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북을 알게 된건 손철주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통해서였던것 같다.

 

최북과 반 고흐는 둘 다 '미치광이 화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반 고흐는 "새로운 화가를 세상은 광인 취급한다. 내가 돌아버릴수록 더욱 진정한ㆍㆍㆍㆍㆍㆍ"라고 했다. 칠칠이 치북도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돈 보따리 싸들고 와 거드름 피우는 고관에게는 엉터리 그림을 던져줘 희롱하고 득의작을 몰라주면 박박 찢었다. 두 화가는 자신의 미친 짓이 곧 "지독하도록 말짱한 세상 때문"이라 했다.

거기서 최북을 조선의 반 고흐라고 설명해 놓았었지만, 고흐에 대한 자료가 넘쳐나는 것에 반해 최북에 대해서는 너무 알려진게 없었고, 이런 저런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심지어 생몰연도 또한 '칠칠은 사십구'해서 사십구 세라고  알려진 곳도 있지만

이 또한 미스테리라고 하였다.

 

 

 <'최북'의 '풍설야귀인도'>

저 그림을 보고는 마음이 묘하게 움직여 그때부터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그 이유가 그가 중인 출신이어서 일생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거의 없고,

다만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던 문인들의 문집 속에 조금씩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칠칠 최북
 민병삼 지음 / 도서출판 선 /

 2012년 8월

그러던 차에 만나게 된 이 책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였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방점을 찍지 않았었다.

소설은 재미로 읽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듯 하기만 하면 그 진위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읽는 내내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던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일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혹시~?'하다가 '흡~!'하고 허를 찔린 기분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내용의 '진위'가 아니라 '개연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시말해 내가 이전에 들춰본 우리나라의 고전 문학 몇 권의 내용이랑 묘하게 겹쳤기 때문 인지, 장르소설을 유난히 좋아하다보니 개연성이 무너진게 유독 내 눈에만 띄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내가 그동안 읽었던 이 시대를 배경으로한 작품들, 예를 들면 이옥, 김려, 심노숭, 이광사, 심지어는 연암 박지원을 배경으로 쓰여진 김탁환의 소설들에 나왔던 내용들이 짜깁기 되어 있었다.

개연성이 무너진 예는 아래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개연성이 무너지다 보니, 작가가 아무리 멋진 문체를 구사하고 있거나 중국의 한시, 우리나라의 옛시조들을 인용하는 등 박학다식함을 자랑해도, 내겐 진부하고 구태의연하게 느껴졌다.

암튼, 난 이 소설의 주제를 모르겠다.

최북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쓰여졌는지 모호하다.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과 작품 세계를 가졌던 화가이니만큼, 그만의 두드러지고 독특한 무엇인가를 엿보고자 했었던 나로서는, 참 아쉽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작년(2012)에 개관된 '무주 최북 미술관'에서는 최북 탄생 300주년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었다.

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 책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그의 생몰 연대를 1712년에서 1786년으로 통일하여 적고 있었으며, 여러 곳에 교집합이 되는 숙종 46년인 1720년부터 1786년까지는 적어도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겠다.

개연성과 관련해 크게 문제가 되는 곳 몇 군데만 짚어 보겠다.

 

먼저,

여러 해 계속되고 있는 가믐이(132쪽, 밑에서 8th줄)

오랜 가믐과, 가믐(133쪽, 2nd줄)

등 이 소설에 나오는 '가뭄'은 모두 '가믐'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건 '원순모음화' 라는 음운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양순음 ‘ㅂ·ㅃ·ㅍ·ㅁ’ 다음에서 비원순모음 ‘ㅡ(丶)’가 원순모음 ‘ㅜ(ㅗ)’로 바뀌는 음운현상을 뜻한다. 중세국어 ‘믈

[水]·블[火]·플[草]’이 근대국어 특히 17세기 말엽 이후 ‘물·불·풀’로 원순모음화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여 혼란스럽던 음운현상이 17세기 말엽이후에는 원순모음화가 이루어졌다는 거다.

시대상을 반영하고 싶고, 고어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면 적어도 17세기 이전이 무대 배경으로 등장하는 소설에서나 가능하겠다.

따라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최북의 일대기 동안은 '가믐'은 모두 '가뭄'으로 적혀야 맞겠다 .

 

또 한군데,

 

 

ㆍㆍㆍㆍㆍㆍ, 전혀 본 적이 없는 중늙은이 둘이 앉아 있었다.

ㆍㆍㆍㆍㆍㆍ

어이 달관이 한진사에게 물었다.

"이 치가 대체 누구요?"

"대감. 이자가 바로 최칠칠이라는 망나니 환쟁이 올습니다."(255쪽)

 

'올습니다'는 '올시다'가 잘못 쓰인 예이다.

'올시다'는

('이다', '아니다'의 어간 뒤에 붙어) 합쇼할 자리에 쓰여, 어떠한 사실을 평범하게 서술하는 종결 어미.

화자가 나이가 꽤 들어야 쓴다.

‘-올시다’의 의미로 ‘-올습니다’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올시다’만 표준어로 삼는다.

관련조항 : 한글 맞춤법 6장 1절 53항, 표준어규정 2장 4절 17항, 표준어규정 3장 4절 25항

 

 

또 한군데,

이 책에는 금주령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데 금주령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

혜원 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같은 그림을 미루어 알 수 있지만, 이 시대에는 우리가 텔레비젼에서 보는 것 같은 주막은 없었다고 한다.

더불어 영조가 워낙 근검하여 백성이 먹을 쌀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예외도 있었는데,

이 책에 언급된 초상이나 제사때 말고도, 농부나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 마저도, 정조는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까 영조 사후 왕이 되자마자 없앴다고 한다.

(조선 왕조 실록 참조)

원교 이광사는 1777년인, 정조 1년에 사망하였는데,

이 책에는 원교 이광사가 죽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금주령 얘기가 또 나온다.

 

거기다가 책의 말미에 이르면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등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도화서 출신의 화공들이 최북 같은 이를 스승으로 모시고 찾아뵙고 하였을까. 그건 모르겠다.

따라서, 한번 개연성이 무너져 버리면 줄줄이 도미노가 무너져 버리듯이 신뢰를 잃게 되어 소설에서 최북이 이야기와 인물들 속으로 엮여 들어가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이다.

 

작가가 아무리 멋진 문체를 구사하고 있거나 중국의 한시, 우리나라의 옛시조들을 인용하는 등 박학다식함을 자랑해도,

작가는 작중 화자나 주인공에게 애정을 갖고 감정이입을 해야 하나 보다.

이 소설에선 그 조절이 제대로 안되다 보니, 생명력이 아예 없거나 괴력이 넘쳐나는 괴물일 수밖에 없다.

 

"신분이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제 편하자고 만든 것 아니겠소. 한비자가 말하기를, 예의가 많은 자는 속마음이 쇠(衰)한다 하였소.예의도 지나치면 아첨이 된다는 말이오. ㆍㆍㆍㆍㆍㆍ"(54쪽)

사실 작가가 작중화자를 통해서라도 이런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작가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지만, 위에서 애기했듯이 개연성이 무너지니 모두가 다 시큰둥이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오늘도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바람까지 불고 있어 성기 마음이 매우 심란했다. 나뭇가지가 마치 춤을 추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가지와 가지, 잎과 잎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꼭 교태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무도 생명이 있는 것이니 정말 교태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도 남녀가 통정을 하면 잉태를 하듯이, 그래서 나무도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는 것일 수도 잇다. 그렇지 않고는 마치 애무하듯이 저토록 부드럽게 비벼댈 수가 없는 것이다.

한낱 나무도 고적할 새가 없구나!

ㆍㆍㆍㆍㆍㆍ"일찍이 고애자가 된데다가 스승마저 타계하신 탓에, 성기가 형영상조에 빠진 것이오. 그러나 학문과 예술을 하는 사람 치고,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소. 특히 예술은 영감(靈感)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 영감이란 것이 고독하지 않을 때 얻어지는 게 아니지 않소."(80~81쪽)

위 문장도 인간의 고독한 심사를 나무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수려하기 그지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교 이광사야 집안 대대로 양명학을 공부한 유서깊은 집안이니까 한자와 사자성어를 남발했다손 쳐도 최북 또한 아무 개성 없이 저런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독이 꼭 나쁜 것이 아니란 것을, 예술가에게 고독은 필수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고 해야 할까?

최북의 경우 고독을 즐기며 시서화와 술로 위안을 삼았고,

마찬가지로, 고흐도 고독과 벗하며 그림과 동생에게 쓰는 편지와 커피에서 위안을 삼았다.

참, 가난은 이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렇게 외로운 신세라도 자유가 없는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예술가는 그래야 한다고 못 박고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란 고독하고 혼자 사는 것이라고도 했다. 최북이 거기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이다.(319쪽)

암튼, 내가 작가를 향하여 이러쿵 저러쿵 툴툴거렸지만, 그래도 작가를 향한 분홍분홍한 애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작가의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의 따뜻함, 다시말해 비록 작품 속에서일지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였다.

왜냐하면, 그것이야 말로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고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원동력이니까 말이다.

원교는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고 멀리 산등성에다 눈길을 걸었다. 그윽하게 들어앉은 그의 눈에서 햇살이 무수히 부서져 흩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나이 어느덧 이순(耳順)이 되었다. 눈에서 부서지는 햇살의 양만큼, 그의 인생도 그렇게 부서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유배생활을 학문에 전념하는 기회로 삼을 각오가 있을지는 몰라도, 유형지의 생활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생활이 이십여 년이나 더 계속된다면, 학문은커녕 심신이 먼저 피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걸 생각하면 최북의 마음이 벌써부터 내려앉는 것이었다.(241쪽)

 

최북이나 고흐 등 예술가를 놓고 볼때 고독이 꼭 고통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화가로 만든 바로 그것이 '고독'일지도 모르고, 거기에 최북에게는 술이, 고흐에게는 커피가 옵션으로 더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어떤 감정이 다가왔을때, 그감정을 마냥 비껴갈 궁리만 할 것이 아니라...한번쯤 그 감정에 흠뻑 빠져 누려보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67가지
  김소영 지음 / 소울메이트 / 2013년 2월

 

2013년부터 MBC 주말 뉴스데스크 부장을 맡고 있는 '김소영'김소영 기자가 쓴 이 책이 그런 의미에서 도움이 될 것 같다. '정치는 생활을 바꾸고, 예술은 삶을 바꾼다.'가 취재 신조란다. 너무 멋지구리하다, 이를 어쩔 것인가 말이다, 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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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3-10 02:36   좋아요 0 | URL
'가뭄'을 그즈음에 '가믐'으로 적었으니 문학에서 그렇게 적을 수도 있을 테지만, '가뭄'을 '가믐'으로 적으려면, 그무렵에 쓰던 다른 말투도 고스란히 살려서 적어야 옳겠지요. 게다가, 옛날 사람들 말투에는 '-에게'가 나올 수 없고, '-고 있다' 꼴이 나올 수도 없으며, 옛날 사람들은 '감히'라는 일본 외마디 한자말을 쓸 턱도 없어요.

문학을 읽을 때에는 문학자가 쓴 말투를 따지는 일은 거의 부질없으리라 느껴요. 그 옛날 시대를 살지 않고서 그 옛날 시대 말투를 되살릴 수 없으니까요. 우리는 그저 좋은 이야기, 좋은 줄거리, 좋은 삶을 문학에서 읽으면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양철나무꾼 2013-03-10 03:09   좋아요 0 | URL
최북의 생몰 연대를 1712년에서 1786년으로 통일했으니, 18세기를 살았던 사람이죠.
원순모음화는 17세기 말엽에 이미 정착되었구요, ㅋ~.

뭐, 저도 문학, 아니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외적인 것으로 딴지를 걸 생각 따위는 없는데 말이죠.
저렇게 되면 개연성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서 얘기가 넘 재미없어져 버리거든요~--;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꾸벅(__)

2013-03-10 0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10 0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3-03-11 10:49   좋아요 0 | URL
원순 모음화에 종결어미까지
와우 님의 국어 내공이 장난아니네요
깨갱 언제나 깨갱
그나저나 최북이란 인물이 무지 땡겨서 저도 저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갑자기 저 새로운 인물이 저를 두드리게 하는 힘을 가지셨네요
그림속에 작은 인물 둘이 가는 길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