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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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필이 꽂혀서 보는 드라마는 '눈이 부시게'이다.

김혜자와 한지민이 묘하게 넘나들며 연기를 하는데, 재미있다.

내가 집중을 하고 보게 된 부분은 시계의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혜자는 젊음을 담보로 아빠를 죽음에서 되살릴 수 있었지만,

결국 아빠는 의족 신세가 되었고,

시계를 다시 되돌리면 혜자는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등가로 무엇을 걸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

시계를 포기하고 현실을 살기로 한 혜자가 안쓰러웠다.

 

아무래도 내가 보는 환자가 노인이 많아서 그런가,

드라마 속 등장하는 홍보관 설정이 흥미로웠다.

드라마 속에서 설정은 홍보관인데,

시설의 럭셔리함으로 따진다면 노인복지관이나 실버센터 수준이다.

명확한 기준 없이 오락가락하는데,

노인복지관은 그런 곳이 아니고,

홍보관 또한 그런 곳이 못 된다.

드라마니까 거칠게 그려낸 설정이었다고 해도,

어색하게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다.

약장사라고 불리우는 홍보관엔 할아버지들이 없다.

그렇다면 노인복지관이어야 할텐데,

노인복지관에서 건강보조식품이나 보험 등을 파는 건 불법일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책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를 읽었다.

좀 슬프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여든을 넘기며'란 1장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나머지 것들은 부제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을 하기에 꼭 필요한 주제일지는 모르지만,

재미를 느끼기엔 내가 역부족이었다.

르귄 여사의 그 방대하면서도 깊음을 내가 헤아릴 수가 없었다고 해두자.

 

이 책은 르귄이 '주제 사라마구'의 블로그를 보고 영감을 받은게 계기가 되었단다.

 

'블로그는 '쌍방향적'이어야 하며 사람들의 댓글을 일일이 읽어 답을 해주고 낯선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걸 당연히 여기'(9쪽)는 것이라서 흥미를 잃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작가는 그가 쓴 이야기와 시 뒤에 숨어서 작가의 글이 작가 대신 그들과 말하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년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노년은 존재 상태이다.(28쪽)

 

물론 노화가 스러져감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극심한 경쟁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라서 현실에 충실하고 마음의 진정한 평화를 찾을 기회가 될 수 있다. 만약 기억력이 온전해서 사고에 활력이 남아 있다면 연륜이 쌓인 지능은 보기 드문 폭과 깊이를 가진 이해력을 발휘한다. ㆍㆍㆍㆍㆍㆍ그런 지능은 오랫동안 특정한 기술이나 예술로서의 기량을 길러온 노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자꾸 하다 보면 완벽해진다는 말은 실로 옳다. 요령을 깨달아 통달했으니 애쓰지 않아도 하는 일에 멋이 흐른다.(32~33쪽)

 

연륜이 쌓인 지능이 보기드문 폭과 깊이를 가진 이해력을 아무리 발휘한다고 하여도, 노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수밖에 없겠다.

 

사족을 달자면 번역도 그리 맘에 들지는 않았다~--;

김혜자 님은 스물다섯 설정의 한지민을 그대로 재현해 내시는데 정말 멋지다.

루귄여사의 문제를 제기하는 듯 하면서도 재치발랄한 문체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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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9-03-05 22:29   좋아요 1 | URL
번역에 대해서는 저도 똑같이 느꼈습니다. 작년에 원문을 대충 조금 읽다가 이번에 번역이 나와 반가워서 읽었거든요. 원문의 문체를 많이 못살렸다는 느낌을 받있고 모호한 부분도 많아서 다시 원서 찾아본 부분이 많아요.

양철나무꾼 2019-03-06 09: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런 번역 얘기를 할때는 조심스럽기 마련인데,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라니 묘한 위로가 됩니다~^^


겨울호랑이 2019-03-05 23:04   좋아요 1 | URL
‘노년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노년은 존재 상태이다‘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문장만을 놓고 보자면, 나이듦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년‘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마음 먹기에 달린 것 같기도 해서 전후 문맥에 맞게 해석해야할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9-03-06 09:27   좋아요 1 | URL
이 책에서는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다‘라는 말을 경계해요.
선의를 담아서 늙지 않으셨어요, 나이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 법이래요...따위의 말로 위로하는데,
현실 부정을 통한 격려는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역효과가 난대요.
그러고보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이를 막론하고 중요하지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