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 배우긴 배운것 같은데 잊고 지내다가, 지난해 변호인 때문에 떠올렸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더불어,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따위.

 

나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은데,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의 연속이지 싶은게, 삶이 폭폭하다 싶을 때가 한 번씩 있다.

그럴땐 지난 해 저 영화를 본걸 돌이켜 후회해야 할지,

아님, 아직도 저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을 안까먹고 있는 머리를 한대 쥐어박아야 할지,

아님, 신성한 대한민국의 헌법이라는 것이,

그것도 1조 1항과 2항부터 어긋나냐고 어디 헌법소원 같은거라도 내봐야 되는건지,

한참 헷갈린다.

 

근데, 나의 이런 헷갈림을 일축시키는 건지 부추기는 건지 모르겠는 이가 한명 더 있는데,

이 책'나의 한국현대사'를 쓴 '유시민이 되시겠다.

아마, 난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라는 팟케스트 프로그램을 통하여 조봉암 선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공산당이나 간첩쯤으로 알았을 정도로 반공교육을 제대로(?) 받은 세대이다.

 

암튼, 그가 태어난 1959년, 당시는 무늬만 민주공화국이었지,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최소한의 능력도 없었단다.(43쪽)

그러던 것이, 이책을 쓰던 2014년, 풍요롭고 화려하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로 바뀌었다고 했다가,(45쪽)

188쪽에 가서는, 그런데 최근 우리의 민주주의가 과연 성숙해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도 하니까 말이다.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동시에 상반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동전의 양면이랄 수도 있고, 해와 달이랄 수도 있겠다.

 

이말은,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기 마련이고,

자유와 평등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종의 제한이 따른다는 아이러니컬한 얘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획일화 되고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다르게 태어나서,

다르게 성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각자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골고루 보장하는,

일종의 차별-차이가 만들어내는 자유와 평등인 셈이다.

 

난 역사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이유가 일부 특권층 내지는 소수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강해서였고,

그렇게 역사를 기록하는 소수의 시선을 인정하지 않으면,

소신있는 기록의 산물이 등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때문에 역사는 얼마든지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인데,

그동안의 난, 제도권 교육에 익숙해져 놔서,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고,

다르면 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라는 띠지의 문구가 조마조마했다.

흔히 '숲 한가운데 있을 때는 숲 전체를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살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살아가고 있는- 나름 역사의 한획을 긋고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아무리 '글쓰는 일로 밥을 벌어 먹고'내지는 '문장가'여도,

그가 통과했고 통과하는 순간들의 팩트만을 전달해야지,

판단을 해서도, 그렇다고 칼자루를 우리에게 넘겨주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팩트를 전달하는 것까지'만' 그의 몫이고,

판단을 하는 건 나중에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하는 것은 권리라기 보다는 오지랖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가  '글쓰는 일로 밥을 벌어 먹고'내지는 '문장가'여도 당시 '정치 권력'에 몸담고 있었던 이력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삶에서 안전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인생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내가 보고 겪고 참여했던 대한민국현대사를 썼다. 1959년부터 2014년까지 55년을 다루었으니, '현대사'보다는 '현재사' 또는 '댕대사'가 더 적합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ㆍ과거를 회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11쪽)

그리고,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역사는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방송뉴스와 신문보도가 현재를 '실제 그러한 그대로' 전해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8쪽, 서문)'

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역사는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지,

현재 살아있는 사람의 번민하는 삶을 기록하는 예는 잘보지 못했다.

 

이 얘긴 그간의 역사 책의 관례로 미루어 보면,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 보여주지 않으리라는 건데,

요즘 세상의 살아있는 역사를 실제 그러한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현대사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얘기로 '전환'되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역사가들이 일하는 방식도 언론인과 다르지 않다. 역사가도 각자 나름의 개성과 취향이 있고 서로 다른 욕망과 감정에 끌리며 저마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사실 가운데 자신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선택해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두 가지가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9쪽)

ㆍ국군이 베트남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많다.일본에 대해서는 잘못된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라고 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잘못된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것은 완강히 거부한다.(10쪽)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며 주관적이다.

개개인들의 삶의 기록이 모이면 그걸 우린 역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혹자들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들 한다.

유시민이 이 책 '나의 한국 현대사'를 쓴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라고 한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과정을 통하여,

'그릇된 역사의 방향은 바꿀려고 노력하는 것까지'로 봐야하지 그의 돌아봄이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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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2-01 13:49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혹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아직 안 읽어보셨으면 꼭 읽어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이 글에서 유시민과 양철나무꾼님이 방점을 찍는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폴리스에선 [가치있는 삶]과 [단순한 삶,생명 자체]가 이분법적으로 공존됐는데 왜 근대 국가 결성이후 후자가 전자에 포섭되었는지. 왜 배제가 동시에 포함인지(주권자의 딜레마). 푸코가 천착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권력적 법과 제도가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에 대한 탐구를 이어받아 아감벤이 말하고 있거든요. 저도 읽고 있는 중이라 자세한 얘긴 드릴 수 없지만 투박한 번역너머 양철나무꾼님과 저의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내적으로 결탁되어 있다는 것.

만병통치약 2015-02-01 13:47   좋아요 1 | URL
역사논쟁이나 이슈에 대한 양 진영의 해석과 대응을 보면 진보와 보수 모두 피로해진 것같아요. 활력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지쳐가고 정해진 룰대로 대응하고 반응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역사에서 20세기말과 21세기 초를 어떻게 봐줄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에 뭔가 달라진 것 같아요. 국가 발전과 개인발전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서 개혁이라는 단어는 의미없어지고 실종된듯 합니다. 유시민은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지만 뭔가 안타까와요

AgalmA 2015-02-02 10:08   좋아요 1 | URL
예. 만병통치약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역사를 많이 봐오셔서 더 잘 보이실거라 생각되는데요. 민주주의 또한 주권자의 권력모임이죠. 국민이라는 대단찮은 직위. 다수결의 맹점에서 이미 여실히 보여지듯이(선거 실패하면 끝 아닙니까). 그런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까지 기생하는 상황이니 초극의 길은 더 묘연해진거죠. 민주주의로 자본주의를 수정하긴 매우 어려워진 거 같고요 긍정적 전체주의 메스를 들고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방법이 지금으로선 대안이겠죠. 사회민주주의라 말하는 그것이요. 헌데 이 낱낱의 개인들이 반발하면 답이 없죠. 당장 복지세금 올리겠다고 하면 자기 이익챙겨주겠다는 정당에 표를 주니까요. 아, 지구 떠나고 싶은 상황들;;

양철나무꾼 2015-02-01 21:59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만병통치약님 좋은 댓글 감사드려요.
새겨 듣겠습니다.
아감벤은 언젠가 박가분님이 번역을 하셨을때 읽어볼 기회가 있렀는데 좀 벅찼습니다, 헤헷~^^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유시민이 리영희님의 책제목을 인용하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글을 어딘가에 기고한걸 본적이 있는데, 그걸보고 참 명징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요번 책은 뭐랄까, 충분히 잘 쓰긴 잘 쓴 책이고, 그의 스타일도 맞고, 필력도 여전한데 말이죠~, 뭔가가 빠진 느낌이예요.
가만보니까, 글쓰는 그, 문장가로서의 그는 건재한데 말이죠, 그 자신이 빠진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책을 굳이 분류하자면 역사서라기보다는, 글빨 좋은 한권의 책을 봤다고 해야할까여~? 헤에~, 땀나라~``

AgalmA 2015-02-02 04:14   좋아요 0 | URL
다시 한번 도전해보세요. 혹시 모르니까 도서관 대여로... 저도 오래전이면 호모 사케르 글만 읽었을 거예요. 지금도 좀 벅차긴 해요ㅎ 법학자라 언어 쓰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렵더군요. 하지만 한 자 한 자 읽어내려가며 갯벌의 낙지잡듯이 합니다. 초보자가 갯벌에서 낙지 잡는 거 아렵다는 거 아시죠ㅎ?
유시민씨 이 책을 못 봐서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유시민씨 그간 뚫고온 화마가 얼마나 강했나요. 팟캐스트 나와서 이젠 가족 챙기고 낚시하며 맛난 거 먹으며 살거라 하는 거 들으니, 양철나무꾼님이 아쉬워하는 부분이 뭔지 짐작이 됩니다. 그가 정치하면서 잃고 나온 칼날이거나 감춘 칼날이거나 그렇겠죠^^;

마녀고양이 2015-02-02 17:06   좋아요 0 | URL
난, 이 책 참 좋아~
주관적인 고민들, 너무 맘에 들었고
그 주관적인 고민과 해석에 공감이 되어서 참 좋았징.

실은 아직도 읽는 중이야... ㅋㅋ (벌써 서너달째 읽는 중. 에공)

양철나무꾼 2015-02-03 16:21   좋아요 0 | URL
나도 시민으로서의 유시민이 싫은게 아니고,
공인으로서의 유시민이 쫌 비겁해보인다는 얘기지.
근데, 오늘 보니까 문재인과 박지원도 그리 모양새가 좋아보이진 않더라.

정치에는 신경 끄고 살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역사를 외면하게 되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