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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ㅣ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오전 중 컴퓨터를 켜면 즐겨찾기 해 둔 블로그를 들른다.
그날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클릭질을 해대는 터라 순서는 뒤바뀔때도 있지만,
빼놓지 않고 찾는 블로그가 '스머프 할배의 만화방'(<=링크)이란 곳이다.
정치적인 견해도 다르고 현 사안에 대해서 얘기하는 목소리도 나와는 많이 달라 동조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빼놓지않고 찾는 이유는 그로부터 삶을 배우기 때문이다.
거창하게...삶의 스승이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을때,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하루를 살아내며, 어떻게 잠들지 모르겠을때,
숨 고르기를 배우듯,
삶을 배운다고나 할까.
아파트 경비원인 그의 블로그를 보면서 막 살고 싶다는 의지가 샘솟지는 않고,
적어도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는 하다.
그리고 이 책 '임계장 이야기'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내가 모르는 일상들이, 삶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나 한명이 살기 위해서, 내가 의식을 했든 하지않았든 간에.
은연 중에 배경으로 존재하는 일상들이 있고,
나 또한 누군가에겐 그렇게 은연 중에 배경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어루러져 사는 것일 거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인 '임계장'.
이 분도 처음부터 임계장은 아니었고,
38년간 공기업 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하였으며,
서울대 출신이다.
버스 회사 배차 계장, 아파트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겸 경비원을 거쳐,
버스터미널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하다 쓰러져 해고 되었다.
7개월간의 투병생활 이후 지금은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단다.
내가 그의 이력을 옮겨적으며,
'서울대출신'을 적어넣은 이유는,
"아빠, 저 경비 아저씨, 참 힘들겠네."
아빠가 대답했다.
"응, 많이 힘들 거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돼."(103쪽)
적어도 공부를 안해서 경비 아저씨가 된 것은 아니란 말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학력이라는 이유로 '임계장' 같은 일을 마다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경계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또 한군데 슬펐던 지점은 여기였다.
눈물을 흩뿌린 이유를 설명하려들면 또 눈물 바람을 할 것 같으니 생략하기로 하고~--;
"이 사람 경비원 되려면 아직 멀어쑨. 그렇게 꽃잎만 쓸다가 다른 일은 언제 하나. 꽃은 말이야, 봉오리로 있을 때 미리 털어 내야 되는 거야. 꽃이 아예 피지를 못 하게 하는 겆;. 그래야 떨어지는 꽃잎이 줄어들거든. 주민들이 보게 되면 민원을 넣게 되니까 새벽 일찍 털어야 해."
ㆍㆍㆍㆍㆍㆍ
"선배님, 세월호 참사가 가슴 아팠던 건 미처 피지 못한 꽃들이 봉오리인 채 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찌 보면 꽃잎을 머굼은 봉오리가 활짝 핀 꽃송이보다 더 값지지 않겠어요? 우리 몸이 고단하더라도 꽃잎이 싫다고 봉오리를 쳐내서야 되겠어요?"(181쪽)
어디선가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2~3세가 된다는 얘길 들은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100~120세까지 살 것이라는 말도 들은 것 같다.
60세에 정년 퇴직을 한 사람들은 82~3세 평균수명을 다할때까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운이 좋거나 혹은 (해석하기에 따라) 운이 나빠 100세, 120세까지 라도 살게 되면 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책과 연관되었을 수도 있고,
아무런 연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는 나날들이다.
이곳에 글들을 쓰고,
이웃 서재에 마실을 다니고 했었을 때의 내가 대견하기까지 하다.
이곳에 글을 쓰는 것도,
이웃 서재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코멘트를 남기는 것도,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한없이 할일 없이 허허로워 보이겠지만,
나름 내 안의 나와 고군분투 중이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격려하는 것이다.
또 다시 명절이다.
조상님 따윈, 조상님의 은덕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하고 싶지만,
(조상님이 있다면 그렇게 쉽게 데려갈 이유가 없을테니까,)
누군가는 보름달 보고 소원은 빌어볼 수 있는,
또 누군가는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기간이니,
내겐 소원이나 희망은 요원하겠고...
주문이라도 외워봐야겠다.
메리 베리 해피 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