하고, 하기싫은걸 하지 않고 사는게 인생이다.

하지만 하고싶은 개인적인 것이 다수에 위배될 때는 다수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겠고,

그리고 사유와 토론의 과정을 거쳐...의견을 수렴해 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자세히 알아볼 생각도 않고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은, 평소에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타인과 교감하려고 애쓰는 그답지 않다.

 

좋게 시작한 책인데,

논리적 글쓰기, 인문학적 글쓰기는 삶의 반영이라는데,

그에게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일까...중간에 맥이 빠져버린 후 영 회복 불가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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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05 04:26   좋아요 0 | URL
덩달아 ˝고개를 과하게 주억거리며˝ 오늘 제가 고민하던 것과 유사한 고민이시네요. 저는 읽은 책이 흡족해서 다행; 번역자에게 감사해야 할 지도;
그런데 제가 흠모하는 철학자, 비평가들이 줄줄이 저기 서 있다니 속상합니다ㅜㅜ

양철나무꾼 2015-04-06 10:29   좋아요 0 | URL
저도 유시민을 향하여,
`글은 쓴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지만 인격 그 자체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체념할 수 있어야 할테지만,
기대가 너무 만발했나 봐요~--;

2015-04-05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04-06 10:33   좋아요 1 | URL
네, 알라딘 서재의 글이 인용될 수 있었던 것도 놀랍지만,
글쓰기 특강의 전제조건으로 제대로 읽기를 내세우신 분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면서,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느껴질 수도 있게 인용한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설혹 그 글을 잘못 읽었더라도,
전후 그 알라디너의 글을 몇개씩만 읽었더라면,
그 알라디너가 어떤 의도로 그런 글을 썼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테니까 말예요.


돌궐 2015-04-06 22:11   좋아요 1 | URL
원래 맥락에서 벗어난 해석으로 유도하는 인용은 매우 잘못된 인용방식이죠.
그것이 고의가 아니라면 원저자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04-08 09:32   좋아요 0 | URL
어려운 용어를 쓰는 문제를 두드러지게 하려다보니까 저렇게 된것 같아요.
우리도 글을 쓰면서 흔히 범하게 되는 오류죠.
부분을 미루어 전체를 대표한다고 착각하는 거요.

제가 요즘 `작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저자도 중요하지만,
저자와 균형을 맞춰줄 `편집자`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저 위 편집자의 견해를 `독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시는 유시민 님이라면,
아직 그런 맞춤한 편집자를 찾지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위하고싶습니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