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여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4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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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옛날에...아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아들을 재워놓고 새벽녁에 밀린 공부를 하다보니 항상 잠이 부족했다.

잠을 쫒는데는 차가운 아이스크림만 한것이 없었고,

그날도 새벽에 냉동실 문을 여니,

내가 사다놓은 기억이 없는데...스티로폼 아이스크림 박스 안에 하얀 아이스크림 두덩이가 들어 있는거였다.

난 쫒아지는 잠을 쫒느라 맛을 느낄 새도 없이,
초코시럽 딸기시럽을 듬뿍 얹어 허겁지겁 먹었었다.

 

사달이 난걸 깨닫게 된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냉동실 문과 냉장실 문을 번갈아 열었다 닫았다 하던 아들이 대성통곡을 하는거다.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서...눈사람을 동생 삼으려고 했었는데, 냉장고가 고장났었나 봐. 으엉~ㅠ.ㅠ”
그 눈사람이 내 입 속으로 들어갔다는 건 영원한 비밀이고,

그런 사연이 있어서인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 시집의 제목 '눈사람 여관'을 보자 '냉장고 내지는 냉동실?'하는 엉뚱한 연상이 지어졌다.

 

암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 주변에는 입만 열었다 하면... 너무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 뿐이다.

이렇게 나와 내주변의 쓸쓸함과 외로움도 버거운지라,

글 전반적으로 묻어나는 쓸쓸함과 외로움의 정서를 감당하기 힘들어 좀체로 안 읽으려드는,

이병률의 시집을 읽게 된건, 시집의 발문을  내가 애정하는 유희경이 썼기 때문만은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면, 내가 이병률의 글에서 느끼는 정서를 그도 그렇게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 또한 그같이 느낀다면,

그에 미루어 감성적으로 한참 무딘 나는 감당해낼 만한 것을, 괜히 엄살 떨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서둘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표현방식과 급은 다르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유희경도 비슷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내 무딘 감성을 시인과 비교하여 뭘, 어쩌겠는 거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없을 따름이지만,

어쩌겠는가, 비교를 통한 경쟁심으로 전의를 불태우며,

그런 방법으로 여지껏 살아온 불쌍한 영혼인 것을~--;

ㆍ그가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따금 내가 앞서다가 뒤를 돌아보면, 그는 사라져버렸거나, 아주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내가 돌아보는 감각에서 찾아오는 여러 감정을 지우기 위해 늘 그를 배웅해야 했다. 먼저 가는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그때마다, 내 안에 바람이 불어온다. 그래서 구멍이 생기는 것을 안다. 이상한 비유이지만, 더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엔 이것이 아쉬움이라고 생각했다.ㆍㆍ그 감정은 그가 나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나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한 감정은 더 앞선 상황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언제나 잠시, 있는 사람이었다.(136쪽)

암튼 유희경 발문 속의 이런 구절에 기대어서 위로를 받으려고 했던 나는, 이내 먹먹해지고 말았는데...,

ㆍ그 자리엔 나도 없고 사실상 당신도 없다. 모두 잠시,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게 시인이 지우고 쓰려는 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비밀인데,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기도 하지만, 시인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은 듣는 사람이다. 듣고 적는 사람이다. 그렇게 언어의 변방에서 놀라운 속도로(혹은 이동으로) 중심에 닿는 이다.ㆍㆍ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울림통을 가지고 있다.(138쪽)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의 정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얘기하는듯 하기 때문이었다.

시인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고 적는 사람이니까,

발문을 쓰고 있는 유희경 또한 시인이니까,

독자가 되어 시집을 읽을때는 나와 같이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거지만,

그 또한 시인이라는 자리로 돌아가면,

쓸쓸함을 흩뿌려야 된다고 얘기하는듯 해서 말이다.

 

내가 'ㆍㆍㆍ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울림통을 가지고 있다.(138쪽)'라는 문장에 집중해 있는 사이,

유희경은 이렇듯 나에게 다가오는 듯 비껴가 버리고 말았고,

난 태연을 가장하며 관심을 딴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책 뒷표지에 나오는

'아픈 데는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없다, 라고 말하는 순간

 말과 말 사이의 삶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사무치게 끼어들었다.'

는 구절을 읽다가 '김선우시인'이 쓴 수필집 제목'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가 떠올랐고,

이 시집 바로 전에 읽었던 이영광의 시집 속에도 비슷한 뉘앙스의 구절을 발견했었다.

적어도 이 세 시인들은 비슷하게 시작하는 발제를 가지고,

각자 자기만의 울림통을 가지고 수필로, 시로, 시집의 헌사 대신으로...만들어내는 것이 색다른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가장 쓸쓸하고 외롭기로 따지면, 이영광 시 속의 '아직도 만나니?'하는, 내게는 절규로 들린 그 문장이었지만 말이다.

 

결국 유희경은 시집의 헌사라는 형식을 빌어,

시인들이란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쓸쓸함을 흩뿌리는 존재들이고,

그걸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는 읽는 독자의 몫이다, 라고 얘기하는 듯 하다.

하지만, '추측이 깨달음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난 그의 이런 시들을 읽으면서,

한없이 쓸쓸하고 그리하여 씁쓸 또는 쌀쌀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혼자

 

나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

나무 이파리처럼 한 몸에 돋은 수백 수천이 아니라 하나

파도처럼 하루에도 몇백 년을 출렁이는

울컥임이 아니라 단 하나

하나여서 뭐가 많이 잡힐 것도 같은 한밤중에

그 많은 하나여서

여전히 한 몸 가누지 못하는 하나

 

한 그릇보다 많은 밥그릇을 비우고 싶어 하고

한 사람보다 많은 사람에 관련하고 싶은

하나가 하나를 짊어진 하나

 

얼얼하게 버려진, 깊은 밤엔

누구나 완전히 하나

가볍고 여리어

할 말로 몸을 이루는 하나

 

오래 혼자일 것이므로

비로소 영원히 스며드는 하나

스스로를 당다걸고 스스로를 마시는

그리하여 만년설 덮인 산맥으로 융기하여

이내 녹아내리는 하나

 

'나비를 그리는데 나비가 왔다/시를 쓰는데 시가 오지 않는 것과 다르다'하는 '시는'을 읽다가는,

다락방 님, 이유경의 책'독서공감, 사람을 읽다'의 한구절이 생각났다.

그녀는 '바람의 잔해를 줍다'를 읽다가,

'내 가슴 속에 있던 고치가 찢어져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려고 날개를 활짝 펼쳤다'는 표현을 보고

소설가가 되는 걸 포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읽으며 감탄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걸 기록으로 남겼고,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으로도 냈다.

그녀라면 '누에고치를 잘 키워 번데기를 탈피하고 한마리 나비가 되어 날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쓸쓸하기로 따지면, 몇몇 사람의 시가 쓸쓸한 것이고,

시가 아니고도 얼마든지 글이 쓸쓸해질 수는 있는것이지만,

모든 이의 글이 다 쓸쓸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꿈이나 희망 따위를 노래하는 글이었음 좋겠다.

 

실은 '다락방'님이 생각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는데,

그녀의 책 속에서 발견한 '결혼은 나의 선택이다'라는 문장을,

이 시인에게 슬쩍 바꾸어 적용하고 싶은 시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결혼은 하기 힘들겠다~--;'

 

면면

 

손바닥으로 쓸면 소리가 약한 것이

손등으로 쓸면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삶의 이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먹을 것 같지 않은 당신

자리를 비운 사이 슬쩍 열어본 당신의 가방에서

많은 빵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을 삶의 입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지 못했던 간밤 꿈이

다 늦은 저녁에 생각나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그것을 삶의 아랫도리라 생각한다

 

달의 저면에는 누군가 존재한다고 한다

아무도 그것을 알 수는 없고

대면한 적 없다고 한다

 

사람이라고 글자를 치면

자꾸 삶이라는오타가 되는 것

나는 그것을 삶의 뱃속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다 똑같다.

먹고 싸고 지지고 볶고...그러고 살아가는거다.

먹지를 않으면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를 비울 일도 없을거고 말이다.

먹고 싸고 지지고 볶지 않는 것은, '꿈 속의 그대'일 뿐이다.

평생 꿈같은 연애나 하고 사는 수밖에, ㅋ~.

 

낙화

 

그대가 일하는 곳 멀리 자전거를 세우고

그대를 훔쳐보는 일처럼

 

반쪽의 반쪽밖에 안 되는 나는

비겁이라는 꽃 이파리 머리에 꽂고

시시덕 시시덕 오늘도 얼마나 비겁했던가요

 

당신이 자전거 쪽으로 다가와

우산을 버리고 돌아설 때에도

나는 비겁을 뒤집어쓰고 몸을 돌려 서 있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 그늘이 생깁니다

 

천 년에 한 번 사랑을 해서 그런 거라고

그게 아니라면 머릿속에 그토록 많은 꽃술이 매달릴 수가

천 년에 한 번 죽게 될 테니 그렇게 된 거라고

아니면 그토록 한사람의 독으로 서서히 죽어갈 수야

 

혼자인 것은 비겁하지 않은데

당신을 훔쳐보는 일은

당신 하는 일 앞에서 비겁한 일이어서

 

십 년을 백 년처럼

당신을 보러 이곳에 오고

당신은 어느 바다로 흘러가지도 않으며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주차할 수 없는 구역에

단독 주차하는 나를 위해

마냥 봄처럼 십 년을 당신이 있습니다

위 시는 해석은 불가능하지만, 왠지 좋았던 시다.

시의 행간에 뭔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읽으면서 자꾸 목구멍으로 울음이 차올랐다.

침을 꼴깍하고 눌러삼키면서,

목구멍으로 치미는 울음도 같이 눌러삼켰다.

그는 '눈사람 여관'에서,

'나흘이면 되겠네요/영원을 압축하기에는/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이라고 했고,

어느 시인은 달이 한번 눈 질끈 감았다 뜨는 걸 한달이라고 하던데,

이 시의 화자도 바라만 보다 말 것이 아니라면,

부디 아련한 시간도 바삐 지나 갔으면 좋겠다.

 

붉고 찬란한 당신을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속에다 놓아줄까

이 시의 또 다른 제목은 '낙화'정도 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다지도 붉고 찬란한 당신을,

허공이나 물속에다 풀어지거나 번지게 놓아줄 수 있는가 말이다.

 

차라리, 비좁은 내 마음의 영토안에 가두어버리고 마는 한이 있더라도~--;

 

저녁길

 

문득 스승의 목소리가 악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햇빛의 반대 방향으로 자라는

나무였다는 생각을 한다

 

봄 꿈을 데려오시었다가

봄꿈을 다 꾸지 못하고 가시는

 

한 사람 발소리가

홀로 두었던 빈 곽이 터지는

소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도착하셨나 하여

자꾸 안쪽 먼 데를 들여다보느라

며칠째 문에 머리를 찧는다

 

책을 눌러놓으라시며

내게 돌을 주워 주시던

저녁 강가의 그 손길

 

그 후로 그 무엇이 아니라

몰래 나를 눌러놓고 있음을

이제는 아시는 그 눈길

 

위 시를 읽다가, 언젠가 친구가 준 작은 돌멩이를 꺼내들었다.

원래는 더 크고 뾰족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멩이였을 것이다.

뾰족하고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쓸쓸하고 외로웠었을 그 돌멩이가 이렇게 작고 동글한 조약돌이 되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있을게다.

 

 

친구는 돌멩이를 통하여 우주의 정기를 받아들이고 자연과 소통을 하라, 뭐...그런 어려운 말을 했던것 같은데,

난 이 시의 돌멩이처럼 문진 대용으로, 내 자신을 눌러놓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얼마나 자주 만지고 주물러댔는지, 돌멩이는 이제 맨들맨들해져 있다.

근데, 돌멩이가 날 눌러놓은 것인지,

아님 내가 돌멩이가 날아가지 못하게 붙들고 있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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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1-30 20:4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전 냉장고 문을 열때마다 조심합니다. 혹시 아이들이 먹으려고 아내가 사다둔 것을 먹지나 않을까 싶어서요. 제가 멋모르고 한번 먹었다가 애들이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있어서요.

양철나무꾼 2013-12-05 17:05   좋아요 1 | URL
담배를 안 태우시는군요?
냉장고 문을 열고 군것질 거리를 찾으시는걸 보면, ㅋ~.

전, 무조건 어른이 먼저 먹어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왜냐 '늬들은 나중에 더 좋은 거 얼마든지 먹을 수 있잖아~^^'

[그장소] 2015-12-11 01:43   좋아요 0 | URL
좋군요 ㅡ잘 보고 갑니다 ㅡ
돌맹이가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