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 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송기역 지음, 이상엽 사진 / 레디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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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최성각의 '추천의 글'을 인용하며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최성각은 내게 감성을 건드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인식되어 있었고, 이 책 '흐르는 강물처럼'은 '4대강 르포타주'라는 부제가 붙었을만큼 사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는데, 사실이야말로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코드이고, 감성이 자극을 받았다는 얘기는 다른말로 바꾸면 사실이라는 얘기이다.
사실은 아프지만 힘이 세다.

...시인은 강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그 눈물방울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강믈'로 여기며 동변상련했다.(5쪽)

눈물방울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강물이라는 표현, 오래 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최성각은 언어의 마술사답게,

'...파괴는 가치 없는 짓이며 그 과정이나 결과가 매우 흉악하지만, 파괴를 담은 기록은 이 책처럼 그것이 제대로 담긴 기록이었을 때 너무나 슬프고 아름답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아이러니이고, 서글픈 소득이 아닐 수 없다.(7쪽)'

는 문장으로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그동안 '4대강'이라고 얘기할 때 (우리나라의 지리를 속속들이 모르는 나는) 4대강이라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강 중에 그래도 큰 4개의 강만 개발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는데...
각 장의 시작마다 실린 지도를 모아놓고 보면 우리나라 전체인데,
책에 실리지 않은 마을과 사람들, 그들의 눈물이 만들어낸 작은 강까지 합하면...
전국 방방곡곡 파헤쳐지지 않은곳, 피눈물 흘리지 않는 곳이 없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넘어져 무릎이라도 깨지면 그 상처에 염증반응이 생기고 딱지가 앉기까지, 우리의 몸은 싸우느라 몸살을 앓는다.
4대강 공사를 상처라고 치면 우리의 산하 전체가 파헤쳐져 있다는 건데,
최소한의 적응 기간을 갖도록 순차적으로도 아닌, 전국 방방곡곡이 한꺼번에 파헤쳐져 있다는 건데,
우리의 산하 전체가 앓고 있을 몸살을 생각하면 내 몸이 같이 욱신거린다.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가 덮쳐버린 건 일본 땅의 한 부분인데, 우리나라의 파헤쳐진 곳이 전국방방곡곡인 것을 보면...
참담함의 정도로 보면 우리가 나을 것도 없지 싶다.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보니, 밤하늘에 조각달이 떴었는데...그들이 보낸 이포 바벨탑엔 보름달이 떴었나 보다.

"여강 이포에 달이 떴습니다. 당신과 내가 있는 곳은 다르지만 우린 함께 달을 봅니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주저앉지 않고 깨어나 흐른다면, 우리의 강은 영원히 흐를 것입니다."(100쪽)


그들이 바벨탑에서 41일동안 읽었다는 책을 만나게 되는 것도 흥미로웠다.
법정 스님의 법문집 <일기일회>,신정섭의 한강 답사기 <한강을 가다>,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종환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등 대략 10권 정도 된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수확이라면 지율스님을 좀 자세히 만나게 된 것인데,
지율스님이 왜 상주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부터 시작해, 4대강 사업을 얘기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어려운 용어들이 쉽게 설명되어 이해가 쉬웠다.


낙동강변을 걷는 지율 스님의 발. 스님은 모래사장을 걸을 때 늘 맨발이다. 마치 그 땅의 맨살을 느끼려는 듯 스스로도 맨발을 한다. 스님을 따르는 자들도 역시 맨발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은 강바닥을 지하 4미터를 파요. 물 높이는 평균 6미터 이상이 될 거예요. 물고기들은 그렇게 깊은 데 살 수 있는 애들이 많지 않아요. 우리 삶을 생각해보면 알 거예요. 우리가 갑자기 지하 6미터에 가서 사는 거하고 똑같은 거죠. 맑은 공기와 익숙했던 지상을 버리고 갑자기 6미터 지하에서만 사는 겁니다."(117쪽)

 

내가 숙연해지고 결의를 북돋우었던 대목도 있다. 

"앞서서 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해줘야 해요. 환경문제는 10년 이상 모니터링하고, 실질적으로 자료가 나오지 않으면 선례가 안 생기잖아요. 새만금 하다 끝나면 뭐하고, 또 뭐하고, 이렇게 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제기한 문제들이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대해 조사하고 책임을 져야 해요."(132쪽)

 

책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중에서 이런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이해는 못했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러나 난 아직도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블랙풋강의 소리, 낚싯대를 던지는 네 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든다. 그리고 강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238쪽)

나와 나의 아이는... 강을 잃게 되면 무엇을 통해서 그들과 교감을 하게 될까?
강은 아는지 모르는지 무던히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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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04-10 10:44   좋아요 0 | URL
긴 강물의 흐름으로 보면, 이 미친 짓을 하는 인간들도 하나의 작은 생채기에 불과한 걸요. 뭐.
눈물이 가장 작은 강의 하나라는 말이 가슴을 치고 가네요.

양철나무꾼 2011-04-12 00:37   좋아요 0 | URL
강만 보지 말고, 강이 바다가 되는 것도, 그 바다가 비를 만드는 것도, 비가 다시 내를 만들고, 내가 강을 만드는 순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순환이 순리가 되기도 하지만, 악습이 되기도 하는 걸 눈앞에 두고 보면서 말이지요~ㅠ.ㅠ

잘잘라 2011-04-10 13:33   좋아요 0 | URL
이렇게 책으로, 역사로 모조리 기록되는데, 두렵지 않은걸까요?
허긴 모든걸 뒤덮어버리는 거짓책, 거짓역사를 만드시느라 바빠서
진실을 두려워할 시간이 없겠지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1-04-12 00:41   좋아요 0 | URL
강이 자정작용을 하듯, 역사도 강처럼 자정작용을 하지 않을까요?
끝까지 하야 한다는 지율스님의 말씀을 되새길 밖에요~ㅠ.ㅠ

순오기 2011-04-11 11:13   좋아요 0 | URL
주말에 예당저수지를 보고 왔는데, 불부족 국가라서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저수지를 또 만들어야 한다는데...심란했어요. 4대강은 결국 전국을 모두 파헤치는 폭력이군요.ㅠ

양철나무꾼 2011-04-12 00:45   좋아요 0 | URL
우리도 물부족 국가 대열에 합류하는 건가요?
예전엔 3면이 바다여서 물은 부족하지 않은걸로 배웠었는데 말이죠.

하긴 에너지 절약, 자원 절약 캠페인 나오면...예전 같지 않게 국가 전략 홍보인줄 알고 귀를 막아버려요~
아름다운 경치를 더 이상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현실이 슬퍼요~ㅠ.ㅠ

순오기 2011-04-12 08:3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가 물부족 국가로 분류된 건 아주 오래전이어요.
내가 기억하기론 90년대부터~~~~ 점점 현실로 실감하고요.

양철나무꾼 2011-04-14 10:3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라디오 공익광고에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귀를 막고 살았나 봐요.
하긴 구제역 침출수도 그렇고, 일본 방사능 오염도 그렇고...천일염이 그렇게 인기라네요~

감은빛 2011-04-11 13:40   좋아요 0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곧 읽기 시작합니다.

요위에 메리포핀스님의 댓글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양철나무꾼 2011-04-12 00:47   좋아요 0 | URL
네, 읽었어요.
쉬이 읽혔지만 아프게도 읽혔어요~ㅠ.ㅠ

메리포핀스님이야 통통~하시잖아요~^^

차좋아 2011-04-12 09:27   좋아요 0 | URL
무력해요...... 저는 옳은 소리에도 이제 아무런 감흥이 없어졌어요. 어떤 흉한 뉴스가 들리든 그냥 마음 한 번 찌잉 하고는 곰방 잊어요. 어쩌겠어요. 알면 아프고 모르면 좀 나은걸요.

어제는 노노데모라는 재밌는(?) 카페를 구경했는데 어떤 안타까운 뉴스보다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니가 거기는 나라를 좀 특별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인데 정말....... 네이버 카페인데 어쩌다 사람들이 그 지경이 됐는지 겁납니다.

양철나무꾼 2011-04-14 10:38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이랑 크게 다르지 않죠.
알면 아프고 모르면 좀 나으니까요~ㅠ.ㅠ
하지만, 이런 분들이 계셔서 이렇게라도 한번씩 자극받게 돼요.

오늘 아침 어느 뉴스를 들으니 4대강 사업은 거의 파헤쳐져서 손 쓸 수 없는 상황인데,
이젠 지류 지천까지 정비한다고 난리도 아니라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