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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말고 당당하게 - 하종강이 만난 여인들 ㅣ 우리 시대 우리 삶 1
하종강 지음, 장차현실 그림 / 이숲 / 2010년 5월
평점 :
어떤 때는 책이 아주 두꺼워 며칠을 싸들고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어떤 때는 책은 가볍고 쉬이 읽히지만 쉽게 넘어갈 수가 없어 며칠을 곰국을 우려내듯 내 안에 보금어 둘 때가 있다.
하종강의 이 책<울지 말고 당당하게>도 220쪽짜리의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간간히 그림도 들어가 있는 얇은 책이지만,내 안에 한참을 보금어 두고픈 책이다.
부제가 '하종강이 만난 여인들'이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듯이,그동안 다른 책들에 한번 나왔던 인물들 중 여인들만 가려냈다 할 수 있겠다.
그게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책의 내용이나 그림들,책과 그림과의 조화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책머리에,
'곧 5월.세월은 흘러도 다시 처음처럼 뜨거워질 사람들에게,그동안 만난 여인들에게,그리고 미처 말하지 못했던,훨씬 더 많은 한결같은 그대에게 이 책을 바친다.(11쪽)'
라는 헌사로 이 책을 시작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남녀노소 어느누구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34쪽의,
' 할머니의 슬픔을 외면하고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면,그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51쪽 의,
"신청인이 지금 대답하시면서 자꾸 울먹이시는데,그렇게 울지 마세요.당당하게 맞서세요.만일 여기서 일이 잘못되더라도,물론 노동위원회에서 그런 결정을 할 리는 없겠지만,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용기를 내세요.나쁜 사람들과 당당하게 맞서 싸우세요."
이런 글귀는 나라도 그여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가,그 책 속의 여인들이 나에게 해주는 말을 듣는 수혜자이기도 한 셈이다.
다시말해,그런 위로와 격려 속에서 나 자신을 다잡고 부추길 수 있어서 이 책이 좋다.
61쪽의,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이 어린이집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혼자 겪으면 너무 힘에 부치니까 서로 도우며 함께 하자고 모인 것,그것이 바로 교사노동조합이다.노동자들이 옳은 일을 서로 도우며 함께 하자고 모인 것,그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다.그래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의 신성한 당결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결코 노동자에게만 유익한 집단이기주의적 조직이 아니다.노동조합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문제점을 고쳐 더 좋은 사회로 만들어 가는 올바른 수단을 제공한다.노동조합은 지금까지 200년이 넘는 역사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105쪽의,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이렇게 다르다.누구의 관점이 옳을까?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수준의 잣대로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왜 사람들은 애써 모른 체하는 것일까.
이 부분은 전교조를 해임하겠다고 들먹이는 그 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싶은 문장이다.
75쪽의,
"지금 노조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어요.식당에 사무실을 차리니까 조합원들 만나기도 더 쉽더라구요.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남자들만 더 나쁜 사람이 도ㅒ가는 거 있죠?딜레마에 빠진 건 우리가 아니라 남자들이예요.우리는 여기서 더 빼앗길 것도 없거든요.남자들은 이제 우리를 죽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어요.식당에서 한 10년쯤 버티기로 했어요."
큰일이라도 벌어진 듯이 호들갑을 떨었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88쪽의,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며 사는지 당신 이알아?잘 알지도 못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노동자 교육 중에 곤하게 잠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함부로 놀리면 안 되지.'
89쪽의,
'그곳을 나서면서 가슴이 떨렸다.그토록 힘겹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인 곳에서 강사랍시고 온 인간이 씨알머리 없는 얘기만 늘어놓으니,차라리 그 시간에 달게 잠이라도 자는 게 그분들 인생에 실제로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이 부분의 그의 처절한 깨달음은 그것을 읽는 나에게도 같은 무게의 깨달음으로 고스란히 다가왔던 부분이고,
175쪽의,
"귀밑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평생 노동상담이나 하다가 늙어 죽은 사람이 당신 남편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겠소?"
안해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쏜살같이 대답했다.
"아이고,나는 당신이이제 와서 뭐 다른 거 한다고 그럴까 봐 겁나는 사람이에요.그냥 하던 일이나 계속 하시라고요."
이 대목에선,하종강의 안해 분이 '하종강이 만난 여인들'중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라는 건 알지만,
살짝 부럽고 샘이 나 툴툴거렸던 부분이고,
180쪽의 '가시나야,왜 그러고 사냐...'같은 경우는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 서늘했던 대목이었다.
190쪽의,
"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한 행복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너는 충분히 행복할 권리가 있어.남들이 평생 해야 할 고생을 이미 다 했으니까...하지만,네가 말하는 그'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한 행복'도 결코 쉽게 얻어지지는 않아."
199쪽의,
'줄 타는 광대는 몸이 기우는 반대편으로 부채를 펼쳐야 한다.시인의 부채는 사회의 어느 쪽으로 펼쳐져야 하는가...내가 이런 얘기를했을때,후배는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고 했다.'
같은 부분에서 ,내가 몸담고 있고 상상하는 노동현장과 실제 그들이 뒹구는 판은 많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언젠가 조혜련과 안영미가 TV에 나와 골룸 흉내를 내는 걸 본 일이 있다.
나는 안영미라는 젊은 처자가 흉측한 분장을 하고 골룸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높이 사고 싶었는데,이때 원조 골룸 조혜련의 한마디에 뭉클해졌었다.
"더 낮춰...바닥을 기어야 해."
나 또한 이 땅의 피 끓는 노동자다.
더 낮춰야 겠다.바닥을 기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