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털고, 여자는 닦고 - 심봉석 교수의 생활 속 비뇨기과 이야기
심봉석 지음 / 가쎄(GASSE)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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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점심시간을 목전에 두고 환자들이 몰렸었다.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비껴가는지, 시간 개념이 점점 없어지신다.

대부분 오래 다니신 분들이기 때문에,

서로서로 편의를 봐줄 줄도 알고, 배려할 줄도 알고,

나도 시간에 그리 약박하게 굴진 않는다.

다들 빈자리를 찾아 들어가셔서 알아서 준비를 하고 기다리시는데,

한분만 유독 빨리 빨리를 외치신다.

다른 분들의 양해를 구하고 가봤더니,

옷을 벗지도 않으시신 채, 스카프도 목에 동여매고는 그대로 앉아 계신다.

"바쁘시다면서 옷을 벗고 기다리셨어야죠~."

라고 했더니, 되돌아오는 대답이,

"같은 여자끼리, 좀 벗겨주면 되지."

라고 하며, 뭔가를 깨물어 드신다.

같은 여자끼리, 가 아니라 여자 할머니, 아니 여자 할아버지여도 그렇지,

혼자 그리 바빠서 동동 거리고 손발에 모터를 단듯 뛰어다니면,

대부분의 경운 안쓰러워서라도 이렇게 저렇게 도와주려고들 하시는 거랑 비교할때, 달라도 너무 다르시다.

"엄마, 내가 다른 사람이 벗겨주면 잘 벗을 수는 있는데, 내가 다른 사람 벗기는 건 전문이 아니다.

 시간 없으시담서 먹지만 말고 빨랑 벗어봐라."

치밀어 오르는 걸 눌러 삼키며, 분위기 전환삼아 웃자고 한마디 했더니,

입밖으론 뭔가를 '퉤~' 하고 뱉는데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니 대추씨다.

"모 그리 말이 많나?

 테레비에 나오는 의사선생님들 봐라. 암소리 않고 옷 위로도 잘만 하더라."

라고 하신다.

 

시대가 참 많이 변했다.

환자들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도,

자기가 알아야 자기 병은 고친다는 인식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의학적 지식도 많아졌다.

 

그런 반면, 귀 얇아져서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대충 주워들은 지식을 종합하거나,

텔레비전 의학상식에 나오는 일반론을 본인에게 적용하여,

텔레비전에 나오는 의사들은 '선상님'으로 추앙받는 반면,

정작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상과 신뢰도가 날이 갈수록 추락한다.

 

흔히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어깨통증의 경우에도,

보통 오십견이라고 소개되는 일반적인 질환에 대한 일반적인 증상과 일반적인 처방 정도가 고작이다.

나이 오십 무렵에 찾아온다고 하여 오십견 또는 동결견 또는 frozen shoulder라고 불리우는 질환은 원래 adhesive capsulitis이다.

하지만, 요즘은 나이 오십이라고 하여 오십견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어깨에 적용되는 진단명이 오십견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목 관련 질환으로 인하여 어깨가 아프게 느껴지는 것도 여러가지이며,

어깨의 경우에도, 회전근개 파열, 어깨 충돌증후군, 석회화건염, 탈구나 아탈구등 질환에 따라 적용과 금기를 달리하는데,

치료법과 예후 또한 보존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 운동이 필요한 경우, 수술이 필요한 경우 다 다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들이 어깨 질환 중 일반론적인걸 예를 들어 얘기하는데,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그중 어깨라는 부위만을 과장하여 듣고는 자신의 케이스에 소급 적용한다.

 

그리하여 훌륭한 의사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기준이 언제부턴가 바뀌어,

환자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는지,

진단을 하고 처방을 하고 예후를 파악하는지,

꾸준히 자신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공부하는지, 에 있는게 아니라,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인지,

환자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얘기를 하는지, 의 여부가 되었다.

 

시대가 변하여, 환자의 의식 상태랑 요구사항이 변한 것도 그렇지만,

그에 걸맞게 용어도 그렇고,

진단과 처방과 예후를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목이 민망해서 그렇지, 참 괜찮은 책이다.

나도 잘 모르고 헷갈리는 그런 의학 상식과 정보에 대해서,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대놓고 묻기도 그렇고,

또 누구에게 물어야 좋을지 모르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려운 의학 용어를 섞지않고 쉬운 말과 예를 들어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이래서이다.

"완치가 가능한가요?"

수차례 반복된 재발로 많은 고생을 한 환자들이 묻는 말이다. 대답은 "조건부로 가능하다"이다. 즉 만성골반통증후군은 세균성 감염질환이 아니라 생활의 병이기 때문에 병원 치료와 함께 생활습관의 교정이 필요한 것이다. 여러 가지 잘못된 생활습관을 교정하지 못할 경우 치료가 되더라도 일시적이고 수시로 재발하여 결국에는 불치의 병으로 평생 고생할지도 모른다.(90쪽) 

무조건 완치를 호언장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립선에 특별한 이상이 없고 소변줄기가 굵고 세면 정력도 강한 것일까? 아쉽게도 세찬 소변줄기가 강한 정력, 즉 발기력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의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ㆍㆍㆍㆍㆍㆍ하지만 소변줄기에 문제가 생기면 전립선 이상을 의미하고 이는 더 심각한 배뇨장애나 성기능 장애로 진행할 수 있으므로 바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102쪽)

뭔가를 설명할때 논리적으로 조근조근 설명하지, 무조건적이지도 않고 구렁이 담을 넘듯 '쓰윽~' 지나쳐버리지도 않는다.

 

이 책은 이렇게 의학서적으로 분류되어야 겠지만,

제대로된 섹스 교과서가 없어서 19금 딱지가 붙은 책이나 영상물을 찾는 (누군가는 이걸 adult라고 하더라)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종족 번식만이 목적인 동물들의 성과는 달리 인간의 성은 쾌락과 함께 소통, 교감,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나이가 들거나 신체적 기능이 떨어짐과 관계없이 정서적인 성 욕구는 지속된다. 사람들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안정감이고 행복한 성생활은 이를 이루게 해주는 중요한 요인이다.(435쪽)

19금 딱지가 붙은 책이나 영상물 들이 자극적이고 환상적이되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는 '글쎄올시다'라면,

이 책은 주변의 케이스 스터디와 상담 사례를 가지고 쓰여진 거니,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인간중심적이고 인간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따뜻하고 정겹다.

 

오늘 누군가가 이마에 주름이 너무 많다면서, 주름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묻길래,

내가 여러가지 방법 중, 가장 쉬운게 보톡스 되시겠고,

부작용으로 눈이 안 감길 수도 있는데 그건 감수해야 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람이 나이먹고 늙는건 자연스러운 거다.

관형찰색觀形察色하는 망진望診의 경우에는 주름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내가 보톡스 너스레  대신 하고 싶었던 처방은,

짜증근 성냄근이 만들어낸 주름을 미소근, 웃음근으로 바꿀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고 웃는 연습도 하라는 것이었다.

一笑一少一怒一老니까 말이다.

 

'아브라카다브라'도 테스토스테론 보충 요법도 그 다음이다.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용어는 중세유럽에서 질병이나 불행으로부터 지켜달라고 사용하였던 주문이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브아걸처럼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는 주문으로 사용되었는데, 남성의 젊음 유지에 있어 테스토스테론이 아브라카다브라 주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갱년기증후군을 가진 남성에서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하면 성기능 향상과 섹스에 관한 욕구가 예전과 같이 회복되어 활기가 넘치고, 집중력이 증가하고, 삶을 확실하게 변화시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누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아브라카다브라 주문이 나오는데,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가 덤불도어 교장을 죽일 때 사용하였다. 같은 주문이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도 되고 사람을 살해하는 무서운 주문도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성갱년기를 해결하는 테스토스테론도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만병통치는 아니고 불로장생의 비술은 더욱 아니다. 무엇보다도 명심하여야 할 사실은 전문가의 적절한 검사와 관찰과 함께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하여야 한다.(224쪽)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만으로 이 사람을 신뢰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뭔가를 설명할때 교과서적이지않고 논리적이고 차근차근하기 때문이다.

 

프로 야구 선수의 경기 중 아이싱(Ice-up) 같은 경우를 예로 든다.

나도 종종 텔레비전 화면에 투수들이 경기 중 막간을 이용하여 아이싱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우려하였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프로야구 초기에는 경기가 끝난 후 더운 목욕으로 몸을 풀었지만, 아이싱이 투수들의 어깨와 팔꿈치 근육의 피로회복과 근섬유 손상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 효과적이라 하여 보편화되었다. 일반적으로 투구 수가 100개 이상이면 20분 정도, 50개 정도에서는 10분 정도 아이싱을 한다. 아이싱을 하면 근육이 경직되고 혈관이 수축되기 때문에 운동 종료 후 해야 하고, 다시 운동하는 경우에는 6시간이 지나서 하는 것이 좋다.ㆍㆍㆍㆍㆍㆍ 손상을 받은 후 바로 온찜질을 하게 되면 손상부위의 혈관을 확장시켜 부기와 출혈을 더 심하게 하여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급성기에는 냉찜질을 하여 염증과 부기를 감소시키고 24~48시간 정도 지난 후에는 온찜질을 하는 것이 파괴된 조직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398~399쪽)

그렇다고 이런 걸 예로 들어 설명하는 건,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을 모르면 가능하지가 않다.

기본을 제대로 알고 임상에서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것,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정OO선수의 경우처럼 경기 중 아이싱을 하여 통증을 줄이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게속 경기를 할 경우 근육을 경직시켜 오히려 경기력 저하와 근육 손상의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400쪽)

이런 코멘트는 본인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공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중세 유럽과 로마시대의 위생 문제(난 로마시대를 구획정리가 잘되고 상하수도 시설이 발달했다고 알고 있었다)를 역사와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고,

다문화가정, 성적소수자, 원격 의료 등 다소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데 주저함이 없다.

 

 

보통 이런 의학 관계 서적을 보게 되면,

말만 의학 관계 서적이고 자신의 경력을 자랑하는 경력 치장용 서적이거나,

어려운 용어로 되어있어서 의사나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면 읽기 힘든 경우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카더라'로 일관하는 찌라시 수준의 정보지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이글의 처음을 중언부언 길게 시작했는데,

저런 상황을 환자만의 문제로 돌릴 순 없다.

환자의 수준과 의식상태와 요구사항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에 부응하고 상응하는 적절한 대책을 하지 못한 쪽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랜만에 환자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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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11-04 15:30   좋아요 0 | URL
저 오늘 이책 제목을 병원에서 보고 음~~했는데 이케 리뷰를 보네요

알케 2014-11-04 17:50   좋아요 0 | URL
제가 바로 그 어깨 아픈 환자입니다. 곰 두 마리가 양 어깨에 올라 앉은 것 같아요. 무리하면 여지없이 나타나서 앉습니다 ㅎ

감은빛 2014-11-09 03:40   좋아요 0 | URL
제목이 참 거시기 하네요~ ^^
내용이 충실하다니 다행입니다만,
저런 제목이면 대개 내용도 별로인 경우가 많은 듯

병원 자체를 그리 신뢰하지 않지만,
비뇨기과는 정말 알고 싶지 않네요.
온갖 매체마다 무슨 해괴한 광고는 그리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