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랑 책 읽는 취향이 거의 비슷한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보고 혹하여 주문하였다.
책의 앞표지엔 `주기율표에 얽힌 광기와 사랑, 그리고 세계사`라는 문구가,
책의 뒷표지엔 `올리버 색스의 풍부한 일화와 말콤 글래드웰의 대중성을 갖췄다.`라는 문구가 유혹적으로 박혀 있었다.
`주기율표`라는 문구에서 `프리모 레비`를 떠올렸고,
`올리버 색스`라는 이름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편두통`의 자상한 예제를,
`말콤 글래드웰`에서 `1만시간의 법칙`을 얘기했던 그 필력을 기대했었나 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기대에 한참 못 미쳤으나 재미없는 책은 아니었다.
난, 프리모 레비를 알고 좋아했던 터라 `주기율표`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그의 책 `주기율표`에서 21가지 원소들을 삶에 대입시켜 회상하고 어루만지고 가다듬어,
화학적 연금술사 마냥 반짝이는 문장으로 만들어냈던 게 기억났었을 뿐이다, 아웅~ㅠ.ㅠ

암튼, 이 책 `사라진 스푼`의 저자 `샘 킨`은 어떻게 보면 `프리모 레비`를 닮았다.
`프리모 레비`가 화학자이면서 글을 썼듯이, 물리학도이면서 글을 쓰겠다는 열정은 높이 살만하지만,
그의 그것이 아무리 반짝거리더라도, 프리모 레비의 그것처럼 두루 골고루 넉넉하며 적당한 온기까지 갖고 비추지는 못했다.

`사라진 스푼`의  재료가 되는 원소는 `갈륨`이다.
갈륨은 실온에서는 고체지만 29.`C에서 녹기 때문에, 화학 전문가들이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고 싶을 때 선호하는 물질이란다.
갈륨으로 찻숟가락을 만들어 내놓고는, 찻잔에 담근 찻숟가락이 사라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실은, 갈륨이라는 원소를 나는 다른 의미로 알고 있었다.
갈륨 결핍이 뇌암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어디서 보았었다.
이것은 운동을 과다하게 열심히 하는 것은 뇌암을 예방하기는 커녕 위험도를 높인다는 얘기이다.
그 이유로 땀을 흘릴때 60여 가지의 필수 미네랄을 모두 함께 내보내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80년 동안 흘릴 땀을 운동 선수들은 30년만에 다 흘려 버린다.
이때 갈륨만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셀레늄이나 기타 다른 미네랄도 함께 내보내게 된다.
요즘 나오는 영양제 중 발빠른 몇몇 실버 제품들은, 이렇게 부족하기 쉬운 미네랄을 보충해주고 있다.
 
얼마전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맞을때 눈물이 나고 살이 찢어질 듯 아팠던게 생각이 났다.
이 책엔, 최루액의 성분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던 내 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듯 자세히 나와 있었다.
처음 브롬(브롬민)으로 시작한 이 최루가스는 프리츠 하버에 이르러 질소를 이용하게 된다.
질소를 암모니아로 만들게 되면서,
퇴비 대신 인공 비료의 선구자가 되어  세계 인구가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공이지만, 
독가스, 질소 폭발물 등을 만들어 위력적인 살상무기로 만든것도 바로 그 `프리츠 하버`이다.
결국 그는 질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수십만 명을 살상케하고 수백만 명을 공포로 몰아넣은, 화학전을 주도한 혐의로 국제전범으로 기소되기도 했었다.

그런 `질소`를 프리모 레비는 `주기율표`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나는 여인의 입술을 치장하게 될 알록산이 닭이나 뱀의 분비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화학자라는 직업은 불필요하거나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혐오감들을 극복하라고, 아니 무시해버리라고 가르친다(내 경우 이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으로 더욱 굳건해졌다). 재료는 재료일 뿐, 귀할 것도 불쾌감을 줄 것도 없으며, 무한한 변형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그것의 처음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질소는 질소다. 그것은 공기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우리 인간에게로 기적적일 정도로 순환된다. 우리 몸속에서 질소가 그 기능을 다하면 우리는 그것을 배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질소는 무균상태로 무해하게 남아 있다.

1981년 NASA에서 우주선 모의실험을 하던 기술자들이 질소에 질식사를 하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질소에 의한 질식사가 보고 되고 있다.
이걸 프리모 레비가 알게 되었더라도 `무해하게 남아있다`고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모든 유해함을 뒤로 하고 질소는 우리생활의 곳곳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웃음가스라고도 불리우는 `이산화질소`는 `마취제`로,
이산화질소는 강력한 산화제와 로켓연료로,  
질소 기체는 식품의 선도 유지 - 과자봉지의 충전제로,
액체 질소(-196℃)는 식품의 냉동제와 시료의 동결 보관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원소가 있는데, 그게 `베릴륨`이다.
베릴륨은 설탕맛이 나서 `미각을 속이는 원소`라고 불리운다.
나는 베릴륨을 스피커의 떨림판이나, 방진 마스크에 사용되는 재료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치과 크라운으로 한때 사용되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설탕맛이 나면 오히려 좋을텐데 왜 지금은 사용되지 않을까 궁금하던 차에,
베릴륨 가루에 노출되면 폐질환이 치명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치과 크라운 뿐만 아니라 고급 스피커의 떨림판과 방진 마스크 용도로 다 사용 금지되어야 하겠다.

하숙집에서 음식을 재활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방사성 납을 살포했다가, 이튿날 `굴라쉬`라는 수프에 방사능 탐지기를 갖다대본 기지도 재미있다.


납이야말로 죽음의 금속으로 제격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납은 죽음을 가져다주고, 그 무거운 성질은 추락하려 함인데 추락은 바로 죽은 자가 하는 것이고, 그 색깔도 핏기 없는 죽음의 색이며, 이 모든 것은 납이 행성들 중에서 가장 느린 죽음의 행성인 `투이스토`의 금속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ㆍㆍㆍㆍㆍㆍ
암튼 주기율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방사성원소처럼 지극히 정치적 잇속이 개입되어 있는 원소들도 있고,
돈으로 쓰이는 지독히 자본주의적인 원소들도 있다.
돈과 얽힌 원소들이 더 오래되고 긴밀한 것 같다.

과학에서의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주기율표에서 발견하는 대칭성과 반복성에 환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기율표의 아름다움에는 추상적인 것만 있는게 아니란단다.
예술적인 원소들은 온갖 형태로 변장하여 예술에도 영감을 준다.
금과 은과 백금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우며,
카드뮴이나 비스무트 같은 원소는 물감의 안료로 나타난다.
새로운 원소 합금으로 강도나 유연성을 높임으로서 디자인을 기능적인 것에서 경이로운 것으로 변화시킨 예로 휴대용 라이터, 만년필, 타자기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리튬처럼 다른 의미로 예술적인 영향을 미친 원소들도 있다.

리튬은 뇌에서 기분을 변화시키는 많은 화학 물질에 영향을 미치며, 그 효과는 복잡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리튬이 신체의 일주기 리듬, 즉 생체 시계를 재설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리튬을 복용하게 되면 활력을 잃거나 마음이 착 가라앉는 걸 느꼈다고 얘기한다.
다시말해, 리튬은 예술가에게 건강을 준 대신 예술을 위축시킨다.
광기 어린 천재를 평범한 인간으로 만드는 원소인지도 모르겠다.

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예술을 위축시키는 그것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강'이라고 보아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 탄소 ;
탄소가 우리들 속에 들어 있다.

이리저리 이동하다가 신경세포의 문을 두드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그 세포의 일부분인 또 다른 탄소의 자리를 빼앗는다. 이 세포는 뇌에 속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뇌,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뇌다. 문제가 된 세포,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문제의 원자는, 아무도 묘사하지 않았던 엄청나게 섬세한 놀이인 내 글쓰기에 속해 있다. 지금 이 순간 미궁처럼 목잡한 줄거리를 벗어나 내 손으로 하여금 종이 위의 어떤 여정을 따라 달려가며 기호들의 소용돌이를 그리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세포다: 위로, 아래로, 두 차원의 에너지 사이로 이중 도약을 한 이 세포는 내 손을 이끌어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게 만든다, 바로 이 마침표를.


* 아연 ;
부드럽고 예민하며 산에 고분고분해서 한 입에 먹히는 아연도 불순물 없이 아주 순수한 경우에는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럴 경우 아연은 어떤 결합도 완강히 거부한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 충동하는 두 가지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악에서 지켜주는 보호막 같은 순수함에 대한 찬미와, 변화를 일으켜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불순함에 대한 찬미가 그 둘이다.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 인 ; 인은 감정적으로 중성이 될 수 없었다.

* 금 ;
그것의 토대는 노동자를 억압하고, 다른 이의 노동을 착취하는 사람들의 배를 불리고, 생각할 줄 알고 파시즘에 굴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었고, 체계적이고 계산적인 거짓말이었다.

* 바나듐 ;
이 이야기는 꾸며낸 게 아니다. 현실은 허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덜 정돈되어 있으며, 더 거칠고 덜 원만하다. 그것이 같은 차원에 놓여 있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암튼 똑같은 주기율표에서 출발하지만,
프리모 레비의 그것이 자신이 경험했던 비극의 역사가 세상을 향한 외침이 되도록,
자신의 인생을 관통했던 사건들을 원소와 더불어 끄집어 냈다면,
샘 킨의 이 책 `사라진 스푼`은,
프리모 레비 이후로도 발견되고 발전되어온 주기율표의 빈칸을 채워가는 현대과학의 나머지 이야기들을 수다스럽게 들려주고 있다.
프리모 레비의 그것이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면,
샘 킨의 그것은 무한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미래를 꿈꾸며 열려 있다.
우리가 간과한 칸을 찾아보는 정도를 지나서, 주기율표의 한계를 벗어나는 확장에 대해서도 얘기하다.
그러면서 주기율표의 변화를 주어 류트처럼 생긴 것, 프레첼처럼 생긴 것, 피라미드처럼 생긴 것, 뫼비우스의 띠 모양 등을 애기하고 있다.
세상에나~!
삼차원 팝업 주기율표도 얘기한다.

암튼, 과학은 인간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해주기 의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모 레비가 되었건 샘 킨이 되었건 간에, 풍요와 편리를 앞세우다가 `인간`이 간과되어서는 안되겠다.

난 아무래도 미래를 내다보기 보다는 과거에 연연해 하는 사람인가 보다.
프리모 레비의 이런 표현들을 아직 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가을에는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 냄새가 난다. 낙엽, 휴식하는 대지, 불타는 나뭇가지 더미, 즉 `영원`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끝나가는 것들에게서 나는 냄새 말이다" 
하늘에서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는 아침, 쌓이기도 전에 녹는 눈을 보며 무슨 청승인가 모르겠다.

오래전 나에게 프리모 레비를 권했던 그대여,
그러니 내가 그 책을 거절했다고 하여 그대의 마음을 거절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쯤에서 충분히 알아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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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12-09 11:44   좋아요 0 | URL

 

 


pjy 2011-12-09 14:40   좋아요 0 | URL
오~~~~~~홋, 한참 내용을 읽고, 알고보는대로 완젼 신기합니다^^

마녀고양이 2011-12-09 12:56   좋아요 0 | URL
헉, 이 책 기대에 못 미쳐?
그런데 리뷰는 왜이리 유혹적이야? 아우, 이거 읽으려고 사놨는데 먼저 읽었군... 에휴휴.
난 언제쯤 책을 읽을건지, 지금은 페인트칠이나 잘 해야징, 끙.

2011-12-09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1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4 00:17   좋아요 0 | URL
흠. 이 책과 함께 `그대의 마음`은 양철님에게 머물러 있군요.
+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매력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